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 13화 (245/513)

12권 - 13화

제5장. 고강준이 해보자는 건가?

조태완이 새로 꾸몄다는 집은 3층 건물이었다.

언젠가 지하에 현금을 엄청나게 쌓아두었다던 그 건물 같은데 강성태는 내색하지 않았다.

1층은 아예 커피전문점과 같이 꾸며놓았다.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만난다고 하고, 평소에는 김정훈과 같이 조태완을 지키는 인원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건물 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2층은 조태완의 서재, 3층은 생활하는 공간, 옥상은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안녕하세요?”

3층 가정집에 들어서자 조태완의 부인 오세아가 양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잠시만 둘러보겠습니다.”

강성태가 양해를 구한 다음이었다.

“홍삼 달인 물 있지?”

“바로 준비할게요.”

조태완의 지극한 홍삼 사랑에 따라 오세아가 시원하게 보관했던 음료를 유리잔에 따라 가져다주었다.

“침실을 잠깐 보겠습니다.”

조태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를 돌아본 강성태는 3층의 창을 확인한 뒤에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어 베란다로 나가 상체를 밖으로 빼내고는 위와 아래를 두 번에 걸쳐 확인했다.

“옥상은 계단으로 갑니까?”

“정훈이와 둘러봐.”

“모시겠습니다, 형님.”

조태완이 지시하자 거실 입구에 있던 김정훈이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계단 앞에 설치한 쇠창살문과 다시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이 있는 이중구조였다.

옥상으로 나가자 도심의 냄새를 가득 품은 노을과 바람이 강성태를 살피고는 멀리 달아났다.

대한민국에서 조태완을 저격할 일은 없을 테니, 맞은편 건물과의 간격, 혹시라도 옥상을 통해 넘어올 가능성을 우선해서 살폈다.

건물 뒤편 벽을 타고 이어진 배관을 확인한 강성태는 손짓으로 김정훈을 불렀다.

“도시가스 배관 보이지? 내가 고문님을 타깃으로 잡으면 무조건 저 배관을 이용해서 옥상으로 올라올 거다. 오늘이라도 사람 구해서 둥그런 곡선으로 된 커버를 모두 씌워. 중간에 붙잡을 수 없게 벽에 심는 앵커 머리가 나오지 않게 꼼꼼하게 시공해.”

“예, 형님.”

저런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나?

답을 한 김정훈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배관을 살폈다.

“이쪽과 저기 끝에 마주보도록 CCTV 설치해. 영상을 24시간 지켜보지 않더라도 침입하려는 놈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된다.”

강성태가 정해준 위치를 김정훈이 분명하게 눈에 담았다.

“배관 커버하고, CCTV 설치하고 나서 사진 내게 보내고, 엘리베이터는 아예 키로만 움직이게 바꿔.”

“키 말씀이십니까, 형님?”

“요즘은 키를 꽂아야 작동하는 시스템이 잘 나와 있어. 호텔 엘리베이터처럼 카드키를 꽂아야 작동하는 거.”

“아, 예. 형님.”

“계단이 있으니까 소방법에 걸리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비상 전력을 공급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외부에서 전기를 끊을 때 자동으로 들어오게끔. 알아봐.”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

3층으로 내려간 강성태는 김정훈에게 지시했던 내용을 조태완에게 다시 들려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툴툴댈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태완은 몹시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겠습니다.”

“저녁이라도 들고 가지?”

“확인할 일이 있어서요.”

아르윈이 데려간 원자춘 일행의 처리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으로 조태완은 소파 앞에 서 있던 오세아를 먼저 돌아보았다.

“영권이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외출로 처리했다고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보겠습니다.”

답을 한 강성태는 오세아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저거 마시고 가.”

몸을 돌리려는 강성태를 조태완이 붙들었다. 그리고는 탁자에 올려둔 유리잔을 가리켰다.

옅게 웃은 강성태는 거실 테이블에 놓인 홍삼 달인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나서 다시 짧게 고개를 숙였다.

김정훈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왔다.

1층과 2층의 계단마다 쇠창살 문과 CCTV가 있어서 내부는 크게 걱정하거나 보강할 부분이 없었다.

강성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1층에 있던 덩치들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나는 병렬이에게 갈 테니까 고생들 해.”

강성태는 밖에 세워둔 승용차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문을 닫은 김정훈이 먼저 고개를 숙였고, 그 뒤에서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상체를 숙였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도로를 승용차가 움직였다.

등받이에 등을 기댄 강성태는 밝은 조명이 들어온 상점들과 건물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아르윈의 번호를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어떻게 됐어?”

- 안산은 바다와 가깝습니다, 형님. 내일 아침이면 물고기들이 다 소화해서 누구도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형님.

징그럽도록 잔인한 대꾸가 아르윈의 자부심 넘치는 음성으로 넘어왔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투숙객들 상대했던 호텔들까지 전부 다시 확인해 봐. 그리고 삼합회가 움직일지 모른다. 쉬더라도 방심해서 당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

- 예, 형님.

“고생했다. 조직원들 챙겨주고,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 오늘 밤에 말씀하셨던 프리 스테이션에 가볼까 합니다, 형님. 업장 개설한다고 필리핀에 연락해도 되겠습니까, 형님?

업장을 차리는 게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가디언스파에게 보고하면 업적이 되는 눈치였다.

“원하면 그렇게 해.”

- 조심하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하루에 한 건씩, 숨 가쁘게 마주했던 일들이 모두 끝났다.

덕분에 연달아 달려드는 위기를 넘겼으나 그 바람에 더 큰 싸움과 위기가 서서히 강성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 개발 사업을 빼앗기게 생긴 장태섭이 뒤를 노리는 데다, 별장에서 따귀를 맞았던 인간들은 어떡해서든 강성태를 주저앉힐 계획을 짜고 있을 게 분명했다.

원자춘이 사라진 걸 알게 된 삼합회가 어떻게 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복수니 뭐니 따질 필요 없이 삼합회에게 대한민국은 노다지로 느껴지기 좋았다.

적당하게 썩어빠진 권력층과 돈으로 처발라 외국물을 먹은 유학생들이 마치 특권층의 전유물인 양, 선진 문물을 맛본 사람의 세련된 삶의 방식처럼 마약을 해대면, 어느 순간 중산층으로 급격하게 퍼지게 된다.

경제력 있는 중산층이 충분히 젖어들 때까지, 마약을 거래하는 인간들은 황금이 깔린 엘도라도를 찾는 심정으로 끝없이 대한민국의 문을 두들기게 돼 있었다.

썩어빠진 권력층과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연예인, 헛바람만 든 유학생, 그들이 자연스럽게 열어놓은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건 국제적인 조직, 국내 판매는 기존의 폭력 조직이 담당하게 된다.

결국, 끝없는 싸움을 통해 지켜내야 하고, 한 번이라도 쓰러지면 더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참 힘겨운 길이었다.

차장 밖을 보던 강성태는 이병렬이 보고 싶었다. 이병렬을 향해 가는 길에서 말이다. 다음으로 최치곤과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모처럼 실컷 마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떠올랐다.

술 마실 정도로는 나았겠지?

이병렬을 만난 뒤에 최치곤과 함께 포장마차에 들러볼까?

소박한 소망을 떠올린 강성태는 창밖을 향해 픽 웃었다.

**

장태섭은 뱁새눈을 한 박배근을 향해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익을 나누시자니까요, 형님.”

“몇 번을 말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태완이한테 신세 진 게 있어서 그쪽에는 발 디디기 어렵다니까.”

“형님? 그게 아니라 솔직하게 병실에서 강성태에게 당하신 거 때문에…….”

“이런 씨발 새끼가?”

“죄송합니다, 형님.”

장태섭이 아픈 부분을 들춰내자 뱁새 박배근은 대뜸 욕을 뱉어냈다.

“할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는 거야, 이 새끼야.”

“실수했습니다, 형님.”

“칠삼이 형님은 너도 들어봤을 거 아냐? 그 형님이 애들 용돈까지 빨아서 카드랑 말밥 주러 다니는 바람에 연장 맞았다. 그때 일이 커져서 우리 조직 박살나게 생긴 걸 수습해 준 게 조태완이고.”

조태완의 병실에서 강성태에게 제대로 얻어맞았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박배근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인상을 찌그러트렸다.

“대전 덕진이 새끼 꼬드김에 넘어가서 망신 떨기는 했는데 작업하려고 갔던 게 아니어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강성태에게 당한 거고. 알았냐?”

“예, 형님.”

잠시 벽을 바라보며 분통을 가라앉힌 박배근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장태섭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이 새끼야. 이렇게 찾아다니려면 가서 도끼부터 뽑아. 네 구역에 강성태가 도끼 박아놨다는 말이 전국에 싹 돌았어. 그거 하나 못 뽑는데 누가 나서겠냐? 막말로 내가 나서서 강성태 밀어냈다고 치자. 돈은 네가 다 처먹고 떡고물 떨구겠다는 게 말이 되냐?”

“제가 관리해서 지금까지 왔잖습니까?”

“그러면 가서 계속해. 그래서 다 처먹어. 피는 나더러 흘리라면서 왜 돈은 네가 다 처먹겠다는 건데?”

“나누시자는 겁니다, 형님.”

매달리는 장태섭을 향해 박배근이 기가 찬 웃음을 토해냈다.

“태섭아. 지금 네가 하는 걸 우리 바닥은 모사라고 하고, 내가 떡고물 조금 얻어먹자고 달려들었다가 피 졸라 흘리면 빨래질 당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잣 까는 소리는 달나라 가서 하고, 말이 되는 조건을 가져와. 그럼 다시 생각해 볼 테니까.”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형님?”

“간 보지 말고, 이 새끼야. 얼마 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말하라고.”

더는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뱁새 박배근은 고개를 모로 틀었다.

**

병실의 침대에 다가간 강성태는 복잡한 표정의 이병렬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

고개를 뒤로 돌려보았는데 조봉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표정이나 눈빛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태완이 형님 집에 갔다면서? 저녁도 안 주던?”

“안 그래도 먹고 가라던데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해서 바로 나왔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한 이병렬의 질문이 있었고, 강성태가 답을 한 뒤였다.

조봉진이 종이컵에 탄 믹스 커피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 유헌우를 닮은 듯 적당히 세월을 품은 천장과 벽, 매달려 있는 링거팩, 방지병원의 병실은 어느새 삶의 일부처럼 강성태에게 다가와 있었다.

믹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강성태는 침대 옆의 탁자에 잔을 내려놓았다.

“일이 너무 많다. 이러다가 뒤탈 생기는 거 아니냐?”

“점점 더 큰 싸움으로 변하는 느낌인데, 피할 방법이 없으니까 닥칠 때마다 맞받아쳐야지. 일은 많고, 혼자 다니려니까 힘들다. 얼른 일어나.”

“이제 진짜 조직 보스 냄새가 풍긴다. 눈빛도 그렇고.”

감탄처럼 말을 뱉어낸 이병렬이 강성태를 물끄러미 보았다.

“원자춘 상대하면서 달수 챙겼다는 이야기 들었다. 고맙다.”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애써 외면하던 서달수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아픔이 이병렬의 말 한마디를 따라 침대 주변에 진하게 피어났다.

“오늘은 치곤이 불러서 술 한잔 마실까 해.”

“위험하지 않겠냐?”

“누가 뭐래도 커피알리고부터 신월동 포장마차까지가 진짜 내 구역이잖아. 골목 구석구석까지 모두 아니까 정 급하면 적당한 곳에 숨지, 뭐.”

“퍽도 그러겠다.”

농담을 건넨 이병렬이 최치곤의 방문과 함께 의논했던 일들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숙소를 꾸미라고 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경비를 충분하게 내려줘. 애들 잘 먹고, 잘 입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그렇지 않아도 고문님이 한강 옆 빌라를 나더러 쓰라고 해서 거기를 사무실처럼 꾸미려고 하거든. 여차하면 치곤이한테 거길 사용하라고 하면 되겠다.”

“나쁘지 않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애들 데리고 다니는 거지? 다른 놈은 몰라도 장태섭은 조심하는 게 좋아. 그 인간이 모사치는 일 하나는 참 집요하거든. 꾐에 넘어가면 빨래질 당한 건데 그걸 빤히 알면서도 넘어갈 정도로 끈덕진 구석이 있다.”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차하면 내일이라도 성북구 한 번 더 다녀와.”

그러고 보니 이병렬은 아직 이세종의 일을 모른다.

강성태는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따귀를 때렸어?”

고개를 끄덕이는 강성태를 이병렬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미쳤냐? 아예 교도소 병상으로 나 옮겨주려고 그래?”

“영상 있다니까.”

“그 인간들이 얌전히 고개 숙일 거라고 생각하냐? 진짜?”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그 안에 다음 대책을 준비해야 하고.”

“그게 뭔데? 선거 나가서 국회의원 배지라도 달래? 아니면 검찰총장하고 담판이라도 지을 거냐?”

“마약을 하는 인간들 위주로 들춰두면 되지.”

“아예 죽을 길로 밀어 넣는구나. 하, 씨발. 가만 보면 나도 졸라 복 없어.”

과장되게 툴툴대는 이병렬을 보며 강성태가 픽 웃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울었다.

“고문님인데? 잠시만.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 어디야?

“병렬이한테 와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 조금 전에 박노익이 긴급체포 됐다. 당장은 주가조작 혐의를 씌웠는데 조 변호사가 알아본 바로는 고검장 오더가 있었단다.

“고검장이요? 고강준 말입니까?”

이병렬이 눈빛을 바꾸고 지켜보는 앞이었다.

- 그래. 그 고강준. 우선 서울에 계보가 있는 조직을 손보는 눈치라니까 잠시 몸을 피해.

고강준이 해보자는 건가?

따귀로 부족할 거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머리를 쳐들 줄은 또 몰랐다.

죽고 싶다고 발악하면 죽여줘야지.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고강준의 야비한 인상을 떠올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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