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 4화 (256/513)

13권 - 4화

제2장. 상대방 사위가 검사래요.

강성태가 전해준 샌드위치와 주스는 값어치 이상의 활력을 응급실에 채워주었다.

그 이면에는 위기 때 안다미를 도와주던 모습도 포함되어서, 강성태가 응급실에 들르지 않은 걸 아쉬워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사람 심정은 참 오묘해서 강성태를 보고 싶어 하는 간호사를 보며 안다미는 이상하게 뿌듯했다. 행복했다. 고맙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응급실 근무라는 게 사람 잡는다.

오죽하면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삶과 반대로 살면 건강할 거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고, 응급실 스태프로 10년 근무하면 20년 노화를 보장한다는 말이 있겠나.

당연한 듯 이어지는 밤샘, 가족과의 약속조차 어겨야 하는 긴급 수술, 늘 부족한 수면과 피로까지, 그 바람에 안다미는 며칠째 강성태에게 연락하지 못했었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안호상의 삶에 익숙한 안다미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강성태는 서운할 수도 있었다.

그녀의 염려를 강성태는 말없이 보여주는 미소로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강성태를 떠올린 안다미가 스테이션에 놓인 차트를 보며 미소 지을 때였다.

“안 선생님!”

급한 고함이 안다미를 찾았다.

이동용 침대를 밀고 응급실 입구로 달리는 스태프들을 보며 안다미도 밖으로 뛰었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린 앰뷸런스가 도로를 가로질러 병원으로 뛰어들었고, 이어 응급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손목 자상이라는데 심한가 봐요. BP가 60에 40. BT는 35.1이래요.”

구급차 뒤쪽으로 달리며 구급대원에게서 연락받은 내용을 간호사가 쏟아냈다.

구급차의 침대를 밀면 그대로 허공에 뜬다. 그 상태에서 빠르게 이동용 침대에 옮기고 응급실로 데려가야 했다.

“잡아요! 하나, 둘.”

숫자를 세던 안다미는 ‘셋’을 외치지 못했다. 다행히 늘 손발을 맞추던 스태프들이라 셋의 타이밍에 환자 아래의 천을 당겨서 큰 문제는 없었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안다미를 보았으나 지금은 이유를 설명할 틈이 없었다.

손목을 가른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손목을 조른 압박대도 풀어야 하고, 깊게 잘린 손목의 혈관을 봉합하는 수술도 진행해야 했다.

침대를 밀면서 응급실로 달리며 안다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소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만 네 번을 함께한 친구였다.

죽고 못 사는 단짝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소아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여러 차례 뵈었고, 안다미의 집에서 공부하다 함께 잔 날도 많았다.

응급실의 처치 공간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간호사들이 의식을 잃은 조소아에게 여러 가지 기계들을 연결했고, 이어 링거를 달았다.

안다미는 앞가슴에 꽂아둔 랜턴을 뽑아 피범벅인 조소아의 동공을 확인했다.

“BP는요?”

“50에 40이요.”

“링거팩 3개 더 연결하고 손으로 짜서 넣으세요! 봉합 수술 바로 들어갈 테니까 혈액 체크해서 확보하고, 휴게실에 연락해서 전부 내려오라고 해주세요!”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혹은 무섭거나 두려워서 흉내만 내는 부류가 있고, 죽음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절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상처로 봐서 조소아는 완벽하게 후자였다.

깊게 들어간 거친 상처가 그 증거였다.

어지간한 칼로 그어서는 동맥을 자르기 어렵다. 혈관이 거짓말처럼 수축해서 아래로 내려가고, 심지어는 손목뼈와 바싹 붙어서 잘리는 걸 거부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조소아는 두 번에 걸쳐 잘랐다.

사방으로 튀었을 피를 보았을 텐데도 말이다.

조소아가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죽음을 바랐을까.

손목을 살핀 안다미는 의식을 잃은 조소아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

우선 통화로 내용을 전하려던 강성태는 뜻밖의 제안에 맞은편의 고수부지로 향했다.

내리막길, 넓은 공터, 앞을 흐르는 탄천, 우뚝 서서 강성태를 내려다보는 아파트, 보이는 모든 게 변함없는데, 벤치에 앉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여유는 또 얼마 만인지.

하늘, 구름, 바람, 햇살을 외면하고, 욕설, 폭력, 피, 죽음이 흥건한 어둠에 들어가 무얼 얻고 있는지.

최치곤이 들었다면 뭘 그렇게 골치 아프게 사냐고 타박했을 생각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낼 때였다.

소형 승용차가 내리막길을 내려와 바로 옆의 공간에 머리를 넣었다.

전에 서라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을 적에 봤던 승용차였다. 당연하게 주차한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김민재가 내렸다.

강성태를 향해 손을 들었던 김민재가 고개를 숙여 승용차에 상체를 집어넣었다. 그런 뒤에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꺼내 보란 듯이 높게 들었다.

“잘했어!”

강성태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기분 좋게 웃은 김민재가 벤치로 다가왔다. 이제는 누가 봐도 직장인이라는 태를 갖춘 모습이었다.

“다미 씨 보러 왔어?”

“겸사겸사. 너는 왜 여기 있었냐?”

“점심 먹었어. 아래 순두부집에서.”

“그걸 먹으러 여기까지 와?”

“말도 마라. 거래처 과장인데 비싸도 안 돼, 맛없는 건 절대 안 돼,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어. 점심이나 저녁때마다 아예 피를 말린다. 피를.”

“거래처라며? 그쪽 직원들도 있을 거 아냐?”

“매일 그러니까 아예 외면하는 모양이야. 그러다가 내가 걸린 거지. 거래처 담당 과장인데 어떻게 하냐? 매일 식당 알아보는 게 일이다, 일.”

툴툴대며 자리에 앉은 김민재가 일회용 컵을 꺼내 강성태에게 내밀었다.

태연하게 커피를 받았지만, 강성태는 일정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혹시나 응급실 앞 계단에서 본 삼합회 놈들이 근처에 있을까 해서였는데 아직 눈에 띄지는 않았다.

“커피 맛있지?”

아부 떨기는.

김민재와 한방을 쓴 것만 10년이었다. 그래서 맹인선의 일을 부탁하고 싶어 김민재의 몸이 꼬인다는 걸 강성태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오디션 보게 해 줄 수 있어? 물어봤잖아? 할 수 있으면 해주라. 응? 어?”

일회용 커피를 입에 대고 있어서 강성태는 눈만 옆으로 돌렸다.

“그거 이야기하면 요선 씨가 엄청 기뻐할 거고. 아니지. 그쪽 식구들 전부 무지하게 고마워할 거야.”

“결과가 나쁘면 오히려 더 서운하지 않겠냐?”

“학교도 그만두고 연습생 생활만 한 애가 할 게 뭐 있겠어? 연기 학원에, 노래 개인 교습 받으면서 여기저기 오디션 보러 다니는데 성과가 없어서 다들 속 타 하거든.”

본인의 오디션을 부탁하는 것처럼 매달리던 김민재가 은근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디션 받게 해준다는 회사 이름이 뭐야?”

“뭐?”

강성태의 반응에 김민재가 눈가를 좁히면서 상체를 세웠다.

“이름도 모르는 회사에 오디션을 보게 해준다고 한 거야? 뭐야, 이게?”

“그러게. 잠깐 기다려봐.”

듣고 보니 김진용이 대표로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이름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겨보는 김민재 앞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난 또, 지난번에 워낙 화끈하게 해결하길래 대단한 회사라도 연결시켜주는 줄 알았지. 이런 줄도 모르고, 먼저 말했어 봐? 어휴, 이름도 없는 회사.”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이러고 놀았다.

김민재는 사촌이 아니라 진짜 형제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김민재를 건드리는 바람에 눈이 뒤집힌 강성태가 밴드부와 태권도부를 상대로 지하 연습실로 뛰어들었던 거였다.

스마트폰을 귀에 댄 강성태는 그래도 나름 즐거웠던 과거를 펼쳐놓고서 상대방의 응대를 기다렸다.

- 김진용입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바쁜데 미안해. 물어볼 게 있는데 민재라고 내 사촌과 관계된 여학생 오디션을 볼 수 있다고 했잖아? 회사 이름이 뭐냐?”

새초롬하게 바라보는 김민재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 먼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형님. 전에 김종수 프로덕션이었는데 작은 엔터 하나를 인수해서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형님.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

강성태가 회사 이름을 따라부르는 순간, 새초롬하던 김민재의 눈이 커다랗게 바뀌었다.

“오디션이라는 거 받겠다면 언제 가면 돼?”

- 연습생들을 위해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교대로 강사들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차를 보내겠습니다, 형님.

“알았다. 혹시 부탁하게 되면 다시 연락할게.”

- 들어가십시오, 형님.

종료버튼을 누른 강성태는 ‘그렇다는데?’ 하는 얼굴로 김민재를 보았다.

“블라이스? 지금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라고 그랬지? 압구정동에 있는 그 블라이스?”

“어디에 있는지는 안 물어봤는데? 김종수 프로덕션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하고.”

“김종수 프로덕션이 이름 바꾼 거면 맞을 텐데. 에이, 진짜! 소개해 준다면서 위치를 몰라?”

“잠시만.”

어쩌겠나.

강성태는 다시 버튼을 눌러 김진용을 찾았다.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가 압구정동에 있는 거 맞아?”

- 예, 형님. 저희 소속 아이돌 중에 와라라고 있습니다, 형님. 와라가 나가서 유명해진 프로그램 이름이 덮어놓고 키운 걸그룹입니다. 그 이름 말씀하시면 어지간한 지망생들은 다 알아들을 겁니다, 형님.

“와라라고 했지?”

김민재가 들으라고 굳이 건넨 질문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어서 사정없이 흔들리던 김민재의 눈이 세상 존경하는 사람을 보는 느낌으로 강성태를 향하고 있었다.

“고맙다. 다시 연락할게.”

-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지망생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해주십시오, 형님. 제가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형님.

“부모님이나 언니가 전화할지도 몰라. 내 이름이나 김민재라는 이름 대면 알아서 좀 해 줘.”

- 안심하십시오, 형님.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양손을 딱 붙여 이마에 댄 김민재가 상체를 깊게 숙였다.

“아이고, 선생님! 소인이 몰라 뵙고 그만 커다란 실수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하던 장난이었다.

소주를 사놓고 기다리던 김민재 앞에 오징어와 땅콩을 내놓을 때면 꼭 이런 모습으로 능청을 떨곤 했었다.

강성태는 먼저 김진용의 번호를 전해주고 이어 그가 했던 말도 들려주었다.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하자. 실력이 안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거절할 거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연락해.”

“그건 내가 요선 씨에게 분명하게 말할게.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션 받는 것만 해도 더 바랄 게 없는데, 평가까지 해준다는 거 아냐? 거기에서 더 뭘 바라겠어?”

“고맙지?”

“아이고, 선생님! 이 은혜를 뼈에 새기겠습니다!”

강성태가 김민재와 함께 킬킬거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몸을 떨며 안다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여보세요?”

- 성태 씨. 혹시 병원에 있어요?

워낙 가라앉은 음성이어서 강성태는 병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민재랑 맞은편 고수부지 벤치에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 잠깐 보고 의논할 일이 있는데 민재 씨랑 오래 걸려요?

“마침 다 끝났어요. 지금 응급실로 갈까요?”

- 아니에요. 내가 그리 갈게요.

“아뇨. 그러지 말고 잠깐 기다리세요. 응급실 앞에 가서 문자할게요.”

계단 옆 화단에서 봤던 삼합회 놈들이 걸려서 강성태는 우선 응급실 앞으로 가기로 했다.

“일이 있나 본데? 가봐야겠다.”

“그래. 얼른 가. 안부 전해주고.”

김민재는 오히려 반갑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얼른 맹요선에게 달려가 블라이스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 이름 알려주고, 오디션도 볼 수 있다고 전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겠다.

어쩌면 가는 길에 전화로 떠들지도 모르고.

“출발해.”

“병원까지 태워다 줄까?”

“민재야. 너 싫어지려고 해.”

“우히히.”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던진 김민재가 승용차로 향했다.

“모레 저녁때 보자. 그전에 막내 일로 전화할지 몰라.”

“가!”

행복해하는 김민재에게 장난기 가득한 대꾸를 건넨 강성태는 곧바로 서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응급실을 중심으로 좌우를 살폈는데 이번에도 수상한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다.

신호를 받아 도로를 건넌 강성태는 곧바로 안다미에게 문자를 넣었다.

지친 기색의 보호자들이 줄줄이 나온 끝에서 허름한 수술복에 하얀 가운을 걸친 안다미가 나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분한 감정에 측은함, 억울함이 뒤섞여서 복잡한 감정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안호상 박사에게 일이 생겼나?

아니면 또 응급실에 덩치들이 몰려와 수모를 받았거나?

“무슨 일이에요?”

“사람 한 명 살려주세요.”

“예?”

강성태는 의아한 얼굴로 안다미를 들여다보았다.

“너무 억울한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우선 사연이라도 들어주세요. 지금 필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의지할 사람이에요. 그 역할을 맡아주세요.”

“다미 씨?”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인데요. 이럴 게 아니라 우선 만나보고 다시 이야기해요.”

냉정한 성격의 안다미가 이렇게 다그칠 때는 이유가 있겠다.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안다미를 따라 걸었다.

응급실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안다미는 응급실 옆의 본관 건물로 향했다.

“혹시 치곤이나 은주 씨에게서 들은 말 있어요?”

복도를 걷는 도중에 강성태가 질문을 건넸고,

“괴롭힘당하는 고등학생 구해준 거, 은주 사채 해결해 준 거, 삼겹살집 영업할 수 있게 도와준 거, 더 있어요?”

들었구나.

그러니까 그렇게라도 억울한 친구에게 뭔가 도움을 달라는 거구나.

“클럽에서 아가씨 구해낸 영상은 함께 봤잖아요.”

계단으로 향한 안다미가 말을 건네고는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상대방 사위가 검사래요. 그래서 어떻게 못 한대요. 그러니까 성태 씨가 살겠다는 의지만이라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걸음을 멈춘 안다미와 강성태 사이를 중년 남자가 몸을 틀어 빠져나갔다. 그의 눈길에 담긴 불만을 보며 강성태는 미안하다는 투로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서 의사와 남자친구가 싸우는 거라고 오해한 눈빛이었는데 굳이 따라가서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가보죠.”

답을 건넨 강성태는 괜찮을 거라는 느낌으로 안다미의 등을 다독였다.

먼저 안다미가 흥분을 가라앉혔으면 싶어서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