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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 7화 (197/513)

10권 - 7화

병실을 나선 강성태는 승용차의 뒷좌석에 이병렬과 함께 앉았다.

강성태와 조태완, 단둘이 나눈 이야기가 궁금할 법도 한데 이병렬은 거짓말처럼 내색하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르윈이 전화했었다.”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이병렬이 강성태의 시선을 당겼다.

“약 파는 놈들을 잡아놨다고 바로 오면 된다더라.”

“혼자서?”

“생활 접은 놈 하나에 반달 둘이 운영했다던데? 내 이름 팔았더니 얌전히 고개 떨궜단다. 가뜩이나 며칠 전에 안산 식구들 흡수해서 영향력이 졸라 커진 거지.”

통화 내용을 전해주며 이병렬이 픽 웃었다.

“아르윈 말이다. 그 새끼 묘하게 날 닮았다.”

강성태는 확인하듯 이병렬을 들여다보았다.

“생긴 거 말고. 아무렴 인물이야 내가 훨씬 더 낫지.”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달수한테 그랬다던데? 혹시 보스가 죽어야 하는 자리 같은 거 있으면 꼭 불러달라고. 그 새끼, 외로웠던 거야. 가디언스파를 이끌고는 있었지만, 진심으로 믿고 따를 형님이 있었으면 싶었던 거지.”

“너도 그랬냐?”

“달수랑 애들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지만, 믿고 따를 보스가 있었으면 한 건 같지.”

말을 마친 이병렬이 앞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뭐가?”

“태완이파와 신호남파 잡아서 단숨에 신강남파 만든 거. 거기에 애들 똘똘 뭉쳤지. 서울은 물론이고, 아래쪽 조직에 확실하게 알렸지. 누가 한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강성태는 잠자코 있었다.

“태완이 형님이 아기 가졌다고 할 때까지만 이대로 갔으면 싶다.”

뭐지?

밖에서 들을 리 없는데?

“뭘 그런 눈으로 봐? 태완이 형님이 절대 자식 안 낳겠다고 한 말, 들었잖아? 그럴 일 없으니까 앞으로 쭉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건데 이해하기 어려웠냐?”

서달수는 방지병원이 아니라 안산을 향해 곧장 차를 몰았다.

**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주황색 시트지로 창을 가린 성인용품 전문점이었다.

가게 앞에 차를 세우자 네온사인을 이용해 성인용품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붙인 문이 열리며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 둘이 나왔다.

“오셨습니까?”

필리핀 조직원 둘은 아직 우리 말이 어설픈지 고개만 숙였다. 그러나 아르윈에게 제대로 배운 모양으로 인사만큼은 신강남파 덩치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쪽입니다, 형님.”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아르윈이 안내하는 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왼편 안쪽의 진열장과 선반에 상상을 초월하는 성인용품이 있었고, 오른쪽은 생수기와 믹스 커피, 종이컵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성인용품이 놓인 진열장과 선반을 지나자 벽 안쪽에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세 놈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깊게 숙였다.

“말했던 신강남파 형님들이시다. 쉽게 가자.”

“예, 형님.”

아르윈과 목덜미에 새겨놓은 해적이 함께 으르렁거리자 세 놈이 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래도 가디언스파를 이끌던 아르윈이었다. 그런데도 강성태와 이병렬을 직접 모신다는 자부심이 놈의 얼굴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약은 어디에서 구했어?”

“예? 형님?”

긴장한 탓에 반문한 모양인데 아르윈과 해적 문신이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자 놈이 잽싸게 다시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 들어옵니다, 형님. 광룡 쪽 동생들이 밀어줘서 판매했습니다. 발기부전제는 개당 120원이고, 형님. 최음제는 병당 200원에 들어옵니다, 형님.”

아르윈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놈은 시원시원하게 답을 내놓았다.

강성태가 부드럽게 질문하는 게 걸린 모양이었다.

이병렬이 뒤쪽 벽에 쌓인 박스를 둘러본 뒤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받아서 얼마에 팔았냐?”

“30알 들어있는 병당 15만 원, 두 병 사면 22만 원에 팝니다, 형님.”

“그걸 사는 사람들이 있어?”

“단골도 있습니다, 형님.”

워낙 싹싹하게 답을 하는 데다, 내용이 기막혀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팔았는데?”

“사이트 통해서 7천만 원 정도 팔았고, 형님. 성인용품점에 한 알당 1천 원씩 넘겨서 5백만 원 정도 벌었습니다, 형님.”

“광룡에는 개당 120원 쳐서 줬을 테고, 그럼 가겟세 내는 거 말고는 다 너희가 먹는 거네?”

“단속 나오는 형님들한테 봉투하고 물건 좀 드립니다, 형님. 그 외에 사이트 관비리, 월세, 택배비, 이렇게 빠집니다, 형님.”

조금은 쭈뼛대는 기색으로 답을 내놓은 놈이 강성태와 이병렬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신강남파가 약을 취급하려고 하나 하는 염려와 기대가 놈의 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알았다.

이제부터는 강성태가 정말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차례였다.

이병렬이 보여주었던 태도를 기억하며 강성태는 놈을 향해 질문을 내놓았다.

“흥분제가 물에 타는 마약이라는 건 알고 거래한 거냐?”

“예? 형님?”

곤란한 질문에 반문했던 놈이 아르윈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물뽕은, 형님. 광룡이 병으로 줍니다, 형님.”

“그러니까 그게 물에 탄 필로폰이라는 거 알았냐고 묻잖아.”

“죄송합니다, 형님.”

강성태의 눈매를 확인한 놈이 얼른 고개를 떨궜다.

“흥분제는 얼마나 팔았어?”

“발기부전제 두 병 사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넘긴 게 대략 100병 정도 되고, 형님. 나머지는 다섯 개 세트로 해서 17만 원씩 받았습니다, 형님.”

“얼마나 팔았냐고 묻잖아?”

“2천만 원 정도 팔았습니다, 형님.”

마약이 이런 식으로 퍼지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미 깊숙하게 깔리고 있다는 점도 새롭게 알았다.

이제야 내용을 제대로 알아챘는지 고개를 비틀고 있던 이병렬이 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새끼들 봐라? 야, 인마. 발기부전제 사는 손님한테 서비스로 주면 그 양반들은 물뽕인 것도 모르고 받았을 거 아냐?”

“사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진짜 흥분제인 줄 알고 삽니다, 형님. 그래서 처음 사용하는 여자에게는 반병만 먹이라고 사용설명서를 붙여줍니다, 형님.”

“그럼 마누라한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거 아냐?”

“그렇게 단골이 된 손님들 많습니다, 형님.”

“이런 미친 새끼들이!”

확 바뀐 이병렬이 눈매를 본 놈이 목을 움츠렸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남편은 진짜 흥분제인 줄 알고 타 먹이고, 부인은 약을 먹은 줄도 모르고 당하는 건데, 갈수록 양을 많이 써야 한다는 거 몰라? 거기에 커피나 술에 타 먹이면 알 수도 없는 거 아냐! 마약을 그렇게 팔면 어떻게 해!”

이제야 뭘 다그치는지 알았는지 놈이 고개를 깊게 떨궜다.

“인터넷 사이트 고객은 어떻게 모집했냐?”

“병원에서 발기부전제 처방을 받은 사람 정보를 이신조가 구해줬습니다. 그쪽에 문자나 메일을 보냈습니다, 형님.”

염병할, 정보 유출.

뜨거운 숨이 푹 뿜어졌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물건 넘겨주는 놈 연락처하고 이름 내놔.”

“예, 형님.”

처음으로 놈이 쭈뼛거렸다.

이름하고 번호를 넘겨주면 이 장사 하기 어렵다는 염려가 보였으나 강성태와 이병렬의 이름값이 워낙 커서 거부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르윈이 놈에게서 이름과 번호를 받았다.

“이거 알아서 접어.”

“예, 형님.”

“다시 말한다. 한 번 더 마약 판매하다가 걸리면 그때는 진짜 죽는다.”

놈에게 분명하게 경고한 강성태는 가게를 나섰다.

“아르윈. 여기 있는 약 모두 없애버리고 시간 되면 신월동으로 넘어와.”

“예, 형님.”

신월동으로 오라는 말에 아르윈이 기쁘게 고개를 숙였다.

**

병실에 들어선 조철호 변호사는 먼저 김정훈을 살폈다.

“저놈은 됐으니까 신경 쓰지 마쇼.”

조태완은 그런 조철호를 곧장 침대 옆으로 불렀다.

“알아보셨소?”

“중앙지검 형사5부 부부장 검사인데 지난번 사건 덮을 때 가장 크게 반발했던 당사자라네.”

조태완은 단박에 눈살을 찌푸렸다.

“중앙지검 출신 변호사 두 분이 검찰청에 들어갔다 왔는데 일단 알아서 다독이겠다는 답은 들었네.”

“돈을 좀 먹이면 어떻소?”

“여 검사라서 접대도 어려운 데다 집안이 괜찮은 모양이네. 성격이 엄청나게 단순해서 직검이라고 불린다더군.”

“직검? 그게 뭐요?”

“직진만 한다고 해서 직검.”

“젠장할. 그 정도면 아예 대놓고 경고한 거네.”

“한 번은 넘어갔지만, 다음에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라고 보는 게 현명하지. 어쩌면 강성태, 그 양반을 감사하고 있을지 모르고.”

착잡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조태완을 조철호가 물끄러미 보았다.

“뭐가 또 있소?”

“내가 이쪽 생리를 전부 아는 건 아니라서 질문하기 조심스러운데, 보스가 구속되면 조카가 다시 힘을 얻는 게 아닌가?”

“뭐라는 거야!”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는데도 조태완은 대번에 눈에 독기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전부 아는 게 아니라고 했잖나. 다른 뜻은 없고, 조카가 이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이 처음이라 참고하려고 물은 거니까 너무 언짢아하지 말게.”

조철호가 거듭 다독이고서야 조태완은 얼굴에 올라왔던 독기를 풀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믿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쇼. 집사람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조철호는 정말이지 크게 놀란 얼굴이었다.

“나나 우리 안식구한테 일이 생기면 다른 곳 바라보지 말고 무조건 우리 보스를 찾으쇼. 이 정도면 답이 됐소?”

“알았네.”

“강선영이란 검사를 어느 정도로 다독여야 하는지도 아시겠지? 만약 끝까지 저럴 거 같으면 이야기하쇼. 지방으로 보냅시다.”

조태완의 배경과 현금 동원 능력을 익히 아는 조철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가짜 발기부전제와 흥분제를 모두 실은 아르윈이 차에 타려는 참이었다.

그의 스마트폰이 울면서 뜻밖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여보세요?”

- 나 누군지 알아요?

“압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바람피우다가 개망신을 떨었던 이승현의 부인이었다.

-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신월동으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 집 근처는 다른 사람의 눈도 있고 하니까 그때 나이트클럽 앞의 커피숍으로 갈게요. 얼마나 걸려요?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 그럼 한 시간 뒤에 커피숍에서 봐요.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신월동 나이트로 가자.”

아르윈은 차에 올라 이병렬에게 먼저 전화를 넣었다.

- 여보세요?

“아르윈입니다, 형님. 지금 출발했는데, 형님.”

아르윈은 조금 전 통화를 이병렬에게 그대로 알려주었다.

- 너한테 연장질하지는 않을 테고. 혹시 경찰 데리고 와서 달아가려는 거 아니냐?

“저야 죄가 없잖습니까, 형님.”

- 불법 체류나 그런 거로 달 수는 있지. 하여간, 일단 만나고 연락해.

“예, 형님. 성태 형님께 말씀 좀 올려주십시오.”

- 말씀을 올려달라는 말은 또 어디에서 배웠냐. 알았다. 나이트 사무실에 있으니까 끝나고 전화해.

“예, 형님.”

통화를 마친 아르윈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고 이루어졌다.

조직원들이 다친 건 신강남파와 다부지게 붙은 뒤에 극적으로 화해했다고 보고해서 무마했다.

다행히 가수들이 좋은 조건으로 바쁘게 돌아가게 되었고, 다친 조직원들은 모두 방지병원에 입원했는데 치료비를 또 이병렬이 깔끔하게 부담해주어서 오히려 능력을 인정받았다.

신월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르윈은 혼자 픽 웃었다.

아버지를 잃은 대신 한 번쯤 있었으면 하고 바라던 형님을 얻은 느낌이었다.

총을 낚아채던 강성태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그 뒤에 조직원들에게서 창고의 사투를 들었을 때는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45분쯤 달려 나이트 앞에 도착한 아르윈은 커피숍을 돌아보았다.

“차에서 내리지 말고 있어. 혹시 불법 체류로 단속 나와도 절대 나이트에는 들어가지 말고. 알았어?”

조직원들에게 지시를 전한 아르윈은 목을 좌우로 꺾은 뒤에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데다, 유난히 두꺼운 목덜미에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해적이 인상을 긁고 있어서 아르윈은 시선을 끌었다.

커피숍에 들어간 아르윈이 고개를 돌리자 안쪽에서 부인이 손을 들었다.

“늦었습니다.”

“내가 일찍 나와 있던 건데요. 혹시 몰라서 커피 주문해 놨는데 괜찮아요? 다른 거 시킬 거면 그렇게 하세요.”

“아닙니다. 커피 좋습니다.”

아르윈이 맞은편에 앉은 뒤였다.

다리에 올려두었던 백을 연 부인이 네모난 상자를 아르윈 앞으로 밀었다.

상자를 내려다보던 아르윈이 시선만 들었다.

“우리를 처음 찾아온 날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었죠? 이건 아버지 유품이라고 생각하세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르윈은 눈가를 좁혔다.

“그날 애 아빠에게 들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시댁 가족들 찾아가서 가만 안 있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말하더라고요. 그래놓고도 한국에 오게 된 이유라며 지저분한 변명을 늘어놨고요.”

아르윈을 살피던 부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혼하기로 했어요. 절대 안 한다고 버티는데 회사 찾아가겠다고 하니까 포기했고요. 오늘 신청했는데 딸이 미성년자라 숙려기간이란 걸 거쳐야 해서 서류 정리는 좀 뒤에 돼요.”

“한 번쯤 참지 그러셨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따님 때문에 드리는 말입니다.”

“그러려고도 했었죠. 그런데 회사에 건드린 여직원이 둘이나 더 있었더라고요. 그 사실은 또 그날 나이트에서 본 여직원에게 들었어요. 그런 아빠 밑에서 크느니 차라리 내가 혼자 키우는 게 훨씬 좋을 거 같았어요.”

조금은 홀가분해진 얼굴로 부인이 시선을 들었다.

“우리 아이 때문에 그냥 돌아섰다고 했었죠? 그게 고마워서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밉든, 곱든, 아버지였으니까 유품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부인의 시선이 바라는 대로 아르윈은 팔을 뻗어 상자를 들었다.

뚜껑을 열자 안에 고급 시계가 들어있었다.

“애 아빠가 가장 아끼는 시계였어요.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말을 마친 부인이 곤란한 순간을 빠져나가는 사람처럼 일어나 커피숍을 나섰다.

일어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은 아르윈은 시계를 꺼내 손바닥에 걸고 내려다보았다.

“씨발.”

혼잣말로 욕을 뱉은 아르윈이 쓰게 웃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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