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 11화 (243/513)

12권 - 11화

덩치들 사이를 지난 강성태는 조태완의 휠체어에 보조를 맞추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휠체어를 미는 김정훈, 오늘 아우라 호텔 행사를 담당한 정영권, 그리고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 다섯 명이 강성태를 뒤따라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연회장 중앙을 가로지른 기다란 테이블이었다.

하얀 면 식탁보, 인원수에 맞춰 놓인 접시, 포크와 나이프, 물컵, 그 앞에 조형물처럼 접어둔 냅킨까지,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낸 호텔 직원과 정장 차림의 매니저가 강성태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쪽입니다, 회장님.”

조태완과 강성태 앞으로 나선 매니저가 테이블의 안쪽 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문을 바라보며 앉는 형태였다.

한가운데 자리를 양보하려 했었다.

“신강남파 행사인데 보스가 가운데 앉아야지. 뭐 하냐?”

강성태의 의도를 알아차린 조태완이 매서운 눈으로 김정훈을 돌아보았다.

정영권이 움직여 중앙 오른편의 의자를 빼냈고, 김정훈이 그 자리에 휠체어를 넣었다.

호텔 직원들이 빼낸 의자를 안쪽으로 치운 다음이었다.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조태완에게 양해를 구한 강성태는 연회장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아르윈.”

강성태가 부르자, 아르윈이 조직원 다섯과 함께 뒤따랐다.

조태완과 김정훈이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강성태는 연회장을 나섰다.

복도에 줄줄이 늘어섰던 덩치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동선은?”

“저쪽으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형님.”

아르윈이 엘리베이터 반대편 복도를 향해 움직였다.

복도 정면의 벽에 ‘Staff Only’라고 적힌 다른 철문이 보였다.

이미 이전에 조태완과 함께 살펴보았던 동선이었다. 당시에 강성태가 판단했던 그대로의 동선을 아르윈이 가리키고 있었다.

“이 철문 안쪽 계단이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형님. 중간에 음식을 옮기는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한데, 피가 묻으면 곤란해서 들고 움직일 생각입니다.”

“다섯 놈이라는데?”

“잠시만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형님?”

뒤를 돌아본 아르윈이 오른쪽의 철문을 열었다.

“앞을 지켜.”

따라온 다섯 명의 조직원들에게 입구를 당부한 아르윈이 철문을 통해 계단으로 나섰다.

서늘한 바람과 어둑한 조명이 강성태에게 달려들었다.

‘⊓’자의 형태로 돼 있는 정면에 계단이 있고, 오른편에 음식을 받는 작은 엘리베이터, 다시 왼편은 연회장으로 연결된 통로였다.

왼편 연회장에서 나온 직원들이 계단을 지나쳐 오른쪽 엘리베이터에서 음식을 받는 구조였다.

음식을 받아 왼편으로 나가면 다시 연회장이 나온다.

“공항에서 붙잡은 두 놈은?”

“승합차에 실어두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연회장과 연결된 왼편 통로를 돌아보았다.

“저쪽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옮기지?”

“왼편 서빙하는 직원들 공간에 세탁물 수거함을 두었습니다, 형님.”

답을 한 아르윈이 전화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통화 따위 하지 않았다. 신호음을 확인한 그가 스마트폰을 내린 직후였다.

아래쪽에서 급한 발걸음이 울리더니 공항 도로에서 보았던 필리핀 조직원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강성태를 본 조직원들이 황송한 얼굴로 상체를 깊게 숙였다.

“보여드려.”

“예.”

우리말로 지시했고, 역시 우리말로 답했다.

공항 도로에서 조수석을 해결했던 조직원이 들고 있던 자루를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안쪽에 비닐을 이중으로 둘렀고, 바깥은 질긴 천으로 돼 있어서 어지간히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흔적이 남을 염려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복도에 있는 신강남파 식구들과 호텔 직원들, CCTV입니다, 형님.”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답을 준 강성태는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삼합회다. 내용을 알게 된 저쪽에서 복수를 다짐할 수도 있고, 혹은 수사가 시작돼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조직원의 안전은?”

“문제가 된다면 저희는 필리핀으로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형님. 혹시 몰라서 형님을 필리핀으로 모실 밀입국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비장하게 말하는 아르윈의 목덜미에서 해적 문신이 다부진 각오를 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의 준비였다.

“다들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형님.”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가 몸을 돌리자 아르윈이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계단에 있던 조직원들이 아래로 내려갔다.

문을 나선 강성태는 아르윈, 밖을 지키던 필리핀 조직원 다섯과 함께 연회장으로 움직였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 뒤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사이 연회장에 도착해 있던 유섭우와 이종환, 김진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성태를 향해 인사했다.

중앙에 강성태, 왼편으로 김진용, 유섭우, 이종환, 다시 오른쪽으로 조태완, 김정훈, 정영권이 앉았고,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 다섯이 벽을 등지는 형태로 섰다.

“정영권. 여기 CCTV는 확인했어?”

강성태가 오늘 행사를 담당한 정영권에게 질문을 건넨 직후였다.

“이미 다 꺼놨어. 여기 직원들도 내가 알아서 깔아놓은 놈들이라 신호만 하면 다른 층으로 움직일 테고.”

강성태의 속을 읽은 듯한 조태완의 답이 건너왔다.

완벽한 일 처리였다.

그래놓고 조태완은 또 어떡해서든 강성태가 한 번쯤 참아줬으면 하는 눈빛과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진짜 작업할 거냐?’

아르윈을 살핀 뒤에 돌아온 그의 시선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조태완은 원래 저런 스타일 아니었다.

죽으면 죽었지, 끝까지 해보자며 눈을 독하게 뜰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그런 조태완이 강성태에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꺾여서 애원하는 투로 매달렸다.

한번 한다면 끝까지 가는 성격 때문일 거란 생각에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웃기는.’

조태완의 눈이 비틀리는 순간이었다.

“삼합회 손님이 오셨습니다, 형님.”

덩치 한 명이 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나직하게 원자춘의 도착을 알려주었다.

강성태를 시작으로 조태완을 제외한 왼편과 오른편이 모두 일어섰다.

문 한쪽으로 비켜선 덩치 옆으로 원자춘으로 보이는 남자와 덩치 네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짧은 머리, 째진 삼각형 눈, 뿌리가 기다랗게 보이는 코, 약간 튀어나온 입, 어지간히 뻔뻔해 보이는 원자춘이 강성태 앞으로 다가왔다.

“미스터 강? 원자춘이오.”

그가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 손을 내밀었다.

“강성태입니다.”

강성태는 팔을 뻗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또, 개구리를 손에 잡은 것처럼 축축한 느낌도 들었다.

지기 싫어서인지 제법 강성태의 손을 붙잡고 제법 힘을 주었는데 눈이 마주친 순간, 적당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우리 조태완 고문님이십니다.”

“오랜만입니다.”

조태완과는 안면이 있다는 점을 과시한 원자춘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쪽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강성태는 먼저 김진용, 유섭우, 이종환을, 이어 오른쪽에 있던 김정훈과 정영권을 소개했다.

원자춘이 대표로 악수했고, 함께 온 네 명은 반쯤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 쪽을 소개하지요.”

그가 오른쪽에 있던 두 명, 다시 왼편에 있던 두 명을 차례로 소개했다.

역시 강성태가 대표로 악수를 나누었고, 다른 인원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앉으시죠.”

강성태가 자리를 가리키자, 함께 앉자는 투로 손을 뻗어 보인 원자춘이 자리에 앉았다.

강성태와 원자춘, 삼합회 네 명이 앉은 다음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김진용이 대표로 인사한 뒤에 신강남파 인원이 자리에 앉았다.

“한국은 확실히 예의가 있어요.”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일 수 있었다. 그러나 뻔뻔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인사하는 신강남파 식구들을 비웃는 느낌도 들었다.

강성태가 옅게 웃을 때, 호텔 직원들이 다가와 원자춘 일행 앞의 커다란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식사하기는 이르고.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는 건 어떻소?”

“그렇게 하시죠.”

강성태가 고개를 돌리자 지시를 알아들은 매니저가 뒤편을 향해 움직였다.

어색함을 지우려는 것처럼 원자춘은 과장된 동작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처럼, 정말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는 투로, 원자춘이 아르윈과 다섯 명을 유심히 살폈다.

소개해야 하는 건지는 몰라도 강성태는 침묵을 지켰다.

“최근 우리 미스터 강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소.”

아르윈을 향해 눈빛을 빛냈던 원자춘이 시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멕시코에 보내준 삼합회 조직원 세 명과 광룡의 도발을 막다 보니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대놓고 얼굴에 침을 뱉는 듯한 대꾸였다.

‘해보자는 거냐?’

말을 듣기 무섭게 눈가를 딱딱하게 굳힌 원자춘이 고개를 비틀었다.

영어로 오가서 김진용부터 정영권까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대화였다. 그러나 정색한 강성태, 고개를 비튼 원자춘이 눈과 눈을 피하지 않고 있어서 삼합회의 네 명과 신강남파 간부들이 비슷한 느낌으로 앞에 있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숙연하게 느껴지는 정적이 흐를 때였다.

조태완이 고개를 뒤로 돌려 아르윈을 찾았다.

“너는 영어를 하지?”

“예, 형님.”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원자춘이 보스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형님.”

“좋은 말이잖아? 그게 왜?”

“보스께서 멕시코에 보내준 삼합회 조직원과 광룡의 도발을 막느라고 활약하게 된 거 같다고 답하셨습니다.”

“끄응.”

신음을 토해낸 조태완이 강성태와 원자춘을 돌아보았다.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른 매니저와 호텔 직원들이 바싹 긴장한 얼굴로 물러나 있는데 강성태와 원자춘은 여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부터 저쪽이 하는 말을 우리말로 바꾸고, 내가 하는 말을 저쪽에 영어로 전해. 할 수 있겠냐?”

“여기 동생도 영어와 우리말을 합니다, 형님. 저는 저쪽 말을 우리말로 바꾸고, 영어로 바꾸는 건 여기 동생 시키겠습니다, 형님.”

“그건 너 알아서 하고.”

아르윈에 툭 말을 건넨 조태완이 원자춘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 선생.”

아르윈이 영어로 바꾸기도 전에 원자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면서도 강성태를 들여다보던 원자춘이 마지막에 시선을 조태완에게 향했다.

“광룡 문제는 뭐라고 해도 원 선생이 실수한 부분 같은데, 오늘 이 자리에서 원하는 게 우리 보스의 성향을 테스트하려는 거라면 아무래도 실수하는 거요.”

강성태만 아니라면 조태완은 정말 밀리는 법이 없는 인물이었다.

차분하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당장에라도 잔을 집어서 원자춘의 머리통을 내려칠 것처럼 조태완의 눈꼬리에 독기가 묻어 있었다.

“광룡이 설치는 바람에 우리 조직원이 희생된 건 알고 계시겠지? 한국이라 만만하게 여겼다면 우리 보스가 어떤 분인지 내가 알려드리지.”

말을 마친 조태완이 잔인한 미소를 그리며 원자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조태완이 우리말로 말하고 있어서 이번에는 김진용부터 정영권까지 모두 알아들었다.

강성태든, 조태완이든, 시작하라는 한 마디만 떨어지면 당장 원자춘과 네 명의 몸뚱이에 구멍을 뚫어놓을 것처럼 김진용부터 정영권이 독기를 펄펄 피워냈다.

“흐하하하.”

긴장된 순간을 맞은 원자춘의 반응은 과장된 웃음이었다.

“내가 신강남파의 보스를 알아보고 싶어 했던 행동이 우리 조 선생의 심기를 어지럽혔던 모양입니다. 흐하하하.”

변명을 내놓은 원자춘이 과장된 웃음을 다시 터트릴 때, 아르윈이 데려온 조직원이 우리말로 그의 말을 들려주었다.

“자! 그럼 기분 푸시고 술을 드십시다!”

원자춘이 잔을 들고 강성태와 조태완을 향해 좌우로 움직였다.

강성태가 꼼짝하지 않고 있어서 이쪽은 조태완도 잔을 들지 않았다.

“마음이 많이 상하셨었나? 우리 삼합회는 이런 식으로 상대의 능력을 평가해보는 게 관례이니 그만 잔을 드는 게 어떻소?”

아르윈의 조직원이 원자춘의 권유를 우리말로 바꾸는 사이에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영권. 밖에 있는 식구들 전부 로비로 내려보내.”

“예, 형님.”

눈치 빠른 아르윈이 영어로 바꾸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정영권이 짧게 고개를 숙인 뒤에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매니저. 직원들 데리고 로비로 내려가.”

원자춘을 바라본 상태에서 강성태가 차갑게 지시하자 고개를 숙인 매니저가 눈짓을 던져가며 직원들과 스태프 전용 통로로 빠져나갔다.

좌우를 살핀 원자춘이 잔을 내려놓고는 다시 강성태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내가 미스터 강에게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가져왔는데 듣고 나면 지금의 행동을 미안해하게 될 거요.”

“원자춘. 당신이 오해하는 게 있다.”

강성태가 영어로 말하자 조태완이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아르윈이 우리말로 전해주었다.

“내 구역에서 당신이 설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첫 번째, 우리 조직원이 희생된 게 별게 아니라고 여긴 게 두 번째.”

“조직원이라는 게 원래 문제가 생기면 죽기도 하는 건데…….”

“그래서 오늘 네가 죽는다.”

뻔뻔하게 나오는 원자춘을 강성태는 차가운 한마디로 잘랐다.

“아르윈.”

강성태가 부른 직후였다.

철컥.

품에 손을 넣은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 다섯이 권총을 꺼내 맞은편에 앉은 원자춘과 넷을 겨눴다.

소음기 달린 권총이었다.

조태완이 마른침을 삼킬 때, 강성태는 픽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죽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지.”

권총의 총구와 조태완을 차례로 돌아본 원자춘이 놀라고 당황한 시선을 가져왔다.

한국에서 총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눈치였다.

“나와 붙어서 먼저 쓰러트리면 깨끗하게 그냥 돌려보내 주지.”

강성태의 말이 건너가기 무섭게 원자춘이 씨익 웃었다. 그를 지켜보던 강성태 역시 비슷한 느낌의 웃음을 그려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