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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 7화 (218/513)

11권 - 7화

제3장. 잘 견뎠어. 고맙다.

응급실에 뛰어든 강성태는 곧장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있던 간호사가 몸을 빼냈고, 링거줄에 주사제를 넣은 유헌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에서 비켜섰다.

강성태는 침상에서 고개를 기울여 이병렬을 들여다보았다.

힘겹게 뜬 눈이었다.

잠에 취한 듯 억지로 버티는 이병렬의 눈이 강성태를 향해 움직였다.

오만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는데 무엇보다 이렇게 눈을 떠준 게 고맙고 반가웠다.

강성태는 이병렬을 보며 아픈 미소를 그렸다.

“잘 견뎠어. 고맙다.”

“달수….”

마른침을 삼키며 답을 하지 못하는 강성태를 보며 이병렬은 짐작하는 눈치였다.

힘겨운 그의 눈에 눈물이 올라오더니 귀 옆으로 길게 흘러내렸다.

다가온 간호사의 손을 막은 강성태는 그녀가 들고 있던 거즈를 받아서 이병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눈물 흘리는 걸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도 느꼈다.

“꿈에…. 나를 막아…….”

그런데도 힘겹게 말을 잇는 이병렬의 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감정이 더 격해지는 건 좋지 않아요.”

강성태에게 나직하게 조언한 유헌우가 침상으로 다가왔다.

“이병렬 씨. 진통제를 투여할 겁니다. 손 아래 벨을 놓을 테니까 머리가 아프면 말씀하세요.”

간호사에게 주사기를 받은 유헌우가 링거줄에 꽂고는 천천히 약을 집어넣었다.

링거팩 옆에 손에 들어갈 만한 진통제 병이 걸려있으니 이건 아마도 진정제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사제를 다 넣은 유헌우가 물러나자 이병렬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자고 일어나. 나머지 일 정리해놓을게.”

강성태의 말에 안도한 것처럼 이병렬이 눈을 감았다.

몸을 세운 강성태는 유헌우의 고갯짓을 따라 커튼 밖으로 나섰다.

“우선 고비는 넘긴 거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언제 쇼크가 올지 몰라요. 크게 충격받을 이야기나 삶에 대한 희망이 꺾일 소식을 전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예.”

이병렬을 살려준 게 고마워서일까.

강성태는 차분하고 얌전한 태도로 유헌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어제 안다미가 그렇고, 오늘 유헌우를 보면서 엉뚱하게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 박사님은요?”

“이병렬 씨가 깨어나기 전에 출근하셨습니다.”

“원장님은 계속 병렬이 지키셨잖아요? 교대하고 잠깐이라도 주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병원 원장이 납니다. 중환자를 두고 잠이 오겠습니까?”

염려하는 강성태를 향해 유헌우가 달관한 듯한 웃음을 보였다.

“의사가 사는 반대로만 살면 건강할 겁니다. 그건 그렇고, 저녁에 우리 스태프들 간식이나 좀 사 오세요.”

“알겠습니다.”

“중환자들은 신기할 정도로 잠깐 마주한 사람들의 심정을 읽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들이 포기한 눈으로 바라볼 때 삶이 끝났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성태 씨의 간절한 바람이 이병렬 씨를 깨웠을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병렬을 깨워준 것이 고맙다는 투로 팔을 다독인 유헌우가 커튼 안으로 움직였다.

현찰 밝히고, 말투가 거친 슈바이처쯤 될까. 아니면 히포크라테스?

커튼 안으로 들어가는 유헌우를 바라보던 강성태는 천천히 주차장을 향해 움직였다.

햇살이 보고 싶어서였다.

세상은 그 간단한 소원마저 들어주지 않아서 아침을 맞은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했다.

마치 강성태의 삶은 이렇게 어두울 거라는 투로 말이다.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은 강성태가 잠시 빌딩에 갇힌 하늘을 돌아볼 때였다.

로비의 입구에 있었는지 아르윈이 다가왔다.

“병렬이가 의식을 차렸다.”

“잘됐습니다, 형님.”

주변을 돌아본 아르윈이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토카레프 권총과 소음기, 실탄 50발을 조직원이 확인했답니다, 형님.”

강성태는 시선만 돌렸다.

“부산에 있어서 조금 뒤에 출발하면 저녁에 돌아옵니다, 형님.”

“혼자서 가는 거라면 그만둬.”

“우리 조직과 오래 거래한 곳이고, 다섯이 가서 거래하는 거라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래 장소는?”

“주차장에서 승용차 붙여놓고 트렁크에서 확인하고 바로 옮겨 싣는 방식입니다.”

“비용이 얼마나 필요해?”

강성태가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아무리 현금 거래라고 해도 만에 하나 걸리게 된다면 반드시 자금 추적이 나옵니다, 형님. 이 거래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르윈이 나직하게 뜻을 밝혔다.

“총기를 가지고 올라오는 것도 제가 아니라 조직원을 시킬 겁니다, 형님. 이번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거절하지 못할 강렬한 눈빛으로 아르윈이 뜻을 밝히고 있었다.

“아침은 함께 먹을 수 있어?”

“모시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질문하자 강렬했던 눈빛을 사그라트린 아르윈이 보기 좋게 웃었다.

**

최치곤이 정말 일찍 나왔다.

가장 먼저 커피 머신의 스위치를 올린 그는 싱크대를 시작으로 어젯밤에 청소했던 바닥을 대걸레로 다시 밀었고,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테이블과 의자를 말끔하게 닦았다.

손에 아직 제대로 익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 최치곤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묵묵하게 유리까지 닦았다.

모든 정리를 마친 최치곤이 손을 씻은 뒤에 아메리카노를 만들었을 때였다.

커피 향에 이끌린 사람처럼 이은주가 카페에 들어섰다.

“뭐예요?”

“잠이 일찍 깨서…….”

안을 돌아본 이은주의 질문에 최치곤은 시선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치곤 씨.”

“저기…….”

두 사람이 동시에 상대를 부른 바람에 잠시 틈이 있었다.

“먼저 말해.”

카운터 안에 있는 최치곤이 양보했다.

“어젯밤 일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서 말인데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불편하게 나올 거면 제가 그만둘게요.”

차갑고 당찬 이은주의 통보였다.

“내가 한순간 감정으로 이러는 것처럼 보이냐?”

머그잔을 내려다보던 최치곤이 무겁게 고개를 들었는데 이은주는 대꾸를 내놓지 않았다.

“나는 마음 안 바뀐다. 그러니까 계속 이럴 테고. 알았다. 내가 안 나오는 거로 하자.”

최치곤이 주문대를 돌아 홀로 나섰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걸어두었던 점퍼를 집어 들었다.

“그럼 어쩌자고요?”

“내가 너 좋아하는 거, 혼자서 끙끙 앓던 거 몰랐어?”

“그러니까 어떻게 하자고요? 나는 깡패 싫어요. 사람들 윽박지르는 것도 싫고, 치곤 씨가 어디 맞아서 올까 봐 조마조마한 것도 싫어요.”

점퍼를 집어 들고 볼을 씰룩이는 최치곤의 시선을 이은주는 피하지 않았다.

“깡패 그만둘 수 있어요?”

질문이 아니라 마지막 기회를 던졌다는 사실을 이은주와 답을 해야 하는 최치곤 모두 알았다.

“어떤 일이든 하자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하지만 성태가 위험한 걸 모른 척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있고, 없고를 따질 일이 아냐.”

이은주를 머리에 새겨 넣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던 최치곤이 커피알리고를 나섰다.

딸랑.

아직 오픈할 때까지 40분이나 남은 시간이었다.

심란한 얼굴로 주문대 안으로 들어간 이은주는 홀로 식어가는 머그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

아침을 먹은 아르윈이 떠나고 나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으로 주변을 살폈다.

집에 다녀오기도 그렇고, 씻기는 해야겠고.

마침 근처에 적당한 사우나를 확인한 강성태는 이어서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 김정훈입니다, 형님.

“방지병원 근처에 골드 드래곤이라는 사우나가 있거든. 그곳에서 씻고 있을 테니까 갈아입을 옷 좀 보내줘.”

- 바로 보내겠습니다, 형님.

번거로운 짓인 거 알고 있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행동이었다.

우선 적응한다.

적어도 화요일에 삼합회를 두들길 때까지는 견뎌보자.

강성태는 병원을 나서 사우나를 향해 걸었다.

커피알리고로 출근할 때는 거의 걸어 다녔고, 최치곤과 술 마실 때를 제외하면 일이 끝나고서도 고수부지까지 걷곤 했었다.

사우나를 향해 걸으며 강성태는 최치곤, 이은주, 장숙경, 김민재, 김민정, 한순간에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화요일의 일을 마치면 돌아갈 수 있을까?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강성태를 돌아보았고, 몇몇 여자들의 눈에서는 분홍빛 감정이 떠올랐다.

폭력조직의 두목이란 정체를 알고 나면 시커멓게 바뀔 거라서 씁쓸한 웃음도 나왔다.

사우나에 도착한 강성태는 요금을 지불하고 필요한 과정을 거친 뒤에 탕 안으로 들어갔다.

휴일 오전이라 내부는 한가했다.

몸에 있는 흉터들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라도 얼른 나가는 게 좋았다.

간단하게 몸을 씻은 강성태가 수건을 들고 습식 사우나로 향할 때였다.

문이 열리며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긴 다섯 명이 왁자지껄하며 들어왔다.

“어제 우리가 마신 게 일곱 병이더라.”

“그 씨발 새끼, 주접떨다가 마지막에 대가리 처박고 벌벌 떠는 거 봤냐?”

“상무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래!”

다들 목과 가슴, 팔이 두꺼웠는데 배가 불룩 나와서 날렵해 보이지는 않았다.

시끄러워서 돌아본 강성태와 가장 앞에 있던 놈의 시선이 마주쳤다.

‘뭘 봐?’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놈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팔뚝에 그려진 마귀, 등에 서 있는 일본식 관세음보살, 가슴 왼편에는 벚꽃과 용,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종류들이 빨갛고, 파란색으로 놈의 몸뚱이에 가득했다.

벌거벗고 싸울 것도 아니고.

시선을 돌린 강성태는 습식 사우나 안에 들어가 수건을 허리에 걸친 채 모래시계를 돌려놓았다.

괜히 일찍 나가서 옷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느니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가서 말끔하게 갈아입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오늘 할 일은 우선 강선영에게 전화해서 월요일 계획을 설명하고 도움받을 방법을…….

시선을 떨군 강성태가 오늘 할 일을 떠올릴 때였다.

사우나의 문이 열리며 문신 다섯이 줄줄이 들어왔다.

셋은 강성태의 맞은편에 앉고 둘은 협박하듯 바로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옆에 넓은 공간을 두고 말이다.

몸뚱이에 요란한 그림 그리고, 떼로 몰려다니며 겁주고, 이런 게 재미있을까?

앞에 앉은 세 놈이 던지는 시선이 불편해서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씨발 새끼.”

아까 시선이 마주쳤던 게 어지간히 못마땅했던지, 픽하는 웃음과 함께 앞에 있던 배불뚝이가 욕을 뱉었다.

“후-.”

벌거벗은 상태에서 치고받는 게 싫어서 강성태는 숨을 내쉬며 걸음을 계속 옮겼다.

“한숨은? 씨발 놈이!”

이게 우연일까, 아니면 이런 바닥에 발을 디뎌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일까?

하다, 하다 이제는 사우나에서도 저런 도화지들을 만난다.

이런 순간에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서 깡패들이 그렇게 열심히 소위 ‘행사’에 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얼핏 들으면 중요한 자리인 거 같지만, 워낙 내세울 게 없는 놈들이라서 결혼식, 돌잔치, 회갑, 칠순, 팔순에 가는 걸 ‘행사’라고 부른다.

샤워기로 향한 강성태가 몸을 간단하게 씻을 때였다.

“놔봐!”

“야, 씨발, 좀 참아라!”

북 치고 장구 치던 다섯 놈이 강성태에게 몰려왔다.

“야! 너, 이 새끼!”

넓은 공간에 겨우 십여 명 있던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눈깔 이상하게 뜬 걸 넘어가 줬더니 간이 부어? 뭐야, 그 날래미 자국은? 야, 이 씨발놈아! 어디 전쟁터 다녀왔어? 막, 씨발, 북한 다니고 그랬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이 새끼가 진짜!”

하마터면 벌거벗은 놈을 때릴 뻔했다.

불룩 나와 처진 배 때문에 아래도 안 보이는 놈을.

“야, 좀!”

“놓으라고, 이 씨발 새끼야!”

자기들끼리 또 북하고 장구를 치는 틈에 강성태는 밖으로 나섰다.

“놔봐!”

사우나 안이 요란하게 울리도록 고함을 지른 배불뚝이 도화지가 동료들을 뿌리치며 따라 나왔다.

수건 하나를 들어 허리에 감은 강성태가 탈의실 앞의 거울로 움직였을 때, 이번엔 탈의실에서 세 명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시선을 돌린 곳에서 덩치 둘을 데리고 온 유섭우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옷을 준비해 왔습니다, 형님.”

유섭우가 고갯짓을 하자 뒤에 있던 두 놈이 빠르게 움직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정장 차림의 두 놈이 수건을 들더니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강성태의 등에 흐르는 물기를 찍어냈다.

도화지와 동료 넷, 다섯 놈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눈알을 굴리며 강성태와 유섭우를 살피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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