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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 2화 (213/513)

11권 - 2화

서달수를 장례식장에 보내고 나서야 김진용은 병실로 올라왔다.

“정훈이가 보낸 승용차가 도착했습니다, 형님.”

조태완과 함께 움직이는 도중에 지시했던 모양인지, 병실에 함께 들어온 이종환이 승용차가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진용이 데려갈 테니까 준비해.”

“저, 형님. 저는 병원에 있겠습니다.”

함께 가자는 강성태에게 김진용이 뜻밖의 의견을 내놓았다.

“병렬이 형님도 못 가시는데 저까지 이런 몸으로 장례식에 있으면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형님.”

말뜻은 단박에 이해했다.

서달수의 장례식에 이병렬은 아예 보이지 않고, 김진용마저 휠체어에 앉을 정도로 다쳤다면 안산의 일이 쓸데없이 부풀려져 돌 수 있었다. 아니라면 이병렬 식구들만 혹독하게 굴렸다는 오해를 받을까 염려한 눈치였다.

이럴 때 이병렬이었다면 어떤 대꾸를 내놓았을까.

“김진용. 남들 눈치 보고 살 거면 클럽 부수지도 않았고, 안산이나 광룡하고 싸우지도 않았다. 우리가 달수 장례식에 가는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냐?”

김진용은 고개를 떨군 채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병렬이도 없는데 너까지 없으면 달수가 얼마나 서운하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준비해.”

“알겠습니다, 형님.”

이종환에게 준비를 당부한 강성태는 아르윈과 함께 로비로 내려왔다.

하루를 마친 로비는 반쯤 조명을 내린 어둑한 분위기에서 강성태를 받아주었다.

“뭐라도 드셔야 하지 않습니까, 형님?”

아르윈의 질문을 받은 강성태는 응급실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의 짬도 내지 못하고 불려간 안다미는 물론이고, 안호상과 유헌우도 아직 수술이 매달려 있었다.

이럴 때, 혼자 먹는 저녁이 들어갈 리 없었다.

강성태가 나직한 한숨을 내쉴 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깡패?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농담할 상황 아니니까 용건만 말해.”

- 감찰이 끝났어. 형사부장이 연락받았다면서 잘해 보자고 하던데 무슨 일이야?

강선영의 말을 듣기 무섭게 조태완이 떠올랐다.

확실하게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강선영을 도운 모양이었다.

조태완의 능력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돈의 위력이 이 정도로 강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썩어빠졌다는 거 하나는 분명하게 알 거 같았다.

- 어디야? 저녁 살게.

“검사가 깡패랑 이런 식으로 연락하다가는 언제고 다시 감찰에 걸려. 아니면 누가 작업하는 거에 당해서 언론에 이름 올라간 뒤에 처벌받거나. 감찰 끝났으니까 잘 생각해.”

- 생각은 이미 정리 끝냈어. 이 짓 때려치울 각오로 출근했는데 깡패 네가 막은 거고. 동생 복수하게 해준다며? 그러지 말고 밥 먹자. 밥 먹으면서 의논해.

혹시 몰라서 마지막으로 준 기회를 강선영이 세차게 걷어찼다.

“오늘은 바빠. 내일 연락할 테니까 그때 보자.”

- 내일? 내일 언제?

“전화할게.”

강성태는 통화를 종료하고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안호상과 유헌우가 수술복 모자를 벗으며 통로에서 나왔다.

강성태가 몸을 일으켰을 때, 힘겨운 표정의 두 사람이 다가왔다.

“이병렬 환자를 제외하고 두 명이 위태로워서 오늘 밤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배운 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나머지는 신의 뜻이라고 여기자.”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안호상이 이마 주름에 땀이 맺힌 얼굴로 씁쓸하게 웃었다.

“유 원장은 자네를 믿더군. 혹시 내가 자네에게 실망할까 봐 걱정됐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해주었고.”

잠깐 돌린 시선 앞에서 유헌우가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자네를 선택한 거 후회 안 해. 이번 일도 마약과 관련됐거나 다미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고. 하지만, 다미는 좀 다른 모양이니까 잠깐이라도 들여다봐. 여자들은 그래. 무슨 말인지 알지?”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한 일 한 거 있나?”

강성태의 눈을 안호상이 강렬한 눈빛으로 들여다보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거나 내게 미안한 일을 했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해. 다미를 놓아주든가,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든가.”

말을 마친 안호상이 강성태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아! 저녁은 어떻게 했어?”

“장례식에 가야 합니다.”

“그래. 이병렬 환자 케어하고 있으니까 응급실에 들렀다가 가는 거 잊지 말고.”

고개를 숙이는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안호상이 지친 걸음으로 원장실로 향했다.

“여기 있다가 진용이와 종환이 내려오면 잠깐 기다리고 해.”

“예, 형님.”

강성태는 통로를 통해 응급실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서 의료용 물품들을 옮기고 있었다.

응급실을 가로질러 이병렬이 있는 자리로 움직였다.

안다미는 커튼 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강성태를 확인한 안다미가 의지가 필요한 느낌으로 몸을 기댔다.

“힘들었을 텐데 애 많이 썼어요.”

고마워서, 그리고 미안해서 강성태는 안다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러주었다.

“나, 있잖아요. 수술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성태 씨가 있는지 확인했어요. 비겁하게 성태 씨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이렇게 의식을 잃고, 사망한 환자가 나왔는데요.”

“미안합니다.”

기대고 있던 몸을 세운 안다미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가 위험할지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거와 관련 있어요?”

강성태는 답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안다미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내가 위험할 테니까, 그런 이유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 아니죠?”

이모 장숙경, 김민정, 강선영, 안다미까지, 주변에 참 강한 여자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내가 어느 날, 정신 번쩍 차려서 성태 씨가 싫어지면 그때 말할게요. 그전에는 안 돼요.”

마지막 다짐까지 전한 안다미가 여러 가지 수치를 보여주는 기계와 수액, 혈액을 살핀 뒤에 이병렬에게 시선을 내렸다.

“장례식에 가봐야 합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환자를 살펴야 해서 여기 있을 거예요.”

이병렬을 보며 주고받은 대화였다.

자리에 앉은 안다미를 조심스럽게 안아 준 뒤에 강성태는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

통화를 하던 존 보스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곤잘레스 이두안의 집무실 바깥의 대기실이었다.

주변에 곤잘레스 이두안의 비서들과 한국에서 고용한 경호원들이 있어서 존 보스만은 볼륨을 낮추며 구석으로 움직였다.

- 미스터 강이 옳았어. 중국 이름으로 된 다섯 명은 눈속임에 가까워. 멕시코 출국자를 샅샅이 뒤지는 동안, 진짜는 러시아에서 국적을 세탁해 출국했다. 이미 한국에 입국해서 현재 행방을 찾기 어려워.

“미스터 강에게 연락하셨습니까?”

- 곤잘레스 회장의 안전이 급해서 자네에게 먼저 연락했다. 러시아 여권을 지녔으니까 혹시 권총을 사용하더라도 외국인들끼리의 분쟁으로 무마될 확률이 높아.

바르지오 만시니의 음성이 전에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 미스터 강에게 연락할 텐데 곤잘레스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말은 해봤나?

“건의는 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 그런 말을 했는데도 자네를 해고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는 거로 봐야지. 미스터 강이 찾아가도록 내가 부탁하지. 그럼 해결될 거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존 보스만은 장난감처럼 보이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경호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가스총, 전기충격기를 지니고 총을 들고 달려드는 가페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우리 정보원이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알려왔습니다. 지금부터 경호 상태를 일급으로 높이겠습니다.”

존 보스만의 지시를 들은 경호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른 질문을 내놓지 않았다.

**

깡패들의 장례식에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보스인 강성태가 상주로 서 있는 건 아니라며 김정훈과 이종환이 간곡하게 매달렸다. 그러나 강성태는 고집스럽게 서달수의 사진 앞에 서서 문상객을 맞았다.

화환이 끝없이 밀려들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온갖 조직의 덩치들이 줄줄이 밀려왔다.

“춘천 가로등파 심종복 형님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얼굴을 보게 돼서 유감이네.”

이종환이 옆에서 소개했는데 강성태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문 온 덩치들을 상대했다.

“전주 주차장파 이성칠 형님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하세.”

불과 두 시간 서 있었는데 그동안 전국에 있는 어지간한 조직의 중간 간부 이상은 모두 만난 느낌이었다.

지상 2층에 있는 소위 특실을 모두 예약해서 문상을 마친 덩치들이 옆에 마련된 식당으로 향했고, 일부는 바로 돌아가서 수없이 많은 덩치들이 몰렸으나 장례식장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거기에 신월동 숙소를 비롯한 영등포 식구들, 김정훈이 보낸 강남 숙소의 식구들이 강성태가 서 있는 주변을 빽빽하게 지키고 있어서 인사를 나눈 덩치들이 오래 서 있기도 어려웠다.

밤 9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아이고, 이놈아-!”

비명 같은 울음을 터트리며 서달수와 눈매가 똑같이 생긴 노모가 사진 앞으로 달려들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뒤늦게 들어선 조봉진이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깊게 숙인 뒤에 입구로 옮겨가 섰다.

**

이은주는 곁눈질로 최치곤을 살폈다.

이상하리만치 입을 다문 최치곤의 눈빛이 확실히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용도실에 준비해 둔 김밥도 손대지 않았다.

그저 하늘이 준 사명을 다하는 사람처럼 묵묵하게 주문받고 설거지하고, 재료를 옮길 뿐, 최치곤은 말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저녁의 바쁜 시간이 지나자 이성안마저 최치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냐.”

“숨 막혀서 그래요.”

조금은 당차게 대꾸한 이은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치곤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 조금만 쉬자.”

“그러세요.”

이은주가 답을 했을 때였다.

최치곤의 눈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멍해서 바라보는 이은주를 두고 최치곤은 급한 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울어? 최치곤이?

이은주는 상체를 기울여 카페 바깥을 돌아보았다.

최치곤은 주차장 구석의 담벼락 모퉁이에 있었다.

벽을 향해 선 최치곤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애써 참으려 해도 도저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은주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렇게 담벼락 모퉁이에 선 최치곤의 뒷모습은 서러웠다.

더는 못 견디겠는지 담에 고개를 묻었던 최치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주차된 차에 가려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기 애처로워서, 저대로 두면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은주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곧장 주차된 승용차 아래로 무너져 있는 최치곤에게 다가갔다.

“흐으. 흐으으.”

이렇게 서러운 남자의 울음을 이은주는 처음 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래요?”

이은주는 서럽게 우는 최치곤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달수 형님이 오늘 돌아가셨어. 성태가 혼자 견디고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카페를 지키는 거라서……. 흐으으. 달수 형님도 불쌍하고, 성태도 안됐고, 병렬이 형님, 진용이 형님이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누군가 죽었다는 말에 몹시 놀란 심정이었으나, 가슴을 쥐어뜯으며 우는 최치곤의 머리를 이은주가 꼭 안아주었다.

**

서달수의 부모와 친척에게 자리를 양보한 강성태는 따로 비워둔 공간으로 움직였다.

신월동 식구들과 강남 식구들이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누구도 근처에 다가오지 못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특실 중앙에 놓은 의자에 앉은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 자네가 옳았어. 가페 대원 다섯이 러시아에서 국적을 세탁한 뒤에 한국에 입국했다. 행방을 추적하고 있는데 신용카드나 통화 기록이 전혀 없어서 당장은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러시아 여권은?”

- 러시아와 한국의 전산이 워낙 빡빡해서 시간이 걸려.

“타깃은 곤잘레스 회장이겠지?”

- 조금 전에 존 보스만과 통화했는데 그쪽도 그렇게 여기는 눈치였어.

장례식장 앞을 빽빽하게 막아선 덩치들의 뒷모습을 보며 강성태는 한숨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저렇게 둘러싸고 있어도 가페의 암살조 다섯 명이 달려들면 감당하기 어렵다.

-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제안했는데 곤잘레스 회장이 아직 답을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난번 일로 미안해서 더는 손을 내밀 수 없다고 버텼다더군.

“자존심이 강한 분이니까.”

- 자네가 먼저 찾아가면 어떨까?

“그렇게 하지.”

- 고맙다. 그럼 나는 러시아에서 입국한 다섯 명을 추적할 테니까 혹시 얻는 게 있다면 바로 알려주지.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잠시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있는데?

중국인으로 구성된 가페 대원, 러시아에서 국적을 세탁한 가페 대원, 그리고…….

눈빛을 빛낸 강성태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 무슨 일이야?

혹시 곤잘레스 이두안에게 일이 생겼는지를 두려워하는 바르지오 만시니의 음성이 넘어왔다.

“전에 멕시코 마드레 산맥에서 의사들을 구해낼 때, 중국인 킬러 셋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중국인 다섯이 가페 대원이라고 넘어왔고. 삼합회와 멕시코 카르텔이 어떻게 연결된 건지 알아봐 줄 수 있나?”

- 국제적인 조직이 서로 교류하는 건 자네도 알잖아?

“여권을 위조해서 가페로 들이밀 정도라면 단순한 폭력조직의 교류라고 보기 어려워. 숨겨진 뭔가 있을 거 같으니까 그쪽도 알아봐 줘.”

- 알아보기는 하겠는데 범위가 너무 방대해서 시간이 꽤 필요할 거 같다.

“그래도 부탁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다시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상황을 되짚었다.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거슬리는 뭔가가 강성태의 뇌리를 긁어대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틀 뒤에 중국인 가페 대원 다섯이 입국하는데, 이미 러시아에서 국적을 세탁한 암살조 다섯이 한국에 있단다.

중국인 가페 다섯의 목표가 곤잘레스 이두안이라고 떠들어 놓고 말이다.

곤잘레스 회장을 가장 흔들 수 있는 목표를 노린다면?

“로라!”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르윈!”

“예, 형님!”

“차를 준비해!”

“예, 형님.”

달려나가는 아르윈을 따라 움직이며 강성태는 급하게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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