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 18화 (208/513)

10권 - 18화

조태완의 병실에서 나온 강성태는 곧장 방지병원으로 향했다.

월요일에 있다는 마약 파티와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가페 대원들에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출근 시간 근처에 조태완을 찾았던 덕분에 택시에 오른 것은 오전 10시였다.

어쩐지 병원 복도의 경계가 허술한 느낌에 강성태는 급하게 이병렬의 병실 문을 열었다.

텅 빈 침대, 창가에 놓인 탁자와 의자, 이병렬은 병실에 없었다.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더라도 아직 치료를 마친 게 아니라 이병렬은 병실에 있어야 했다.

서늘해지는 심정을 추스르며 강성태는 옆방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부상이 가장 심했던 김진용이 침대의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다가 반갑게 강성태를 맞았다.

“병렬이는?”

“어제 나가서 안 들어오셨습니다, 형님.”

비록 밤에 안 들어왔다고 해도 김진용이 이병렬에게 어디에 있냐고 묻기는 어렵다.

강성태는 곧바로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이병렬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이병렬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 강성태는 들리지 않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 지금 방지병원인데 지금 어디에 있어?”

- 여기? 안산 공장.

강성태의 질문에 이병렬은 태연한 답을 내놓았다.

- 어젯밤에 잡은 놈들한테서 나를 노리는 세 명하고, 병원에서 봤다는 두 놈에 대해 알아보려는 거니까 보스는 모른 척해.

“어젯밤에 우리를 지켜보던 놈들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쪽에 지금 몇 명이나 있어?”

- 여기? 신월동 숙소 애들하고 안산 애들 서넛 해서 대충 20명 정도 돼.

“위치 좀 정확하게 말해 봐.”

- 그럴 거 없다니까.

“이병렬. 위치 알려줘.”

거부하기 어렵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건넨 요구였다.

- 문자로 보낼게.

이병렬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답을 내놓았다.

믿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에 서운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런 일조차 마음대로 못 하게 하나 싶을 수도 있겠고. 그렇지만, 그런 서운한 감정보다 이병렬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바로 보내.”

- 알았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

왼편으로는 시화방조제 안쪽에 가둔 물이 바다처럼 펼쳐졌고, 오른편으로는 공장들이 즐비한 시화호수로였다.

시화호에서 떠올랐던 태양이 하늘의 정수리에 닿을 때쯤, 천천히 움직인 승용차 두 대와 승합차 한 대가 도로 한쪽에 조용하게 멈췄다.

“저 앞쪽에 승용차 세 대가 연달아 있는 공장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덩치가 앞쪽의 공장을 가리키자, 조수석 뒤에 앉은 남자가 상체를 앞으로 가져갔다.

유행이 한참 지난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햇살을 통해 옅게 보이는 눈이 몹시 작았다.

“인원 변동은?”

“어젯밤에 확인한 대로 20명쯤 있습니다. 모시러 가기 전까지 제가 직접 확인했고, 그 뒤에 지켜보던 동생에게 연락했는데 더 들어간 인원은 없었답니다.”

“나하고 눈까지 마주쳤는데 이렇게나 방심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바로 위층과 맞은편에 집을 구했다는 생각은 아예 못 했던 거 같습니다.”

“저런 수준으로 신강남파가 어쩌고 하다니,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중국말로 오간 질문과 답변의 끝에서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데 왜 광룡은 저런 놈들한테 당하고만 있었지?”

“아무래도 한국이다 보니 공안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비자 문제들이 걸려서 마음껏 활동하지 못한 면도 많습니다. 총을 사용하지 못하는 약점도 있습니다.”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인 선글라스 남자가 점퍼 주머니에서 폴더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굵직한 음성이 넘어왔다.

“이병렬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무 명 정도 있다는데 저희 다섯 명과 광룡 열 명이 왔으니 안심하십시오.”

선글라스가 답변을 건넨 다음이었다.

- 이병렬만 죽여. 그리고 혹시 한국 공안이 오면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 재판 도중이든, 형이 확정된 뒤든, 내가 알아서 송환할 테니까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 명심해라. 네 손에 이 원자춘의 운명이 달렸다.

“기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 기대하마.

통화를 마친 선글라스는 전화를 접어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런 뒤에 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저 새끼들을 해결하고 나면 뒤처리는?”

“바다에 넣어서 깔끔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운전석의 덩치가 답을 하는 사이에 뒷좌석에 앉은 선글라스는 옆에 두었던 칼자루를 집었다.

천을 벗겨내자 거무튀튀한 등에 하얗게 빛날 정도로 날을 세워둔 두 뼘 길이의 몸통이 나왔다.

“혹시 한국의 공안이 오면 모른 척하고 빠져나가서 원자춘 형님께 내용만 말씀드려.”

“알겠습니다.”

운전자의 답을 들은 선글라스는 장갑을 낀 손을 주머니에 넣어서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의 납작한 비닐봉지를 꺼냈다.

손가락을 넣어서 하얀 가루를 잔뜩 묻힌 선글라스는 코 아래로 검지를 대고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흡흡.”

다시 두 차례쯤 숨을 빨아들인 선글라스가 고개를 들었다.

“출발해.”

선글라스가 지시하자 승용차가 먼저 움직이고, 뒤에 있던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가 뒤따랐다.

**

이병렬은 하던 대로 잡아온 여덟 명을 줄줄이 묶어서 꿇려놓았고, 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여덟 명을 족치며 밤을 새웠는데 얻은 거라고는 별거 아닌 이름뿐이었다.

한낮이 다 되면서 피곤이 밀려들었고, 무엇보다 강성태가 도착할 때가 되어서 이만 끝내는 게 좋았다.

“후!”

이병렬은 꿇어앉은 놈들을 향해 한숨을 쏟아냈다.

병원에서 봤다는 두 놈을 알아내서 강성태를 안심시키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나온 한숨이었다.

“다시 물어보마. 세 놈하고 두 놈으로 따로 들어왔는데 그놈들 대가리가 봉서황이라는 놈이지.”

“그렇습니다.”

온 얼굴에 피가 엉긴 데다, 눈, 코, 주둥이가 퉁퉁 부은 놈이 체념한 것처럼 답을 내놓았다.

이병렬은 놈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입을 다물면 두 번 다시 묻지 않고 이대로 파묻어 버릴 거니까 잘 생각해. 분명 대림동에 가 있으라고 했다던데 왜 어젯밤에 그놈들이 없었지?”

퉁퉁 부은 눈을 꿈틀한 놈이 두려운 눈빛으로 이병렬을 살폈다.

“말하면 나중에 그놈들한테 죽는다, 뭐 그런 건가 본데 말 안 해도 죽어. 그것도 지금 당장.”

질문을 받은 놈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놈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병렬은 픽 웃었다.

“여기 중국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 너희 땅 아니라고. 우리도 손 안 대는 마약을 돌리는 것도 지랄 같은데 우리 보스하고 나를 노리고 칼잡이를 보내?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무릎을 짚은 이병렬이 몸을 일으켰다.

“달수야. 저 새끼들, 우리 방식대로 처리해.”

“예, 형님.”

이병렬이 몸을 돌리자 서달수가 상체를 깊게 숙였다.

“야! 연장 주라.”

몸을 세운 서달수가 손을 내밀자 지켜보던 숙소 덩치가 회칼을 거꾸로 들어 손잡이를 내밀었다.

눈 끝을 치켜세운 서달수가 회칼을 들고 다가갈 때였다.

“대림동! 대림동에 있었습니다!”

눈이 부은 놈이 묶인 이병렬을 향해 상체를 억지로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대림동에 있었다고?

이병렬은 고개만 돌렸다.

- 어젯밤에 우리를 지켜보던 놈들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쪽에 지금 몇 명이나 있어?

통화에서 들었던 강성태의 염려를 떠올린 그의 눈에 혹시 하는 감정과 설마 하는 충격이 동시에 스쳤다.

“알아듣게 다시 말해 봐.”

“위층에 하나를 더 얻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도 집을 얻어서 봉서황 형님이 거기에 묵으셨습니다!”

서달수를 돌아본 이병렬이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끼익! 끼이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고,

“뭐야! 이 새끼들아!”

거친 고함이 바깥에서 터졌다.

“이런, 씨발!”

이병렬은 곧장 문으로 달렸다.

서달수와 쇠파이프를 든 덩치들이 줄줄이 달려갈 때,

끄드드등.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함께 점퍼 차림의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단박에 이병렬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들은 모두 무쇠 칼을 들고 있었다.

이병렬은 뒤로 물러나며 무쇠 칼을 휘두르는 놈에게 주먹을 뻗었다.

휙! 퍼억! 휘익! 퍼벅!

삽시간에 팔뚝과 옆구리가 갈라진 이병렬이 연신 주먹을 뻗어 두 놈의 얼굴에 꽂았다.

“형님을 지켜!”

회칼을 든 서달수가 앞으로 튀어나갔고, 덩치들이 쇠파이프를 거칠게 휘두르며 이병렬의 앞을 막았다.

“씨발 새끼들이!”

부응! 붕!

신월동 덩치들이 짧은 쇠파이프를 휘둘렀는데,

푹! 푹푹! 푹!

“끄윽! 끄아!”

몸을 젖힌 중국 조직원에게 연달아 찔려 바닥에 쓰러졌다.

중국 조직원 중 다섯의 솜씨가 워낙 뛰어났다. 게다가 서달수를 제외한 신월동 덩치들은 모두 쇠파이프를 들고 있어서 당장 무기에서도 밀렸다.

“형님을 지켜!”

“비켜, 이 새끼들아! 놓으라고!”

“형님! 형니-임!”

덩치 셋이 이병렬을 안다시피 구석으로 피하는 사이 서달수와 덩치 다섯이 앞을 막았다.

중국 조직들은 거침이 없었다.

목표는 가장 앞을 막은 서달수였다.

“달수야! 이 새끼야! 놔!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악을 쓰는 이병렬의 앞을 막은 서달수가 발악처럼 회칼을 휘둘렀다.

푸욱.

그러나 몸을 돌리는 서달수의 배에 무쇠 칼이 제대로 박혔다.

“씨발 놈들아!”

서달수는 옆구리에 박힌 무쇠 칼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런 뒤에 회칼로 상대의 배를 연달아 찔렀다.

푹! 푸욱!

서달수가 상대의 배를 찌르는 사이, 다른 무쇠 칼 두 개가 다시 날아와 배와 옆구리에 박혔다.

“달수야!”

몸을 빼낸 이병렬은 서달수의 어깨를 잡아채고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퍼억! 퍽! 퍽! 퍼억!

이병렬이 서달수를 둘러싼 세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는 동안, 신월동 덩치들이 악착같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주변을 지켜주었다.

부응! 푹! 퍼억! 퍽!

이병렬은 또다시 팔뚝과 볼에 칼을 맞았고, 옆을 지키던 신월동 숙소 둘이 무쇠 칼에 제대로 찔려 바닥에 쓰러졌다.

이병렬은 서달수의 칼에 쓰러진 중국 조직원의 무쇠 칼을 집어 들고 달려드는 두 놈의 배를 연달아 찔렀다.

“와, 이 개새끼들아! 오라고!”

이병렬이 미친 사람처럼 날뛰자 중국 조직원들도 둘러싸기만 할 뿐,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휙! 퍼억!

한 놈이 달려들었다가 이병렬이 날린 왼손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았고,

푹! 푹푹!

“끄아-아!”

이병렬이 휘두른 무쇠 칼에 배를 찔리고 버둥버둥 뒤로 물러났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또 어떤 새끼야? 죽고 싶은 새끼는 나와!”

이병렬이 좌우로 무쇠 칼을 돌린 직후였다.

휙! 휘익! 휙!

세 놈이 동시에 이병렬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카앙!

이병렬이 한 놈의 얼굴에 왼 주먹을 꽂아넣고, 무쇠 칼로 칼 하나를 막아내는 순간,

푸욱.

무쇠 칼이 그의 옆구리에 박혔다.

“끄으.”

이를 악문 이병렬이 독기 가득한 얼굴로 무쇠 칼을 돌려 앞에 있는 놈의 배를 찔렀다.

“형님!”

“야, 이 개새끼들아!”

신월동 덩치들이 미쳐 날뛰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는데도 이병렬을 둘러싼 세 놈을 떨쳐내지 못했다.

부응! 붕! 휙! 휘익!

중국 조직원들과 신월동 덩치들이 엉겨서 이병렬을 중심으로 밀고 밀릴 때였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조용하게 움직여서 이병렬을 향해 무쇠 칼을 찔러넣었다.

푸욱.

배를 찔린 이병렬의 몸이 휘청했다.

푹. 푹. 푹.

연달아 세 번이나 무쇠 칼을 찔러넣은 선글라스가 이병렬의 앞으로 고개를 들이민 뒤에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찰나처럼 그렸다.

“개새…끼가.”

무쇠 칼을 뽑은 이병렬이 그걸 주먹처럼 휘둘렀는데 선글라스는 가벼운 동작으로 피하고 다시 칼을 찔러넣었다.

푸욱.

휘처엉, 몸이 흔들린 이병렬이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끄드드등.

공장 문이 다시 열렸다.

이병렬은 강렬하게 달려드는 빛줄기 사이로 달려오는 남자의 실루엣을 봤다.

역광이라 어둠에 쌓였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눈빛, 주저함 없는 태도.

쩌어어억!

한 방 날릴 때마다 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시원하게 터지는 소리.

으드드득!

흐려지는 시선 안에서 강성태는 여태껏 보이지 않던 방식으로 중국 조직원의 목을 돌렸다.

쩌억! 쩌어어억! 쩌억!

저거지!

우리 보스는 저래야 하지.

으드득! 으드드득! 쩌어억!

강성태가 워낙 살벌하게 달려오자 선글라스가 이병렬에게서 멀어져 공장의 벽으로 움직였다.

배를 움켜잡으며 뒤로 밀린 이병렬의 바로 앞에 강성태가 있었다.

“보스…….”

“괜찮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병원에 왔던 놈들을 잡고 싶어서…….”

“병렬아. 제발 지금은 말하지 마. 나중에 우리 병원에서 실컷 하자.”

이병렬은 웃으려고 했다.

강성태를 보는 게 좋아서.

무너지는 이병렬을 강성태가 꼭 안았다.

“안 돼. 병렬아. 진짜 안 돼.”

강성태가 울먹이는 소리를 낼 줄은 몰랐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