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19화
이병렬을 안아 든 강성태는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을 막아선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살벌한 표정과 몸짓으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렬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강성태의 고함을 들은 아르윈이 필리핀 조직원들과 달려와 피범벅인 이병렬을 붙들었다.
“쓰러진 숙소 식구들까지 데리고 방지병원으로 달려. 가서 원장님을 찾아. 그럼 알 거다.”
“형님?”
쓰러진 숙소 식구들을 전부 데려가려면 가뜩이나 몇 명 오지도 못한 필리핀 조직원들이 모두 움직여야 했다.
남는 신월동 덩치가 다섯밖에 되지 않는 것을 염려한 아르윈이 당황해서 강성태를 불렸다.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까 병렬이부터 옮겨. 방지병원이다! 응급실에서 원장님을 찾아.”
더는 다른 말을 할 겨를이 없었고, 강성태의 표정과 눈빛이 워낙 강렬해서 아르윈이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해! 여기 다친 사람들 빨리 옮겨!”
급하게 움직인 필리핀 조직원들이 이병렬을 번쩍 들어서 입구로 달렸고, 이어서 서달수와 바닥에 널브러진 신월동 덩치들을 줄줄이 들고 옮겼다.
중국 조직원들은 아직 열둘이 건재했다.
다섯밖에 안 남는데 기껏 데려왔던 인원을 저렇게 보낸다고?
문을 나서는 아르윈과 필리핀 덩치들을 지켜보던 선글라스 남자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비웃음 가득한 중국 조직원들의 시선 앞에서 강성태는 바닥에 떨어진 무쇠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날이 아래로 향하게 손잡이를 거꾸로 들었다.
“호오?”
같잖다는 듯한 선글라스의 탄성이 침을 뱉은 것처럼 분명하게 강성태의 볼과 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여기가 중국도 아니고.
하지 말라는 마약을 돌린 것으로도 모자라 이병렬과 안다미를 노리고 설쳤다고?
강성태의 시선이 선글라스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네가 강성태냐?”
선글라스가 뱉어낸 중국말을 옆에 있던 각진 인상의 놈이 우리말로 바꿔 던졌다.
“어차피 여기에서 다 죽을 테니까 알 필요 없어.”
짧게 대꾸를 던진 강성태는 선글라스를 향해 똑바로 움직였다.
‘어?’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선글라스는 반사적으로 무쇠 칼을 앞으로 내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사람을 향해 칼을 드는 일에 타고난 인간이었다.
사람을 죽여본 경험도 풍부해 보였다.
그렇더라도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난 게 분명했다.
폭력 조직원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받은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수준인지는 모르는 느낌이라서였다.
그것도 쿠크리를 주로 쓰는 구르카 용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강성태가 다가서자 선글라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무쇠 칼을 내밀었다.
휙! 터억! 푹푹!
강성태는 빠르게 움직인 놈의 손목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움직여 팔뚝을 두 번 찍었다.
선글라스 안에서 작은 눈이 훅 강성태를 향해 떠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강성태의 오른편에서 기회를 노린 놈이 무쇠 칼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휘익! 푹! 피윳! 핏핏! 퍽!
누가 더 빠른지를 겨루는 것처럼 팔을 휘두른 강성태는 무쇠 칼을 든 놈의 팔뚝을 찍었고, 이어 손목 근처를 뼈가 드러나도록 여러 차례 갈랐다.
피시이이이.
터진 호스에서 물이 뿜어지듯 손목에서 피를 뿜어내는 중국 조직원이 칼을 떨어트리며 물러날 때였다.
꿈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선글라스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홱! 꽈악.
강성태는 선글라스의 오른손목을 잡아챘다.
퍽! 퍽!
놀란 놈의 좌우 쇄골 사이를 무쇠 칼로 깊게 찔렀고,
피윳! 펏! 퍼잇!
양쪽 겨드랑이와 명치를 위로 그었다.
선글라스의 오른손목은 아직 강성태의 손아귀에 있었다.
푹! 푹푹!
강성태는 마네킹에 칼을 박아넣듯 선글라스의 옆구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무쇠 칼을 찍어 넣었다.
삽시간에 일어난 칼질이었다.
그 직후에 선글라스의 몸이 휘청했고, 이어 입에서 피를 주르륵 쏟아냈다.
고작 개나 돼지를 상대로 칼질을 연습하고, 기습해서 뒤에 칼을 박아넣는 수준이 어떤 건지 이제 알겠냐?
차갑게 식은 눈으로 강성태는 선글라스의 울대에 무쇠 칼을 들이댔다.
놈의 선글라스에 강성태의 차가운 표정이 그대로 담겼는데 그 너머의 작은 눈이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을 담아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병렬과 서달수를 이렇게 찌르고 갈랐다면 너도 똑같이 당해야지.
서거어억.
강성태가 힘껏 무쇠 칼을 가르자 “크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선글라스의 몸이 아래로 무너졌다.
그의 목에서 뿜어진 피가 강성태의 허리에 튀면서 바지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동안, 피를 뒤집어쓴 신월동 덩치들이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뒤를 받쳤다.
선글라스가 워낙 맥없이 당하자 제대로 놀란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거칠게 무쇠 칼을 휘둘렀던 중국 조직원 놈들은 얼음조각에 떠밀려 간 펭귄처럼 담을 타고 몰려 있었다.
진짜 보스가 되지 않겠다는 핑계에 숨어 늘 이쯤에서 돌아서곤 했었다.
쿠크리를 더는 욕보이기 싫었고, 구르카 출신이 가페도 아닌 폭력 조직원들을 상대로 날뛰는 것도 내키지 않았었다.
이병렬은 그런 강성태를 이해해줬고, 덮어줬으며, 심지어 병원에서 안다미를 노리던 중국 조직원을 찾아주려 했던 모양이었다.
형? 스승? 아니면 친구?
뭐라도 좋다.
이제부터 이병렬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진짜 보스가 될 거니까.
강성태는 똑바로 몰려 있는 중국 조직원들을 향해 걸었다.
너희는 경고의 의미다.
삼합회고 지랄이고, 강성태와 이병렬이 버티는 곳에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경고.
몰려 있던 놈들 중 두 놈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성태를 향해 자세를 낮췄다.
병원에서 보았던 두 놈이었다.
강성태가 두 놈을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이야아!”
앞쪽에 있던 엉뚱한 놈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휘익! 터억! 푹푹! 푹! 피윳!
놈의 손목을 때려낸 강성태는 팔뚝, 어깨, 그리고 마지막에 목 아래를 삽시간에 갈랐다.
“이이!”
병원에 있었던 두 놈은 지켜보기만 하는데 다른 두 놈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터억. 쩌어억! 피윳! 피이잇!
왼편 놈의 무쇠 칼을 때려낸 강성태는 오른쪽 놈의 얼굴에 칼을 거꾸로 든 주먹을 꽂아넣었고, 이 두 놈의 목을 번갈아 갈랐다.
강성태가 칼을 내리기 전이었다.
팔을 드는 바람에 드러난 옆구리를 노리고 세 놈이 달려들었다.
휙! 터억! 푹푹! 피윳! 푹! 푹!
세 놈을 번갈아 찌르는 찰나에 지금껏 기회를 노리던 병원의 두 놈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꽈악!
강성태는 목덜미가 갈라진 세 놈 중 한 명의 멱살을 잡아 왼쪽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동시에 오른쪽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쩌억! 쩌어억! 쩌억! 쩌어억!
연달아 주먹을 꽂아넣자, 거꾸로 들었던 무쇠 칼의 날이 놈의 턱과 볼을 깊게 파고들어 기다란 선을 그려냈다.
강성태는 흔들리는 놈의 멱살을 잡고 급하게 몸을 돌렸다.
왼쪽에서 달려들던 놈이 사이에 낀 동료 탓에 움찔할 때였다.
강성태는 멱살을 쥐고 있던 놈의 목에 무쇠 칼을 대고 빠르게 그었다.
서거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하얗게 갈라졌던 목에서 붉게 올랐던 피가 곧바로 물줄기처럼 뿜어나왔다.
**
아르윈은 미친 듯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살면서 무섭다는 사람을 여러 명 보았지만, 공장에서 아르윈을 바라보던 강성태만큼 무서운 눈빛은 처음이었다.
강성태는 분명 다섯 명만 남았는데도 아르윈에게 이병렬과 서달수, 다친 덩치들을 맡겼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어서 조금이라도 서둘렀으면 하는 바람이 보였고, 아르윈을 그만큼 믿는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진짜는 공장에서 펼쳐질 잔인한 광경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아닌가 싶었다.
끼이이익! 빵! 빵! 빠아앙!
중앙선을 넘어섰던 아르윈이 급하게 핸들을 꺾으면서 맞은편에서 스친 승용차가 화가 잔뜩 난 경적을 울리며 달려갔다.
부으으응!
아르윈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으며 중앙선을 뛰어넘었다.
**
하나같이 목에서 피를 쏟아내는 바람에 공장 바닥은 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흘러나온 핏물로 흥건했다.
강성태는 홀로 남은 중국 조직원을 향해 걸었다.
병원에서 보았던 두 놈 중 한 놈이었다.
“그만하자.”
놈이 뒤로 물러나며 어색한 우리말을 쏟아냈다.
“내가 중국에 가서 원자춘 형님께 말씀드린다. 여기에서 그만해.”
물러나는 놈을 향해 강성태는 똑바로 걸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공장의 벽에 걸려 놈이 더는 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강성태가 곧장 다가가자 어차피 죽을 거, 하는 독기가 놈의 얼굴에 삽시간에 올라왔다.
“이익!”
터억! 푹!
강성태는 놈의 손목을 때려내고 팔뚝을 무쇠 칼로 찍었다.
푹푹! 푹! 푹푹푹!
이병렬을 이렇게 찔렀고, 기회가 되었다면 안다미의 몸에 무쇠 칼을 박아넣었을 놈이었다.
피윳! 피잇! 피잇! 핏!
옆구리, 겨드랑이, 명치를 그은 강성태는 벽에 기댄 놈의 목을 무쇠 칼로 힘껏 눌렀다.
조금 전까지 올라왔던 독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놈의 눈에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까지 거리낌 없이 넘어와 이병렬의 몸에 칼을 박아 넣었던 놈이 죽게 되니까 불쌍한 눈빛을 떠올려?
이런 순간에도 칼날을 움직이는 거, 훈련 과정에 있다니까.
서거억.
강성태는 놈의 눈을 들여다본 채 무쇠 칼을 힘껏 당겼다.
**
주차장에 급하게 차를 세운 아르윈은 내리기 무섭게 응급실로 달렸다.
“원장님! 원장님 어디 있어요?”
뛰어든 아르윈을 향해 병원 스태프들이 달려들었고, 중년 의사가 급하게 다가왔다.
아르윈의 인상과 체형, 문신을 보며 그는 곧바로 상황을 짐작하는 눈치였다.
“환자 어디 있어요?”
“주차장에 있습니다! 이병렬 형님 아십니까? 그 외에도 많아요!”
아르윈이 답한 직후였다.
“커튼 쳐! 침대 움직이고!”
급한 지시를 내린 유헌우가 응급실 출구로 달렸다.
드르르륵. 드르륵.
스태프들이 이동 침대를 끌며 달려 나오는 동안, 주차장에 도착한 유헌우는 승용차의 뒷좌석을 보며 볼을 씰룩였다.
“얼른 차를 가려요! 다른 사람들이 안 보이게! 서둘러요!”
드르르륵. 드르륵.
이동 침대를 끈 스태프들이 달려 나와 승용차 앞에 멈췄을 때였다.
“얼른 차를 가려요!”
유헌우가 또다시 아르윈에게 고함을 질렀다.
필리핀 조직원들이 승용차를 둘러싸는 사이에 유헌우는 뒤편에서 이병렬을 꺼내 침대에 눕혔다.
“혈액부터 걸어!”
지시를 건네면서 다시 몸을 넣은 유헌우가 서달수를 안다시피 당겼다.
드르륵. 드르르륵.
연달아 이동 침대를 끌고 나온 스태프들이 뒤편 승용차와 승합차로 번갈아 달렸다.
“안 박사님과 안다미 선생에게 전화 좀 넣어!”
의식을 잃은 채 피범벅인 신월동 덩치들을 차례로 꺼내며 유헌우는 지시를 멈추지 않았다.
급하게 움직이는 유헌우의 턱과 가슴, 팔과 손이 붉은 피로 범벅이어서 얼마나 급하고 심각한 상황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
강성태는 무쇠 칼을 던지고 구석에 줄줄이 묶여 있는 광룡을 향해 걸었다.
시선을 던지자 신월동 덩치가 공손한 태도로 넘어져 있던 의자를 세워 놈들의 앞에 놓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대는 몸뚱이, 지금도 계속 흘러나와 범람하는 물결처럼 퍼지는 핏물, 비릿한 피 냄새, 창을 향해 길게 들어온 햇살에도 이곳이 대한민국 안산이 아니라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달려온 소말리아의 바닷가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강성태가 자리에 앉자 힐끔 시선을 들었던 놈들이 급하게 고개를 처박았다.
“광룡의 현재 대가리가 누구냐?”
강성태의 질문에 고개를 모로 틀어 눈치를 살폈으나 묶여 있는 놈들 누구도 답을 내지는 않았다.
착각하나 본데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도망치고 싶었던 강성태였지만, 지금은 완벽한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다.
지난 세월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된다면 그렇게 눈치를 살피며 버티지는 않을 거고.
“칼 한 자루 가져와.”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에 급하게 움직인 덩치가 무쇠 칼을 거꾸로 들어 손잡이를 내밀었다.
묶여 있는 광룡 놈들만이 아니라 신월동 덩치들조차 강성태에게 완벽하게 질린 눈치였다.
강성태는 날을 아래로 해서 무쇠 칼의 손잡이를 거꾸로 들었다.
“가장 왼편 놈부터. 광룡의 현재 대가리가 누구냐?”
질문과 동시에 강성태는 몸을 일으켜 가장 왼편의 놈을 향해 움직였다.
기다려줄 줄 알고?
이런 거 전문으로 살았다니까.
“도서웅! 도서웅 형님입니다!”
강성태가 두 걸음을 걷기 전에 왼편 놈이 급하게 답을 토해냈다.
답을 토해냈는데도 걸음을 계속 옮긴 강성태는 왼편에서 두 번째 놈 앞에 섰다.
“도서웅이 지금 어디에 있냐?”
놈이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푹!
강성태는 단박에 놈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칼을 박아 넣었다.
“도서웅이 지금 어디에 있냐?”
“안중의 건물 옥상에 있습니다!”
칼이 박혀 있는 고통을 공포가 이긴 덕분에 답이 바로 나왔는데 그만큼 크고 요란했다.
이런 고함이 동료에게 더 큰 공포를 선사한다.
강성태는 왼편에서 세 번째 놈에게 움직였다.
질문도 하기 전인 데도 놈의 몸이 잘게 떨었다.
“이병렬을 노리라고 지시한 놈이 누구냐?”
“원자춘 형님입니다! 진짜입니다!”
답을 들은 강성태는 몸을 돌렸다.
“종환이에게 연락해서 갈아입을 옷하고, 여기 치울 인원을 불러.”
“예, 형님.”
지시를 내린 강성태는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연락해라, 아르윈.
병원에서 이병렬이 무사하다는 연락을.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빛이 길게 들어오는 창을 보았다.
빛을 향해 움직이려 버둥댈수록 어쩐지 그림자가 좀 더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