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 8화 (260/513)

13권 - 8화

씻고 나온 강성태가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최치곤의 이름을 올린 스마트폰이 식탁에서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빌라 주차장인데 올라갈까?

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쩐지 옆에 누가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아니지?”

- 호위대 대충 꾸려서 왔다. 오토바이로 일이 있었다며? 지금 신강남파 완전 비상이다.

“그럼 잠깐 기다려. 바로 내려갈게.”

옷을 갈아입던 참이어서 시간 걸릴 것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최치곤과 둘이 다니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러나 조직의 내부를 정리하고, 체계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강성태가 감당할 몫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강성태가 빌라를 나섰을 때, 최치곤은 혼자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7시리즈로 불리는 독일제 승용차, 국산 대형 승용차, 승합차 앞에서 열 명의 덩치들이 서 있다가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최치곤, 이 돌대가리!

빌라 앞은 좁은 골목이었다. 맞은편 빌라에 사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알고 있고.

“모시겠습니다, 형님.”

괜히 골목에서 긴소리 늘어놓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띌까 봐 강성태는 얼른 최치곤이 열어주는 독일제 승용차의 뒷좌석에 올랐다.

덩치들을 향해 손짓한 최치곤이 조수석에 앉았다.

“어디로 가십니까, 형님?”

“방지병원. 그리고 너 왜 기분 나쁘게 존댓말 쓰냐?”

골목을 빠져나오는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강성태는 최치곤을 향해 툴툴거렸다.

뒤를 돌아보았던 최치곤이 운전석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마음 편하게 살자.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형님 대우하는 거야 이해하겠는데 달랑 셋 탄 승용차 안에서까지 이럴 거면 너는 다른 차로 다녀. 그리고.”

골목을 빠져나온 승용차가 큰 도로에 합류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함께 출발한 국산 승용차와 승합차가 따라붙기 쉽도록 배려하는 눈치였다.

“골목에서 그렇게 인사하면 어떻게 해? 아예 조직의 보스가 됐다고 광고판을 걸지 그러냐? 거기에다 이 차는 뭐야?”

“오토바이에 당할 뻔했다며? 태완이 형님이 전화하셔서 여태 보스 경호도 안 하고 뭐 하냐고 욕을 얼마나 하셨는지 아직도 귀가 얼얼하다.”

답을 내놓았던 최치곤이 운전석을 돌아보았다.

“병렬이 형님과 의논해서 전부터 눈여겨봐 뒀던 동생들로 우선 열 명 꾸렸어. 승용차랑 승합차는 정훈이 형님이 준비해주셨고. 얘가 앞으로 운전 담당할 거다. 김병조.”

“김병조입니다, 형님.”

“얘는 전에 프로팀에서 레이싱했던 놈이라 운전은 죽여줘.”

핸들을 잡은 김병조가 대각선으로 고개를 숙였을 때, 최치곤이 부연 설명을 내놓았다.

군대에 가면 미대 출신을 불러 테니스장 라인을 그린다더니 레이싱 선수가 강성태의 차를 운전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보다 어린 애들로 열 명 추렸다. 내가 마음 놓고 부릴 수 있고, 또 전부 신월동 출신이라 우리 관계 알고 있어서 이렇게 지내기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달리는 차 안이었다.

상체를 반쯤 돌린 최치곤이 설명을 이었다.

“여기에 아르윈 형님 끼워 넣을 거고, 병원에 있는 키란 나오면 아예 함께 다닐 생각이다.”

“네 머리로 그걸 다 계산했어?”

“나를 몰라?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거 다 병렬이 형님이 알려주신 대로 준비한 거다.”

최치곤의 뻔뻔한 대답에 강성태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어떤 놈들이 오토바이로 지랄을 떤 거냐?”

“확실치는 않지만, 삼합회 아니겠냐?”

강성태는 병원 앞에서 보았던 두 놈에 관해 최치곤에게 짧게 설명했다.

올림픽 도로에 들어선 승용차가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태완이 형님께서 지난번에 아르윈 형님이 운전했던 S500을 가져가라는데 동네 시선을 생각해서 이거로 움직였다.”

그거나 이거나.

신월동의 빌라 골목에서 눈에 띄는 건 비슷할 거 같은데 최치곤은 크게 신경 썼다는 투로 말을 늘어놓았다.

최치곤이 몸을 앞으로 돌린 뒤였다.

강성태는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뱁새, 금복주, 대전 조덕진을 내일 오전에 정리해야 했고, 그사이에 조소아의 억울한 일을 풀어줘야 했다.

“치곤아. 전에 정보 얻을 곳이 있다고 했었지?”

“장안동 갑원이?”

“걔는 미행 같은 흥신소 일 전문이라며? 정보 얻을 곳.”

“정보? 어떤 정보?”

“사람 뒷조사 같은 거.”

“그건 아무래도 병렬이 형님과 의논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아니면 태완이 형님이 또 그쪽으로는 뭐 유명하시잖아.”

결국, 이병렬 아니면 조태완과 의논하는 게 정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삼합회가 더는 도발하지 못하게 광룡처럼 묵사발을 낼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창 하나 말에 걸치고 중국으로 달려갈 게 아니니까, 삼합회 대가리의 숨통을 끊는 게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키란이 움직이게 된다면 둘이서 함께 움직여볼 생각이었다.

먼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삼합회 하수인들부터 정리하고.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바르지오의 연락을 기다렸다.

**

소신영의 서재에 들어선 이충동 감사실장이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어서 와.”

한여름날 바닷가도 아닌데 소신영은 햇볕을 가리는 천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눈만 내놓고 있었다.

“얼굴에 시술을 받아서 이래. 당분간 빛을 쏘이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어서. 무슨 일이길래 반드시 봐야 한다고 했나?”

질문을 던졌던 소신영이 아차 하는 얼굴로 원탁 테이블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앉아. 뭐 마실 걸 좀 줄까?”

“괜찮습니다, 회장님. 얼른 보고 드리고 가서 감사 일정을 마쳐야 해서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원탁의 맞은편에 앉은 이충동이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그런 뒤에 그는 봉투 안에 담겼던 USB 두 개를 꺼내 원탁에 올려놓았다.

“뭔가, 이게?”

설마 USB를 몰라서 물었을까.

이충동은 소신영의 질문을 바로 알아들었다.

“이세종 보도국장의 책상 서랍 안쪽 비밀 공간에서 발견한 USB입니다. 직원들이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확인한 즉시 바로 가져왔습니다.”

직원들이 보면 안 된다고?

눈가를 좁히던 소신영이 오른쪽 볼에 손을 올리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뭔데 그래?”

“하나는 포르노 영상들을 담아놓은 USB이고, 다른 하나는 소영천 상무님의 영상이었습니다.”

소신영이 놀란 눈으로 USB와 이충동을 번갈아 보았다.

“클럽에서 찍은 영상으로 보입니다. 그 뒤에 수모를 당하시는 모습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개 같은 인간이…!”

이충동의 짧은 설명에도 소신영은 단박에 영상의 내용을 짐작했다.

“이걸 누가 또 봤나?”

“제가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바로 회장님께 가져왔습니다.”

“복사는?”

“그럴 틈이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되는 영상이라 판단해서 바로 가져왔습니다.”

“흐음.”

신음을 흘리면서도 소신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충동을 보았다.

“감사는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일 정도로 자주 강남의 클럽에서 술을 마셨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클럽 근처의 야식집, 커피전문점에서 사용한 법인 카드의 내역을 추리고 있고, 같은 날 청구한 현금 사용 내역도 별도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클럽에서 술을 얻어 마셨다면, 대가성을 입증해야 하지 않나?”

“그게 제 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대가성이 없이 가서 즐긴 거라면, 횡령과 배임에 해당합니다.”

클럽이란 말, 숨겼던 영상을 확인한 소신영은 곧바로 조태완을 떠올렸으나 아무것도 모른 척 고개만 끄덕였다.

신강남파에 관한 기획서를 읽은 참이었다.

조태완과 강성태가 어떻게 얽혔는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게 되어서 소신영의 분노는 더욱 거셌다.

“이 실장.”

“예, 회장님.”

“높은 곳에 있으면 말일세. 고개를 숙였답시고 눈알을 굴리는 것까지 모두 알게 되지. 감사실을 책임지고 있으니 자네도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는 알겠지?”

이충동은 묵직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회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날을 챙기겠다는 소신영의 언질에 이충동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

방지병원에 도착한 강성태는 승용차를 병원 앞 도로에 세웠다.

“병원 옆에 골목 있다. 평소에는 그쪽에서 기다려. 치곤이 너는 나랑 올라가고.”

“예, 형님.”

김병조와 최치곤에게 지시한 강성태는 내리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지금처럼 함께 다니는 동안은 뒤쪽 차에서 인사하기 위해 내리지 말라고 해. 김병조는 몰라도 고작 인사하기 위해 줄줄이 내리는 거,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

“알았어.”

답을 한 최치곤이 조수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어디에서 뭘 봤는지는 모르지만, 승용차에 바싹 붙어서 뒷문을 열면서 좌우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제 딴에는 경호원을 흉내 내는 모양인데 강성태가 보기에는 승용차에 붙어선 눈매 더러운 미어캣이었다. 게다가 기껏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미어캣은 정작 강성태가 걷기 시작했는데도 문을 닫느라 반걸음 늦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흠을 잡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칭찬할 때였다.

병원 로비에 들어선 강성태는 최치곤과 함께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차라리 내가 운전할까? 병조까지 뒤에 있는 차로 보내고, 우리 둘이 다니는 게 편할까?”

“네가 운전하는 차 뒤에 타는 거 불편해. 조수석에서 앉으면 고문님과 병렬이가 난리 치고. 지금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대신 김병조가 얼마나 입이 무거운지 그게 중요하지. 믿을 만하겠냐? 성만이 일도 있잖아.”

“그 개새끼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치곤이 욕을 뱉었다.

“평소에 둘이 다닐 때는 내가 운전하고, 일이 있을 때는 병조 시키면 어때? 불편한 거 둘 중 하나를 택해. 내가 운전하는 차 뒤에 타는 거, 아니면 병조가 운전하는 차에 셋이 타는 거.”

최치곤이 진짜 불편한 제안 두 가지를 내놓은 순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건 조금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짧게 답을 내놓은 강성태는 이병렬의 병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쪽의 스태프 공간에서 낯익은 간호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헌우 원장의 얼굴을 본 지 꽤 됐다.

많이 바쁜가?

복도를 걸은 강성태를 향해 복도 벤치에 앉아 있던 덩치 셋이 몸을 세우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전화 이후로 인원을 늘린 모양이었다.

강성태는 이병렬의 병실로 들어갔다.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는 조봉진 옆에서 물만 부으면 쑥쑥 크는 옥수수처럼 이병렬은 못 본 만큼 좋아진 얼굴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친 데는 없어? 그러게 내가 혼자 그러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바쁘게 질문을 던졌던 이병렬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최치곤을 돌아보았다.

“너는 이 새끼야. 숙소 꾸미는 데 뭐 시간이 걸린다고 보스를 혼자 다니게 해? 어라? 너 술 처마셨어?”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 따귀를 갈길 만큼 이병렬의 표정은 무서웠다.

“나랑 마셨어. 내가 먼저 마시자고 했고.”

강성태가 답을 하고 나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가 까악, 까악, 하고 날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술도 마시고 하는 거지, 뭐.”

이병렬이 입을 열어서 까마귀를 멀리 보냈다.

강성태가 침대 옆에 앉자 조봉진이 믹스 커피를 옆의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성북구 개발 사업 말인데.”

강성태는 황상열과 조덕진의 일, 그리고 박노익과의 통화에 대해 이병렬에게 들려주었다.

“장태섭이, 이 양아치 새끼가 끝까지 고춧가루를 뿌리네. 일단 내일 아침에 노익이 형님한테 가 봐.”

“현장에 갈까 했는데?”

“노익이 형님이 건설사에 압력 넣었다며? 건설사가 손잡은 건달들도 노익이 형님은 함부로 못 하거든. 거기에 송도 상인인가? 그 양반 나서면 큰 회사들도 이상하게 절절매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박배근 형님이라도 노익이 형님을 먼저 누르는 게 순서지.”

강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전 덕진이 형님은 봤잖아? 혼자서는 뭘 못 하는 스타일이라 걱정할 거 없는데, 광주 상열이 형님은 달라. 근성도 있고, 꾸린 식구들도 거칠고. 아마 분명 노익이 형님 먼저 찾아가서 조갈이 하려고 들 거다.”

“내가 박노익 회장님 찾아간다고 치자. 그래도 장태섭이 토지하고 주택을 박배근한테 넘기면 끝나는 거 아냐?”

강성태의 질문을 들은 이병렬이 히죽 웃었다.

“여보세요, 보스님? 보스께서 광주하고 대전 얌전하게 돌려보내는데 어떤 건설사가 그걸 사겠습니까?”

“그런 거면 아예 건설사가 직접 사서 개발하면 안 되냐?”

“시공사가 뒤로 만들어서라도 시행사를 앞마이 세우는 건 합의하고, 철거할 때 협상 때문이다. 시공사가 직접 하면 이미지 개망하는 건 물론이고, 소송에 휘말려서 수습하다가 끝나. 그걸 해결해주는 게 시행사, 시행사가 그 일을 맡기는 게 조직.”

확실히 조태완이 어둠의 세계에서 해결사라면, 이병렬은 길잡이 느낌이었다. 순서가 이상하기는 한데, 도끼를 박아놓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강성태는 개발 사업의 구조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직 두목이 되는 데 알아야 할 거 참 많다.

“내일 무조건 노익이 형님한테 가. 그리고 광주 쪽 식구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모시고 현장으로 함께 움직이고. 그래서 개발 사업은 노익이 형님과 한식구라는 거 분명하게 보여줘.”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의 당부가 건너왔다.

“오토바이는 어떤 놈들이 한 거야?”

이어진 이병렬의 질문에 강성태는 픽 웃었다. 삼합회를 상대하는 건 강성태의 전공 분야라 그랬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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