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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 4화 (215/513)

11권 - 4화

제2장. 사람 관리하는 데는 주먹이 최고지.

밤 10시 30분쯤이었다.

올림픽 공원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이 머무는 호텔까지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까지 그 호텔에 있다가 이제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은 건데, 억울해.”

긴장이 조금은 풀렸는지 로라가 우리말로 투정부렸다.

우우웅. 우우웅.

“잠시만.”

투정의 중간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말해.”

- 광준이 형님이 파이어 볼에서 연예계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답니다, 형님. 그런데 그 자리에 강남 박노익 형님이 참석하신답니다.

“누구?”

- 전에 강남 삼대장 중 한 분이셨고, 상장사 인수로 지금은 준재벌이 되신 분입니다, 형님.

“파이어 볼이면 정영권이 관리하는 곳이지?”

- 그렇습니다, 형님.

“알았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곧바로 액정이 밝아지며 손에 든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미스터 강. 존 보스만입니다. 로라가 묵을 객실 확보했습니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테니까 지하 3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경호원 둘 보내줘. 내가 확인할 암호는 존 보스만.”

-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십니까?

강성태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위치를 확인했다.

“앞으로 15분, 로라의 경호원들과 연락은?”

- 뒤따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경호원 두 명 내려보내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전에는 몰랐는데 영국식 영어로 말할 때 멋있어.”

로라가 예상하지 못한 감상을 내놓았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흐르면 엉뚱하게 꼬이기 마련이어서 빨리 자르는 게 로라와 강성태, 두 사람을 위해 현명한 일이었다.

“며칠 걸리지 않을 거야. 힘들겠지만, 호텔에서 생활하고 경호원들 지시에 잘 따라줘.”

“옵빠가 지켜주는 거 아냐?”

“그러고 싶은데 아르윈하고 의심 가는 사람들을 확인해 봐야 돼. 그래야 로라가 더 빨리 아까 빌라로 돌아갈 수 있어.”

적당하게 대꾸한 강성태는 상체를 돌려 승용차의 뒤쪽을 다시 확인했다.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아르윈?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사자성어가 아무래도 약합니다.”

아르윈에게 질문을 건넸던 로라가 놀란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실력자네요? 어떻게 공부했어요?”

“한국이 좋아서 드라마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아버지와 관계된 일이라 아차 싶었던 질문이었다. 뻑뻑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아르윈은 태연하게 적당한 답을 내놓았다.

멕시코에서 우리말을 공부하며 보았던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로라가 떠드는 사이에 승용차가 호텔로 들어섰다.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호텔 현관이 나오고, 그 끝에 지하주차장 입구가 있었다.

입구에 늘어선 택시, 그리고 승용차들을 살핀 강성태는 습관처럼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승용차 한 대가 분명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아르윈. 차를 세워줘.”

아르윈이 차를 세우자 따라오던 승용차가 비상등을 켜고 뒤로 붙었다.

“내려서 뒤차 확인하고 올 테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달려.”

짧은 지시를 건넨 강성태는 차에서 내려 뒤에 붙어 선 승용차를 향해 움직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조수석 창문을 내린 경호원이 강성태를 올려다보았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갑니다.”

“연락받았습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강성태는 세 명의 경호원과 다른 사람이 더 탔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번거로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안전을 담보할 수만 있다면 이따위 번거로움, 백 번이라도 반복할 가치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간 강성태는 경호원들을 확인했고, 이후 별다른 문제 없이 준비된 방으로 움직였다.

“이제 가볼게.”

“고마워, 미스터 강. 언제 와?”

“일 끝나는 대로.”

함께 있는 경호원들에게 인사한 강성태는 아르윈과 함께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바쁜 밤이었다.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나도 거르기 어려웠다.

“파이어 볼로 가자.”

“예, 형님.”

내비게이션에 클럽 이름을 입력한 아르윈이 곧장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호텔에서 불과 15분 거리였다.

가보면 알겠지만, 이광준은 손에 쥔 숟가락으로 금싸라기 밥을 퍼먹느라 바빠서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 숟가락과 금싸라기 밥알을 만들기 위해 이병렬이 생사를 오가고, 서달수의 장례를 치른다는 사실조차 외면한 채 말이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남의 밤을 지켜보며 강성태는 유섭우를 떠올렸다.

커피알리고에 와서 인사한 뒤로 맹가네 막내딸 일을 해결할 때까지, 시종일관 충직한 모습을 보였던 유섭우였다.

그렇게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해도 대가리가 썩으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썩어가는 게 이 바닥이었다.

길이 막히는 느낌에 시선을 돌린 강성태의 앞에 파이어 볼의 입구가 보였다.

줄줄이 늘어선 승용차 안쪽 도로에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열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르윈이 입구로 방향을 잡자 경광봉을 든 직원이 그쪽에서 나오라는 투로 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확실히 조직 경력이 많은 아르윈은 판단이 빨랐다.

창문을 내린 그가 경광봉을 든 직원을 손가락으로 불렀다.

“성태 형님 오셨다. 입구에 자리 비워.”

“예?”

직원이 혹시나 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가? 성태 형님 차를 세워놓고 네가 확인하겠다는 거야? 빨리 자리 안 비워?”

“이쪽으로 오십시오!”

독한 눈빛과 목에 새겨진 해적 문신이 인상을 긁자 상체를 깊게 숙인 직원이 차 앞으로 움직여 길을 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말렸을 일이었다.

“입구에서 기다려.”

“예, 형님.”

이병렬이 생사를 오가는 지금은 그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해서 강성태는 입구로 차를 대는 모습을 보고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입구에 승용차를 세우자 가드로 보이는 두 명이 달려와 뒷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광준이 형님 안에 있지?”

“특실에 계십니다, 형님.”

“안내해.”

“모시겠습니다, 형님.”

아마도 강남 삼대장 중 한 명인 박노익과 이광준의 술자리에 합류하는 거라고 판단한 눈치였다.

공손하게 상체를 숙였던 가드가 입구로 빠르게 걸었다.

길게 늘어선 손님들이 부럽게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강성태는 가드를 따라 움직였다.

트와일라잇은 입구에서 오른쪽에 계단이 있었는데 파이어 볼은 왼편 안쪽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불꽃을 꽂아놓은 안주 세트, 화려한 조명, 귀를 찢을 듯이 울리는 음악, 물결처럼 춤추는 손님들은 트와일라잇과 다르지 않았다.

강성태를 본 가드들과 덩치들이 급하게 달려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이 좀 더 강렬하게 달려들었다.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이 업장에서 마약을 쫓아내고, 앞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약을 막아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생각이었다.

하마터면 시선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갈 뻔했다.

이병렬이 있었다면 말렸을 게 틀림없어서 강성태는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였다.

공손하게 왼손을 재킷의 중간에 붙인 정영권이 빠르게 다가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광준이 형님 방으로 가자.”

“모시겠습니다, 형님.”

정영권이 앞섰고, 가드와 덩치들이 강성태의 뒤에서 줄줄이 움직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가장 안쪽 입구에 서 있던 덩치 다섯 명이 강성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다.

정영권을 향해 고개 숙이면서도 강성태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박노익이 데려온 덩치들인 모양이었다.

정영권이 달려가 귓속말을 건네자 다섯 놈이 뻑뻑한 느낌으로 고개만 숙였다.

어지간한 다른 조직 같으면 강성태와 안면을 트기 위해 애쓰는데 확실히 강남 삼대장 중 하나인 박노익을 따르는 놈들이라 그런지 꿀릴 거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이놈들하고 인사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정영권. 여기 서 있다가 안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예? 형님?”

“안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라고.”

뒤늦게 정영권은 강성태의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파이어 볼을 맡을 능력 정도는 있어서인지 당황한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던 놈이 “예, 형님.” 하는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강성태가 몸을 돌리자 옆으로 정영권이 룸의 문을 열었다.

이리저리 구불거리는 형태의 테이블에 양주, 샴페인, 안주, 잔들이 가득했고, 중앙에 박노익으로 보이는 남자, 왼편에 이광준, 그리고 오른쪽에 김종수가 있었다.

강성태가 들어서자 정영권이 문을 닫았다.

요란한 조명이 닫힌 문에 걸려 잘려나갔고, 시끄러운 음악이 반으로 줄었다.

“동생?”

많이 놀란 눈치였다.

구렁이 이광준이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고, 엔터테이먼트 대표 자리를 뺏겼던 김종수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성태는 이광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생이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오해? 동생?”

“일단 들어보라니까!”

박노익 앞에서 기죽고 싶지 않다는 눈빛으로 목청을 높이는 이광준을 향해 강성태는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간단하게 끝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광대를 때렸다.

휘청하는 이광준의 머리칼을 강성태는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샴페인 병을 집어 들었다.

“장례식을 치르는데 강서구를 책임진 인간이 이런 곳에서 술을 처먹어?”

퍼석!

“억!”

이광준의 머리에 내리친 샴페인 병이 깨지면서 파편과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중앙에 앉은 박노익이 상체를 얼른 뒤로 뺐는데 강성태는 아예 무시한 채 또 다른 샴페인 병을 집었다.

퍼석! 

두 번째 병으로 머리를 내리치자 다리가 풀린 이광준이 의자 아래로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으로 둥그렇고 넓은 안주 접시를 움켜쥔 강성태는 주저하지 않고 이광준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찍었다.

콰자작!

유리 조각이 요란하게 튄 직후였다.

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고, 반투명 창으로 비친 그림자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 들어왔다.

박노익이 데려온 덩치들과 정영권이 맞붙은 모양이었다.

강성태는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김종수. 이병렬이 사경을 헤맨다니까 이게 기회다, 싶었어?”

“그게 아닙니다, 형님. 여기 노익이 형님께서 투자를 하신다고…….”

쩌어어어억!

김종수의 더러운 변명을 듣는 게 구역질나서 강성태는 제대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흐물대는 김종수가 무너진 다음이었다.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중앙에 앉은 박노익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탈에 눈을 그려 넣다가 붓끝을 뾰족하게 들어서 마감한 것처럼 쭉 찢어진 눈에 매부리코, 독한 입술까지, 전형적인 깡패의 인상이었다.

앉았을 때는 제법 커 보였는데 앉은키가 엄청 컸는지 일어선 박노익의 머리끝이 강성태의 턱에 겨우 닿았다.

“동생이 신강남파 강성태지? 나 박노익이네.”

강성태는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이런 것도 전 같으면 절대 없었을 일인데 이병렬이 있었다면 제발 인사하라고 눈짓을 보냈을 거 같아서 한 행동이었다.

“강성태입니다. 처음 자리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우리 바닥이란 게 원래 사람 관리하는 데는 주먹이 최고지. 대신 요즘은 다들 몸 사리느라 돈질로 동생들 보내 작업하거든. 보스가 직접 나서는 걸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

말을 마친 박노익이 입가에 비웃음을 달고서 쓰러진 이광준과 김종수를 번갈아 보았다.

“이 자리를 이틀 전에 잡기는 했어도 장례식 소식을 듣고 취소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도 만나자는 말 듣고 이 새끼들이 모사치는데 나 끌어들이는 거구나 싶었네. 종수, 저 새끼가 타고난 모사꾼이거든.”

말을 마친 박노익이 테이블 옆에 있던 물수건을 집어서 옷 위에 붙은 안주를 털어냈다.

“나는 마귀 새끼들 데리고 상장사 인수해서 돈 빼먹는 거 하고, 주가 올려서 인수자금 회수하는 것만 하니까 강남을 누가 먹든 상관 안 해.”

물수건을 툭 던진 박노익이 김종수 쪽으로 움직여 그의 가슴을 밟으며 넘어왔다.

“상장사 많거든. 인수하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 내가 도울 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침 바른 건 건드리지 마. 그것만 아니면 나하고 마주칠 일 없어.”

상장사 바닥에 욕심 있다고 하면 당장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독한 얼굴로 박노익이 경고를 내놓았다.

“앞으로 강남에 업장 차리지 마십시오. 카지노 쪽 넘보지 마시고. 그것만 아니면 불편할 일 없을 겁니다.”

“흐하하하.”

시원하게 웃은 박노익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언제 맞붙을지 모르지만 일단 우리는 편히 가는 거로 하지. 장례식에는 동생들 보낼 테니까 그렇게 이해하게. 그리고 다음에 초대하면 시간 좀 내줘. 뭐하면 태완이 형님까지 모시고 밥이나 먹자.”

강성태와 악수를 마친 박노익이 확인처럼 이광준과 김종수를 돌아본 뒤에 문을 나섰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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