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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 8화 (219/513)

11권 - 8화

머리를 닦아낸 강성태의 곁에서 유섭우가 문신 다섯 놈을 돌아보았다.

감히 강성태에게 질문을 건네지 못한 그는 다섯 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야?”

“예?”

“뭐냐고, 이 새끼들아? 뭔데 형님 뒤에 몰려나와서 눈알을 굴려?”

다섯 놈을 살핀 유섭우가 등의 물기를 닦아주던 두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들 본 적 있냐?”

“없습니다, 형님. 그림은 그렸는데 생활하는 놈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등에 물기를 닦아주던 두 놈이 같잖다는 시선으로 다섯을 살피고는 바로 답을 내놓았다.

이 정도면 보일 건 다 보였다.

등을 닦아주는 꼴불견을 보이는 것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허리에 타올을 두른 강성태는 거울에서 몸을 돌렸다.

“옷은?”

“탈의실에 걸어두었습니다, 형님.”

“저놈들 대가리가 누군지 알아놔.”

“알겠습니다, 형님.”

등을 닦던 두 놈이 강성태를 따라 움직일 때, 유섭우는 몰려 있는 다섯을 향해 다가섰다.

대가리를 알아보라는 강성태의 지시 하나로 대강 분위기를 알아차린 눈치였다.

인상이나 덩치, 몸뚱이에 그린 그림만 보면 오히려 유섭우는 다섯 놈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짜아아악.

그런데도 유섭우는 탈의실에 요란하게 울릴 정도로 배불뚝이 문신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깡패 흉내를 내?”

짜아악! 짜아악!

“야, 이 개새끼들아. 신강남파 보스에게 눈알 부라려서 어쩌려고?”

뺨을 맞았는데도 다섯 놈은 세상 착한 순둥이 모양으로 벌게진 얼굴을 떨군 채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너희 대가리가 누구야?”

“죄송합니다, 형님.”

“이것들이 그래도 깡패 흉내를 내네? 진짜 깡패가 어떤 건지 경험하고 싶어? 그런 거면 제대로 잘 모셔서 깊숙하게 묻어줄 테니까 그때 말해봐.”

유섭우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극용건설이라고 시행사 직원으로 있습니다, 형님.”

배불뚝이가 급하게 답을 내놓았다. 그래놓고는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성경일 형님이 우리 회사에 계십니다, 형님.”

놈이 얼른 이름 하나를 덧붙였다.

“성경일? 미아리 성경일 말이냐?”

“예! 형님!”

픽 웃은 유섭우가 꺼냈던 스마트폰에서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탈의실 한쪽에서 셔츠와 정장을 입느라 보기 싫어도 다섯 놈의 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 오랜만이다. 다른 말 할 거 없고, 너 혹시 그 회사에 문신 요란하게 뜬 돼지들 데리고 있냐? 다섯 놈인데?”

상대방의 답을 들은 유섭우가 같잖다는 투로 웃었다.

“이 새끼들이 사우나에서 우리 보스께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할래?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와서 수습할래?”

잘 수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았다. 따로 보자.”

통화를 마친 유섭우가 이를 악물며 돼지 다섯을 노려보았다.

“너희는 일단 들어가.”

“예, 형님.”

놈들을 들여보낸 유섭우가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장태섭이라고, 미아리 태섭이파가 있는데 거기 식구 중 성경일이 데리고 있던 병풍이랍니다.”

어차피 해프닝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에 옷 벗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우나 탈의실에서 오래 있을 일도 아니었다.

강성태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일어섰다.

“나머지는 나가서 이야기하자. 점심은?”

“모시겠습니다, 형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강성태는 유섭우, 그리고 함께 온 덩치 둘과 식당으로 향했다.

덩치 둘이 다른 테이블에 앉았고, 강성태는 유섭우와 함께 설렁탕을 주문했다.

“광준이 형님은 검지와 중지 내놓는 거로 은퇴하셨습니다. 대신 강서구 호텔 나이트에 과일 넣으시라고 해두었습니다.”

유섭우를 볼 때부터 정말 궁금했던 내용을 이제야 들었다.

“종수는?”

“생활 접은 지 오래돼서 손가락 절단하면 경찰서 달려갈 사람입니다, 형님. 정훈이와 연락해서 앞으로 우리 숙소 동생들부터 인사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로 될까?

강성태가 궁금한 시선을 바라본 뒤였다.

“조직 이름 팔거나 어디에서 생활했답시고 이름 돌리면 연장 먹일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거기에 인사 물려서 꼬마애들하고 마주쳐도 망신당할 거라서 김종수 사장은 얼굴 들고 못 다닙니다, 형님.”

김종수를 형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깡패 바닥에서 형님이란 호칭을 뜯어낸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유섭우가 보고할 정도라면 일단 지켜보는 게 좋았다.

마침 설렁탕도 나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유섭우가 고개를 숙였고,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덩치 둘이 몸을 일으켜 비슷한 인사를 던졌다.

설렁탕을 먹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유섭우가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해 조용하게 사과를 전했다.

“고문님이 말씀하신 거로 나는 끝났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으면 돼. 지나간 거 자꾸 들추지 말자.”

설렁탕을 먹은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신호음이 울리기 무섭게 강선영의 대꾸가 건너왔다.

“몇 시쯤이 편해?”

- 밥 먹자며? 점심 먹는 거야?

“나 지금 먹었어. 그러니까 차 마시자.”

- 에이, 씨. 점심 먹나 하고 기다렸는데 이게 뭐야?

툴툴대던 강선영이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는 강성태도 모르는 근처의 커피전문점을 알려주었다.

- 30분쯤 뒤에 봐.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검색하자마침 식당에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함께 움직이겠다는 유섭우와 덩치 둘을 보낸 강성태는 또다시 걸어서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커피를 주문해 머그잔에 받은 강성태는 몇 되지 않는 손님들의 시선을 피해 창가 안쪽 자리에 앉았다.

계획이 정해진 상태라 남은 건 강선영의 선택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고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찾은 책에 푹 빠진 강성태가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였다.

“뭘 그렇게 보니?”

테이블 앞에 강선영이 나타났다.

익숙한 정장에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머리칼에 신경 쓴 모양으로 이마 부분은 둥그렇게 떴고, 나머지는 중간 아래가 구불구불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눈가에 요란한 색을 발라놓아서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화장도 하냐?”

“이상해?”

“많이.”

강성태의 대꾸가 서운한 모양이었다.

“주문 좀 하고 올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보았던 강선영이 주문대로 움직였다.

강성태는 읽던 책에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였다.

“뭔데 그렇게 열심히 봐?”

머그잔을 든 강선영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죽였다.”

“뭐? 너 사람 죽였어?”

가뜩이나 연예인인가 싶어 힐끔대던 손님들이 강선영의 놀란 질문에 대놓고 고개를 돌렸다.

강성태는 입맛을 다시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책 제목이 내가 죽였다야. 정해연 작가. 인터넷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까 혹시 시간 되면 한번 읽어봐.”

“그렇지 않아도 형사부라 온갖 사건들 때문에 힘든데 소설까지 꼭 그런 걸 읽어야겠냐?”

“이건 그냥 읽어. 최근에 내가 읽은 것 중 역대급이다.”

별걸 다, 하는 표정으로 커피를 마신 강선영이 입을 열었다.

“복수는?”

“제대로 준비하긴 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뭔데?”

“너 죽을지 몰라.”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본 강선영이 주변을 살핀 뒤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꼬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 뭐야?”

“너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지?”

“놀고 있네. 야! 내가 아무리 찌그러져도 검사다. 그런데 나이 어린 깡패랑 말 트고 지내는 거 보면 모르겠냐? 내가 녹음이라도 해서 너 엮을까 봐 그래? 그럼 나가. 어디 근처 호텔에 가서 홀랑 벗고 시원하게 말하면 되지.”

그렇게 봐서 그런지, 어쩐지 강선영은 정말 호텔에 갔으면 하는 눈빛이었다.

“일어나자니까.”

“여동생 건드린 놈들 잡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그 아버지들이잖아.”

강성태가 짧게 말을 건네자 일어설 것처럼 설치던 강선영이 고개조차 움직이지 않은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방송국 회장, 국회부의장, 너 담당 형사부 부장 검사, 이렇게 마약파티를 한다. 거길 덮치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아이, 씨! 짜증 나!”

예상외로 강선영이 눈과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만드는데 그동안 나는 뭐 한 거니? 그 새끼들 현장에서 싹 잡아넣으면 되는 거잖아.”

“쉽게 볼 일이 아니야.”

“어렵게 보면 안 해? 안 할 거냐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만약 네가 체포했다고 해도 링거하고 프로포폴을 맞으면 그 뒤에는 약이 검출 안 돼.”

눈을 동그랗게 뜬 강선영은 분명 강성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종 마약이 나왔어. 환각작용은 그대로인데 말했듯이 링거와 프로포폴을 맞으면 이후에는 약이 검출 안 돼. 그러니까 구치소에서 치료를 못 받게 막아야 하는데 그게 되겠냐고?”

이제야 말뜻을 알아차린 강선영이 입술을 뒤틀었다.

“구치소에 넣어도 그 정도 힘이 있으면 단체로 병원에 갈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지?”

“수사관 동원은 가능하겠어? 가뜩이나 물 먹은 상황에서 미리 보고할 수도 없잖아?”

“그건 또 어떻게 하지?”

듣기 무섭게 한숨이 새나오는 반응을 강선영이 내놓았다. 그렇더라도 영 맹탕은 아니었다.

“검사를 못 받게 하려면 경찰서 유치장에 넣는 게 빨라. 그쪽에 며칠 두면서 연달아 검사해버리면 되니까. 대신 구치소는 의료실이 있어서 체력 저하니 건강 악화니 해서 구치소 의료실에서 링거를 맞을 수 있거든.”

구치소에 프로포폴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권력과 힘을 지닌 인간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구치소장 집무실에서 고래고기도 처먹을 정도라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부장 검사가 끼어 있는 것도 문제야. 검찰에서 이 건 덮어버리려고 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소유예 따위로 풀어줄 수 있어.”

적극적으로 나선 강선영이 염려되는 상황 한 가지를 더 내놓았다.

“방송에 태우는 건 어때?”

“방송을?”

강성태의 제안을 받은 강선영이 눈빛을 빛냈다.

“속보로 날리는 거지. 그것도 JBC 보도국이.”

“미쳤어? 자기 회장 건을 터트리는 방송국이 어디 있냐?”

“그건 나한테 맡겨.”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선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언제야? 그 파티가?”

“월요일.”

“장소는?”

“내일 알려줄게.”

“틀림없지? 내 목을 걸어도 될 정도로?”

“그쪽에서 갑자기 바꾸지만 않으면.”

숨도 쉬지 않은 것처럼 오간 대화였다.

“내일까지 나도 한 가지 알아볼게. 짚이는 곳이 있거든.”

누군가를 떠올린 것처럼 커피전문점의 바깥을 보았던 강선영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배고프다. 밥 먹자.”

“먹었다니까.”

“그럼 그냥 앞에 좀 있어. 뭐냐? 밥 먹자고 해놓고?”

“밥을 먹자던 사람은 내가 아냐. 그리고 나, 장례식에 가봐야 해.”

“거기 밥 주니?”

“대한민국 조직에서 모두 오는데 검사가 가서 밥 먹겠다고? 소문나서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사표 쓰게 될 거 같은데?”

김이 팍 샌 얼굴로 강선영이 머그잔을 들었다.

강선영과 헤어진 강성태는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2층 로비와 복도를 가득 메운 화환, 상체를 깊게 숙이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 떼로 몰려서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는 조직원들까지, 행렬은 끝이 없었다.

강성태는 옆에 비워둔 특실로 들어가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았다.

덩치 한 명이 가져다준 음료를 마실 때였다.

유섭우가 특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세종 국장이 문상을 와 있습니다. 잠깐 보시겠습니까, 형님?”

월요일 계획 때문에 일부러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기는 했다. 그러나 계획을 의논하는 건 아무래도 조태완과 좀 더 의논하는 게 현명했다.

“얼굴만 보는 거면 상관없지.”

“예, 형님.”

특실 앞을 덩치들이 줄줄이 막아서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갔던 유섭우가 이세종과 함께 들어왔다.

이전과 다른 태도, 복장, 눈빛, 강성태를 본 이세종은 보도국장을 하며 쌓은 눈썰미가 발휘되는 눈치였다.

양손을 옆에 붙이고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이세종이 강성태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형님.”

“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런 곳에 얼굴 내놨다가 곤란해지는 거 아냐?”

“한식구 아닙니까? 여기 온 거로 자리 뺏기면 제 능력이 모자란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성태는 맞은편에 앉은 이세종을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 만나지 않았지만, 이마와 눈, 코, 볼에 ‘부탁이 있습니다.’ 하는 문구를 길게 써 붙인 얼굴이었다.

“갑갑한 일이 있어?”

“그게 말입니다.”

강성태가 툭 던진 미끼를 물 위로 솟구친 배스처럼 이세종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배스가 유해어종인 건 알고나 있을까.

“사람이 셋 죽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 넘기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억울했다면 뉴스에 커다랗게 보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강성태는 이세종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유해어종 배스의 검고 동그란 눈처럼 이세종의 눈가에 욕심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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