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20화
제8장. 오늘부터 안중은 내가 접수한다.
이종환은 덩치들이 가득 탄 승합차 한 대와 빈 승합차 세 대를 끌고 달려왔다.
강성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조직 생활을 했던 그도 문을 열고 들어선 직후에 움찔할 정도로 공장 안의 풍경은 살벌했다.
“형님.”
급하게 다가온 이종환은 피를 뒤집어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뒤따라 온 덩치에게서 물수건을 받아 내밀었다.
“이종환. 광룡을 잡으러 간다.”
“예? 예, 형님.”
말리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강성태의 눈빛과 태도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도서웅이란 놈이 안중의 건물 옥상에 있다니까 함께 갈 인원 셋만 골라. 그리고 저기 광룡 중에서 가운데 있는 놈 차에 싣고.”
고개를 숙인 이종환이 강성태의 지시대로 덩치들을 지휘했다.
한쪽으로 움직인 강성태는 먼저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았다. 지금껏 몰랐는데 입고 있던 옷의 옆구리와 소매가 터지고 갈라져 있었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은 강성태는 바삐 움직이는 대림동 덩치들을 지나쳐 공장 문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밖을 지키던 덩치 둘이 깊게 고개 숙이는 앞에서 강성태는 고개를 들어 눈부신 하늘을 보았다.
‘안중으로 간다. 가서 광룡을 아예 없애버리고 갈 테니까 그때까지 정신 차리고 있어.’
이병렬에게 간절한 심정을 전한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공장을 돌아다보았다.
강성태를 품은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늘여 어두운 공장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햇살 아래 있고 싶어 하는 강성태를 원망한 적 없었다. 그래놓고도 안다미를 지켜주고 싶어서 광룡 덩치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밤을 보냈던 모양이었다.
자랑하고 싶었을 거다.
조직의 보스라면 사랑하는 사람 하나만큼은 제대로 지켜줘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안호상과 안다미, 유헌우는 각각 스태프들을 이끌고 환자들에게 매달렸다.
메스를 넘긴 유헌우가 수술 도구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 때였다.
삐이-.
섬뜩한 경고음이 차가운 수술대 주변에 울렸다.
“후-.”
항상 능글맞고 어떤 경우에도 지치지 않던 유헌우가 숨을 길게 내쉬며 수술대에서 한 걸음을 물러났다.
“사망 선고하겠습니다. 서달수 님. 오후 3시 20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유헌우가 서달수의 사망을 선언했고, 간호사가 시간을 기록했다.
병실을 오가며 매일 보던 사람이었다.
조직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병렬을 끔찍하게 따르던 모습을 유헌우도 알아볼 정도였다.
유헌우는 칸막이로 나눈 옆의 수술실로 고개를 돌렸다.
서달수만큼이나 위급했던 이병렬을 안호상이 맡았는데 아직 과정을 알지는 못했다.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다음 수술 준비하세요.”
지금은 위급한 환자가 많아서 감정이나 시간을 소모할 틈이 없었다.
**
침대에서 일어난 조태완은 정장 바지와 재킷으로 갈아입었다.
김정훈이 평소보다 세 배 이상 되는 인원을 앞뒤로 깔아서 조태완이 나선 복도에는 숙소 덩치들이 가득했다.
앞에 스무 명이 걸었고, 그 뒤에서 조태완의 휠체어를 김정훈이 밀었는데 꼬리를 문 것처럼 다시 스무 명 정도의 덩치들이 뒤를 막아선 채 따라붙었다.
때앵.
엘리베이터 앞을 막아섰던 덩치들이 문이 열린 안쪽을 살피고는 몸을 비켰다.
“1층으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 출구를 지켜.”
“예, 형님.”
김정훈이 직접 관리하는 숙소 인원들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몸을 숙인 덩치들이 계단을 향해 달렸다.
“다른 조직의 움직임은?”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아서 오늘 밤을 지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형님.”
“보스는?”
“안중으로 가셨답니다.”
입술을 말아 들인 조태완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엘리베이터에 찍힌 숫자를 노려보았다.
“짐작하겠지만, 병렬이가 보스의 정신적 지주다. 거기에 신월동, 대림동, 강서구가 저렇게 하나로 묶인 것도 모두 병렬이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고. 병렬이가 잘못되면 그쪽 숙소가 흔들릴지 모르니까 잘 지켜봐.”
“예, 형님.”
“하기야 보스가 건재하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되겠지. 또 병렬이가 당하기 무섭게 직접 광룡을 정리하겠다며 뛰고 있으니까 그것도 먹힐 테고. 남은 건 지방에서 어떻게 움직이냐는 건데.”
조태완이 고민하는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을 때였다.
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스무 명이나 되는 덩치들이 출구를 둘러싸고 있다가 조태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팽팽한 긴장이 조태완 주변을 휩싸며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
강성태는 천에 감아두었던 무쇠 칼을 들고서 승합차 뒤로 시선을 돌렸다.
눈, 코, 입이 퉁퉁 부은 광룡의 조직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형님! 정말 살려주십시오!”
“이 씨발 새끼가!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를 해!”
이종환이 으르렁거리는 옆에서 강성태는 픽 웃기만 했다.
인상을 찌푸리는 이종환보다 차갑게 웃는 강성태가 더 두려운 모양이었다.
웃는 강성태를 본 광룡의 조직원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왼쪽 건물 옥상에 도서웅 형님이 계십니다. 2층까지는 바로 올라갈 수 있는데 옥상은 철제문으로 잠가서 밀고 올라가지 못합니다.”
강성태는 옆에 있는 쌍둥이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같은 구조인데 옥상으로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대신 말씀드렸던 대로 입구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CCTV가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가든 무조건 걸립니다.”
안산 공장에서 들었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환. 내가 오른쪽 건물로 들어갈 거다.”
“예, 형님.”
“CCTV로 보고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입구를 살피고 있어.”
“제가 모시겠습니다, 형님.”
“빠르게 해결하고 돌아간다. 내가 나오는 대로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여기 있어.”
“예, 형님.”
이종환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천으로 싼 무쇠 칼을 들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점심과 저녁의 중간이었다.
고만고만한 2층 건물과 낡은 단층, 3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오래전에 깔아놓은 도로와 인도에는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이 가득했다.
인도를 따라 걷던 강성태는 오른쪽 건물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짙게 선팅한 유리에 비자, 여권, 중국 식품, 전화 카드 따위의 글씨를 가득 적어놓은 작은 가게 옆으로 계단이 있었다.
강성태는 훅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해 달렸다.
정면에 섀시로 된 화장실 앞에서 방향을 튼 강성태는 곧바로 2층으로 달렸다.
“뭐야!”
CCTV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2층 점포에서 덩치들이 우르르 나왔다.
강성태는 달려가는 힘을 이용해 주먹을 힘껏 뻗었다.
쩌어억! 쩌억! 쩌어억!
얻어맞은 세 놈이 흐물거리는 덕분에 뒤에서 나오던 놈들이 주춤했다.
홰액!
강성태는 그대로 옥상을 향해 달렸다.
콰앙!
섀시로 된 문을 걷어차고 나가자 바로 옥상이었다.
건너편의 옥상을 향해 강성태는 힘껏 뛰었다.
사람 셋이 나란히 선 공간만큼 떨어져 있는 건물이었다.
허공에 떠올랐던 강성태가 옆 건물의 옥상에 내려서며 자세를 낮춘 순간이었다.
옥탑방 문이 열리며 이마가 벗어진 도서웅이 튀어나왔다.
CCTV를 보았는지 날렵하게 빠진 손도끼를 들고 강성태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붕! 부웅!
도끼질을 크게 하면 빈 곳이 드러난다.
그런데 도서웅은 그 약점을 아는 듯 짧게 휘둘러서 어설픈 칼질보다 날카로웠다.
강성태가 두 번 피하는 사이에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온 광룡 덩치들이 이쪽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부응!
손목을 이용해 도끼날을 휘두르는 도서웅을 향해 강성태는 훅, 달려들었다.
도끼의 자루 안쪽으로 뛰어든 강성태는 이마로 놈의 미간을 들이받았다.
콰작!
미간을 들이받는 순간이었다.
퍼억!
도서웅의 왼손 주먹이 강성태의 옆구리를 세차게 파고들었다.
쩌어억! 퍼억! 쩌억! 퍽!
강성태의 주먹이 두 번 박히는 사이에, 짧은 도서웅의 주먹이 다시 옆구리에 들어왔다.
거기까지였다.
타고난 맷집과 악으로 버티던 도서웅의 고개가 흐물거렸다.
강성태는 도서웅의 뒤로 돌아가 놈의 머리를 왼팔로 감쌌고, 오른손에 들었던 무쇠 칼을 목에 바싹 붙였다.
움찔, 움찔, 옥탑방의 입구를 둘러싼 광룡 조직원은 대략 30명쯤 되었다.
도서웅의 목에 달라붙은 무쇠 칼을 확인한 놈들이 도끼, 사각으로 된 주방도, 등산용 칼, 무쇠 칼들을 휘저으며 달려들 기회를 노렸다.
“더 없냐?”
“뭐라니!”
콧수염을 기른 얼굴에 땟물이 꾀죄죄하게 올라온 조직원이 조선족 특유의 억양으로 강성태의 질문을 받아쳤다.
“광룡 조직원 더 없냐고?”
“네놈 모가지 따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전에 지용호를 부술 때 한번 무너졌고, 이번에 대림동에서 여덟 놈이 주저앉은 탓인지 당장 불러올 인원은 없는 눈치였다.
주변을 돌아본 강성태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도서웅의 목에 댔던 무쇠 칼을 당겼다.
서걱!
“야, 이 개새끼야!”
앞선 놈이 욕을 뱉는 순간이었다.
피를 뿜어내는 도서웅을 앞으로 밀어낸 강성태는 곧장 30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핏! 피잇! 핏핏!
단박에 앞에 있던 세 놈의 팔뚝을 갈랐고,
쩌어억! 쩌억!
두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으며,
푹! 푹푹! 푹!
옆과 뒤에서 달려드는 놈에게 무쇠 칼을 찍어 넣었다.
강성태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피잇!
날아든 손도끼가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크게 도끼를 휘두른 탓에 그대로 드러난 놈의 옆구리를 향해 강성태는 무쇠 칼을 찍어 넣었다.
“끄으!”
비명과 고함, 피가 튀는 싸움에서 강성태는 밀리지 않았다.
퍼윽!
다가서기 무서워서 휘두른 파이프가 강성태의 목덜미에 떨어졌고, 이따금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는 각목이 어깨를 때리고는 부러졌다.
휘익! 콰작!
옥상에 있던 화분을 던질 만큼 광룡 조직원들이 급하게 달려든 싸움이었다.
15분쯤 지났다.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다리나 배를 움켜쥔 광룡의 조직원들이 버둥거리며 옥상 벽을 향해 물러났고, 나머지는 의식을 잃은 채 널브러져서 서 있는 사람은 강성태가 유일했다.
어깨와 옆구리, 등이 갈라진 재킷에 화분에서 쏟아진 흙을 뒤집어쓴 강성태는 피 묻은 무쇠 칼을 들고 쓰러진 광룡 조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신강남파 강성태다. 오늘부터 안중은 내가 접수한다. 경고의 의미로 오늘은 도서웅의 목만 갈랐지만, 내 허락 없이 이곳에서 다시 설치면 그때는 전부 목을 갈라버릴 테니까 내일까지 여기 비워.”
등으로 버둥대며 물러나 벽에 기댄 콧수염을 본 강성태는 차갑게 웃으며 놈에게 다가갔다.
“으으…….”
겁에 질린 놈이 꼬리 만 개처럼 고개를 모로 튼 채 강성태를 힐끔거렸다.
“대답을 못 들었다. 언제까지 비우라고 했지?”
“내일……. 내일까지.”
“다음부터 내게 대답할 때는 존댓말을 써.”
놈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고갯짓도 하지 말고.”
쩌어어억.
강성태는 주먹을 힘껏 뻗어 놈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몸을 세운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던 놈들이 고개를 틀거나 시선을 떨어트렸다.
몸을 세운 강성태는 무쇠 칼을 바닥에 툭 던졌다.
땡강.
싸움의 끝을 알리는 쇳소리가 안중의 3층 건물 옥상에 울렸다.
강성태는 계단으로 향하는 철문의 고리를 벗기고 아래로 내려갔다.
좁은 계단은 조명이 없어서 어둑했다.
돌이키지 못할 장소로 향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늦었다. 미안하다.’
프리 스테이션에서 장사 잘하던 이병렬을 끌어내서 홀로 던져두다시피 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마약을 막아내는 데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놓고 그 힘겨운 싸움에 이병렬을 앞세워 놓고서 한 걸음 뒤에 있었다.
‘삼합회와의 싸움은 내가 한다. 그러니까 일어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라. 하라는 대로,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좁은 계단을 돌고 돌아서 아래로 내려온 강성태는 그대로 건물을 나서 인도를 따라 걸었다.
흙과 피가 묻은 데다 여기저기 찢어진 재킷이 눈에 띌 만도 했는데 작은 점포들의 상인들과 오가는 행인들은 강성태가 보이지 않는 듯 시선을 외면하며 지나쳤다.
드르륵.
강성태가 다가가자 승합차의 문을 열고 내린 이종환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안중도 우리가 접수한다. 내일까지 여기를 비우라고 했으니까 나머지는 종환이 네가 알아서 하고, 인원이 필요하면 말해. 정훈이 쪽 식구들 보내줄 테니까.”
“예, 형님.”
지금까지와 다른 강성태의 모습과 지시에 이종환이 깊게 고개 숙였다.
강성태가 안쪽으로 들어가 앉자 뒤따라 자리에 앉은 이종환이 문을 닫았다.
“방지병원으로 가자.”
“예, 형님.”
승합차가 무겁게 출발했다.
강성태가 숨을 길게 내쉬며 창밖을 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내 침묵하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