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 6화
제3장. 내가 보스로 있는 한.
1차로 노래를 마친 소신영 일행이 자리에 앉자 기다리고 있던 양길동이 바의 맞은편에 공손한 태도로 섰다.
그는 고급 천을 위로, 옆으로 펼쳐 마치 보석을 선보이는 세공사처럼 얇은 주사기 네 개를 드러내고는 고개를 깊게 숙었다.
“최상품이겠지?”
“대한민국의 0.1퍼센트만 즐기실 수 있는 제품입니다. 중독성도 없고, 프로포폴을 이용해 한숨 주무시고 나면 흔적도 전혀 남지 않습니다.”
소신영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포폴은?”
“차에 타시기 직전에 맞으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푹 주무시고 나면 서울에 도착할 때쯤 가뿐한 몸으로 일어나실 겁니다.”
“저 아이들은?”
얌전하게 손을 앞으로 잡고 기다리는 여섯 명의 여자를 소신영이 가리켰다.
또다시 고개를 공손하게 숙인 양길동은 옆에 두었던 가방에서 귀금속을 담을 때 쓸 법한 얇고 넓은 상자를 꺼내 뚜껑을 위로 열었다.
내용물은 역시나 얇디얇은 주사기 여섯 개였다.
소신영이 주사기를 볼 수 있도록 상자를 앞으로 돌린 양길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필로폰에 특별한 흥분제를 가미한 제품입니다. 단순한 손길 하나에도 세상에 없는 쾌락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오늘 처음 맞는 아이들이라 반응이 남다르리라 확신합니다.”
좌우를 돌아본 소신영이 뒤편에 선 여자들이 들으란 투로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따로 바라는 게 있나?”
“그저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만들어주신다면 저 아이들에게는 평생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흐하하하. 시작하지.”
소신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먼저 상자를 집어 든 양길동이 여자들 앞으로 움직였다.
찍찍이가 붙은 밴드를 이용해 팔뚝을 조인 양길동은 왼손 엄지로 핏줄을 한 번 눌러보고는 곧바로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능숙한 솜씨여서 여섯 명이 주사를 맞는 데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른들을 모실 준비를 해.”
나직하게 말을 전한 양길동이 몸을 돌려 소신영의 앞으로 움직일 때, 여자들은 걸치고 있던 원피스의 지퍼를 내리고는 어깨에서부터 다리로 흐르듯 벗어 내렸다.
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들에게 시선을 준 소신영의 팔에 양길동이 주삿바늘을 꽂아넣었다.
“흐음.”
팔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쾌락에 소신영은 더러운 욕망이 담뿍 담긴 신음을 뱉어냈다.
“왜 아직 속옷을 입고 있어?”
“잠시 뒤에 더한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짧게 답을 한 양길동이 몸을 돌리자 이우섭, 고강준, 선중일이 스스럼없이 팔을 맡겼다.
우습게도 세 사람 모두 주삿바늘이 꽂히는 순간, 소신영과 비슷한 신음을 토해냈다.
“흐하하하!”
마지막으로 선중일이 주사를 맞고 났을 때, 소신영은 이전보다 더욱 야비한 웃음을 토해냈다.
“오늘은 확실히 달라! 왜 이렇지? 왜 자꾸 뭔가를 부수고 싶어지지?”
“귀한 분을 모시는 자리라 명품 중에서도 최상급을 사용해서 그럴 겁니다, 회장님.”
“후우.”
뜨거운 숨을 토해낸 소신영이 탐욕에 물든 눈빛으로 여자들을 바라보았는데 이우섭과 고강준, 선중일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서들 와라.”
“회장님. 약효가 제대로 퍼져야 쾌락이 배가 됩니다. 잠시 여흥을 즐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자들을 부르는 소신영을 양길동이 조심스럽게 막았다.
“무슨 소리야?”
“한 분씩, 노래 네 곡을 부르시는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짧게 말을 던진 양길동이 고갯짓을 던지자 여자들이 빠르게 노래방 기계 주변으로 움직였다.
“노래 네 곡입니다, 회장님. 그 뒤에 최고의 쾌락을 맛보십시오.”
“하아!”
양길동이 건네는 말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소신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런데도 소신영을 시작으로 네 사람 모두 한 조각 이성이나 최소한의 도덕 따위 완벽하게 잃어버린 양, 다급한 동작으로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배가 불룩 나온 데다, 팔다리는 가늘고, 얼굴만큼이나 가슴과 허리 살이 늘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욕망이 꿈틀대는 네 명의 몸뚱이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추악했다.
“어떤 년을 죽여줄까?”
이성을 잃은 네 명은 곧바로 여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잡았다!”
소신영에게 팔을 잡힌 여자가 뿌리치기 위해 버둥대자, 뒤편에서 이우섭이 달려들었다.
“싫어요! 싫다고요! 놓으세요!”
“가만있어!”
거실은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남자 넷에 여자 여섯이었다.
여자 두 명이 달려들어 소신영과 이우섭을 붙들면서 먼저 잡혔던 여자를 구해냈다.
의아한 점도 있었다.
손길만 닿아도 쾌락을 주체 못 할 거라던 여자들의 반응이 너무도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탐욕에 물든 소신영과 이우섭은 그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여자들의 반항하는 모습에 소신영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퍽! 퍽! 퍽!
“악! 아악!”
두 사람을 말리던 여자가 얼굴을 얻어맞고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코와 입술에서 피가 번져 나왔는데 소신영은 그 모습을 보고도 거침없이 쓰러진 여자를 덮쳤다.
이우섭과 고강준, 선중일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결국 주먹을 휘둘렀고, 피투성이가 된 여자들을 거칠게 덮쳤다.
네 사람 모두 양길동이 뭘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허튼수작을 부리면 양동길쯤 얼마든지 매장시킬 능력이 있었고, 오늘 일이 문제가 돼도 흐지부지 넘길 능력과 자신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감히 반항을 해?”
소신영이 깔린 여자의 속옷을 거칠게 잡아채는 순간이었다.
달칵.
스위치 올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조명이 들어오며 추악한 거실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멈칫한 소신영이 고개를 돌렸다가 흐릿한 눈을 껌벅였는데 다른 세 명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만하고 일어나.”
가장 앞에 들어선 강성태는 옆을 향해 고갯짓을 던졌다.
덩치들이 움직여 원피스를 집어 들고, 소신영과 이우섭, 고강준, 선중일에게 다가가서 발로 밀쳐냈다. 그리고는 밑에 깔렸던 여자들을 부축했다.
잡히지 않았던 두 명의 여자는 알아서 움직여 원피스를 집어 들었는데, 그때쯤 깔렸던 덩치들의 도움을 받은 여자들도 몸을 일으키고는 주방 쪽으로 움직였다.
“너, 이놈!”
약에 취한 소신영이 당장에라도 강성태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짜아아악! 털썩.
강성태에게 따귀를 세차게 얻어맞은 소신영이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몰골로 옆으로 쓰러졌다. 그런데도 그의 아랫도리는 아직 흥분한 상태였다.
더러운 꼴을 외면하는 것처럼 강성태는 옆에 있는 양길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오늘 새로운 약을 넣었기 때문에 따귀를 맞을수록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 저…….”
“말해, 그냥.”
“흥분이 극에 달하면 맞다가 사정도 합니다, 형님.”
속이 뒤집히는 설명에 강성태는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강성태의 인상을 본 양길동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너한테 그런 게 아니라 더러워서 그런 거니까 고개 들어. 그거 말고 다른 건?”
“형님. 동생분들 남겨주시고, 5분만 밖에 계시면 안 되겠습니까, 형님?”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들어왔던 주방의 뒷문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음식을 담당하던 주방 아주머니 세 사람이 한쪽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양길동이 데려온 주방 아주머니들이라 대강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그만큼 강성태가 두렵고 무서운 눈치였다.
또 입구 오른쪽에는 원피스 차림의 여자 여섯 명이 서늘한 밤기운에 한기를 느끼는 것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예, 괜찮습니다. 코피하고, 입술이 터졌을 뿐이에요.”
“주사 맞은 건?”
“저희는 멀티 비타민이라 몸에 좋을 거라고 들었어요.”
강성태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길동 통해서 연락할 테니까 나중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찾아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느닷없이 회장이 된 강성태는 곁에 있던 덩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들하고 여기 아주머니들 승합차로 데려가.”
“예, 형님.”
덩치 한 명이 고갯짓을 하자 여자들과 아주머니들이 쭈뼛대는 인사를 하고는 뒤를 따랐다.
“주차장에 기사들 대기한다니까 한 명 더 가서 그대로 있으라고 하고, 반항하면 알아서 눌러 놔.”
“예, 형님.”
시선을 받은 덩치가 고개를 숙이고는 막 별장을 돌아나가는 여자들을 뒤따랐다.
고개를 든 강성태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았다.
멕시코에서 그토록 지겹게 싸우던 마약과 마약조직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쩌면 거대한 숙명의 바퀴에 몸이 묶여서 어쩔 수 없이 원주의 별장까지 온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숙명의 굴레에 묶였든, 강성태의 의지가 여기까지 끌고 왔든, 이런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
안다미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서도 싸울 거고, 이은주, 장숙경, 치곤이 아버지처럼 주변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도 물러서지 않을 거다.
중국 삼합회? 방송국 회장에 국회부의장?
어디 해봅시다.
강성태가 의지 가득한 눈으로 하늘에 담긴 별들을 바라볼 때였다.
“형님.”
양길동이 다가와 강성태를 나직하게 불렀다.
“이걸 잠시만 보시겠습니까?”
그는 스마트폰 크기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강성태가 시선을 내리자 양길동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빠르게 넘기자 이어서 주사를 맞는 과정이 보였고, 다음으로 여자들을 쫓아가 때려눕히고 덮치는 모습이 나왔다.
강성태가 등장하는 장면을 양길동은 빠르게 넘겼다.
그가 다시 화면을 정상으로 돌리는 순간, 강성태는 느닷없이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무슨 약을 어떻게 썼는지 모른다.
극도의 환각에 빠지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벌거벗은 남자 넷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더러운 부위를 입에 담고 흥분하는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저 인간들이 이 장면을 기억하나?”
“아닙니다, 형님. 완벽하게 환각에 빠져서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기는, 심한 환각에 빠진 인간 중에는 부모와 형제, 아내, 자식을 죽이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저 정도야 뭐.
강성태의 눈치를 살핀 양길동이 화면을 빠르게 돌렸다.
그 빠른 화면 안에서 벌거벗은 남자 넷이 뒤엉켜 관계를 갖는 장면도 있었다.
“그만하자.”
강성태의 말에 양길동이 영상을 멈추고 카메라를 내렸다.
“이것 말고 거실에 숨겨둔 카메라가 다섯 개 더 있었습니다, 형님.”
“전부 가져와.”
“여기 가져왔습니다, 형님.”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어 보인 양길동이 들고 있던 카메라까지 안에 넣고는 강성태에게 건네주었다.
“저 인간들을 깨울 약이 있나?”
“말씀만 하시면 주사를 놓겠습니다, 형님. 대신 15분에서 20분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들어가서 주사 놔.”
“예, 형님.”
양길동이 들어간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간절할 정도로 커피가 그리웠다.
“누구 커피 한잔 만들어 와라.”
“예, 형님.”
덩치 하나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 주십시오, 형님.”
영상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염려해 들고는 있었지만, 건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경고와 함께 가방을 건네준 강성태는 주변에 서 있는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장난이든, 호기심이든, 마약은 절대 하지 마라. 한 번 손대는 순간 누구든 저 안의 모습이 된다. 비록 야비한 인간들이기는 하지만, 멀쩡한 정신이라면 죽으면 죽었지 저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거다.”
처참한 모습을 봐서인지 강성태의 말에 고개 숙이는 덩치들의 눈과 얼굴에 비장한 각오가 올라와 있었다.
“우리가 돈 몇 푼 벌자고 마약을 돌리면 언젠가는 우리 가족이 저런 모습으로 누군가의 아래에 눌리게 된다. 그런 꼴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돈이 더 좋다고 여긴다면 조직을 떠나. 그리고 절대 나를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해.”
강성태가 경고를 던진 직후에 커피를 든 덩치가 별장에서 나왔다.
“가서 인원수대로 더 타와.”
“예, 형님.”
달달한 믹스 커피 냄새가 지금은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다.
“신강남파가 있고, 내가 보스로 있는 한, 대한민국에 마약은 없다.”
“예, 형님.”
덩치들이 고개를 숙이는 앞에서 강성태는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