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 21화 (232/513)

11권 - 21화

종로에서 잠시 정체되었을 뿐, 출근 시간을 지난 승용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시선 개발 주식회사, 대표이사 윤중선, 그리고 주소였다.

이름을 기억한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승용차 안의 강성태를 지켜보았다는 듯 조태완의 이름이 액정에 올라왔다.

“강성태입니다.”

- 혹시 지금 장태섭이 찾아가?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인사조차 건너뛴 그의 질문이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왔다.

“고문님 찾아뵙기 전에 잠시 들렀다 가려고요.”

- 왜 그렇게 서둘러? 명분을 좀 더 쌓는 게 좋다니까.

“성경일이라는 놈이 김전동을 찾아다닌 거로 명분은 충분합니다. 시간 끌다가 저쪽 애들에게 당하면 시킨 대로 일 잘한 김전동을 조직이 외면한 꼴이 됩니다.”

- 흐음.

강성태의 대꾸에 말문이 막혔는지 조태완은 묘한 느낌의 한숨을 먼저 토해냈다.

- 그러면 오늘은 인사만 한다고 생각하자. 제발 부탁이니까 적당히 하고 와.

“김전동을 노리는 일만 멈추게 하면 충분합니다. 간단하게 끝내고 넘어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알았어. 조심해서 일마치고 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일마치고 오라니, 마치 직장에서 업무를 당부하는 듯한 조태완의 말투가 웃겨서 강성태는 가볍게 웃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이었다.

큰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직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마법 소설에서 지하철역을 통과하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것처럼 높은 빌딩에 가려져 있던 재개발 단지가 강성태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부서진 주택, 벽과 현수막에 붉은색 라커로 거칠게 써놓은 글씨들, 깨진 유리창, 대문에 커다랗게 그려진 X자.

큰 도로에서 방향만 틀었을 뿐인데,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난 오지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폐허로 변한 건물들 사이를 타고 1분쯤 위로 올라간 뒤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승용차가 멈췄다.

“저 건물 같습니다, 형님.”

유섭우가 20미터쯤 앞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상호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2층이 부서져 1.5층으로 보이는 건물과 그 위에서 목에 사슬을 걸고 서 있는 세 명의 남자가 보였다.

결사항전, 사람 죽이는 악덕 기업 티에스 개발 물러나라, 따위의 글씨를 써놓은 천이 남루해 보이는 남자들의 모습만큼이나 축 늘어져 있었다.

조수석에서 내린 유섭우가 뒷문을 열어줄 때, 승용차와 승합차가 줄줄이 멈췄고, 차에서 내린 시커먼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골목을 가득 메웠다.

강성태와 유섭우, 차에서 내린 덩치들이 티에스 개발에서 보낸 용역이라고 판단한 눈치였다.

최후를 각오했는지 목에 건 쇠사슬의 중간을 양손으로 붙든 세 남자가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표정으로 강성태와 유섭우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강성태와 세 남자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근처에 있었던 모양으로 십여 명의 덩치들이 나와 건물 앞을 막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도끼 내려.”

“예, 형님.”

고개를 숙였던 유섭우가 눈짓으로 지시하자 기다리고 있던 덩치가 다가와 트렁크를 열었다.

적당히 좀 하지.

덩치가 양손으로 날 바로 아래쪽과 자루 끝을 잡고 들어야 할 만큼 도끼는 컸다.

하긴, 강성태가 커다란 놈으로 준비하라고 했으니 어쩌면 유섭우는 그 지시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강성태가 건물로 향하자 유섭우가 곁을 따랐고, 쇠파이프와 배트를 든 신월동과 강서구의 덩치들이 바로 뒤에 따라붙었다.

20미터쯤 되는 거리여서 삽시간에 길을 막은 덩치들이 눈앞에 있었다.

“뭐야!”

상대방 덩치 중 한 놈이 고함을 지른 직후에,

“저것들 치워!”

받아치듯 유섭우가 짧게 지시를 내렸다.

우르르, 신월동과 강서구의 덩치들이 달려가서 십여 명을 뒤덮었다.

고함과 욕설이 터졌는데 워낙 저쪽 숫자가 부족해서 상황은 삽시간에 끝났다.

“씨발놈이! 대가리 숙여, 이 새끼야!”

퍼억! 퍽!

마지막까지 반항하던 두 놈의 등과 목덜미에 쇠파이프가 떨어지는 것을 끝으로 건물 앞을 막았던 놈들이 모조리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건물 앞으로 다가간 강성태가 고개를 들었을 때, 위에 있던 세 남자는 아직 목에 건 사슬의 중간을 양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칼과 수염,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 지친 눈에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억울함과 힘의 논리에 처절하게 짓밟힌 약자의 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시선 개발 주식회사 강성태입니다! 티에스 개발을 대신해서 이곳 개발 사업을 진행하려고 왔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친 세 남자가 다시 강성태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 개발이 다시 옵니까?”

“예!”

“혹시 윤중선 대표가 있는 그 시선 개발, 맞습니까?”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땟국물 가득한 세 남자의 얼굴에 옅은 희망이 스쳤다.

“늦게 왔으니까 그만큼 제대로 하겠습니다! 당장 필요한 거 있으세요?”

강성태가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저희 좀 살려주세요!”

아직 쇠사슬을 양손으로 잡은 남자 한 명이 울음을 터트렸다.

급작스러운 상황이어서 강성태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옆에 있던 두 남자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강성태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있어?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시선에 이십여 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급하게 차려입은 복장에 어수선한 머리 꼴을 봐서 소식을 듣고 앞뒤 안 가리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게다가 더 달려올 놈들이 있는지, 세워놓은 승용차와 승합차의 앞뒤 골목을 막아설 뿐, 당장 달려들지 않았다.

놈들을 돌아본 강성태는 다시 건물 위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사장님! 저놈들 진짜 무서운 깡패들입니다!”

건물 위에 있는 남자가 말 한마디로 유섭우와 덩치들을 안 무서운 깡패로 만들었다. 세 남자의 말과 표정을 봐서 강성태만큼은 개발회사 직원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조금 있으면 정말 잔인한 놈들이 옵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금방 옵니다!”

강성태가 사람을 더 부르든가, 아니면 일단 피했으면 싶었는지 쇠사슬을 목에 건 남자의 표정과 음성이 급했다.

“아침은 드셨어요?”

“사장님! 저놈들이 금방 더 온다니까요!”

“예! 그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식사는요?”

“원래는 아침저녁으로 식구들이 밥을 가져다주는데 저놈들이 막아서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내려오시는 건 안 되죠?”

대화의 끝에서 남자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시 이렇게 끌어내리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도 그의 눈에서 보였다.

“사다 드릴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대화를 하는 사이에 몰려드는 숫자가 제법 불어나 있었다.

강성태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불안한 모양으로 세 명의 남자는 수시로 골목을 메우는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쪽 숫자가 서른이 훨씬 넘어서 마흔에 가깝게 되자 태연한 강성태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형님.”

유섭우가 불러서 강성태는 고개를 돌렸다.

“성경일이라고, 장태섭이 바로 아래입니다, 형님.”

유섭우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저 인간이 가장 악질 깡패입니다, 사장님!”

목소리를 낮춘 남자 한 명이 보충하듯 강성태에게 설명을 전해주었다.

성경일의 첫인상은 독종이었다.

독종에도 종류가 있는데 광룡의 지용호가 태어날 때부터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독종이라면, 성경일은 왠지 잡아놓은 개구리를 돌로 다리부터 천천히 짓이기는 짓을 재미있어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다가온 성경일이 유섭우를 향해 느물거렸다.

인사를 하는 데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눈과 입을 뒤틀어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했다.

“인사드려. 신강남파 강성태 형님이시다.”

“아, 예? 사우나에서 우리 애들한테 씹힌 분이라고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씨발 새끼…….”

욕을 뱉던 유섭우가 강성태의 손짓을 보고는 뒷말을 삼켰다.

“도끼.”

“예, 형님.”

강성태가 요구하자 기다리고 있던 덩치가 앞으로 나와 도끼를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거야?

의아해하는 성경일을 향해 픽 웃은 강성태는 묵직하게 건네주는 도끼의 자루를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사람 머리만 한 날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쿵.

바닥에 떨어진 도끼의 날이 묵직하게 바닥을 울린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두툼한 도끼의 머리를 끌며 세 남자가 버티는 부서진 건물을 향해 움직였다.

카가가강.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도끼 소리가 양쪽으로 갈라선 신강남파 덩치들 사이를 달려 성경일과 함께 있는 덩치들에게 뛰어들고 있었다.

깡패였어? 저렇게 곱게 생긴 남자가?

그것도 두목이야?

습관처럼 쇠사슬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세 남자가 멍한 얼굴로 강성태를 내려다보는 동안, 건물 앞에 도착한 강성태는 왼팔을 뻗어 도끼날의 바로 아래를 붙들었다.

부으응!

강성태는 할 수 있는 만큼 가장 넓은 궤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콰으으응!

사람 머리만 한 도끼날이 파고들자, 오래돼 녹이 가득한 얇은 철문이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언제 칠했는지도 모를 녹색 철문에 박힌 도끼를 확인한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신강남파 강성태다. 이제부터 이곳 개발은 시선 개발과 신강남파가 접수한다!”

개발 사업에 나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성경일이 당황한 얼굴로 강성태와 도끼를 번갈아 보았다.

“이 도끼 건드리는 놈은 무조건 죽여줄 테니까 자신 있으면 장태섭이 와서 직접 뽑으라고 해.”

“이런 씨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지기 싫은 표정에 독기가 제대로 피어난 눈을 하고 성경일이 욕을 뱉은 직후였다.

강성태가 훅, 앞으로 달려나갔다.

“뭐야?”

놀란 성경일이 자세를 잡았고, 동시에 태섭이파 놈들이 고함을 지르며 배트와 쇠파이프를 들었으며,

“가즈-아!”

강성태를 따라 달려 나온 유섭우가 신강남파 덩치들을 재촉했다.

휘익!

자세를 잡은 성경일이 강성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터억. 쩌어어억.

놈의 주먹을 왼손으로 때려낸 강성태는 있는 힘껏 오른손 주먹을 꽂아넣었다.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조태완의 당부대로 간단하게 경고만 하고 갈 참이었고.

유섭우와 신강남파 덩치들이 강성태를 지키는 것처럼 둥그렇게 둘러싸고 쇠파이프와 배트를 휘두르는 틈에서, 강성태는 성경일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흐물거리던 성경일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는데 강성태는 놈의 머리칼을 쥐고 건물 앞으로 움직였다.

지이이익.

“아! 아악!”

양손으로 강성태의 손목을 잡고 버둥대는 성경일의 비명에 싸움이 중단되었다.

상황을 파악한 유섭우가 눈짓을 하자, 쇠파이프와 배트를 앞으로 든 신강남파 덩치들이 강성태를 지키는 모양새로 뒤로 물러났다.

지이이이익.

“끄으윽! 끄윽!”

시멘트 바닥에 버둥대며 끌려오는 바람에 성경일의 엉덩이, 허벅지, 무릎이 갈려 시뻘겋게 올라온 피가 헤지고 갈라진 바지 틈에서 흙과 뒤엉켜 있었다.

도끼를 박아놓은 철문 앞에 도착한 강성태는 성경일의 머리통을 위로 끌어올렸다. 그런 뒤에 철문에 박힌 도끼 옆으로 세차게 밀었다.

콰앙.

놈의 뒤통수가 철문을 때리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나왔고, 도낏자루가 한껏 흥분한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내 앞에서 욕하지 마라.”

놈의 눈에 아직 독기가 남은 것을 보며 강성태는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병렬아.

내가 제대로 못 하는 바람에 먼저 간 달수에게 미안해서, 반걸음 빠져 있는 내 빈자리를 채우느라 당한 너 때문에 이러는 거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할게.

진짜 보스처럼.

강성태는 성경일의 눈이 터질 정도로 세차게 주먹을 꽂아넣었다.

쩌어어어억. 콰으으응.

다시 성경일의 뒤통수가 철문을 세차게 때렸고, 이어 쾌락의 끝을 느낀 듯, 도낏자루가 이전보다 요란하게 떨었다.

털썩.

철문에 튕겨 앞으로 기울었던 성경일이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뒤통수에는 녹슨 철문의 흔적이 진하게 묻었고, 헤지고 갈라진 엉덩이와 허벅지, 무릎, 종아리는 피가 번져 나와 엉망이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직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있지만, 태섭이파 덩치들은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다.

“이 개발은 신강남파 강성태가 접수했으니까 다시는 내 구역에 얼씬거리지 마.”

건물 위에 있던 세 남자가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 유섭우는 세상 만족한 표정으로 태섭이파 덩치들을 바라보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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