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 18화 (270/513)

13권 - 18화

제7장. 공사 수주는 정말 문제없겠습니까?

방문 이유를 짐작하는지 강성태를 받아들이는 경호책임자 존 보스만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가 긴장한 이유가 무대 위로 끌려 올라간 강성태를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평소와 다르게 날카로운 눈빛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곤잘레스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전히 많은 비서진, 경호원들의 사이를 지난 강성태는 곧장 곤잘레스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어서 오게. 커피?”

“감사합니다.”

커피포트를 들고 있던 곤잘레스를 잠시 보았던 강성태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곳이 아니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커피 향이 찻잔에 담기는 양만큼 진해지고 있었다.

창가의 책상과 앞쪽 탁자에 수북하게 놓인 서류들과 왼손에 들고 있는 파일이 현재 그가 몹시 바쁘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커피포트를 내려놓은 곤잘레스 회장 옆에서 강성태는 잔을 집어 들었다.

“소파보다는 저쪽이 어떤가? 이맘쯤 햇살이 좋아.”

몸을 돌린 곤잘레스가 책상 모서리에 파일을 내려놓고 계속 걸었다.

조그만 티 테이블이었다.

그에 맞춰 의자도 앙증맞을 정도로 작았는데, 소신영의 서재에 있는 티 테이블이 프랑스 왕실에서 들고 온 느낌이라면 지금 보이는 세트는 철공소에서 바로 가져온 것처럼 간결했다.

“소식을 들은 모양이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곤잘레스 회장이 잔을 내려놓고는 강성태를 살폈다.

부드럽게 흐르지만, 격을 잃지 않는 셔츠가 그의 자존심을 증명하듯 카라를 세운 채 강성태의 답을 기다렸다.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선물을 받지 않으니까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다면 답이 되나?”

지금 이 사람에게 달려들면 안 된다.

독촉해서도 안 되고, 쉽사리 흥분한 모습을 보여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거부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자부심이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절대라고 할 만큼 결과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 재산의 절반을 던져서라도 자부심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행태를 이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재산이 3천 억밖에 안 남았다며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감정을 누르기 위해 강성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모처럼 훌륭한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진짜 커피를 마시자 실제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회장님. 제가 하는 일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국에 마약이 발붙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폭력 조직에까지 몸담았습니다.”

곤잘레스 회장이 눈과 입술을 가볍게 움직이는 표현으로 알고 있다는 답을 대신했다.

“폭력 조직과 경호원은 어둠 속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간혹 보일 수는 있어도 동선과 무기, 활동 반경이 드러나는 순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특히, 폭력 조직은 숙명처럼 법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게 됩니다.”

말을 듣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눈가를 좁혔다.

멕시코에서 카르텔이 차지하는 말도 안 되는 힘을 상상하던 곤잘레스 회장이라면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일 수 있겠다. 그 역시 한국의 공권력에 의지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말이다.

“자네를 지켜주는 배경이 적지 않던데?”

“그들 역시 어둠에서 살아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절대 빛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빛의 사람들을 부리죠.”

“뭔가 철학적인 표현이군.”

주제에서 빗나간 대꾸였다. 그리고 그건 곤잘레스 이두안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비공식으로 정보를 흘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발표하시고, 한국의 기업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겠다는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주십시오.”

눈썹을 슬쩍 들었다가 내린 곤잘레스 이두안이 침묵을 변명하듯 커피잔을 들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독촉하지 않는다, 충분히 생각해라.

강성태는 그와 함께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속을 들여다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멀리서 한꺼번에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

이은주는 오늘 스마트폰을 이십 번쯤 만졌다가 내려놓았다.

외면하려 했지만, 아프다는 비명과 제발 오늘은 그만하라는 늙은 부부의 호소가 귀를 떠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처음에는 이은주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목덜미에 시퍼렇게 멍이 든 할아버지와 볼과 턱, 손목까지 피멍이 오른 할머니가 폐지를 줍기 위해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이러지도 않았을 거다.

저렇게 폐지와 빈 병, 고철을 거둬 판 돈을 아들이 가져간다. 그래놓고는 돈이 부족하다며 매질을 하고, 반찬이 형편없다며 행패를 부리고, 형한테 재산 다 주고 나는 뭐냐고 발길질을 해댔다.

“아파! 그만해! 아버지는 때리지 마!”

최근 자주 들리는 소리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오늘 아침 그 모습을 보고 나자 이은주는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다.

보다 못한 옆집 주인이 경찰에 신고도 했었다.

“넘어져서 다쳤어요.”

늙은 부부가 눈물마저 보이며 버티는 바람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현행법상 당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단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성안아. 나 아무래도 전화 한 통 해야 할 거 같아. 잠시만 혼자 봐줄래?”

“전화라면서요? 편하게 하세요.”

고맙다는 말을 한 이은주는 커피알리고를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용도실보다는 어쩐지 햇살이 비추는 주차장이 더 좋을 거 같아서였다.

불편한 감정,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하는 듯한 비열한 모습, 그 모든 것보다 노부부를 돕는 게 지금은 더 절실했다.

강성태에게 전화할까도 고민했었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한 번 들를 법도 한데 이렇게나 얼굴을 내밀지 못한다면 그만큼 힘들고 중요한 순간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숨을 한 번 길게 내쉰 이은주는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찾아 눌렀다.

통화음이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쇳소리 가득한 최치곤의 음성이 들렸다.

“이은주예요.”

- 알아. 무슨 일이야? 카페에 일이 생겼어?

다행히 최치곤은 덤덤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깡패 같은 음성이지만 말이다.

“카페가 아니라요, 개인적인 일인데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 전화했어요.”

- 말해. 뭔데?

이은주는 옆집의 상황을 있는 대로 설명했다.

- 이런 개새끼가?

최치곤이 뱉어내는 욕이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경찰이 두 번이나 왔었는데 그분들이 넘어져 다친 거라고 말하는 바람에 방법이 없대요.”

- 옆집이라고 했지? 오늘은 어렵고 내일 갈게.

“아들이 매일 오는 건 아니에요. 어제 돈 받아 갔으니까 하루나 이틀 밖에서 지내고 들어와요.”

- 오는 대로 일단 전화 주라. 오늘 밤에는 일이 있어서 답을 못 할지 몰라. 그럼 내가 내일 전화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너무 심하다 싶으면 경찰에 신고해. 그나마 왔다 가면 잠시라도 조용하거든.

“알았어요. 그리고 이런 거 부탁해서 미안해요.”

이은주가 솔직하게 속마음을 전한 다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묘한 웃음이 건너온 뒤에 통화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린 이은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채에 시달릴 때는 저 하늘을 바라보며 늘 죽음을 상상했었다.

공권력도 법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강성태가 풀어주었고, 그래서 지금은 저 하늘을 보며 희망을 꿈꾼다.

**

소신영 회장은 이우섭 부의장, 고강준 고검장과 함께 서재에 둘러앉았다.

무슨 수단을 썼는지 고강준은 멍을 얼추 빼냈고, 이우섭은 분장했나 싶을 정도로 파운데이션과 비비 크림을 떡칠해서 멍을 가렸다.

저런 방법이 있었네.

어쩐지 크게 손해 본 느낌이었지만, 소신영은 일단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혹할 내용을 내놓았다.

“이번 일을 우리가 끌어내면 재계 5위 안에 드는 그룹에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 얻어지는 이익은 다들 짐작하시겠지요.”

소신영은 자신에 찬 시선으로 고강준과 이우섭을 돌아보았다.

검찰총장과 총리를 노리는 두 사람이 재계와 연이 없으리라고 짐작하는 건 바보나 할 법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은혜를 던지는 것과 단순히 알고 지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재계가 지닌 법무부와 정치권의 영향력으로 두 사람을 밀어대면 원하는 자리에 한 발을 걸친 것과 다름없다. 그것도 재계서열 다섯 곳이 동시에 나선다면, 나머지 한 발은 저절로 올라간다고 봐도 무방했고.

단번에 말귀를 알아들은 두 사람이 욕심이 올라온 눈으로 소신영을 바라보았다.

치즈는 탐나는데 과연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가 문제였다.

고양이가 얌전히 집사를 받아들이기나 하나?

툭하면 앞발로 따귀를, 멍만 드는 게 아니라 꽉 깨물지 않으면 이가 부러질 정도로 때려대는 고양이라면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었다.

“우리 소 회장에게 방법이 있으신 게지? 그래서 강성태 회장을 만나신 게고?”

“강성태를 만났습니까?”

이우섭이 던진 질문을 냉큼 받은 고강준이 놀란 눈으로 질문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접근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과연!”

소신영의 능청맞은 대답에 이우섭이 과장된 반응을 내놓았다. 그렇게 나올 정도로 그는 이번 건설 수주에서 공을 세워야 할 이유가 있는 눈치였다.

무르익은 분위기를 타고 소신영은 그사이 출력해 놓은 이학의의 자료를 두 사람에게 내놓았다.

“뭡니까, 이게?”

페이지를 넘기던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했다.

“성공학원이면 이무용 의원의 집안입니다.”

“우리 형사부 연순동 검사 장인이지요.”

이우섭과 고강준이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난처한 표정으로 소신영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 비리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나까지 나서서 바로 잡읍시다. 부하 직원이 있는 데도 비리를 용서하지 않는 고검장, 비록 동료 의원이지만,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부의장, 어떻습니까?”

“이걸 내놓으시는 이유가 뭐요?”

이우섭의 질문에 소신영이 의미심장한 눈매로 입을 열었다.

“이학의를 잡아서 내게 주시오. 그럼 내가 강성태에게 데려가 이가 부러지도록 따귀를 맞게 하겠습니다.”

강성태에 이어 따귀란 말을 듣자 두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공사에 우리가 원하는 기업을 넣을 수 있습니다.”

“강성태 회장이 확답을 했소?”

또다시 이어진 이우섭의 질문에 소신영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판매하려는 업자처럼 오른손을 들었다.

“이 안에 강성태 회장의 번호가 입력돼 있습니다. 24시간 언제든 직통으로 통화하는 번호입니다.”

자신 있게 말을 뱉은 소신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의 약점을 쥔 적을 멀리 두고 조심하며 눈치를 볼 것이냐, 이 기회를 통해 한편이 되는 것은 물론, 그 덕분에 재계에 은혜를 베풀고 훗날 우리 목적을 이룰 것이냐, 선택은 두 분이 하실 몫입니다.”

약은 적당히 팔렸다.

약발도 제법 먹혀서 계산기를 돌리는 두 사람의 눈에서 숫자가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회장님의 말씀대로 된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검찰총장이나 총리가 돼서도 강성태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습니까?”

“허허허. 고검장께서 지난 일로 충격이 크신 모양인데 고검장과 총장이 어디 같습니까? 부의장과 총리가 같아요? 총리가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총장께서 잡아들여 똘똘 묶어버리면, 제가 방송을 완벽하게 장악하겠습니다.”

“어나니머스는 외국에서 영상을 터트릴 겁니다.”

“그러기 전에 전국의 조폭, 특히 신강남파에 속한 놈들은 심부름꾼까지 모두 잡아넣는 겁니다. 방송에서 잘한다를 외칠 때, 협상하지요. 조용하게 풀어줄 테니 영상은 없는 것으로 하자. 어떻습니까?”

“흐음. 그런 방법이라면….”

“어허.”

눈빛을 빛내는 고강준의 말을 소신영이 막아섰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총장과 총리가 걸린 일과 고검장, 부의장은 격이 달라요. 파급력도 다르고요. 만에 하나, 영상이 풀린다고 해도 내정간섭이라든가, 신뢰하지도 못하겠다고 버티려면 그만한 위치에 계셔야 합니다.”

물 흐르듯 답을 내놓은 소신영이 이우섭을 돌아보았다.

“총리 정도 되시면 국정원의 협조도 가능하실 것 아닙니까? 어나니머스와도 어느 정도는 거래가 가능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요. 그럴 수 있지요.”

느긋하게 답을 내놓은 이우섭이 고개를 숙여 자료를 보았다.

“발표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압박해서 제게 데려다주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강성태 회장에게 데려가 시원하게 따귀를 맞게 하겠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소신영이 상황을 정리한 다음이었다.

“고검장?”

이우섭이 재촉하듯 고강준을 불렀다.

막막한 정적이 흐른 뒤였다.

입술을 빨아들였던 고강준이 시선을 들었다.

“공사 수주는 정말 문제없겠습니까?”

대답 대신 소신영은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그런 뒤에 그는 자신 있게 번호를 뒤져 어느 틈에 고쳤는지 ‘강성태 회장’이라는 이름이 찍힌 번호를 두 사람에게 내보였다.

“내일까지입니다.”

“그렇게 빨리요?”

“영장을 받자는 게 아니라 강성태 회장 앞에 데려가는 거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소신영의 말에 고강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