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10화
강선영이 돌아간 뒤에 통화했던 조태완이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볼 정도로 강선영과의 대화는 예상 밖이었다.
어수선한 하루를 마감한 강성태는 참 오랜만에 지친다는 심정으로 빌라에 들어섰다.
마약을 막겠다고 나선 길에서 조직 보스가 되더니 오늘은 뭐라 해도 검사를 때릴 뻔했다.
혹시 모르는 사이에 폭력에 익숙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강성태는 식탁에 앉아 거실 창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오늘은 이 정도에서 쉬었으면 싶었는데 울리는 전화를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여보세요?”
- 난데 내일 시간 되나?
조태완이었다.
- 삼합회를 맞이하는 건 아무래도 우리가 관리하는 호텔이 편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아우라 호텔 2층의 연회장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내일 돌아보는 거 어때?
“직접 오시려고요?”
- 병원에만 있으려니까 갑갑해서 그러지. 오후 1시 어때?
“그러시죠.”
- 아, 그리고 검사 건은 적당하게 넘어갈 거 같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뭔가 확실한 건을 잡은 듯한 조태완의 언질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
강선영은 출근하기 무섭게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 지금 바로 올라와.
“예.”
통화를 마친 강선영을 계장이 근심스럽게 보았다.
“뭐라십니까?”
“올라오라네요.”
“그거 보세요. 어제 괜히 커피숍에 가시더니….”
툴툴대던 계장이 강선영의 눈치를 살피며 목을 움츠렸다.
방을 나선 강선영은 곧장 형사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을 향해 똑바로 다가간 강선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이었다.
“너는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대뜸 형사부장의 질책이 날아들었다.
“감찰 대상으로 지정됐으니까 사건 전부 넘기고 당분간 감찰반에 협조해.”
책상 끝을 내려다보던 강선영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왜? 할 말 있어?”
“제가 왜 감찰 대상입니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협조하잖습니까.”
“푸후.”
형사부장은 대놓고 못마땅한 느낌의 숨을 내쉬었다.
“너 여동생 있지?”
강선영이 고개를 비트는 순간이었다.
“어젯밤에 클럽에서 약에 취해 행패 부리다가 경찰관 폭행하고, 그거로도 모자라서 언니가 검사인데 가만 안 두겠다고 기물파손에 협박까지 했단다. 됐냐?”
“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도 내가 알아봐 줘야 하는 거냐?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부장님. 이거 작업당한 건지 모릅니다. 제가 어제도 신강남파 두목이라는 강성태를 찾아갔었는데…….”
“너 어제도 거기 갔었어?”
형사부장이 눈을 치켜뜨며 던진 질문에 강선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쪽은 내가 손 떼라고 한 거 같은데?”
“어제 확실한 정보도 확보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하나만 허락해주시면 이우섭 국회부의장 아들과 JBC 회장 아들에 대한 마약, 강제투약, 성폭행 혐의를 입증하겠습니다.”
상체를 기울이며 급하게 쏟아낸 강선영의 보고에 형사부장은 가슴이 들썩이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잘못됐는데?
형사부장의 반응이 이상해서 강선영은 묘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이 새끼, 알고 있었지?”
“예?”
“알고 있었으면서 눙친 거 아냐!”
“무슨 말씀이신지……?”
“어젯밤에 그 잘난 여동생께서 함께 술 마신 상대가 지금 네가 말한 두 사람이다. 그런데 뭐? 압수수색 영장을 주면 마약에 강제투약에 성폭행으로 엮겠다고?”
형사부장은 경멸한다는 투로 강선영을 노려보았다.
“야, 이 새끼야! 네 여동생에게 얻어맞고도 사건 무마한 게 그 두 사람이야! 망신스러우니까 가능하면 조용하게 처리 부탁한다는 전화도 받았는데 성폭행 혐의를 증명하겠다고?”
강성태가 작업한 게 아니었나?
말문이 막힌 강선영은 변명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야! 나가. 나가라고!”
고함을 버럭 지르는 형사부장에게 힘겹게 인사한 강선영이 쫓기듯 몸을 돌렸다.
**
삼합회를 만나는 장소를 사전에 돌아보는 일이었다.
그날에 대비해 셔츠에 정장을 입은 강성태는 택시에서 내려 아우라 호텔로 들어섰다.
언젠가 이곳 커피숍에서 조태완을 붙들고 객실로 올라갔던 바로 그 장소여서 뭔가 의미가 남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성태가 들어서자 급하게 고개를 숙인 덩치 둘이 빠르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밖에서 동생들이 기다렸는데 형님을 못 봤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가뜩이나 시선을 끄는 강성태를 손님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고 있었다.
“택시로 와서 못 봤겠지. 고문님은?”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형님.”
덩치 둘이 앞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2층이라며? 계단으로 가.”
강성태의 요구에 덩치 둘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통로를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비상용 계단이 아니라 로비 중앙 안쪽에 넓고 크게 연결된 계단이었다.
위로 올라가자 거대한 연회장 문이 열려 있고, 그 앞에 서 있던 덩치들이 상체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안쪽은 한쪽 벽을 병풍으로 막아둔 걸 제외하면 텅 빈 연회장이었다.
“보기 좋네! 어지간하면 그렇게 입고 다녀.”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이 흡족하게 바라보는 사이, 뒤에 서 있던 김정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때? 마음에 들어?”
강성태는 다시 한 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테이블을 길게 놓을 거고, 삼합회 임원들이 저쪽, 우리가 문을 등지고 앉아서 마주보는 거지.”
조태완은 테이블이 놓일 자리를 양손을 이용해 보여주었고, 이어 앉는 자리까지 설명했다.
“식사는 스테이크, 술은 와인하고 코냑, 위스키를 준비할 생각이다.”
“인사나 하자는 자리인데 굳이 식사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먹든, 안 먹든, 일종의 룰이라고 이해해. 이야기가 잘 풀리면 건배를 할 수도 있잖나.”
대강 진행순서를 들은 강성태는 병풍 옆에 있는 작은 문을 열어 건너편을 확인했다. 병풍 뒤로 거대한 문이 있어서 그걸 열면 연회장을 두 배로 넓게 쓰는 방식이었다.
“잠시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출구, 복도, 양쪽 끝의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동선, 천장의 구조, 심지어 맞은편의 주방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서야 강성태는 다시 조태완에게 돌아왔다.
“준비한 것 좀 가져와.”
강성태를 기다렸던 조태완이 지시하자 덩치 둘이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왔고, 호텔 직원인 듯한 남자가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보스를 위해서 내가 특별하게 부탁한 커피.”
자랑스럽게 커피를 권한 조태완이 고개를 돌려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김정훈마저 밖으로 내보낸 조태완이 상체를 기울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하늘이 도왔어. 우연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짜 맞춘 듯 들어맞냐 이거지.”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성태는 시선만 들었다.
“강선영이라는 검사 말이야. 어젯밤에 여동생이 클럽에서 이우섭 부의장 아들하고 방송국 회장 아들에게 걸렸지 뭔가. 둘이서 작업하려다가 검사 여동생이라고 악쓰니까 물러난 모양인데 그 덕분에 강 검사가 감찰 대상에 올랐지.”
나직하게 내용을 전한 조태완이 흡족한 얼굴로 몸을 세웠다.
“보스에게 전화하기 전에 방송국 회장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더라고. 나머지는 짐작하지?”
“우리가 관리하는 클럽에서 벌어진 일입니까?”
“보스가 그렇게 잡아대는데 우리 클럽에 마약을 하겠나? 강남의 경쟁 업소인데 그쪽에서도 일을 크게 만들기 싫으니까 얼른 덮은 거지. 이거로 그 검사는 끝났다고 봐.”
좋은 커피였다. 그런데 어쩐지 뒷맛이 무지하게 썼다.
영상을 보여준 그날 밤에 어떻게 두 인간이 강선영의 여동생을 건드릴 수 있는 건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이제 골치 아프게 했던 검사는 잊어버리고, 삼합회를 맞을 준비에 집중하자고.”
“알겠습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연회장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사람 사는 게 참 희한해. 이 호텔에서 보스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이렇게 둘이 앉아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서도 못 했었는데 말이지. 이 조태완이 가장 믿는 사람이 보스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커피는 어때?”
“씁니다.”
“흐하하! 그렇지? 진짜 좋은 커피라고 해서 나도 한잔 마셔봤는데 쓴맛밖에 안 나더구만.”
어젯밤의 소식과 더불어 모처럼 나온 외출이 만족스러운 듯 조태완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
조태완과 헤어진 강성태는 택시로 이동해 커피알리고에 들어섰다.
최치곤과 이은주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고, 안쪽에 있던 여중생들이 눈에 하트를 그려내며 정장을 입은 강성태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학생들과 눈인사를 나눈 뒤였다.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
“보기 좋은데 그냥 있어. 손님도 없는 시간이잖아.”
고작 사흘째인 최치곤이 마치 카페의 주인인 양 넉넉한 태도로 강성태를 붙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메리카노나 한 잔 만들어주라.”
“오케이.”
시원하게 대답한 최치곤이 원두분쇄기 앞으로 움직일 때였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어라? 또 오셨네?”
최치곤의 독특한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 사람은 강선영이었다. 안을 살핀 그녀는 다용도실 앞에 서 있는 강성태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지치고, 황당하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온통 뒤엉켜 있어서 강선영은 강성태를 찾아와 하소연하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눈빛이었다.
“이야기 좀 하자고.”
숨을 길게 내쉰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고, 이어 주방에서 홀로 나섰다.
테이블에 앉자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강선영은 곧장 커피알리고의 문을 밀며 나갔다.
“잠깐 나갔다 올게.”
문을 열고 나가자 강선영은 계단 입구에 기대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후우.”
피우던 담배를 툭 떨어트린 강선영이 발로 비볐다.
“여기 2층 사무실은 좁아서 그런데 담배 피우며 말할 곳 없냐?”
“차로 10분, 걸어서는 20분이면 도착하는 고수부지가 있는데 어때?”
“그럼 내 차로 가자.”
강성태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강선영은 소형 승용차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털털한 건지, 저런 옷이 여러 벌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강선영은 어제와 같은 복장이었다.
승용차가 출발하자 강성태는 빌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괜히 빨리 간답시고 지하차도를 지나다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오후라 길이 막히지 않았다.
고수부지에 도착한 강선영은 성격 있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쭉 당긴 다음 운전석에서 내렸다.
“좋네!”
고수부지를 돌아본 강선영이 알아서 벤치로 걸었다.
피곤한데?
강성태는 잠자코 따라가 강선영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잣 같은 일이 있었는데 난 네가 작업한 줄 알았다.”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던 강선영이 힐끔 시선을 던졌다.
“알고 있었냐?”
“두어 시간 전에 들었다.”
“깡패 새끼들이 진짜 빠르네, 씨발. 아! 이건 혼잣말로 욕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자.”
눈과 입술을 고약하게 뒤튼 강선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동생을 만나고 곧장 이리 왔다. 부의장 아들 이진기, JBC 회장 아들 소영천, 이 두 새끼하고 자리했는데 아무래도 약 탄 술을 먹인 거 같다더라. 도저히 안 되겠다고 여긴 순간에 내 이름을 팔았다고 하더라. 그래야 당하지 않을 거 같아서.”
상체를 기울여 팔을 허벅지에 올린 강선영이 “후!” 하며 갑갑한 속을 토해냈다.
“감정 조절이 안 되기도 했고, 경찰인지도 몰랐다더라. 몸에 손대지만 못하게 한다는 게 나중에 보니까 경찰을 폭행했고, 기물파손, 직원 폭행까지 한 이유라고 말하면서 울더라고.”
입술을 내민 강선영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사건 넘겨받으면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먼저 읽어. 성폭행, 성추행 조서는 씨발, 진짜 엿 같아. 오죽하면 내가 조서 다시 받다가 성폭행한 놈 따귀를 때렸겠냐.”
몸을 세운 강선영이 이를 질끈 깨문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물었지. 얼마나 당했냐고. 약에 취한 뒤에 성폭행만 없었지 온갖 짓은 다 했더라. 그래서 말인데.”
말끝에 강선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 개새끼들. 어떻게 해야 되냐?”
“뭐?”
“그 새끼들 잡아 죽여야겠는데 방법 좀 알려주라.”
“정신 차려. 너, 검사야.”
“어제 사무실에서 보여준 영상, 그런 거로는 나도 못 잡는다고 알고 있으니까 보여준 거잖아. 너는 방법 있지? 그래서 그렇게 자신 있었던 거잖아?”
강선영은 광기마저 도는 눈으로 강성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법만 알려주라. 죽이는 건 내가 할게.”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낸 강선영이 여전히 광기 어린 눈으로 답을 기다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