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 1화 (212/513)

11권 - 1화

제1장. 여기 있을 거예요.

이병렬의 침대를 떠난 강성태는 응급실 카운터로 움직였다.

낯익은 남자 스태프가 어색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올려다보았다.

“서달수를 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

어색한 답을 내놓은 스태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이미 언질이나 지시를 받았던 눈치였다.

응급실을 나선 그는 통상 사용하는 로비 건너편이 아니라 입구 오른쪽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로비 안쪽보다 넓이가 훨씬 넓어서 침대 두 개쯤 들어가는 구조였다.

지하로 내려간 직원은 엘리베이터 바로 왼편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가 스위치를 올리자 중앙의 형광등이 켜졌고, 그 아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급조해서 만들었구나 싶을 정도로 지하에 마련한 영안실은 좁았다.

직원이 비켜선 틈으로 강성태와 조태완, 김정훈, 이종환이 들어섰다.

좁은 공간에 에어컨을 얼마나 강하게 틀었는지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내부는 차가웠다.

가운데 침대에서 기다리던 직원이 강성태가 다가가자 얼굴 부위의 하얀 천을 아래로 내렸다.

안산의 공장으로 강성태가 들어서는 모습을 봤을까.

이병렬이 무사할 걸 짐작해서 이런가.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로 눈 감고 있는 서달수는 뜻밖에도 편안한 얼굴이었다.

이병렬을 지키기 위해 앞을 막아섰다고 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고도.

그 덕분에 이병렬이 그나마 견디고 있는 걸 텐데, 결국 서달수, 자신은 지키지 못했다.

“춥지 않냐.”

바보같이 강성태는 누운 서달수가 춥지 않을지 그게 가장 걱정됐다. 그래서 멍청한 질문을 던지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서달수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다. 병렬이와 살고 있던 너를 끌어들인 거, 이렇게 먼저 보낸 거, 모두 다. 정말 미안하다.”

용병 생활을 하며 이런 경험은 많았다.

적의 사격에 목이 뚫려 몸부림치는 동료도 있었고, 이마가 터져 참혹하게 죽은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을 헤집는 죽음은 처음이었다.

서달수의 차가운 손을 꼭 잡은 강성태는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마른침을 삼켰다.

지켜보기 힘겨운 모양이었다.

“사망 신고는 내가 병원과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는 장례를 진행하자.”

조태완이 강성태의 시선을 끌었다.

강성태는 대꾸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이종환을 찾았다.

“가족은?”

“음성 쪽에서 작은 가든을 운영하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밤에 가볼 테니까 준비해.”

강성태가 지시한 다음이었다.

“저, 형님.”

이종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보스가 지시하는데 토를 달아?

그것도 이런 순간에?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이 불쾌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가족을 알아보려고 봉진이에게 연락했었는데, 전에 약속한 게 있답니다, 형님. 그래서 봉진이가 부모님을 찾아뵙겠다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형님.”

같이 가면 안 되나?

이종환을 지켜보았던 조태완이 이제야 납득하겠다는 투로 시선을 가져왔다.

“보스와 함께 가면 아무래도 봉진이가 힘들겠지. 그건 들어주면 어때?”

프리 스테이션에서 이병렬, 김진용, 서달수, 조봉진이 가족처럼 지냈으니 어쩌면 정말 바라는 일인지 모른다.

“봉진이가 가는 거로 해.”

받아들여야 할 요청이었다. 그래서 강성태는 나직하게 이종환에게 답을 주었다.

“진용이는?”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큼은 강성태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나가야지.”

멍하니 서 있는 강성태를 조태완이 달랬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지켜보는 직원 때문에라도, 밖의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강성태는 아직 잡고 있던 서달수의 손을 꼭 쥐었다.

돈, 권력, 그 외에 어떤 것도 지니지 못하는 어두운 길을 걸을 때, 이렇게 차가운 몸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간다.”

처음 이병렬을 찾아갔을 때, 프리 스테이션 카운터에서 눈을 부라리던 서달수가 떠올랐다.

그때는 이런 관계가 될 줄 정말 몰랐었다.

“달수야. 고마웠다. 진심으로.”

서달수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전한 강성태는 무겁게 몸을 돌려서 좁고 추운 안치실을 나섰다.

“이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으니까 정훈이 시켜서 적당한 곳으로 준비하는 거로 하자.”

강성태에게 의견을 전한 조태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서달수의 사망을 수습해야 한다는 부담, 아직 생사가 불분명한 이병렬에 대한 염려, 반대로 완벽하게 보스가 되겠다는 강성태의 태도에 안도하는 느낌이 그가 내쉰 한숨에 모두 담겨 있었다.

“병렬이를 내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갈까 하는데 어때?”

“이곳이 낫습니다.”

“보스가 그렇다면야 뭐.”

강성태의 뜻을 받아들인 조태완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쉬지?”

“병렬이가 혼자 싸우고 있으니까 곁을 지키겠습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만 병원에 가셔서 쉬십시오.”

실제로도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은 지친 기색이었다.

“정훈아.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강남 숙소 전부 동원해서 고문님과 사모님 지켜. 부탁한다.”

강성태의 눈빛과 음성에 담긴 진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김정훈이 고개 숙였고, 그 와중에 감동이 올라온 눈으로 조태완이 강성태를 올려다보았다.

강성태는 주차장으로 함께 움직여 조태완이 차에 타는 모습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김정훈이 몸을 숙이자, 주차장을 가득 메운 강남 숙소 사십여 명의 덩치들이 서열에 맞게 줄줄이 인사하며 차에 올랐다.

조태완과 강남 숙소 덩치들이 빠져나가자 주차장이 갑자기 휑하니 비었다.

주차장에 선 강성태는 잠시 조태완이 빠져나간 입구를 지켜보았다.

날은 좋았다.

오후의 햇살도, 빌딩 위로 드러난 하늘도, 신호등과 자동차의 뒤에서 빛나는 브레이크 등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잠시 바깥을 지켜보던 강성태는 이종환, 아르윈과 함께 로비로 들어갔고, 이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위로 올라간 강성태는 곧장 김진용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형님?”

하루를 보내고도 돌아오지 않은 이병렬과 서달수, 어수선하게 오가는 덩치들, 조태완이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들은 김진용이 강성태를 향해 인사하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강성태는 김진용의 침대에 다가섰다.

문 앞에 서 있는 이종환과 아르윈을 돌아본 김진용이 볼을 씰룩이며 시선을 가져왔다.

“안산에서 삼합회 조직원의 습격을 받았다. 병렬이는 아직 의식이 없고, 서달수가 사망했다.”

잔인한 통보였다.

강성태를 바라보던 김진용의 눈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더니 눈물이 그득 올라왔다.

“달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형님?”

폐에서 나오는 듯한 음성이었다. 거기에 목이 갈라져 비틀린 목소리로 김진용이 질문을 건넸다.

“병원 지하실에 있는데 장례식장으로 옮긴다고 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김진용은 끝내 고개를 떨궜다.

후두둑, 고개 숙인 그의 얼굴에서 쏟아진 눈물이 그가 덮고 있던 담요 위로 비처럼 떨어졌다.

문 앞을 지키던 이종환과 아르윈이 눈물을 참기 위해 눈매를 독하게 뜨며 버텼는데, 김진용은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달수에게 가든 여기 있을 거예요.하시는 부모님이 계신다기에 내가 가려고 했는데, 봉진이가 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강성태의 말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은 김진용이 고개를 들었다.

“약속했던 일입니다. 저와 달수, 봉진이, 이렇게 셋이서 술 마시다가…. 혹시 이런 일이 생기면 가족은 반드시 세 사람 중 한 명이 찾아가자고…….”

힘겹게 답을 내놓던 김진용이 더는 견디지 못하는 느낌으로 다시 고개를 떨궜다.

“병신 새끼…. 형님들을 모셔야 하는 새끼가 그렇게 멋대로… 가면 어떻게…. 흐으으. 흐으. 이 개새끼…. 바보 같은 새끼.”

원망을 쏟아낸 김진용이 눈물범벅인 얼굴을 들었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달수를 보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이종환을 찾았다.

이종환이 조용하게 움직여 휠체어를 끌고 왔다.

침대에 걸렸던 약병들을 옮겨 단 그가 김진용을 도왔다.

고개를 숙인 김진용의 휠체어를 이종환이 끌고 움직이자 아르윈이 문을 열어주었다.

두 사람이 나간 뒤였다.

강성태는 창가로 움직여 병원의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르윈. 지난번에 가지고 있던 권총, 토카레프, 그거 소음기까지 구할 수 있을까?”

“부산하고 인천에 러시아 선원들과 밀입국자들이 거래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루만 주시면 구해오겠습니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리하지 마. 안 되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예, 형님.”

강성태의 눈을 본 아르윈이 울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 숙였다.

**

집무실 창을 통해 보이는 도심의 풍경이 마치 스크린처럼 펼쳐진 앞에서, 책상에 앉은 이두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존 보스만을 올려다보았다.

“임무나 한국생활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거라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경호 임무에 만족합니다. 특히, 회장님을 모시는 일에 더할 수 없이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했다. 그러나 검은 피부 탓에 유독 흰자위가 돋보이는 존 보스만은 차갑고 냉정한 곤잘레스 이두안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버티는 존 보스만이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곤잘레스 이두안이 의자의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거실 창이 독한 눈빛의 곤잘레스 이두안을 품었는데, 존 보스만에게는 그림자에 잠긴 왼쪽 모습만 보였다.

“혹시 비겁한 행동을 해 본 적이 있나? 침대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부끄럽고 비겁한 행동 말일세.”

질문과 함께 곤잘레스 이두안이 존 보스만을 돌아보았다.

“닥터 안을 기억하겠지? 나는 그녀가 위험에 빠질 걸 알면서 보냈다. 미스터 강이 도움 줄 거란 기대를 품고 말이지. 결과는 자네도 짐작하다시피 마드레 산맥이 거의 내 손에 들어왔어.”

역광을 받아 그림자에 싸인 그의 얼굴에 짙은 회한이 드리워졌다가 바로 사라졌다.

“사업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나는 한국에 왔던 이유를 잃었다. 미스터 강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로라를 지켜줄 거란 믿음이었지. 내가 손을 내밀면 미스터 강은 분명 나서 줄 거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옅게 웃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이어 현실을 깨달을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그의 계좌에 엄청난 돈을 넣어주었는데 아직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 닥터 안의 목숨을 담보로 준 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건드리지 않은 걸 테고.”

곤잘레스 이두안은 말을 잇지 않았다.

강성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는지 깍지 낀 그의 손이 꿈틀했다.

“후-. 자네가 그만두는 거로 알겠네.”

잠깐이나마 속을 보였던 게 자존심 상한 모양이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바로 결론을 내렸다.

“회장님. 로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스터 강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부탁하겠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낀다면 인원을 늘려.”

“가페의 암살조가 얼마나 독하게 달려드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잖습니까? 인원을 불린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로라가 미스터 강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점도 생각해 주십시오.”

“그래서 미스터 강에게 다시 손을 내밀라는 건가?”

“레드워터 출신인 제게도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호를 위해 자부심, 자존심을 꺾고 부탁하는 일입니다.”

의자에 앉은 곤잘레스 이두안은 책상 건너편에서 움켜쥔 존 보스만의 주먹을 눈에 담았다.

시커먼 손등 안으로 말려 들어간 갈색의 손바닥이 자부심을 꺾고 매달리는 존 보스만의 심정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 얼굴쯤 단숨에 부술 주먹, 굵은 팔뚝, 보통 사람보다 반 이상 큰 덩치, 검은 얼굴에서 빛나는 강렬한 눈빛, 존 보스만을 천천히 올려다본 곤잘레스 이두안이 궁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 같은 체격을 지닌 용병이라면 미스터 강쯤 우습게 보이지 않나? 내 말은, 이렇게 좁은 공간에 둘만 맞붙었을 때를 말하는 걸세. 아! 무기도 없어서 집기만 이용해야 한다면, 어떤가?”

“용병 생활을 하면서 열 명에 아홉 명은 제 체격에 기가 죽습니다. 그런데 한 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 진짜를 만나면 큰 체격은 별다른 도움이 안 됩니다.”

“그 정도인가?”

“커피전문점에서 미스터 강을 보면서 바로 알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창을 돌아보았고, 경호원 위치를 살폈으며 제 몸에서 권총과 대검을 걸어둘 곳을 확인하더군요.”

곤잘레스 이두안이 새삼 신기하다는 얼굴로 존 보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가 달려들어서 미스터 강을 덮치는 장면을 상상하시는 거 같은데, 그렇게 덮쳐 단숨에 목을 부러트리지 못한다면,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에 저는 이미 반쯤 죽어 있을 겁니다.”

설마?

곤잘레스 이두안의 얼굴에 스치는 감정을 보며 존 보스만이 말을 이었다.

“그가 눈으로 확인한 것들입니다. 제 팔뚝, 명치, 목덜미, 귀 아래를 살폈고 다음으로 방탄조끼를 입었는지 확인했습니다. 구두, 발목은 그 뒤에 여유를 지니고 확인했었습니다.”

곤잘레스 이두안은 존 보스만의 설명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정보나 확신도 얻지 못했다.

“열 명 중 한 명이라고 해도 모두 미스터 강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강은 제가 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만약 미스터 강이 회장님을 노린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두안이 강렬한 눈빛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거나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조를 구하는 일입니다. 레드워터의 수장 제이 브라이튼이 그를 파이널 크루로 지정한 이유를 생각해보시면 제 말이 조금은 이해되실 겁니다.”

제이 브라이튼의 이름을 듣고서야 현실을 깨달은 것처럼 곤잘레스 이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CIA가 그를 R.C(Reserve Component)로 분류해 파이널 크루의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한국에서 가페로부터 회장님과 로라를 완벽하게 지키려면 미스터 강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존 보스만의 말이 끝났다. 그런데도 곤잘레스 이두안은 아직 존 보스만을 해고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입을 열지 않아서 곤잘레스 이두안과 존 보스만, 두 사람이 나눠 든 것처럼 적막이 책상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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