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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 9화 (199/513)

10권 - 9화

커피알리고로 가는 택시 안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고문님. 잠시 통화했으면 합니다.”

- 지금 괜찮아. 무슨 일인데?

조태완에게 전화한 강성태는 강선영의 방문과 생각했던 계획을 내놓았다.

“집안도 괜찮고, 쭉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사람이니까 적당히 상대해 보겠습니다.”

- 굳이 그럴 필요 있어? 그렇게 적대감을 키워두면 오히려 등 뒤에 칼이 생기는 느낌인데?

“힘으로 눌러 지방으로 보낸다면 그게 더 위험합니다. 좌천됐다고 앙심을 품을 테니까요. 어느 쪽이든 위험 부담이 있다면 차라리 이 방법이 더 나을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스마트폰을 통해 조태완의 무거운 한숨이 들렸다.

- 판단해서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물러나자. 그 정도는 보스가 알아서 판단하기로 하고, 끝나는 대로 전화 한번 줘. 그래야 나도 대책을 세우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택시에서 내린 강성태는 곧장 커피알리고로 들어갔다.

저녁을 맞아 테이블이 거의 다 손님으로 가득했다.

강성태는 먼저 낯익은 손님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창가에 앉은 강선영과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를 돌아보았다.

강선영은 도전적인 시선이었고, 중년 남자는 뭔가 켕기는 눈치였다.

“뭐야? 왜 왔어?”

“생각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주문대 앞에 선 강성태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최치곤과 이은주를 다독였다.

“비스킷 두 개만 줘.”

“오케이.”

강성태가 밀어붙인다고 여겼는지 최치곤은 더 이상 말리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작정한 일이었다.

삼합회를 감당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검사가 거치적거리면 움츠리는 건 강성태 쪽이 되고 그런 모습이 희생자를 만들 수 있어서 피하는 건 답이 아니었다.

비스킷을 받은 강성태는 곧장 창가로 움직였다. 그리고 강선영의 테이블 앞에 섰다.

“자주 찾아주신 데 대한 감사의 인사로 비스킷을 좀 가져왔는데 드시겠습니까?”

어쩌면 시비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서 강성태를 바라보는 강선영의 눈 끝이 파르르 떨렸다.

“괜찮으니까 가져가요.”

답은 중년 남자가 내놓았다. 그런데도 강성태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서 강선영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이 양반이? 가져가라니까!”

중년 남자의 음성이 한 톤 높게 나왔다.

강성태는 보란 듯이 픽 웃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 어딜 와서 까불어?’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강선영의 볼이 씰룩이며 낯빛이 훅 붉어졌다.

좋은 집안, 내내 잘했던 공부, 사법고시 통과, 우수한 연수원 성적, 중앙지검의 검사가 되었다는 엘리트 의식이 그녀의 눈빛과 떨리는 눈가, 씰룩이는 볼에 그대로 드러났다.

강성태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거기 서요.”

명령조의 요구가 강선영에게서 있었다.

몸을 돌린 강성태가 다시 강선영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감정이 상해서 부르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는 눈치였다.

“비스킷 드려요?”

강성태의 질문에 강선영이 입술을 암팡지게 뒤틀었다. 거기에 강선영이 불러 세운 탓에 중년 남자는 가라 하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더 밟아대기보다는 이 정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좋았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아봐요.”

지기 싫어서 허락하는 강선영과 맞은편의 중년 남자 사이로 강성태가 앉았다.

“알고 오셨겠지만, 강성태입니다. 강선영 검사님은 알겠는데 이분은 모르겠습니다.”

강성태는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중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사님인 거 알고 있으면 적당히 하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뭐?”

강성태가 말투를 바꾸자 중년 남자가 발끈했다.

“남의 업장에 와서 그 잘난 검사 신분증으로 공포 분위기 조장하는 거 적당히 좀 하라고.”

“하아, 참. 당신 이러다 정말 후회할 수 있어.”

“누가 후회하는지 한번 해봅시다. 적당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다시 찾아와서 긁어댄 건 여기 검사님이니까.”

강성태를 마주 보던 남자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나갔다가 뒷수습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그의 동작에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커피 맛있게 드시고 다음에는 안 봤으면 싶습니다. 그럼 편한 시간 되세요.”

강성태가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당신, 진짜 해볼 생각 있는 거지?”

강선영이 새파랗게 독기 오른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되면 또 계획했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랑 내기 하나 할까요? 내가 지면 원하는 대로 모두 진술해 드리죠.”

강선영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내가 지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됩니다.”

“뭔데? 구속된 깡패 빼달라는 거면 곤란해.”

“법에 위반되는 일이면 거절해도 됩니다.”

이건 뭐지?

강선영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뭘 하자는 건데?”

“위에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죠.”

강성태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강선영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위층이 보일 리도 없는데 성격이 그런 모양이었다.

시선을 내린 강선영이 고민되는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검사님?”

속삭이듯 강선영을 부른 중년 남자가 말려들지 말라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앙지검 검사님을 상대로 수작을 부리거나 주먹을 휘두를 만큼 미련하지는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겁나시면 그냥 일어나고요.”

단순한 면으로는 진짜 검사장급이 아닌가 싶을 정도 강선영의 눈가가 또다시 파르르 떨렸다. 깡패에게 밀리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확 상하는 눈치였다.

“계장님. 여기 계세요.”

“검사님?”

“일어나.”

다급하게 매달리는 계장을 외면한 강선영이 먼저 몸을 세웠다.

옅게 웃은 강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카페의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흥미진진한 표정의 최치곤과 걱정스러운 눈빛의 이은주가 서 있는 주문대를 지난 강성태는 커피알리고를 나섰다.

강선영은 여전히 정장 재킷에 블라우스를 입었고, 주머니에 신분증을 걸어놓았다.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계단으로 향한 강성태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위를 흘끔 살핀 강선영이 조금 뒤에 올라왔을 때, 강성태는 이미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이은주가 아침저녁으로 관리한 덕분에 사무실은 깔끔했다.

“앉으시죠.”

좁은 사무실을 둘러본 강선영이 어딘가 맥 빠진 얼굴로 문 쪽 소파에 앉았다.

길게 말할 거 없었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클라우드를 연결했다.

“이걸 한번 보시죠.”

액정에 그려진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바로 움직였다.

샴페인, 잔, 안주가 놓인 테이블 너머의 의자에 눕다시피 밀려난 고영주를 한 놈은 올라탔고, 다른 한 놈은 팔을 붙들고 있었다.

두 놈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보았다.

- 살려줘!

고영주의 하체에 올라탄 놈이 주사기 든 손을 감추지도 않은 채 눈알을 부라렸다.

- 넌 뭐야, 이 새끼야! 안 나가!

강성태는 화면을 멈췄다.

의아한 듯 눈을 찌푸리며 액정을 바라보던 강선영이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주사기 보셨습니까?”

답은 없었다.

“주사기를 든 사람이 이진기라고 이우섭 국회부의장의 아들입니다. 팔을 붙든 사람은 JBC 회장 아들이고. 이 두 사람은 마약을 상습으로 투여했고, 이렇게 강제로 여성에게 마약을 주입해서 성폭행했습니다. 체포해서 처벌할 수 있습니까?”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안 돼.”

“지금이라도 두 사람 잡아서 머리카락만 넘기면 투약 혐의는 입증될 테고, 여기 피해 여성과 당시에 일하던 직원들, CCTV 기록, 전부 증거로 드리죠.”

강선영은 말문이 턱 막힌 얼굴이었다.

“내가 이긴 겁니까?”

“내기를 한 적이 없잖아?”

“반말하지 마.”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강성태의 날선 대꾸와 차가워진 눈을 보며 강선영이 파르르 독기를 피워냈다.

“깡패 주제에 어디에서 건방을 떨어? 너 정말 죽고 싶어?”

“죽일 수는 있어?”

이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꾸였는지 강선영은 정말이지 늦가을의 독사처럼 파랗게 독을 피워냈다.

“이 새끼가!”

휙. 터억.

따귀를 날리는 강선영의 손목을 잡아챈 강성태는 곧바로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검사라고 해서 수준이 좀 될 줄 알았더니 성질대로 안 되면 손찌검이나 하는 양아치였네. 나갑시다. 그리고 서로 한번 해봅시다. 누가 더 곤란해지는지.”

“이젠 협박도 하니?”

“여기 이우섭 국회부의장하고 JBC 회장이 나서서 힘쓰면 당신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그렇다. 하나 더 말해줄까? 다음 주에 중국 삼합회 고위 간부가 우리나라에 온다. 대림동에서는 마약이 돌고. 그걸 잡을 자신은 있냐?”

“그걸 형사부에서 왜 잡아? 마약은 다른 부서 소관이야!”

“삼합회는 폭력조직인데?”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파랗게 독기가 오른 상태에서 강선영이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그려냈다.

“일어납시다. 카페에 또 오는 건 알아서 하시고, 다음번에 올 때는 검찰 신분증 다른 주머니에 넣고 오십시오. 내가 다 부끄럽습니다.”

“야, 강성태?”

강성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너, 진짜 두고 보자.”

“편할 대로.”

자리에서 일어선 강선영이 또다시 팔을 휘두를 것처럼 매섭게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머리끝이 강성태의 턱에 닿을 정도여서 눈이 반쯤 뒤집힌 느낌이었다.

계획대로 했는데 결과는 최악이었다.

이제는 정말 강선영을 지방으로 밀어내느냐, 아니면 신강남파가 검찰에 줄줄이 잡혀가느냐의 싸움만 남은 꼴이었다.

“하우, 씨발.”

시선을 창으로 돌린 강선영이 거친 욕을 내뱉었다. 그런 뒤에 홱 고개를 돌려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내가 나이가 많잖아.”

이게 뭔 소리지?

“반말은 좀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냐?”

기가 막혀서 이번엔 강성태가 실없는 웃음을 토해냈다.

“그 영상 줄 수 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반말하지 마라.”

“이건 내 성격이야. 싫으면 그만 가고.”

“아, 나. 씨발 진짜.”

“내 앞에서 욕했던 사람 최후가 어떤 건지 알면 쉽게 욕 못 할 거다.”

“씨발. 씨발. 씨발. 이제 어떻게 할……!”

휙!

강성태의 주먹이 눈 바로 앞에서 멈추자 멈칫했던 강선영이 털썩 소리가 나도록 소파에 주저앉았다.

검사라는 신분 아래는 모두 노예쯤으로 취급하는 태도와 눈빛, 말투에 화가 나서 하마터면 정말 갈겨 버릴 뻔했다.

“그런 유치한 짓은 검사 신분증 보여주면 고개 숙이는 양아치들 앞에서나 해. 이 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나도 너 주저앉히는 데 최선을 다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강성태의 눈에 담긴 살기를 감당하지 못한 강선영은 제대로 놀란 모양인지 독기니 지랄이니 전혀 없이 그저 멍한 얼굴이었다.

“나가.”

강성태의 냉정한 눈빛과 음성에 질린 얼굴로 강선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방을 나섰다.

“후우.”

잘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검사가 있고, 그 아래 일반 시민, 그리고 검사가 노리는 범인이 있다는 투의 태도에 정말이지 화가 나서 강성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왜 이렇게 흥분했지?

숨을 가다듬은 강성태는 방을 나와 문을 잠근 뒤에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강선영은 정장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도 잊은 채 계단의 가장 아래쪽에 앉아 있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

강성태가 계단을 내려가 옆으로 비켜서 지나칠 때였다.

“담배 있니?”

강선영이 불러서 강성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담배 피울 거 아냐? 있으면 하나만 주라.”

“안 피워.”

“깡패가 씨발. 담배도 안 피우고.”

진짜 근성 하나는 인정해줄 만한 상대라는 생각에 강성태는 그냥 한숨만 길게 내쉰 채 대꾸하지 않았다.

“이우섭 국회부의장 아들 잡으면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진술하는 거지? 증거도 다 내놓고?”

강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긴. 안 내놓는다고 해도 클라우드 압수 수색을 하면 나오겠지.”

일어서기도 지친다는 투로 강선영이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뒤에 털털하게 엉덩이를 손으로 탁탁 털었다.

“내일 보자.”

그사이 냉정을 찾은 얼굴이었다. 다만, 처음에 보였던 독기가 완전히 꺾여서 지금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피곤한 스타일인데?

강성태는 어쩐지 정말 독한 상대를 만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카페알리고의 입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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