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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 14화 (204/513)

10권 - 14화

감자탕 국물과 밥 한 공기를 비운 강성태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 강선영은 이미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나가자.”

“나한테 할 말 없니?”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거 같다. 일단 자. 그리고 감찰 방식을 내가 모르니까 오전이든, 오후든 시간 되는 대로 전화해.”

자리에서 일어선 강성태는 계산을 마친 뒤에 강선영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지친 데다 약 탄 술의 뒤끝, 연속해서 마신 일대일 폭탄주의 위력에 강선영은 몸을 가누기 어려워 보였다.

“집이 어디야?”

“삼성동.”

식당을 나선 강선영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깡패야. 집에 가는 거 괜찮겠지? 어두운 길에서 누가 뒤통수 때리거나 하는 거 아니냐고? 밤길 조심해라, 그런 거.”

“같이 가줘?”

“오늘만 그래 주라.”

강한 척하던 사람이 부러지면 어떤 모습인지 강선영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일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면 좀 더 강해지겠지만,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사표 던지고 찌그러지는 일만 남는다.

택시를 잡은 강성태는 강선영을 뒷좌석에 태우고 조수석에 올랐다.

“삼성동 어디로 가?”

“서울병원 안쪽 빌라촌이요, 아저씨.”

강성태가 물었고, 강선영이 택시 기사에게 답했다.

술이 올라오는지 뒷좌석에 앉은 강선영이 자꾸만 길게 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두들겼다.

“약 때문에 그런가? 이상하게 술을 못 이기겠네.”

약 기운이 실제로 남았겠지. 급하게 마시기도 했고.

대꾸하지 않은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30분쯤 달린 택시는 삼성동 빌라촌에 멈췄다.

기사에게 돈을 지불한 강성태는 강선영을 따라 삼성동의 빌라 건물 앞까지 함께 걸었다.

“여기.”

비틀거리며 걸음을 멈춘 강선영이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현관 입구의 번호를 연달아 누른 강선영은 문이 열리자 안심되는 눈치였다. 솔직히 강성태도 큰 술주정 없이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고마워, 깡패.”

술에 취한 사람 특유의 모습으로 손을 흔든 강선영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유리로 된 현관문이 닫혔다.

몸을 돌린 강성태는 큰 도로로 나서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시간도 적당했다.

번호를 찾아 누르고, 신호음이 두 번쯤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막 마감 끝났다. 오늘 이상하게 매출이 좋아.

가쁜 숨소리와 함께 최치곤의 응대가 넘어왔다.

“지금 삼성동에서 서라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이거든. 차 좀 가져올 수 있냐?”

- 어디로?

“서라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봤으면 싶은데. 밤에는 세워도 되잖아.”

- 차를 두고 와서 집까지 가야 하거든. 30분쯤 걸려.

“그 정도면 딱 좋아. 부탁한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마침 손님이 내리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서라대학병원이요.”

택시의 뒷좌석에 몸을 기댄 강성태는 이어 스마트폰으로 안다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끝나는 대로 연락 부탁해요.]

한창 바쁠 시간이라 지금은 아니더라도 퇴근 전에는 반드시 확인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택시는 빠르게 달려서 30분 뒤에 서라대학병원에 도착했다.

강성태가 택시에서 내려 요금을 지불할 때,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응급실 앞인데 어디냐?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응급실 입구의 오른쪽 구석에 서 있는 차를 발견하고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곧장 걸어간 강성태가 조수석에 들어서자 최치곤이 궁금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다미 씨를 노리는 놈들이 둘 있어.”

“뭐? 누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최치곤에게 병원에서 보았던 두 놈과 어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순서대로 들려준 다음이었다.

“개자식들이 진짜! 협상하자고 해놓고, 그 틈에 다미 씨까지 노리냐? 하여간 애새끼들이 속이 시커매서 믿을 수가 없어.”

흥분하던 최치곤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급하게 문자를 확인한 최치곤이 히죽 웃었다.

“은주, 이제 집에 들어갔단다.”

저러다가 상처받으면 힘들 텐데.

강성태의 염려 앞에서 당장 최치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사람의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깨를 들썩인 강성태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 뒤였다.

“너, 술 마셨냐?”

최치곤이 질문을 건넸다.

“검사랑 마셨다. 몇 가지 의논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너무 혼란스러워해서 일대일 몇 잔 먹였다. 그 바람에 나도 네 잔인가 마셨고.”

“검사는 왜 만났는데?”

말이 나와서 강성태는 주점에서의 일도 쭉 들려주었다.

“주점은 또 어떻게 알았냐?”

“고문님 통해서 알았다.”

“그런데 두 새끼를 두들겼어? 태완이 형님이 정말 곤란하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내일 오전에 병실에 가기로 했다.”

“어쩌면 그런 놈들 둘을 그냥 갈길 생각을 하냐? 너도 진짜 강적이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는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 문자를 지금 봤어요. 무슨 일이에요?

“야식 먹을까 하고요.”

- 15분 정도 더 있어야 해요.

“알았어요. 응급실로 나와요.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 오늘 힘든 일이 많았는데 기분이 싹 풀렸어요! 끝나는 대로 갈게요.

들뜬 안다미와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최치곤을 돌아보았다.

“야간에는 응급실 통로 외에는 모두 통제되거든. 혹시 모르니까 바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 다미 씨가 먼저 나오면 차에서 좀 기다려 줘.”

“그 새끼들, 아무래도 전문가일 거 아냐? 아무튼, 조심해.”

최치곤의 당부를 들으며 강성태는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병원 본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들어섰다.

중간쯤 올라선 강성태는 주변과 응급실 앞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숨어서 지켜본다면 저놈들도 자동차에 타고 이쪽을 지켜볼 확률이 높았다.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주차장 출구 쪽에 서 있는 승용차들을 눈에 담았다.

승합차와 승용차, 모두 열 대가량이 출구를 나와 한쪽에 줄줄이 서 있었다.

앞쪽의 승용차는 안이 보이는데 뒤편은 아무래도 확인이 어려웠다.

한 번 가볼까?

강성태가 주차장 출구에 서 있는 자동차들에 집중할 때였다.

뒤편에 서 있던 승용차가 시동을 걸기 무섭게 라이트를 밝히며 천천히 움직였다.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거리가 있었고, 선팅이 워낙 진했다.

운전석, 조수석, 뒷자리에 한 놈.

강성태는 승용차에 타고 있는 숫자를 확인했고, 이어 차종과 색깔을 분명하게 눈에 담았다.

승용차가 병원을 빠져나간 뒤였다.

스마트폰에서 이종환의 번호를 찾은 강성태는 바로 번호를 눌렀다.

- 이종환입니다, 형님.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안쪽으로 승용차가 그쪽에 도착할지 모르니까 확인 좀 해줘. 차종은 B5, 진청색이고, 운전석, 조수석, 뒷자리에 세 놈 탔다.”

- 광룡의 숙소 말씀이십니까?

“응.”

- 제가 바로 나가 있겠습니다, 형님. 차가 들어오면 직접 연락드립니까?

“부탁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계단을 마저 올라가 벤치와 화단 근처를 꼼꼼하게 살폈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안에 결과가 나온다.

아까 주차장 출구에서 봤던 B5가 나타나는지, 아닌지.

만약 대림동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뒷감당 제대로 해야 할 거다.

응급실 주변을 확인한 강성태는 최치곤이 기다리는 승용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재킷과 정장 바지를 훌훌 벗어 던진 강선영은 비틀거리며 침대에 엎어졌다.

검사란 직업은 폭탄주를 연습해야 할 만큼 음주 문화가 지랄 같은 집단이었다.

살벌한 상명하복의 분위기에서 거절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속이 아무리 뒤집혀도 약한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아야 했고, 정 못 견디겠으면 조용하게 화장실에 가서 게워내고 얼른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운이 좋은지, 강선영은 술이 빠르게 늘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개 같은 간부들이 주점에 끌고 가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강선영과 같은 여자 검사들을 만지거나 껴안고 주접떤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폭행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는데 사실을 확인한 건 없어서 설마 하고 넘기기도 했다.

형사부장의 손길을 매정하게 거절하면 사건에서 배제되고, 지방으로 날아간다.

검찰청 안에서 검사가 부하 여검사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걸 누가 믿기나 할까.

“욱.”

속이 뒤집힌 강선영은 급하게 몸을 일으켜서 화장실로 뛰었다. 몇 번 속을 게워내고 나자 그나마 좀 편했다.

“씨발.”

철퍼덕 주저앉은 강선영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깡패만도 못한 새끼들.”

형사부장과 이진기, 소영천을 떠올린 강선영은 눈을 독하게 떴다.

강성태가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문득 강성태를 떠올린 강선영은 고개를 숙이며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토해냈다.

“씨발, 진짜. 왜 갑자기 외로운 거야?”

이해하지 못할 욕을 토해낸 강선영이 기어서 침대로 움직였다.

술이 아니라 아무래도 약 기운이 뻗치는 느낌이었다.

**

이종환은 오랜만에 승합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꼬마 생활할 때는 형님들의 지시를 받아 이런 짓 참 많이 했는데 중간을 넘어선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성동이라고 제 또래가 있는데 다음에 올라오면 형님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형님.”

조수석에 앉은 동생이 지루한지 슬쩍 말을 내놓았다.

“아서라. 어설프게 여기저기 인사하다가 코 물리면 괜히 입장 난처하다. 너희도 행동 잘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부탁하는 거 있으면 지금은 무조건 잘라.”

“예, 형님.”

이종환에게도 사실 청탁이 많이 들어왔다.

전주를 물었으니 강남에 단란주점 하나 차리고 싶다는 소박한 청탁부터 연예인 출연까지 오만가지 요청이 줄줄이 밀려들었다.

“성태 형님께서 우리가 올리던 거 모두 중단하게 하셨다. 그거뿐이냐? 되레 클럽과 업장에서 생긴 수입을 내려주셔서 숙소가 얼마나 풍족해졌냐? 깡패도 이제는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살아남아.”

광룡이 자리 잡은 다세대 주택을 바라보며 이종환은 말을 이었다.

“내가 돈 모으는 건 너희도 알 거다. 사고당하면 뒷바라지 제대로 해줄 거고, 은퇴하는 경우에는 작더라도 업장 하나씩 주려고 이런다. 이런 때 엉뚱한 짓 하는 건 진짜 미련하고 어리석은 거지.”

이종환이 진심으로 전하는 조언에 승합차 안이 숙연하게 바뀌었다.

“깡패짓하고 나서 상점 주인들이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인사, 나는 처음 받았다. 이게 모두 성태 형님 덕분이라는 거 잊지 마라. 안산 정리하실 때 형님이 어떠셨는지 모두 들었을 거 아냐?”

“안 그래도 그거 때문인지 행사가면 지방 선배들도 한 수 접어주십시다. 그러면서 성태 형님이 진짜 그렇게 잘해주시냐고 물으십니다.”

“그럴수록 더 잘해.”

동생이 건넨 말을 이종환이 받았을 때였다.

“형님!”

운전석에 있던 덩치가 몸을 눕히며 이종환을 불렀다.

들어선 차량은 강성태가 말한 진청색 B5 승용차였다.

조수석 의자에 몸을 숨긴 이종환이 지켜보는 앞에서 실제로 세 놈이 내려서 숙소로 들어갔다.

**

최치곤, 안다미와 함께 포장마차에 들어선 강성태는 국수와 몇 가지 안주를 시켜놓고 함께 먹었다.

내일을 위해 가볍게 맥주를 마셨는데 놀라운 건 최치곤의 변화였다.

“내일 카페 지키려면 좀 자둬야 해서 나는 이만 들어갈란다.”

실제로 최치곤은 피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쉬는 날은 없어요?”

“은주가 안 만들어줘.”

“그걸 은주가 결정해요?”

“말하면 길어. 먼저 들어간다, 성태야.”

손을 들어 보인 최치곤이 포장마차를 나섰다.

“치곤 씨가 혹시 은주 좋아해요?”

강성태가 보기에 전혀 표시 나지 않았는데 안다미는 어떻게 그런 눈치를 알아챘을까?

“아까 은주가 휴일 결정한다고 할 때요. 평소 같으면 짜증냈을 일인데 은주 이야기를 할 때 치곤 씨의 눈이 웃고 있었어요. 진짜 그래요?”

“마음이 기운 건 있나 봅니다.”

“와! 치곤 씨가 은주를요?”

최치곤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던 안다미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다음 주 금요일에 식사하는 거 알죠?”

“이모가 기대 많이 하시는 거 같던데요.”

“우리 아빠도 이상하게 설레어하셔요.”

그렇게 둘이서 20분쯤 시간을 더 보냈다.

그사이 강성태는 안다미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는 말을 할지 말지, 몇 번을 고민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때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형님. 말씀하신 차가 도착했고, 세 놈이 지금 막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안다미가 불안하지 않도록 강성태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봐.”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일이에요?”

“마약을 돌리는 놈들이 나타났다는 전화입니다.”

혹시 옆에서 들었을까 봐 좌우를 돌아본 안다미가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진짜 이 정도로 마약 거래하는 사람이 흔한 거예요? 아니면 성태 씨가 그쪽에 특화돼서 그런 거예요?”

“클럽이나 업소에서는 일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거기에 약을 뿌리고 싶어 하는 해외 조직이 우리나라를 탐내는 수준이고요.”

“너무하네.”

“그래서 말인데요. 내가 그런 조직을 막을수록 다미 씨를 노리는 야비한 인간들이 생길지 모릅니다.”

“성태 씨가 지켜줄 거잖아요.”

강성태는 안다미를 향해 가볍게 웃었다.

“출근이나 퇴근할 때 내가 지켜줄 건데 괜찮을까요?”

“그럼 성태 씨가 출퇴근을 함께해주는 거예요?”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았는데 강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분쯤 더 있은 뒤에 강성태는 안다미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택시를 잡아서 함께 타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는데 안다미는 그런 시간이 오히려 행복한 표정이었다.

“잘 자요.”

“오늘 즐거웠어요.”

강성태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를 꿀꺽 삼킨 안다미가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걸 지켜본 강성태는 바로 몸을 돌리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 이종환입니다, 형님.

“지금 택시 탈 건데 어디로 가면 돼?”

- 대림역 복개천 방향입니다, 형님.

자세한 위치를 들은 강성태는 손을 들어서 택시를 잡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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