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 15화
제6장. 그 좋은 기회를 왜 그냥 보냈어?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하는 내내 조태완은 실실 웃었다.
어제 있었던 급한 연락, 식전 댓바람부터 찾아온 손님 탓에 오세아가 긴장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데도 조태완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가만있어 봐.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 깔끔하게 대전 접수했다는 거 아닙니까, 형님? 성북구 개발 사업만 진행되면 아마 처음으로 강남과 강북을 하나로 움켜쥔 보스가 탄생하는 겁니다, 형님. 거기에 대전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흐하하하!”
실실 웃던 조태완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린 뒤였다.
- 아, 형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대로 마무리 못 한 일을 형님께서 해결해주셨다면서 커피 마시고 찾아봬야겠다고 하던데요. 사과도 드리고, 오늘 일도 말씀드려야 할 거 같다고요.
“그으래?”
조태완은 귀를 쫑긋 세운 얼굴로 박노익의 말에 집중했다.
- 동생이 형님 말씀할 때 보면 아예 집안 어른 모시듯 해서 한편으로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형님. 아! 황상열이 형님 찾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란 말도 했습니다.
“우리 보스가 원래 사람이 그래. 막말로 내가 뭐 크게 한 게 있나?”
부러움 가득한 박노익의 말에 조태완이 겸손을 늘어놓았다.
- 이쪽 경찰서는 제가 알아서 했는데 상열이네 애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형님께서 미리 손 좀 써주십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염려하지 마.”
박노익의 요청에 조태완이 다부진 답을 내놓은 뒤였다.
현관을 열고 들어온 김정훈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성태 형님 오셨습니다, 형님.”
“우리 보스가 왔나 보다. 이만 끊고 또 연락하자.”
김정훈의 보고를 들은 조태완은 부리나케 통화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김정훈이 비켜선 틈으로 들어선 강성태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뭐 보스가 그런 인사를 해!”
고개 숙인 강성태를 향해 조태완이 빠르게 걸었다.
“들어와. 아, 얼른 들어와.”
통화를 지켜보던 참이었다. 그 뒤에 강성태를 맞아들이는 조태완을 보며 오세아가 웃음을 감췄다.
“어서 오세요.”
“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도 많다. 거기 홍삼 달인 물 좀 줘.”
조태완이 직접 안내한 소파에 앉기 무섭게 오세아가 유리잔에 가득 홍삼 달인 물을 내려주었다.
“그럼 말씀 편히 나누세요.”
“감사합니다.”
오세아가 거실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다친 곳은 없어?”
조태완이 고개를 기울이며 강성태를 살폈다.
“뒤처리를 허술하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독하게 대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잘했어. 내가 볼 때, 상열이는 밑에 동생들이 밀어낼 거 같으니까 염려할 거 없고, 그거 싫어서 무릎 꿇은 배근이하고 덕진이는 한동안 얼굴 못 들 테니까 당장 걱정할 일은 없을 거다. 문제가 되겠다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게.”
바쁘게 말을 건넨 조태완이 뭐가 있나 하는 표정으로 강성태를 살폈다.
“뭐가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소신영 회장을 제가 알아서 해도 되겠습니까?”
“뭐?”
“괜히 형님을 번거롭게 해드린 거 같아서 죄송해서 여쭤 보는 겁니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아침부터 정보과장 만나셨다고…….”
“아니, 그거 말고. 날 뭐라고 불렀냐고?”
“아.”
강성태는 픽 하는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사연이야 어떻든 박노익 회장님을 형님이라 불러서 괜찮으시면 이제부터 형님이라 부를까 합니다.”
“이런 이! 흐하하! 흐하하하하!”
세상의 반을 거저 얻은 것처럼 조태완이 커다랗게 웃었다.
“소신영이, 이세종이 그 개새끼들, 죽이든, 팔을 자르든, 우리 보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내가! 이 조태완이! 동생이 한 일의 뒤처리는 모두 알아서 할 거다!”
“감사합니다, 형님.”
“아후! 우리 강남대장이 나를 드디어 인정해주는구나!”
조태완은 또다시 더 할 수 없이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인사드릴 식구가 한 명 있습니다.”
“누군데?”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김정훈이 현관을 나섰다. 그런 뒤에 키란과 함께 들어왔다.
“아! 오늘 노익이 앞에서 활약했다는 친구로구만?”
“키란. 인사드려. 조태완 형님이시다.”
“키란입니다.”
아직 몸에 익지 않은 동작으로 키란이 상체를 깊게 숙였다.
“반갑다. 조태완이다.”
앉은 상태에서 내민 조태완의 팔을 키란이 다가와 양손으로 잡았다.
형님이라 불러주는 게 저렇게 좋았을까?
조태완은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키란의 손을 잡은 그가 뿌듯한 눈빛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
집에 처박혀 있기 불편한 이세종은 여의도에서 다리 하나 건넌 곳인 마포의 주점에 있었다.
낮에는 커피와 식사를 팔고, 밤에는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는 곳이어서 점심을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죽치기에는 오히려 카페보다 편했다.
그 외에도 보도국장을 하며 올려준 매상이 적지 않은 덕분에 점심 밥값이나 커피값에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주인이 챙겨주는 특혜도 있었다.
작은 룸 하나를 차지하고서 노트북을 펴놓았던 이세종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확실해?”
- 아는 감사실 직원 통해서 얻어낸 정보라니까요. 국장 책상 서랍에서 USB가 두 개 나왔는데 이충동 실장이 바로 챙겼답니다. 지금껏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고요.
“하후, 씨….”
- 거기 혹시 피해자가 보내준 성폭행 영상이나 아동 포르노, 뭐 그런 거 담긴 건 아니죠? 교복 입은 영상은 보관만 해도 처벌받아요.
“야, 이 씨! 너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켕기는 영상이 있기는 했지만, 이세종은 일단 내지르고 봤다.
“다른 건? 또 없어?”
- 클럽에 가서 술 마실 때요. 끝나고 야식 먹은 것도 법인 카드로 결제했다면서요? 그거 영수증 돌려서 업무비 타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말로 뱉지는 않았지만, 기자의 음성에는 그렇게까지 치졸하게 돈을 빼돌렸냐는 질책이 묻어 있었다.
“어떻게 하지?”
- 이거 덮을 분 회장님밖에 없습니다. 한번 가보세요.
“이야기했잖아? 왜 그런지 회장님이 더 난리라니까.”
- 그러니까요. 회장님이 뭐 때문에 그런지 알아보고 얼른 가서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시라니까요. 감사 결과가 전부 발표되면 다른 언론사도 못 갑니다.
“일단 끊어. 혹시 새로 알게 되는 거 있으면 전화 꼭 해주라.”
통화를 마친 이세종은 생수병에 담긴 물을 컵에 따랐다.
목과 입이 바짝바짝 타는데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별장에서 강성태가 시키는 대로 했다면 지금쯤 휘파람 불며 파란 초원을 걷고 있을 건데, 양 갈래에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다급한 이세종이 중얼거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탁자에 내려놓은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고개를 기울여 들어본 액정에 윤중선이란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여보세요?”
- 매형. 접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 강성태 회장님이 성북구 개발 사업 완전히 정리하셨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장태섭에게서 토지하고 주택 사겠다던 깡패들이 강성태 회장님과 추진하라면서 완전히 발을 뺐답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기존의 건설사가 압류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전에 강성태 회장님을 만나야 한다고 완전히 비상입니다.
이세종은 눈만 껌뻑였다.
- 우리 쪽 건설사에서도 저한테 전화만 한 이십 번 했습니다. 강성태 회장님을 잡는 쪽이 시행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매형? 어? 듣고 계세요?
“하후. 그냥 말해.”
- 건설사 전체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강성태 회장님이 우리가 알던 거 이상으로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대단한 건 또 뭐야? 뭐? 강성태… 회장이 하늘을 막 날아다닌대? 아니면 양손에서 에너지파 쏘고, 벼락이라도 내린다는 거야?”
절벽 끝까지 밀린 듯한 상황에 이세종은 뜬금없이 분노를 터트렸다.
- 매형?
“아냐. 또 무슨 말? 그거나 얼른 말해 봐.”
- 120조 원 규모의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있는데 건설사를 선임할 권한을 강성태 회장님이 가지고 있답니다.
이세종은 잠시 눈을 껌벅였다. 그런 뒤에 기가 막힌 웃음을 픽 토해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120조 원짜리 공사가 어디 있어? 있다고 쳐도 그렇지. 120조 원을 들여서 애들이 만드는 두꺼비집 지어?”
윤중선이 대꾸를 내놓을 틈도 없이 이세종은 떠오른 말들을 연달아 쏟아냈다.
“있다고 해도 그 정도 규모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경쟁 입찰을 할 텐데, 그걸 어떻게 깡패, 아니 조직 두목이 정해?”
- 그룹사에 속한 대형 건설사에서 지금 강성태 회장님을 만나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밖으로 말이 돌기 전에 어떡해서든 미리 손을 써보려는 분위기입니다.
속이 새카맣게 타는 모양인지 윤중선은 전에 없이 간절하고 애타는 음성이었다.
- 그래도 저는 매형 덕분에 강성태 회장님과 인사했다고 연락이라도 옵니다. 얼핏 듣기로 멕시코 거부가 우리나라에 와 있는데 그분이 권한을 넘겼다고 직접 말했답니다.
정말 그런가?
툴툴거렸던 이세종은 눈을 껌벅이며 윤중선의 말에 집중했다.
- 지금 성북구 개발 사업은 강성태 회장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진행되는 모양새입니다. 건설사에 아시는 분 있으면 전화 한 번만 해보세요.
“진짜 그래?”
-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지금껏 건설 밥 먹으며 살았습니다. 이렇게까지 건설사들이 목매고 달려드는 거 처음 봤습니다.
윤중선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완전히 헛소리로 취급하기 어렵다.
- 매형. 제가 마포대교를 삼보일배로 건너도 좋으니까 강성태 회장님을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
간절한 윤중선의 소망에 이세종은 뭐라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입술이 말라붙어서 애꿎은 침만 발랐다.
- 외국의 굵직한 건설사에서 컨소시엄을 함께 구성하자는 제안이 들어온답니다. 다른 건 무시해도 그룹 총괄기획실에서 직접 움직인다면 아실 만하지 않습니까.
국가정보원보다 정보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얻는다는 그룹사의 총괄기획실이 움직였다면, 이세종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 규모가 얼마라고 했지?”
- 120조 원입니다. 그 전에 2조 원짜리 성북구 개발 사업을 하게 되고요.
“알았어. 일단 끊어.”
- 매형?
“알았다고!”
통화를 마친 이세종은 짜증이 가득한 태도로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툭 던졌다.
“아흐, 진짜!”
그는 양손을 들어 머리를 있는 대로 헝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대상이 JBC 회장 아니라 방통위원장이라고 해도 기꺼이 카메라를 들이댈 텐데, 이미 흘러버린 일이었다.
손을 내린 이세종은 멍하니 펼쳐놓은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머리칼이 이리저리 헝클어진 데다, 눈매와 입술마저 축 늘어져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완전히 파산한 사람의 몰골이었다.
가서 무릎 꿇으면 한 번쯤 기회를 줄까?
김정훈, 유섭우, 이종환의 무서운 얼굴이 주르륵 흘러갔다.
죽어라 맞고 나면, 그래서 강성태가 나서주면, 최소 성북구 건설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어쩌면 감사도 무사히 넘길지 모르고.
“어쩌지?”
머리를 감싼 이세종은 테이블에 엎어지듯 무너졌다.
**
조태완의 집을 나선 강성태는 밖에서 기다리던 최치곤과 아르윈에게 먼저 다가갔다.
“나오셨습니까, 형님?”
최치곤이 데려온 여덟 명은 조금 떨어진 곳의 승용차와 승합차에 있었다.
짙은 색 정장들도 그렇지만, 당장 최치곤부터 인상이 거칠어서 일반인들이 혐오스럽게 생각하기 좋은 모습이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건지, 마약을 막겠다는 각오에 느닷없이 달려든 박노익의 당부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맞는데 모양새는 영 아니었다.
하지만 각오했던 일이었다.
먼저 간 서달수, 이병렬에게 약속했던 일이고.
강성태는 먼저 아르윈에게 고개를 돌렸다.
“삼합회 놈들은?”
“근처에 두 놈 있습니다, 형님. 그리고, 병원에도 두 놈이 있는데 오늘은 건너편 고수부지에 있답니다. 눈치로 봐서 그쪽에 있는 놈들은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자리만 지키는 거로 보입니다.”
“최악의 순간은 뭘 말하는 거야?”
질문을 받은 아르윈이 혹시 다른 사람이 듣고 있지는 않나 하는 투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형님을 따라다니는 놈들이 잡히거나, 호텔에 있는 놈들이 발각되면 의사 선생님을 덮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뒤야 어떻게 되든 삼합회의 체면은 지키겠다는 의도 같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에 받친 삼합회가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최면을 지키겠답시고 안다미를 덮칠 수도 있겠다.
생각을 정리한 강성태는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최치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까지는 일단 응급실 앞을 지켜주라. 퇴근하게 되면 함께 움직이고.”
“알았어.”
“가는 길에 점심들 먹어.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밥 먹으면서 다른 손님들 불편하게 하는 일 없게 하고.”
강성태의 당부를 들은 최치곤이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뭔가 이상한데?
강성태는 몸을 돌리는 최치곤을 슬며시 따라붙었다.
“뭐냐? 뭐 있어?”
둘만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르윈에게 멀어진 참이었다. 아르윈과 키란, 그리고 기다리는 여덟 명의 딱 중간이었다.
“어제 새벽에 다미 씨랑 아무 일 없었냐?”
최치곤의 능글맞은 질문에 강성태는 기가 막힌 웃음을 쏟아냈다.
“네가 상상하는 일 없었다. 그 바람에 독이 올라서 더 거칠게 설친 거 같고.”
“왜? 그 좋은 기회를 왜 그냥 보냈어?”
“나중에 말하자. 아무튼, 다미 씨 잘 부탁한다.”
“삼합회 놈 중 하나는 분명하게 주는 거지?”
눈빛을 빛내는 최치곤에게 강성태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