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 9화
제4장. 삼합회 놈 하나는 꼭 주라.
이병렬은 조직의 생리를 근 두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그래서 개새끼가 들고일어난 건데 어떻게 했겠냐? 달려가 뚝배기 깨야지.”
교육이라면 지루하기 그지없었을 텐데,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배고프지 않냐?”
한참 설명하던 이병렬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에 최면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 해도 아직 중환자인데 두 시간을 혼자 떠들게 놔둔 꼴이었다.
“아이벗치킨 먹고 싶다.”
“그게 뭐냐?”
“있어, 그런 게. 내가 어릴 적에 처음 양념치킨을 먹었을 때의 그 아련한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치킨. 프라이드는 또 얼마나 바삭하고 속이 촉촉한지, 한입 베어 물면 단맛이….”
눈까지 게슴츠레 뜬 이병렬이 환상에 젖어들 듯 설명할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헛소리 그만 듣고 전화 받으라는 것처럼 벨이 울었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이병렬에게 눈짓을 던진 강성태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많이 늦은 건 아니지?
“오늘 모터사이클로 달려든 거 말고 다른 일은 없었다.”
영어로 말하는 강성태를 이병렬과 최치곤, 조봉진이 눈을 껌벅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럼 좀 더 시간을 끈 뒤에 연락할 걸 그랬네.
삼합회의 어설픈 공격에 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멀쩡한 목소리와 말투로 별일 없으리라 짐작한 바르지오가 농담을 먼저 건넸다.
- 삼합회의 조직 중 489라 불리는 두목 아래로 438로 분류되는 부두목급이 세 명 있는데 그중 부산주(副山主, Deputy Mountain Master) 섭충명이 직접 나섰다.
바르지오는 섭충명이라는 인물에 관해 우선 설명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부두목급이 벌써, 그것도 불쑥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 외모는 보잘것없는데 잔인한 성품을 지녔고, 어릴 적 익혔던 유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가 모두 여섯 명을 한국으로 보냈다. 그들의 여권 사진, 이름, 사용하는 이동 전화, 숙소를 문자로 보낼 테니 이후는 미스터 강이 판단해.
“매번 고맙다, 화이트 테일.”
- 솔직히 말하면, 멕시코까지 달려가 카르텔을 눌러준 일, 이번에 러시아와 가페의 히트맨을 제거해 준 것만으로도 평생 정보를 제공할 정도는 되지.
강성태가 건넨 감사에 대해 뭔가가 담긴 바르지오의 답이 있었다. 자부심,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화이트 테일이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이유가 뭘까?
- 아! 멕시코 현지 책임자 기억하지? 버트가 안부 전해달라더군.
“화이트 테일. 카르텔을 상대한 일은 과거 동료인 버트를 돕는 거라고 들었는데, 내가 모르는 이익이 있었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강성태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특히나 최근 등장한 보리스 파리오 회장과 관련된 건 아닌가 싶어서 건넨 질문이었다.
-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우우웅.
통화하는 도중에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슬쩍 내려서 들여다본 액정에 바르지오가 보낸 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 문자 확인했지? 여섯 놈을 다 해결하려면 무척 바쁠 텐데 혹시 내가 알아봐 줄 게 더 있나?
바르지오는 말을 돌리고 있었다.
강성태는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바르지오라면 강성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웃음이었다.
- 미스터 강. 곤잘레스 회장과 보리스 파리오 회장에 얽힌 사연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알아봐 줄 게 있으면 차라리 그걸 말해.
시간을 끄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르지오 만시니가 답을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격과 과거 모습으로 보아 이유를 들려주는 순간, 거절하지 못할 청이 달려올 확률이 높았다.
“우리나라에 성공학원이라는 사학 재단이 있는데 이학의 이사장의 개인 비리가 필요해.”
- 고맙다. 그래 주니까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쩌면 곤잘레스 회장과 얽힌 뒷이야기를 끝까지 안 할 수도 있지만, 미스터 강 덕분에 얻은 게 굉장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답 차원에서 얼마든지 정보를 제공할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고 요청해.
바르지오는 강성태의 현재 모습을 훤히 알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곤잘레스 회장이 강성태의 일거수일투족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만 봐도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나중에 어떤 부탁을 듣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고맙다.”
- 삼합회 조직원 말이야. 만만하게 대할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438이라 불리는 부두목급만 동원할 수 있는 나름 삼합회의 정예다.
“주의할게.”
- 그럼 요청한 자료를 보낼 때 다시 연락하자.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매번 궁금했는데 영어는 언제 그렇게 배웠어?”
“인터넷을 통해서.”
이병렬이 기가 막힌다는 투로 웃었는데 내용을 아는 최치곤만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강성태는 먼저 최치곤을 돌아보았다.
중국 삼합회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바르지오가 조심하라고 경고할 정도로 위험한 상대였다. 오늘 새로 구성한 열 명을 데리고 손발을 맞추기는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둘러대고 조용하게 하나씩 해결할까?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눈치 빠른 이병렬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감추지 말자.
이 정도로 대해주는 이병렬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면 신뢰라는 걸 쌓기 어렵다. 그건 또 최치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나를 노린 모터사이클 말이다.”
“그 새끼 찾았어?”
확실히 이병렬은 빨랐다.
고작 한마디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눈매를 뒤틀었다.
“삼합회에 438이라는 부두목 섭충명이 보낸 놈들이란다.”
“섭충명? 백정 섭충명 말이야?”
“알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조직 생활 오래 한 사람치고, 그 인간을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그냥 왜 야마구치구미 어쩌고 하는 것처럼 알려진 거 있잖아.”
이병렬이 놀란 얼굴을 할 정도로 섭충명은 우리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친 모양이었다.
“여섯 놈이 들어와 있다는데 오늘 해결하려고.”
이병렬은 먼저 최치곤을 돌아보았다.
짧은 시선이었지만, 강성태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누구를 데리고 가려고?”
“치곤이하고 아르윈. 그리고 필리핀 조직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이병렬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오늘 밤에 있을 일에 대한 근심이 그가 내쉰 한숨에 담겨 있었다.
“참. 프리 스테이션은 돈 안 받는다고 했다며?”
“지금 그게 중요하냐?”
가볍게 웃는 강성태를 보며 이병렬이 볼을 씰룩였다.
“심정은 이해하는데 지금은 참아. 오늘만 해도 그래. 여섯 놈 해결한다고 삼합회가 고개 숙이지는 않을 거잖아. 더 강한 놈들이 올 테니까 그때는 함께 상대하자.”
“아이, 씨발.”
갑갑한 심정을 욕으로 대신한 이병렬이 최치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잘해, 이 새끼야.”
“예, 형님.”
이병렬이 뜬금없는 지시를 내렸고, 최치곤이 고개 숙여 답했다.
**
이병렬의 병실을 나선 강성태는 최치곤과 함께 병원 주차장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켜서 바르지오가 보내준 여권과 위치 등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와, 이 새끼들 숙소 잡은 거 봐라. 강남에 둘, 영등포에 넷, 의도가 졸라 선명하네.”
문자를 확인한 최치곤의 감탄이었다.
“두 놈이 강남에 숙소를 정한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냐?”
“다른 게 있겠냐? 우리를 완전히 안다는 뜻이겠지. 오늘 오토바이로 너 갈았으면, 바로 태완이 형님이나 병렬이 형님 덮쳤겠지. 안 그러냐?”
강성태는 시선을 들어 병원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지금 근처에 몸을 숨긴 삼합회 놈들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오늘 삼합회를 해결하고, 내일은 뱁새 형님 상대해야 하고, 일 진짜 많다.”
“치곤아. 그러지 말고, 새로 꾸린 애들로 다미 씨 주변을 지켜줄 수 있겠냐? 그냥 대놓고 지켜. 삼합회 놈들이 다른 짓 못 하게.”
“왜? 어떻게 하려고?”
“이놈들을 내일 정리할까 해서.”
“내일?”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중국에서 온 놈들을 공항에서 해결했잖냐. 이번에 영등포와 강남으로 숙소를 나눈 게 아무래도 한꺼번에 당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거 같아서. 우리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한쪽을 해결하고 달려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잖냐.”
“아무리 빨리 달려도 30분은 잡아야지.”
“그러니까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놓고 밀어붙여야지. 한꺼번에.”
최치곤이 독기가 잔뜩 올라온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꾸린 열 명 말이다. 이번에 한 번 움직여 봐. 대신 한 명이나 두 명만 맡아. 무시하는 게 아냐. 손발을 맞추라는 거지. 거기에 일 끝나고 하는 꼴 보면 믿을 놈들인지, 아닌지도 알지 않겠냐?”
입술을 내민 최치곤이 고개를 비뚜름하게 틀었다.
“만에 하나 이놈들한테서 말이 나오면?”
“뒤처리를 아르윈에게 맡기려고. 증거가 없어지니까 떠들어도 크게 다칠 거 없다, 그 이상 문제가 될 거 같으면 검찰 쪽에 내가 손쓸게.”
“입을 놀리느냐, 아니냐를 먼저 보자는 거지?”
“어느 정도로 따르는지도 알 수 있겠지.”
확신이 든 표정으로 최치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다시 신월동으로 넘어가. 그래서 저녁 먹고, 다미 씨가 10시 이후에 퇴근이니까 8시부터 응급실 주변을 지켜. 퇴근할 때 아파트까지 따라가고. 만약 다미 씨가 알아차리면 아예 네가 나서서 설명하고. 그럼 믿을 거잖아.”
“그럼 너는?”
“나는 아르윈 만나서 세부 계획 짜고, 박노익 회장 만나서 내일 일정 의논할게.”
“낮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지!”
“또 나오면 아예 목을 부러트려 버릴 거다. 그리고 아르윈과 함께 다닐 테니까 나는 걱정하지 마.”
낮에 달려들던 모터사이클을 떠올린 강성태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날카로운 강성태의 눈빛이 최치곤은 오히려 안심되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오늘 밤은 내가 다미 씨 책임질 테니까 대신 내일 제대로 된 놈 하나 찍어주라. 이 개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설쳐, 설치기를.”
“저녁 먹을 돈은 있냐?”
“태완이 형님이 현금 두둑하게 챙겨주셨고, 카드도 석 장이나 주셨어. 아, 참! 다른 건 몰라도 내일 노익이 형님 찾아뵙는 거 하고, 뱁새 형님 상대할 때는 나랑 애들하고 움직여.”
“알았다.”
최치곤이 당부를 전하는 사이, 마지막 외래 환자들이 주차장으로 나왔고, 병원 간판과 응급실 불빛이 서서히 스며드는 어둠에 맞서듯 선명해지고 있었다.
삼합회?
제법 준비하고 왔을 테니, 이쪽도 그에 맞춰 상대할 거다. 그래서 밤이 아니라 새벽에 덮칠 생각이었다. 오늘 밤과 내일 준비해서 말이다. 함께 움직이고 싶은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아르윈 형님께 연락해. 연락되는 거 보고 움직일게.”
“퇴근 시간이다. 그러지 말고 출발해. 나는 여기 있다가 아르윈 오면 움직일게.”
“그럼 나 못 가.”
삐뚤어진 고양이처럼 최치곤이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동네에서 구역 싸움 많이 한 고양이, 그래서 온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고양이가 심통 맞은 얼굴로 강성태의 답을 기다렸다.
“알았다. 내가 지금 전화할게.”
임무를 맡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최치곤의 모습에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만약 이 자리에 이종환이나 유섭우, 김정훈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강성태는 바로 아르윈의 번호를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의논할 게 있는데 시간 어때?”
- 아직 키란과 있습니다, 형님.
“여태 거기서 뭐 해?”
- 집사람이 저녁을 준비해 와서 함께 먹습니다, 형님. 어디십니까?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키란의 순박한 모습에서 아르윈은 과거 자신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외로운 두 인간이 한국에서 만나더니 예상외로 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강성태라는 구심점도 있었고.
“저녁 먹고 두 시간쯤 뒤에 방지병원에서 보는 거로 하자.”
-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박노익 회장 만나서 저녁 먹을 거니까 나도 시간이 필요해.”
- 알겠습니다, 형님. 두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형님.
짧게 통화 내용을 들려준 강성태는 바로 박노익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반가움이 담뿍 묻은 대꾸가 넘어왔다.
“강성태입니다.”
- 그래. 동생이 어쩐 일이야?
“저녁 드셨습니까?”
- 뭐?
박노익이 멈칫한 다음이었다.
- 지금 저녁 먹자고 하는 거야? 그래?
오래 기다린 상대에게서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반응이 스마트폰을 타고 달려들었다.
“저녁 하시죠?”
- 흐하하하. 동생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이 있구만. 어디야? 내가 제대로 한 번 사지.
“여기 논현동 방지병원입니다.”
- 꼴통 의사랑도 아는 사이인가?
유헌우와 박노익이 아는 사이였어?
강성태는 응급실과 병원 건물을 돌아보았다.
- 내가 지금 바로 갈 테니까 거기 있어. 도착해서 전화하지. 대치동이니까 30분이면 도착해.
“알겠습니다.”
혹시나 약속이 취소될 걸 염려하는 것처럼 통화가 뚝 끊겼다.
“됐지? 이제 가.”
“30분 안으로 오신다며? 기다렸다가 인사드리고 출발할게. 그래야 내일 뵐 때도 좀 더 편하지.”
이 돌대가리가 머리를 굴려?
“뭐야, 그 눈빛은? 몹시 불쾌하네?”
뻔뻔한 얼굴로 내놓은 최치곤의 농담에 둘이서 킬킬거렸다.
“진짜 혼자 다니지 좀 마라. 혹시 너 반창고라도 하나 붙이게 되면 나는 태완이 형님이나 병렬이 형님한테 아예 죽어. 알아?”
“알았다.”
당부를 전한 최치곤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뒤에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씨발. 너랑 함께 지내니까 밤이 이렇게 설렌다.”
“뭐라는 거야? 나 너 안 좋아해.”
홱, 시선을 가져온 최치곤이 히죽 웃었다.
“삼합회 놈 하나는 꼭 주라.”
쥐나 청살모를 내놓으라는 듯 인상 고약한 고양이가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