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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18화 (250/513)

12권 -18화

덩치 둘에게 양팔을 붙들린 소신영의 직원은 소란이 일어날까 오히려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를 보며 픽 웃은 강성태가 오른손 주먹을 뒤로 빼는 순간에,

지이이잉.

소신영이 버튼을 눌러 뒷유리를 아래로 내렸다.

진즉 좀 이러지.

강성태는 유리가 완전히 내려간 뒷문 틀에 손을 걸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용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내가 특별히 승합차를 하나 가져왔거든? 얼굴 마주보고서 이야기하게 그쪽으로 옮겨 타.”

눈썹 짙고, 눈매 진하고, 주차장에 세워진 조명과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도 강성태는 확실히 매력적인 인상이었다.

같은 남자라도 연예인인가 싶어 한 번쯤 돌아볼 강성태를 보고 있으나, 소신영과 고강준은 그들의 표현대로 염라대왕을 만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시끄럽게 하길 원해? 그럼 그렇게 하고. 유섭우! 거기 직원 놔두고 가서 망치 하나 가져와.”

“내린다. 내리겠다.”

답은 소신영이 내놓았다.

팔을 들어 유섭우를 세운 강성태는 상체를 숙여 열린 창으로 고개를 반쯤 들이밀었다. 이번 눈빛은 진짜 두려워서 소신영은 죽음을 마주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린다고 했는데….”

강성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칼날 같은 시선으로 고강준을 넘겨다보았다.

“나도 그래.”

소심한 고강준의 답을 들은 강성태가 픽 웃으며 고개로 바깥을 가리켰다.

최고급 승용차답게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것들이 원래는 좀 부족한 인간들이었나?

좌우에 문이 있으니 반대편을 통해 내려도 될 텐데 굳이 좁은 뒷좌석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건너와 함께 내리는 고강준을 강성태는 물끄러미 보았다.

내리는 방향이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기.”

구석에 세워둔 승합차를 가리킨 강성태는 소신영과 고강준의 사이에서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걸었다.

“왜 사람이 점잖게 경고한 걸 무시해?”

무언가 변명하려던 소신영이 강성태의 표정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긴급체포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내가 구속되는 대신 이우섭이나 여기 고강준이 총리와 검찰총장이 되는 걸 막는 것도 의미 있으니까.”

승합차에 도착한 강성태가 뒷문의 손잡이를 당겼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스르륵, 부드럽게 밀려난 문이 승합차의 안을 보여주었다.

강성태가 고개로 안을 가리켰는데 소신영과 고강준은 선뜻 올라타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이미 두 사람은 바르지오 만시니가 보낸 정보에 꺾인 상태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에는 이대로 밀고 가는 게 적당했다.

“좋게 이야기할 때 들으면 귀에서 피가 나? 꼭 맞아야 말을 듣겠어?”

당장에라도 따귀를 때릴 것처럼 강성태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조금 더 소심한 소신영이 먼저 움직였고, 뒤따라 고강준이 승합차의 뒤편 손잡이를 붙잡아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켜보는 사람 없게 잘 살펴.’

뒤따라온 유섭우에게 눈짓을 전한 강성태는 가장 마지막으로 승합차에 올랐다.

운전석 바로 뒷좌석은 뒤를 바라보게 돌려놓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뒷좌석 두 번째 열에 앉았고, 강성태는 그 두 사람을 마주본 상태로 앉았다.

시선을 마주한 상태에서 강성태는 팔을 뻗어 승합차의 도어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움직이는 문을 바라보던 고강준이 달칵, 소리와 함께 잠기는 순간, 이가 시린 듯 입맛을 다셨다.

문이 닫힌 직후였다.

“어쩌자고?”

강성태는 고강준을 향해 거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말투여서, 진짜 깡패 두목으로 보이기 좋았다.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닌, 글자 그대로 악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참이었다. 강성태는 아예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두 사람을 대했다.

“내가 얌전히 체포될 거 같았어? 그래 보여?”

고강준을 노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를 체포하면 바로 검찰 총장의 약점을 파볼 거다. 동시에 이우섭이 속해 있는 당의 대표와 원내 총무, 원로들을 죄다 뒤집어엎을 거고. 누가 이길 거 같아?”

“그게 나는 생각이 없었는데 고검장이 덜컥 박노…, 뭐라는 깡패를 구속하면서 일이 꼬인 거요.”

하여간,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소신영의 다급한 변명이 나왔다.

그래, 너는 일단 됐고.

이번엔 네 차례라는 듯 강성태는 고강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폭력 조직을 단속하라고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강성태라는 이름이 걸리지 않게 증권사범 박노익과 개발 사업 관련 추문이 많은 장태섭을 체포한 건데, 두 사람이 너를 팔아대니까 어쩔 수 없이….”

“고강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면 내가 많이 화날 거 같은데 그거 감당할 자신 있어?”

하필 변명을 해도!

소신영이 갑갑한 얼굴로 돌아보는 옆에서 고강준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그림자다. 청렴하고 깨끗하게 살았다면 너희 두 사람이 서 있는 빛에 절대 대들지 못하는 그림자라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반사적으로 행동한 느낌이었다.

“장태섭은 알아서 처벌하고, 박노익은 내일 풀어주는 거로 끝내자. 됐지?”

아무리 센 척해도 결국은 풀어주길 바라는 거지?

강성태가 내건 조건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자.”

어금니를 깨문 고강준이 지기 싫다는 투로 답을 내놓았다.

“좋아. 소신영 회장은 먼저 나가.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로 나와 마주치지 마.”

“알았소.”

소신영과 강성태를 빠르게 돌아본 고강준이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일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따귀 정도는 맞고 가야지.”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겠소.”

강성태의 의도를 알아챈 소신영이 그야말로 민첩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 나왔다.

강성태가 버튼을 누르자 자동문이 일정한 속도로 열렸는데 소신영은 몸을 비틀어가며 반도 채 열리지 않은 틈으로 빠져나갔다.

유섭우를 본 그가 움찔했다.

그래놓고는 또 재킷을 쓰다듬으며 먹히지도 않을 여유를 보인 뒤에 직원이 기다리는 승용차로 움직였다.

“이 꽉 깨물어.”

“이쪽은 지난번에 다쳐서.”

“알았어. 반대편으로 때려줄 테니까 이나 꽉 깨물어. 안 그러면 어금니 다 나간다.”

이를 있는 힘껏 깨물어서인지, 아니면 따귀를 맞는 게 겁나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치욕스러워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입술을 한껏 오므린 고강준이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강성태는 버튼을 눌러 승합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채 닫히기도 전에 오른손을 뻗어 고강준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우선 박노익 구속으로 세 대.”

같은 조직도 아니고, 너랑 상관없는 이유로 왜 때리는데?

고강준의 눈에 억울함과 의문이 스치는 순간이었다.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별장에서보다 더 강하게 고강준의 뺨을 갈겼다.

바깥에서 들어온 조명에서도 그의 볼에 남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보였고, 덜덜거리며 떨리는 얼굴 안쪽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약속을 어기고, 나를 노린 거 세 대.”

앞에 맞은 거랑 같은 내용이잖아! 일사부재리…,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이가 부러지거나 뽑힐 만큼 세차게 갈긴 따귀였다.

손자국이 일정하게 겹쳐서 아예 강성태의 손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고, 지금은 입술까지 터져 피가 턱에 번져 있었다.

좁은 승합차 안이었다.

수치스러움과 분노보다는 아직 머리칼을 붙들고 있는 강성태와 승합차 안의 분위기에 눌려 고강준은 몸까지 떨고 있었다.

“고강준.”

“예?”

“앞으로 잘해.”

“예.”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도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고강준의 눈에 떠올랐다.

“그걸 가슴 깊이 새기라는 의미로 세 대.”

이건 아니지!

짜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아악.

주먹만큼이나 강하게 따귀를 때린 강성태는 붙들고 있던 고강준의 머리칼을 바싹 당겼고, 이어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한 번만 더 이런 일로 보게 되면 내가 진짜 어떤 놈인지 알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때 너는 정말 죽어. 알았어?”

“예!”

뒤에 또 어떤 수작을 벌일지는 모르지만, 당장 고강준은 완벽하게 겁에 질린 상태였다.

나이 든 농부를 때리고, 그의 아내를 패대기친 것으로 모자라 부부가 보는 앞에서 자식들을 밟아대던 조직원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강성태를 보았었다.

사람 다 똑같다.

맞으면 아프고, 당하고 대항할 방법이 없으면 억울하다.

고강준의 눈을 잠시 노려보던 강성태는 그가 시선을 아래로 떨군 뒤에야 손을 놓았다.

“내려.”

버튼을 누르자 열리는 문을 향해 몸을 일으키던 고강준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마약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짓밟은 인간, 사욕을 채우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차가운 구치소에 집어넣으면서 자신은 불법을 서슴지 않던 파렴치한, 기회만 되면 복수를 떠올릴 야비한 족속.

팔을 들어 팔뚝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걷는 고강준의 뒷모습을 보며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신영을 그냥 돌려보낸 게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런 식으로 저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게 따귀 몇 대를 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강성태가 승합차에서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조태완의 이름을 올린 스마트폰이 애타게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 통화돼? 중요한 이야기라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잠시 자리를 옮겨서 받아.

“차 안에 혼자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답을 한 강성태는 승합차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유섭우와 다른 덩치를 살폈다.

- 조금 전에 박노익이 전화했었다.

“풀려났습니까?”

- 풀려난 게 아니라 변호사 도움으로 급하게 전화한 모양인데 이번 사건의 타깃이 보스라고 아예 대놓고 말했단다. 보스를 구속하는 일에 협조하면 집행유예, 거부하면 25년 형을 주겠다고 협박했단다.

그런 수작을 부린 줄 알았으면 여섯 대 정도 더 때리는 건데.

고강준이 사라진 방향을 보던 강성태는 픽 웃고 말았다.

- 웃을 일이 아니야. 그나마 박노익은 중심을 잡았는데 장태섭이 나불댄 거 같으니까 오늘은 빌라 말고 어디 호텔이라도 가 있어. 스마트폰도 꺼 놓고.

“고문님.”

- 말 들어, 제발. 그리고 내일 박노익이 문기주란 동생을 보낸다니까 내가 먼저 만나볼게. 연락할 수 있게 유섭우든, 이정환이든, 한 명만 데리고 있어.

“고문님.”

- 보스? 진짜 나 죽는 거 보고 싶어? 우리 애랑 마누라 지켜준다며?

이 양반이 정말 아우라 호텔에서 죽일 뻔한 그 조태완이 맞을까 싶을 만큼 애절한 당부였다.

“방금 고강준 고검장과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내일 박노익 회장은 풀어주고, 대신 장태섭은 그대로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 뭐?

외마디 질문 후에 조태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였다.

- 지금 어딘데?

“여기 잠실 쪽 한강 공원입니다. 소신영 회장도 함께 있다가 갔으니까 내일 틀림없이 박노익 회장은 풀려날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 더는 문제 일으키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 소신영 회장과 고강준 고검장을 잠실 한강 공원에서 봤다고?

“다른 사람들 눈을 생각해서 유섭우가 가져온 승합차 안에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 그 양반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승합차에 왜 타? 아니지! 왜 보스를 만나?

“안 나오면 따귀 대수가 늘어나거든요.”

뭔 소리인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조태완이 갑갑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잘 해결됐습니다. 유섭우에게 전화해 보시면 확인되실 겁니다.”

- 진짜지?

강성태는 대답 대신 듣기 편안한 웃음을 전했다.

- 이거 박노익에게 알려줘도 돼?

“지금 연락할 방법이 있습니까?”

- 이 정도 내용은 교도관을 통해서 얼마든지 전해. 그래도 되겠어?

조직간 싸움의 뒤처리, 유흥업장, 교도소까지, 어두운 쪽에서 조태완이 못 하는 일이 뭘까?

아무튼, 조태완은 허락을 바라는 게 아니라 망신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의미의 질문을 건넸다.

“연락하세요.”

- 후하. 내가 지금 너무 큰 사람을 모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설마 때리거나 한 건 아니지?

“고검장만 아홉 대 맞고 갔습니다.”

- 흐히.

웃음도, 울음도, 비명도 아닌, 어쩌면 그 셋이 모조리 섞인 듯한 해괴한 소리가 건너왔다.

“이제 다 해결됐으니까 저는 제 빌라로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박노익 회장 나오면 알려주세요.”

- 그러지 말고 오늘은 일단 내가 마련해준 곳으로 가지?

“옷이랑 몇 가지 챙길 것도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세요.”

- 알았어. 보스가 그렇다는데 뭐라겠나. 편히 쉬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다리를 먼저 뻗는 자세로 승합차에서 내렸다.

“고생했다. 승합차 보내.”

“예, 형님.”

유섭우가 뒤를 돌아보자 약간 뒤편에 있던 덩치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고는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강성태는 유섭우와 함께 타고 왔던 승용차로 향했다.

궁금해 죽겠는데 차마 묻지는 못하고.

함께 걸은 뒤에 뒷문을 열어주는 유섭우의 심정이 글로 써 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강성태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십니까, 형님?”

“신월동 빌라로 가.”

유섭우가 돌아보자 운전석에 있던 덩치가 바로 차를 움직였다.

“박노익 회장 풀려날 거 같으니까 조직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 개발 사업도 지금처럼 계속 진행할 거고.”

“예? 형님?”

놀라서 돌아보았던 유섭우가 고개를 숙인 뒤에 몸을 앞으로 가져갔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그의 뒤통수에 네온사인을 켜놓은 듯한 아쉬움이 번쩍이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고검장이 어쩌고 떠드는 건 아닌 거 같고, 그나저나 최치곤이 집에 있을까?

강성태는 모처럼 최치곤과 함께 통쾌하게 마셔줄 생각을 하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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