14권 - 3화
프리 스테이션은 신월동 오거리에서 강서구로 넘어가는 도로 한쪽에 있었다. 중심 도로는 아니지만, 고수부지 주차장과 달라서 오가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거기에 삼합회 두 놈은 이면 도로 안쪽에 차를 세워두어서 트럭으로 둘러싸는 건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면 도로의 폭이 좁아서 트럭 세 대가 겹치면 아예 다른 차들이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승합차로 막고, 덮치자니 승용차의 유리를 부수는 소리가 걸렸다.
어쩌지?
트럭과 승합차들을 두고도 아르윈과 이종환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형님. 제가 데려온 직원 있잖습니까?”
유섭우가 프리 스테이션 입구를 돌아본 뒤에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보기와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애라 당찬 구석이 있습니다. 차에서 끌어내는 건 걔한테 맡기면 어떠십니까, 형님?”
“생각은 나쁘지 않은데 그랬다가 괜히 코 걸리면 뒤가 불편해.”
이종환은 나중에 여직원이 변심했을 때를 염려하는 눈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인 둘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떠들고 다니면 뒤가 불편해진다.
제안을 내놓은 유섭우, 거절한 이종환이 모두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세워둔 승용차를 바라볼 때였다.
“우리 조직원은 필리핀 출신이니까 코 걸릴 게 없잖아?”
아르윈이 나섰다.
“저 새끼들 중국놈들이지 않겠냐? 우리 조직원이 문을 열면 그때 승합차로 둘러싸고, 바로 달자.”
“괜찮겠습니까, 형님?”
“타국에 와서 벌어먹는 게 어디 쉬우냐? 그만큼 우리 애들도 산전수전 다 겪었다. 또 네가 걱정하는 대로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본국에 있는 가족들이 날아갈 거 아니까 뒤탈도 염려 없다.”
“그럼 형님께서 앞만 풀어주십시오.”
조직의 선배로 깍듯하게 대하는 이종환과 유섭우를 보며 아르윈이 듬직하게 웃었다.
“야!”
고개를 돌린 그는 필리핀 조직원에게 타갈로그어로 빠르게 지시를 건넸다. 잠시 뒤였다. 프리 스테이션에서 여자 둘이 올라왔다.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아르윈 앞에 선 두 명의 여자는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르윈은 이면 도로에 서 있는 승용차를 턱으로 가리키며 역시나 타갈로그어로 지시를 건넸다. 여자 두 명이 손가락으로 승용차를 가리켜가며 확인한 다음이었다.
“승합차 준비했다가 문을 열면 바로 덮쳐.”
“너무 급하게 하면 여자들 다칠 수 있습니다, 형님.”
“그건 나한테 맡겨.”
이종환의 염려를 누른 아르윈이 목덜미의 문신과 함께 눈매를 치켜떴다.
“형님 기다리신다. 시간 더 지나면 번잡해져서 손도 못 써. 얼른 하자.”
“그럼 형님. 저랑 섭우가 승합차에 타고 있겠습니다, 형님.”
“조심해.”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형님.”
함께 강성태를 위해 일한다는 동질감이 세 사람을 굳게 묶어주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대림동, 강서구, 필리핀 조직원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어서 묘한 유대감도 있었다.
기다리던 승합차의 뒤편에 올라탄 이종환과 유섭우가 시선을 주었다.
“시작해.”
아르윈이 지시하자, 필리핀 여자 두 명이 곧장 승용차를 향해 움직였다.
이면 도로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바로 눈에 띄었다.
뭐야? 우리한테 오는 거야?
승용차에 탄 두 놈이 당황한 눈으로 필리핀 여자들을 보았다.
그 직후였다.
뭔가 욕을 뱉는 것처럼 입을 움직인 운전석 놈이 바로 손을 내려 시동을 걸었다.
젠장!
아르윈은 이를 악물었다.
프리 스테이션에 드나드는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기억하는 눈치였다.
부으으응.
“비켜!”
차가 튀어나오는 순간 아르윈이 훅, 달려나갔고,
“지금 그냥 막아! 받아! 받아버려!”
지켜보던 이종환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달려 나오는 승용차를 보며 딱딱하게 굳은 여자 둘을 향해 아르윈이 몸을 던졌고,
끼이이익! 콰작! 콰자작!
곧바로 뛰어든 승합차의 오른쪽과 삼합회 놈들이 탄 승용차의 왼쪽이 요란하게 부딪쳤다.
바깥 도로에서 걷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릴 때,
“뭐야, 이 개새끼들아!”
승합차의 뒷문을 열고 나간 이종환은 아예 깡패란 사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거칠게 승용차를 향해 움직였다.
“야! 이 씨발 새끼들 끌어내!”
당장 움직이기 어려운 승용차의 엔진룸을 쾅쾅 내리치며 이종환은 승용차의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부으응.
연달아 또 다른 승합차가 달려와 운전석을 막았고, 이어 덩치들이 줄줄이 내렸다.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줄줄이 내리는 덩치들에게 질린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형님. 일단 물러나십시오.’
팔꿈치와 무릎이 까진 데다 필리핀 조직원들까지 있어서 아르윈은 유독 시선을 끌었다. 이종환의 눈짓을 알아차린 아르윈이 여자 두 명과 함께 승합차 틈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야, 이 개새끼야! 사고가 났으면 내려서 미안하다고 해야지! 차에만 있으면 어쩌자고?”
이종환이 대놓고 설치는 걸 유섭우는 분명하게 보았다.
“조수석 쪽에 바싹 붙여! 얼른!”
부으응! 끼이익!
앞쪽은 이종환의 승합차가 빗겨 부딪치며 막았고, 곧바로 따라갔던 승합차가 운전석, 마지막 남은 조수석을 유섭우가 타고 온 승합차가 막았다.
차에서 내린 유섭우는 곧장 조수석으로 가서 주먹으로 창을 내리쳤다.
“이 새끼들 술 처먹었네?”
유섭우는 몰려든 사람들이 모두 들을 정도로 고함을 커다랗게 질렀다.
“음주였나 본데? 초저녁에 뭔 술을 마셔? 임자 제대로 만났으니 돈 엄청 깨지겠네.”
입 빠른 구경꾼 중 한 명이 떠드는 소리가 승합차 건너편에서 들렸다.
“야! 배트 하나 가져와!”
덩치 한 명이 배트를 가져다주기 무섭게 유섭우는 조수석 창을 부쉈다.
퍼석! 퍼서석!
몰려든 사람들이 고개를 삐죽 세웠지만, 승합차가 둘러쌌고, 나머지 공간을 덩치들이 빽빽하게 채워서 대놓고 안을 보기는 어려웠다.
퍼억! 퍽! 퍽! 퍽!
창을 부순 유섭우는 조수석에 앉은 놈을 향해 무섭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 뒤에 조수석 문을 열기 위해 깨진 유리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유섭우가 잠금장치 레버를 앞으로 미는 순간이었다.
서걱!
운전석에 있는 놈이 회칼을 휘둘러 팔뚝을 갈랐다.
이를 악물면서도 유섭우는 악착같이 레버를 밀었고, 동시에 바깥의 손잡이를 당겨 조수석을 열었다.
“끌어내! 얼른!”
강서구 대장이 앞장섰다. 그리고는 문을 여는 과정에서 팔뚝이 갈라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비키십시오, 형님!”
눈이 뒤집힌 강서구 덩치들이 조수석에 탄 놈을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한 놈이 승용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머리는 때리지 마.”
혹시 바깥에 들릴까, 나직하게 던진 유섭우의 경고에도 조수석에 뛰어든 덩치는 쇠망치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퍽! 퍽! 퍼억!
좁은 차 안이었다.
날카로운 회칼보다는 무식하게 휘두르는 망치가 훨씬 효과적이었고, 뒷문을 열고 들어간 덩치 둘이 가세하면서 운전석에 있던 놈은 곧바로 축 늘어졌다.
달칵.
조수석 덩치가 운전석의 고리를 제치며 문을 열자 이종환이 달려들었다.
운전석에 탄 놈을 그쪽 승합차에 실은 다음이었다.
“너희 둘이 얼른 타. 타고서 승용차 공장으로 가져가.”
이종환의 지시와 동시에 덩치 둘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았다.
“야! 앞에 차 빼라.”
앞을 받았던 승합차가 뒤로 움직이기 무섭게 조수석 유리가 깨진 승용차가 빠르게 바깥 도로를 향해 달렸다.
“앞으로 조심해, 이 개새끼들아!”
지켜보던 사람들이 들으란 의도로 이종환이 거칠게 고함을 질렀다.
“섭우야. 차에 타고 일단 출발해.”
피 나오는 모습을 감추라는 이종환의 지시였다.
팔뚝을 쥐고 있던 유섭우가 승합차로 급하게 몸을 실을 때였다.
승합차가 비켜선 틈으로 안을 살피기 위해 사람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구경났어? 뭘 봐, 이 씨발!”
덩치 한 명이 사람들을 쫓기 위해 욕을 뱉었다.
목을 내밀던 중년 남자가 움찔하는 순간에,
“너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이번에는 이종환의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형님께서 일반인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지시하신 거 잊었어?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은 이 새끼야. 일단 너 이리와!”
욕했던 덩치의 멱살을 움켜쥔 이종환이 놀라서 눈을 굴리는 구경꾼에게 다가갔다.
“미안합니다. 사고가 나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안 좋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무 관련 없는 분에게 욕한 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종환은 마치 조직의 선배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깊게 숙였고,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욕을 뱉은 덩치는 그보다 더 깊게 몸을 숙였다.
“구경하느라고 그런 건데…. 아무튼, 신경 날카로웠을 텐데 나도 미안합니다.”
무슨 깡패들이 이래?
이제는 교통사고보다 깊게 상체를 숙인 이종환과 덩치가 더 큰 구경거리인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왜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사과를 받은 중년 남자가 도망치듯 몸을 돌리는 걸 시작으로 구경하던 이들이 하나둘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너는 이 씨발. 운 좋은 줄 알아. 한 번만 더 이런 거 걸리면 아예 모가지를 따 버릴 거니까 행동 조심해.”
“예, 형님.”
그러니저러니 해도 승합차와 승용차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남은 건 이종환과 숙소 덩치들, 그리고 깨진 유리창과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의 피가 전부였다.
“가서 콜라 하나 사다 부어.”
이종환이 지시하자 덩치 두 명이 편의점으로 달렸고, 그중 한 명이 먼저 콜라를 들고 와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 위로 뿌렸다.
“가자.”
이종환은 일부러 이면 도로 안쪽을 향해 걸었다.
**
프리 스테이션 룸에서 기다리는 강성태는 팔다리가 꽁꽁 묶인 느낌이었다.
조직과 조직원들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도 보스의 덕목이었다. 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자니 절로 주먹을 움켜쥘 만큼 갑갑했다.
혹시 누군가 칼에 다치는 건 아닌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저쪽에 엄청난 실력자가 있어서 줄줄이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건 아닌지, 그야말로 세 살배기 최치곤을 물가에 내놓은 심정이었다.
강성태가 숨을 길게 내쉴 때였다.
문이 열리고 아르윈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아르윈은 팔꿈치와 무릎 부위에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강성태의 시선과 변하는 눈빛을 알아본 아르윈이 직전까지의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끄응.’
당장 뛰어나가서 삼합회 놈들의 눈에 한 방씩 꽂아주고 싶은 욕구를 강성태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여자들은?”
“다행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형님.”
아르윈이 답을 내놓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깔끔하게 승합차에 태워서 보냈다. 다친 사람 없고, 주변에서 본 사람도 없는 거 같아.
“고생했다.”
나오는 한숨을 삼킨 강성태는 최대한 덤덤하게 최치곤에게 말을 건넸다.
- 그쪽은 어때?
“지금 결과 기다리거든. 끝나는 대로 전화할게. 혹시 모르니까 오늘 밤까지 근처에 있어 봐.”
- 성태야.
통화를 마치려는 강성태를 최치곤이 나직하게 불렀다.
- 나, 행복해.
“미친놈.”
그래도 최치곤 덕분에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고수부지 쪽은 깔끔하게 끝났다네.”
“잘됐습니다, 형님.”
그나마 마음 편한 소식을 주고받은 뒤였다.
문이 열리면서 이종환과 유섭우가 동시에 들어왔다.
강성태는 바로 유섭우의 오른팔에 시선을 주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두 놈 승합차에 실어서 보냈습니다. 섭우가 회칼에 다치기는 했는데 큰 상처는 아닙니다, 형님.”
강성태의 표정을 살피며 이종환이 빠르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적당하게 처리했는데 아무래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 나올 소지는 있습니다, 형님.”
“그건 내가 태완이 형님과 의논해 볼게. 더 다친 사람은 없어?”
“아무도 없습니다, 형님.”
이종환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두 놈이 문제인데.
강성태가 키란을 돌아보는 순간,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종환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여보세요? 그래. 어! 그래? 확실하게 붙었지? 알았다.”
이종환이 통화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아르윈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그깟 실례 백 번이라도 괜찮으니까 전화는 그냥 좀 받지.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아르윈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말해.“
짧은 한마디에 이어 “알았다.” 하는 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호텔에서 나온 두 놈을 오토바이로 따라붙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형님.”
아르윈이 바로 답을 내놓았고,
“확실히 그놈들이 시간을 정해놓고 연락했던 모양입니다. 저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형님.”
이종환이 뒤따라 통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방향은?”
“영등포에서 노들길, 올림픽 도로, 외곽도로, 세 곳으로 빠져나가야 하니까 10분만 기다리시면 윤곽이 나옵니다, 형님.”
따로 묵을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 대가리겠지?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바르지오가 보내준 문자를 열었다.
“키란. 이 두 놈 얼굴을 기억해.”
그런 뒤에 따로 지내는 두 놈의 얼굴을 키란에게 차례로 보여주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