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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 6화 (217/513)

11권 - 6화

응급실 문을 밀치고 달려간 안다미가 병상의 커튼 안으로 뛰어들었다.

“잠시만요!”

이제는 낯이 익은 간호사가 강성태를 막아섰다.

밀치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달려간 안다미나 고생해 준 스태프에게 할 일은 아니어서 강성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00줄!”

“됐습니다!”

“슛!”

퍼윽.

섬뜩한 지시와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이병렬 씨! 제발 숨 쉬어요! 제발!”

이병렬을 깔고 앉은 안다미가 체중을 이용해 가슴을 누르는 모습이 커튼에 비친 윤곽을 통해 강성태의 눈에 들어왔다.

“300줄!”

“300줄! 준비됐습니다!”

침대에서 내려온 안다미가 양손에 든 도구를 이병렬의 몸에 붙였다.

“슛!”

퍼윽!

다시 침대로 올라간 안다미가 절박하고 간절하게 이병렬의 가슴 부위를 세차게 눌렀다.

저런 장면 많이 봤었다.

그리고 단 한 명도 저 상태에서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병렬!”

강성태는 커튼 안을 향해 응급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거센 고함을 질렀다.

긴장해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태프와 로비 쪽에서 들어섰던 유헌우가 놀라서 돌아보고 있었다.

“강남 박노익과 악수했고! 이광준과 김종수 모사치는 거 막았고! 달수 장례식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는데! 네가 필요해!”

커튼 안에서는 안다미가 연신 이병렬을 누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 뭐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일어나서 알려달라고! 다시는 혼자 있게 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은 제발 좀 일어나!”

강성태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유헌우는 말리지 않았다. 무거운 얼굴을 한 그가 커튼 안으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달수를 보낸 것도 감당하기 어려워! 너까지 떠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러니까! 이병렬! 이번은 그냥 일어나주라!”

응급실에 있던 스태프들이 숙연한 얼굴로 강성태를 바라볼 때였다.

“안 선생님!”

비명 같은 스태프의 음성이 들렸다.

죽었나?

늘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떠나버렸나?

커튼의 윤곽을 통해 안다미가 내려서는 모습을 강성태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커튼 안에서 상체를 옆으로 기울인 간호사가 머리를 비스듬하게 내밀었다.

“환자 숨 쉬어요! 심장도 뛰고요!”

“후우-.”

숨을 길게 내쉰 강성태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릴 때였다.

커튼 안에서 안다미가 나왔다.

고함을 질렀던 강성태를 안다미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힘겨웠을 그녀를 강성태가 안쓰럽게 마주 보았다.

종일 수술에 매달렸고, 자정이 넘도록 응급실에서 이병렬의 곁을 지켰으며, 직전의 긴박한 상황을 겪으며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지쳐 보였다.

강성태는 다가오는 안다미를 가슴에 안았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강성태의 등에 붙은 안다미의 손이 잘게 떨었다.

긴장해서가 아니라 가슴 높이로 팔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서 그런 듯 느껴졌다.

수술복을 입은 안다미에게서 약품 냄새, 은은한 땀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떠나가는 이병렬의 삶을 강제로 끌고 온 노력을 증명하는 향이어서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고마워요.”

강성태는 힘겹고 지친 안다미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기운을 나눠주듯 꼭 안았다.

가뜩이나 강성태가 고함을 지른 바람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몰려 있던 참이었다.

올라왔던 감정이 내려간 안다미가 주변을 의식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커튼 안에서 유헌우가 나왔다.

“병원에서들 참!”

밉지 않은 얼굴로 툴툴거린 유헌우가 강성태와 몸을 세운 안다미 앞으로 다가왔다.

“안 선생은 아침에 출근해야 하잖아. 이만 들어가.”

“괜찮아요. 좀 더 볼게요.”

“오늘 낮에 온 것도 박사님 이름 봐서 넘어간 걸 텐데 더 버티다가 낮 근무에 졸거나 실수하면 다들 박사님을 거론할 거야. 한 시간 뒤에 박사님이 일어나시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 내가 보면 돼.”

말을 마친 유헌우가 강성태를 향해 당부의 눈빛을 보냈다.

“박사님 깨어나셔서 안 선생이 여기 있는 걸 보면 진짜 화내실 테니까 지금 출발해요. 성태 씨가 집까지 바래다줄 수 있어요?”

“당연히 그래야죠.”

평소와 달리 유헌우는 선배 의사의 엄한 표정으로 안다미를 돌아보았다.

“준비하고 나올게요.”

더는 우기기 어려운 안다미가 몸을 돌려 응급실 안쪽의 문으로 움직였다.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들어가서 이병렬 씨에게 고맙다고 인사 정도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말을 걸어주세요.”

유헌우의 당부를 들은 강성태는 무거운 걸음으로 커튼 안을 향해 움직였다.

여러 가지 수치를 보여주는 기계들, 혈액과 노란색 약병, 투명한 링거들, 가슴을 드러낸 이병렬은 죽음에서 갓 돌아왔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편한 얼굴이었다.

“고맙다, 이병렬.”

간호사 두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성태는 이병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오늘 혼자 다니는데 옆자리 빈 게 그렇게 크더라. 일어날 때까지 악착같이 버티고 있을 테니까 얼른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안다미가 커튼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미 씨 데려다주고 올게.”

강성태는 이병렬의 손을 두어 번 다독여준 뒤에 몸을 돌렸다.

주차장으로 나선 강성태는 안다미의 승용차로 움직였다.

“운전 내가 해도 됩니까?”

“운전할 줄 알아요?”

“그래도 경호원이었거든요. 보험은 괜찮나요?”

기가 막힌 얼굴로 웃은 안다미가 운전석의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어준 뒤에 조수석으로 옮겼다.

운전석에 오르려던 강성태는 로비 앞으로 나와 있는 아르윈을 향해 그냥 있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운전석에 앉은 강성태는 자리를 조절한 뒤에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조금은 어색한 출발로 병원을 빠져나온 강성태는 바로 큰 도로에 합류했다.

“그동안은 왜 운전 안 했어요?”

“대중교통이 워낙 좋아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치곤이가 주로 운전한 것도 있고, 마지막은 멕시코의 그 험악한 곳에서도 잘 다녔는데 서울은 내 실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조수석에서 강성태를 바라보던 안다미가 지친 얼굴에도 재미있다는 느낌을 담아 웃었다.

“성태 씨가 운전하니까 진짜 좋네요.”

안다미가 상체를 기울여 오른쪽 팔을 안았고, 이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지난번에 곤잘레스 회장님한테서 받은 돈이 그대로 있거든요. 차 하나 선물해도 돼요?”

“이모네 식구들이 정말 잘해주었지만, 그래도 결혼하게 된다면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다미의 질문에 강성태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고개를 돌린 안다미가 강성태를 올려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 열두 명쯤?”

“말도 안 돼.”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다미 씨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승용차는 다음에요.”

“무슨 거절이 그렇게 거창해요? 알았어요. 대신 저녁 못 먹었으니까 국수 살게요. 그건 괜찮죠?”

“가족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국수 사세요. 이제 됐어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답을 내놓은 안다미가 강성태의 팔을 꼭 안았다.

이런 시간이 이병렬에게 미안했다.

고생한 안다미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에서 올라오는 미안함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이병렬 씨 생각하죠?”

강성태의 심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몸을 세운 안다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위기를 넘긴 환자들이 의외로 잘 견디는 경우가 많아요. 성태 씨가 외친 말에 반응한 거라면 더더욱 그럴 거고요. 삶에 대한 의지가 어떤 치료보다 강하게 작용하거든요.”

안심하라고 하는 말인지,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이런 순간에 진짜 그러냐는 따위의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아서 강성태는 순순히 말을 받아들였다.

심야라 차들이 별로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막히지 않는 길을 여유롭게 운전한 강성태는 포장마차 앞에 차를 세웠다.

볼링을 치고 나온 듯한 단체 손님들을 제외하고 포장마차도 오늘은 한가했다.

“삼촌 좀 늦었네. 치곤이 삼촌이 조금 전에 갔는데?”

“많이 마셨어요?”

“아니. 함께 온 아가씨가 말려서 소주 일 병 마시고 갔어.”

이모의 너스레를 듣고 난 강성태는 국수 두 그릇과 족발 하나, 맥주와 사이다 한 병씩을 주문했다.

“치곤 씨가 있는 줄 알았으면 전화할 걸 그랬어요.”

“이번 일로 힘들어해서 다음에 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온 아가씨가 은주예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대화 끝에서 포장마차의 특성대로 국수와 족발이 빠르게 나왔다.

운전을 해야 하는 강성태는 사이다, 안다미는 맥주를 마셨다.

많이 배고팠고, 몹시 지친 모양이었다.

빠르게 음식을 먹은 안다미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자 몰려드는 잠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면서요. 이만 일어나죠.”

강성태가 권하자 안다미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이서 승용차를 이용해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

엔진을 끈 강성태가 운전석에서 내린 뒤였다.

조수석에서 돌아온 안다미가 강성태를 올려다보았다.

“차 가지고 가세요.”

“지금 시간에는 택시 많습니다. 오늘 힘들었으니까 얼른 올라가서 쉬세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강성태는 안다미가 머무는 층까지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안다미가 강성태를 향해 팔을 벌렸다.

안으로 들어간 강성태는 안다미를 안아주었다.

5분쯤 지난 뒤였다.

몸을 세운 강성태는 안다미의 등을 다독였다.

“갈게요. 잘 자요.”

현관을 나선 강성태는 문을 닫아주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엘리베이터는 바로 열렸다.

1층에 내려온 강성태는 바로 택시를 잡았고, 방지병원으로 향했다.

우우웅.

[이제 정말 잘 거예요. 기운 잃지 마세요.]

중간쯤에서 안다미의 문자가 액정에 올라왔다.

[거의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피곤하면 연락하세요. 마실 거라도 사 가지고 갈게요.]

우우웅.

[내일 저녁에 방지병원에 들를 거예요. 인턴 시절부터 이런 일이 잦아서 잘 견딜 거고요. 볼 수 있으면 내일 봐요.]

[따듯하게 자요.]

안다미와 문자를 마친 강성태는 방지병원 앞에서 내렸다.

로비 앞의 계단에 앉아 있던 아르윈이 몸을 일으켜서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안 자고 뭐 해?”

“급하게 부르실 일이 있을까 봐 기다렸습니다.”

“병렬이가 사용하던 병실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 좀 자. 내일도 일 많아.”

“올라가시는 거 보고 자도 됩니다.”

다른 말을 하기 뭐해서 강성태는 우선 응급실에 다시 들렀다.

아직 안호상이 안 일어났는지 지친 얼굴의 유헌우가 커튼 안에 있었다.

“잘 견디고 있습니다.”

“병렬이가 사용하던 병실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유헌우에게 당부를 건넨 강성태는 응급실을 나서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썰렁한 이병렬의 병실에 들어선 강성태는 재킷을 벗어 걸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씻고 잘 거니까 그만 내려가.”

“복도에 인원이 없습니다, 형님. 제가 복도에 있겠습니다.”

목에 그려진 해적 문신이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인상을 긁으며 아르윈의 다부진 각오를 받아들이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성태였다.

“그럼 병실에 침대가 하나 더 있으니까 그거 사용해.”

결국, 침대 하나는 강성태가, 다른 하나는 아르윈이 사용했다.

최치곤에게 이미 단련된 데다 용병 생활의 경험이 있어서 아르윈의 코 고는 소리에도 곧바로 잠에 빠졌다.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심연에 가라앉은 느낌처럼 깊게 잠들었다.

우우웅. 우우웅.

강성태는 깊은 바다에서 단숨에 수면 위로 솟구치듯 잠에서 깨어났다.

반사적으로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든 강성태는 먼저 액정을 확인했다.

“여보세요?”

- 성태 씨, 지금 병실 맞아요?

“무슨 일이세요?”

유헌우의 다급한 음성에 강성태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옆 침대의 아르윈이 강성태의 음성에 놀란 것처럼 눈을 뜨고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 이병렬 씨가 성태 씨를 찾습니다. 내려올 수 있나요?

“바로 갑니다! 지금요!”

강성태는 몸을 던지듯 침대에서 내려와서 곧장 문을 향해 달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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