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 9화 (220/513)

11권 - 9화

강성태의 반응을 살핀 이세종이 얼른 말을 이었다.

“도와주십시오.”

“사람이 죽은 일이면 경찰에 연락하는 게 가장 빠르고 현명하지 않아? 억울한 사연이 있으면 보도로 터트리는 게 효과적이고? JBC 뉴스라면 그만한 파급력이 있잖아.”

“경찰은 이미 단순 사고로 처리했습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욕심 너머에서 살포시 억울함도 담겨 있었다.

“보도국장. 우리 한식구 맞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강성태의 의도를 알고 싶은 얼굴로 이세종이 눈치를 살폈다.

“도둑질이든, 강도질을 하든, 솔직하게 털어놔야 의논이 되지. 죽은 사람의 가족이 억울해서 매달리는 거라면 이해하겠는데 누구보다 능력 있는 보도국장이 사망사건을 나와 의논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세종은 곤란한 얼굴로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나도 보도국장에게 곤란한 부탁이 하나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놔 봐.”

“형님.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시원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고문님 모신 자리에서 함께 의논할 생각이니까 나중에 하자.”

“고문님…이요?”

“태완이 형님.”

이세종이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에도 바깥에서는 새로운 덩치들이 찾아와 유섭우와 인사를 나누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강성태가 직접 나설 수준이 아니라면 유섭우 선에서 맞이하는 눈치였다.

“깡패라는 게 그렇더라고. 동물의 세계로 따지면 우리는 그냥 하이에나야. 썩은 걸 찾아다니거나 다른 맹수가 힘으로 얻은 걸 빼앗지. 야비한 모습이긴 한데 그래도 한 가지 존재가치는 있다고 본다.”

하이에나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보도국장인 이세종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래 봐야 강성태가 보기에는 리카온 수준이었다.

“정상적인 절차나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일들을 해결하는 거, 다들 원하지만 지저분하고 거칠어서 손대기 싫은 거, 그걸 책임지는 게 우리 하이에나가 할 일이다. 그래야 사회에 사체들이 뒹굴지 않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보도국장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거 아닌가 싶어서. 세 명이나 죽은 사건을 이런 식으로 나에게 부탁한 건,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얻을 게 있다는 뜻 아냐? 그것도 하이에나의 힘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더럽고 거친 일.”

강성태가 찌르다시피 건넨 말에 이세종이 마른침을 삼켰다.

평생을 함께해도 절대 믿기 어려운 부류, 한순간 충성심이 생겨서 피가 끓어도 돌아서면 이익과 손해를 자연스럽게 먼저 따지는 사람, 이세종은 완벽하게 이광준과 같은 종류였다.

“털어놓을 자신이 없으면 여기까지만 해.”

“처남이 건설 회사에 다닙니다.”

강성태가 대화를 정리하려는 순간에 이세종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성북구에 재개발 사업을 하는데 그곳 시행을 조직폭력 조직 두목에게 뺏겼습니다. 원래 시공회사가 처남이 다니는 건설 회사였는데 그 뒤로 시공사마저 바꾸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결국, 처남을 구하자는 목적이었구나.

강성태의 표정을 읽은 이세종이 좀 더 빠르게 입을 놀렸다.

“보상비가 한 가구당 1억5천만 원씩 책정됐는데 시행사 대표가 자기 사람들 이름을 올려서 모두 빼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십여 명이 버텼는데 그중 대표자 격인 세 사람이 죽었습니다.”

“단순 사고라며?”

“한 명은 농성 중이던 장소에서 떨어져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정체불명의 강도를 당해 사망, 마지막은 차에 치였는데 뺑소니로 간주해서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게 말이 돼?”

“그쪽 경찰서 형사과장 부인이 재개발 지역에서 사채를 굴립니다.”

한순간 욕심이 사라진 이세종의 눈에 억울함이 올라와 있었다.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 지녔던 눈빛이지 싶었다.

술과 접대, 현금 봉투에 물들었으나 아직 심장 깊은 곳에는 썩지 않은 정의감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처남의 이익이 걸려서 다시 싹을 틔운 정의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뉴스에 내보낼 생각은 안 했어?”

“사실은 특집으로 편성해 두 번이나 방송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더는 어떻게 못 하니까 이 정도로 간절하게 나섰겠지.

“경찰하고 검찰이 사건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제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경찰하고 검찰의 처리도 보도했어?”

“물론입니다. 재개발에 얽힌 커넥션이란 제목으로 40분짜리 특집도 냈었습니다.”

이세종이 재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올렸다.

“이걸 잠시만 보십시오, 형님.”

스마트폰을 내밀며 이세종이 부르는 형님이라 부르는 음성이 더할 수 없이 충직했다.

강성태는 이세종이 건네주는 스마트폰의 액정에 시선을 주었다.

반쯤 부서진 2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저놈들이 날 죽일 겁니다.]

꾀죄죄한 얼굴에 비장한 눈빛을 한 남자가 목에 걸린 쇠사슬을 붙들고 카메라를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가진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해서 이렇게 짓밟아서는 안 되는 거잖습니까!]

[보상이 나갔다고 들었는데요.]

[자기네들이 만든 가짜 명단을 제출하고 그리로 지급했습니다. 내가 피땀 흘려 일군 가게 전부 깨부수고 나가라면서 2백만 원 던져줬습니다. 우리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목 조르고, 벽에 짓찧으면서 던져준 돈이 2백만 원입니다. 가게 보증금이 5천만 원인데요!]

[보증금은요?]

[건물주가 시행사에 건물 팔았다며 법적으로 알아서 하라는데 그때부터 깡패들이 밤마다 찾아와 유리 깨고, 툭하면 탁자 부수고….]

말을 하던 남자가 쇠사슬을 내려다보며 울컥 올라온 감정을 억지로 눌렀다.

[성진아. 너는 절대 장사하지 마. 아빠는…….]

화면이 멀어지면서 부서진 건물 2층에 서 있는 남자를 멀리 잡았다.

강성태는 시선을 들어 이세종을 보았다.

“이 인터뷰를 찍고 이틀 뒤 새벽 2시에 추락했습니다. 차라리 아래로 떨어졌으면 살았을지 모르는데 사슬에 목이 걸려 아침까지 매달려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져간 이세종이 검지로 화면을 넘겨 다른 장면을 액정에 올렸다.

“아까 인터뷰한 분의 아들로 고등학생입니다.”

좁은 집 앞에 덩치들이 지겹게 몰려 있었다.

“저리 안 치워? 야! 카메라 막아!”

방송 카메라를 향해 덩치들이 손을 뻗은 채 다가왔다.

와지끈.

화면은 거기에서 멈췄다.

“이 보도가 나가고 나서 강제로 편입하려던 시의 행정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 바람에 깡패들이 몰려가서 아들에게 합의서를 받으려고 저렇게 매일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짜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부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폭력배를 이용하는 게?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뭐야?”

“보도를 통해 시에서도 시행사를 바꾸고 싶어 합니다. 형님께서 지금 있는 시행사를 밀어내주시면 겁먹어서 눈치 보던 사람들도 모두 나섭니다. 그러면 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시행사를 바꾸면 처남이란 사람에게 어떤 이득이 있어?”

“예?”

잠시 충직했던 이세종의 눈에 빠른 계산이 스쳤다. 그와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있는 시공사를 처남이 있는 회사로 돌리면 입주민들에게 제대로 보상할 수 있습니다.”

“보상은 그렇고. 처남이 얻는 이득은?”

강성태를 바라본 이세종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이곳 재건축을 통해 얻는 수익이 대략 1천5백억 정도 된답니다. 시공사가 주는 시행사에 주는 시행비가 대략 3퍼센트입니다.”

45억 원에 저 지랄을 떤다고?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무마해 가면서?

강성태의 눈빛을 확인한 이세종이 다시 또 입을 열었다.

“그게 공식적인 시행비고, 사실은 현금으로 10퍼센트를 따로 내려줍니다.”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돈 150억 원이라면 그럴 만하겠다.

“그냥 주는 돈이다?”

“주민 합의금으로 가구당 1억5천만 원이 따로 책정됩니다. 그런데도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주민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합의할 때 알아서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참 더럽게들 사네.

강성태는 짜증이 올라온 얼굴로 이세종을 바라보았다.

“보도국장이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시행사가 돈 먹는 건 알았어. 그럼 건설사에 있는 처남이 얻는 게 뭐냐고? 보너스로 10퍼센트쯤 받아?”

“그게 형님.”

머뭇대는 걸 보며 강성태가 눈가를 좁힐 때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획한 게 처남입니다.”

“알아듣게 말해.”

“처음 일을 시작했던 시행사가 처남이 세운 회사입니다.”

염병.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했던 욕을 겨우 삼킨 강성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상체를 뒤로 빼냈다.

보도국장인 매형을 믿고 설치던 처남이 더 강한 힘과 폭력을 지닌 상대에게 밀려나서 벌어진 일이었다.

“얼핏 들어도 만만치 않아. 저쪽도 목숨 걸고 나설 게 분명해서 우리도 적잖이 다칠 테고.”

강성태는 시선을 떨군 이세종을 바라보며 잠시 틈을 주었다.

“목숨 걸 자신 있어?”

“예? 형님?”

“이런 일을 해결하라고 했으면 본인도 목숨 정도는 걸어줘야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보도국장 자리에서 밀려날 정도로 위험한 취재가 있어. 그걸 깔끔하게 해주면 나도 이번 일 맡아주지.”

이세종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진짜 생명이 위험한 취재입니까?”

“나도 있고, 검사도 동행하니까 그런 건 안심해도 되는데, 상대방의 덩어리가 너무 커서 자칫하면 보도국장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흠.”

앞에서 말했던 10퍼센트의 이익과 보도국장 자리를 놓고 이세종은 심각하게 갈등하는 눈치였다.

막말로 강성태에게 말한 게 10퍼센트지, 시행사 수익은 그 이상 따로 계산해두었을 게 분명했다.

“보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님?”

“다른 말 하지 못하게 속보로 내보내.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번 보도를 내보내면 우리 조직에 관해 특별 편성하라는 지시는 없어질 거다.”

선택은 이세종의 몫이었다.

솔직히 강성태는 아쉬울 게 없었다.

무엇보다 보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촬영이야 적당한 덩치 시켜서 처음부터 끝까지 찍고 그 영상과 마약, 증인들을 쥐고 있으면, 그걸 이용해 상대방에게서 다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욕을 하든, 침을 뱉든, 따귀를 때리든, 강선영은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속을 풀고, 또 이후에 검사 자리보전까지 할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제법 고민한 뒤였다.

“태완이 형님도 아시는 일입니까?”

강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이세종은 굳은 얼굴로 답을 내놓았다.

“다음 주 월요일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장소와 시간은 내가 따로 알려줄게. 위에 보고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단단하게 답을 한 이세종이 은근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행사 일은 언제부터 하십니까, 형님? 더 시간을 끌다가 합의서 모두 받으면 그때는 엎을 방법도 없습니다.”

다른 방송국 보도국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세종은 자신의 이익에 참으로 한결같은 면을 지녔다.

공정이라든가, 정의감, 청렴 따위의 단어는 자신 외에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보도업자, 혹은 언론 장사꾼으로, 이세종은 이익에 관한 한 역겨울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었다.

“시작하게 되면 알려줄 테니까 나머지는 그때 의논해.”

반쯤 의심하는 얼굴, 그리고 나머지 반은 기대에 찬 얼굴로 이세종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가고 난 뒤에 강성태는 유섭우를 불러 함께 장례식장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나서자 뻔뻔할 정도로 태연한 햇살이 주차장과 강성태, 그리고 유섭우와 덩치들을 비춰주었다.

“성북구에 재개발 사업이 있는데 시행사를 조직이 운영한다니까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예? 형님?”

무겁지 않게 건넨 지시를 유섭우가 화들짝 놀라는 얼굴로 받았다.

왜 이러지?

“오전에 사우나에서 말씀드렸던 미아리 태섭이파가 요즘 목숨 거는 사업이 바로 성북구 재개발 사업입니다, 형님.”

옆에서 비치는 햇살 탓에 얼굴 절반이 그림자에 덮인 유섭우가 바로 설명을 내놓았다.

“미아리라면서? 성북구는 구역이 다르잖아?”

“성북구에도 조직이 있기는 한데, 강북 쪽 대장이 장태섭입니다, 형님. 미아리 사창가와 마찬가지로 성북구 재개발 자리도 유명한 사창가여서 모두 장태섭이 관리합니다. 사창가답게 그쪽 애들이 독하고 잔인해서 다들 침 흘리면서도 함부로 숟가락 넣지 못했습니다, 형님.”

유섭우의 말을 들으며 강성태는 이세종을 떠올렸다.

방송국 회장, 국회부의장, 형사부 부장검사의 마약파티를 보도하라는 강성태나, 방금 유섭우가 설명한 조직을 상대로 사업권을 되찾아 달라는 이세종이나 비슷한 요구를 내놓은 꼴이었다.

“일단 조용하게 방법을 알아봐. 말 나가지 않게.”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저녁 먹고 나서는 종환이가 상가 지킬 겁니다, 형님.”

“그건 알아서 하고.”

차를 가져온다는 유섭우를 말린 강성태는 택시를 이용해 방지병원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였고, 퇴근 시간이 아직 멀어서 도로는 여유로웠다.

병원에 들어선 강성태는 주차장에서 바로 응급실 입구로 걸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간호사와 스태프들이 고개 숙였는데 어쩐지 표정이 좀 더 친근했다.

이병렬의 커튼 쪽으로 향할 때였다.

“소독하세요.”

테이블에 있던 간호사가 올려놓은 세정제를 가리켰다.

“이병렬 환자 보실 거면, 몸에 소독제를 뿌릴게요.”

워낙 상황이 다급했던 오전과 달리 간호사의 여유가 오히려 이병렬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위로처럼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손을 닦고 몸을 돌려가며 소독제를 충분히 맞은 뒤였다.

“샌드위치하고 족발 감사해요.”

간호사가 웃는 낯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누가 왔어요?”

“최치곤 씨요.”

커튼 안을 살핀 강성태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통로를 따라 안으로 돌자 침대에 상체를 기울인 최치곤의 옆모습이 보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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