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6화
주먹질보다 껄끄러운 눈빛이었으나 바라보는 시선에 적대감이 담겼다고 손님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강성태의 눈빛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여자 손님이 머그잔에 시선을 내렸다.
“아는 분이냐?”
“아니요. 어디선가 봤던 분인가 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강성태는 최재섭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쁠 테니까 일 봐라. 나는 이만 갈란다.”
“아버지?”
“네가 그럴 거 같아서 일어나는 거야. 점심 챙긴다고 이제 겨우 일 시작한 치곤이 빼는 게 더 싫다.”
“저랑 드시면 되잖아요.”
“급행 전철 타면 영등포에서 40분이면 가.”
서운해하는 강성태를 달랜 최재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왜?”
“들를 곳이 있어서 가봐야 해. 이왕 시작한 거니까 여기 성태가 시키는 대로 죽었다고 하고 따라. 간다.”
“조심해서 가세요.”
곱게 인사하는 이은주에게 고개를 숙인 최재섭이 카페를 나섰다.
강성태는 함께 문을 나서 주차장을 걸었다.
서 있는 승용차 한 대가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최재섭을 생각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움직였다.
“왜 나와?”
“택시 타시는 거 봐야 마음이 편하죠.”
“버스 알아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최치곤을 위해 땅을 하나둘 팔아 몇 억씩 쥐여주던 최재섭이 택시비가 아까워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최재섭의 몸에는 오래도록 바라던 기쁨이 낡은 옷들과 운동화처럼 매달려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강성태는 가장 먼저 거슬렸던 승용차로 시선을 돌렸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남자들이 수상하더니 역시나 카페 안에서 적대감 가득한 시선을 주었던 여자 손님이 뒷좌석에 있었다.
강성태가 바라보기 무섭게 승용차가 움직였다.
이미 시선이 마주친 데다, 속여 봐야 소용없다고 여겼는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여자 손님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승용차를 따라 시선을 돌리는 강성태, 고개를 뒤로 돌려가며 시선을 피하지 않은 여자 손님, 시선이 떨어진 순간에 승용차가 출구를 빠져나갔다.
과거에 지용호도 저런 식으로 강성태를 찾았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주차장 가운데 선 강성태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옆 건물 사이로 있는 작은 골목에서 건장한 청년 다섯이 나와 커피알리고를 향해 움직였다.
김선영부터 정체불명의 여자 손님, 이어지는 건장한 다섯 명까지, 최치곤의 말대로 소금이라도 뿌릴 걸 그랬나 싶었는데 이미 늦은 일이었다.
강성태는 뒤따르듯 카페로 들어갔다.
다섯 명은 주문대 앞에 우르르 몰려섰고, 최치곤은 그중 두 명을 삐딱하게 노려보았다.
“주문하시겠어요?”
“그보다는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몰라뵙고 함부로 굴었습니다.”
“너희들 선출이라는 거 맞아?”
최치곤의 질문에 앞에 있는 두 놈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그나마 괜찮다. 너희랑 붙어볼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 은주 씨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나 겁나겠냐? 요즘은 양아치 새끼들도 너희처럼 껍죽대지 않아.”
이은주 앞이라서 그런지 최치곤은 제법 점잖은 태도로 놈들을 꾸짖고 있었다.
“선수까지 했으니까 태권도장 하나씩은 할 거 아냐? 도장에 다니는 애들이 뭘 배우겠냐?”
“죄송합니다.”
“됐다. 여기 은주 씨에게 사과하고 그만 가.”
최치곤이 고개로 가리키자 다섯 놈이 이은주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나름 좋은 결말이었다.
거기에 최치곤을 바라보는 이은주의 눈에서 [호감도가 1% 상승했습니다.] 하는 느낌이 보이는 득도 있었다.
이런 모습 백 번이면 마음이 기운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이은주가 오전 화장실 관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뭐냐?”
“말했잖아. 전에 요 옆 골목에서 너한테 깨졌던 영철이 형님 후배라고. 그 형님이 숙소 애들 풀 거 같다고 바람 잡은 모양이다.”
“잘했다.”
이후로 부친 최재섭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이은주가 돌아왔다.
“고생했어요.”
“매니저님. 아까 커피 주문했다가 안 마시고 간 여자 손님 기억하세요?”
“예. 왜요?”
가뜩이나 궁금해하던 여자 손님의 이야기를 이은주가 불쑥 내놓았다.
“블라우스 안쪽 주머니에 검찰이라고 적힌 신분증이 있던데요. 위쪽에 검찰 표시 있죠. 줄 여러 개 세워놓은 거, 그 아래로 검찰이라고 쓰여있고, 아래로 형사부, 맨 아래 강선영이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강선영?”
듣고 있던 최치곤이 반문하자 이은주가 “네.” 하고 답을 바로 내놓았다.
“아침부터 선영이 풍년이네. 그 정도면 검사라는 건데 왜 온 거지?”
최치곤의 투덜거리는 말에 강성태는 어떻게 알겠냐는 투로 어깨만 들썩였다.
“은주는 그걸 어떻게 봤냐?”
“블라우스 주머니에 워낙 잘 보이게 넣어둬서 혹시 가짜 신분증인가 싶었거든요. 괜히 뭐 단속한다고 돈 요구하는 건 아닌가 걱정됐었거든요.”
“공부 졸라게 해서 검사 됐으니까 뻐기고 싶었나? 쿠키라도 하나 줄걸.”
최치곤과 이은주의 대화를 들으며 강성태는 주차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사부, 강선영?
최치곤 말마따나 선영이가 사람 피곤하게 하는 하루였다.
“나는 이제 나가볼까 하는데 괜찮지?”
“걱정 말고 다녀와.”
“저녁에는 키란에게 들를 거니까 마감 부탁한다.”
“성태야.”
다용도실로 향하는 강성태를 최치곤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불렀다.
조태완이 아무리 잘 덮었다고 해도 경찰이나 검찰이 파고들면 아무래도 껄끄럽다.
최치곤은 그런 걱정을 담은 눈빛이었다.
“일단 지켜보자. 있다가 고문 만나면 의논해 볼게.”
최치곤을 다독인 강성태는 다용도실 안으로 들어갔다.
**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강성태는 방지병원으로 향했다.
먼저 유헌우를 찾아 상처를 보이고 가벼운 처치도 받았다.
“영양제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빨리 상처가 낫는데 부작용은 없습니까?”
“체질이 약품과 잘 맞는 거 같네요. 혹시 다른 증상은 없어요? 어지럼증이나 구토 같은 거요.”
“없습니다.”
“그럼 됐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예?”
현금으로 병원비를 지불하는 걸 말하나?
의아해하는 강성태를 향해 유헌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병렬 환자 만날 거죠? 올라가 보세요.”
말하는 거로 봐서 이병렬과 관련 있는 내용인 모양이었다.
원장실을 나선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병실로 향했다.
서달수가 있는 건 당연한데 뜻밖에도 아르윈이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숙였다.
“왔냐?”
“유 원장님이 고맙다고 하던데 뭐냐?”
“아, 그거.”
씨익 웃은 이병렬이 아르윈을 돌아보았다.
“지난번에 다친 필리핀 식구들 있잖아. 치료받기 난처한 상황이라 이리 불러서 병실 가득 채웠다. 전부 현금이라 나한테도 고맙다고 하더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이유였다.
“점심 안 먹었지? 달수야. 얼른 시켜.”
묻지 않아도 육개장이라는 걸 알았는데 아침을 샌드위치로 먹었더니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가만 보면 메뉴가 샌드위치 아니면 육개장으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르윈. 지난번에 이신조에게서 받은 자료 있잖냐. 그중에서 가짜 발기부전제하고 흥분제 파는 놈들 어디 있는지 알아?”
“어차피 안산에 연결된 놈들입니다. 저녁까지 찾아놓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묻자 아르윈이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가짜 약? 그건 또 뭐하게?”
“흥분제라고 파는 게 물뽕이라는 거거든. 그놈들, 아무래도 중국에서 받아오는 거 같은데 흥분제를 취급하는 놈들을 잡아들이려고 하는 거지.”
이병렬에게 대답한 강성태는 말끝에 강선영 검사가 왔었다는 내용에 관해서도 덧붙였다.
“염병할. 그것들이 따로 움직이면 곤란한데? 태완이 형님께 말씀드려서 얼른 해결해야겠다.”
“혹시 내 동선을 따라다닐지 모르니까 조심해.”
“여기까지 추적하지 않았을까?”
“혹시 몰라서 지하철로 왔다. 병원 앞에 미리 잠복해 있었다면 모를까, 나를 따라오지는 못했을 거다.”
어련하겠어, 하는 투로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종환이가 대림동에 광룡이 움직인다고 연락했더라. 이거 아무래도 사방에서 우리를 벼르는 꼴이라 기분이 싸하다.”
“해결사가 넘어온다는 소문도 있었으니까 일단 조 고문 만나서 한꺼번에 의논해 보자.”
점심을 먹은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조태완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회복기에 접어든 조태완은 확연하게 좋아진 얼굴로 강성태를 맞았다.
“오렌지 주스 한 잔씩 해야지?”
조태완이 눈짓을 하자 김정훈이 준비했던 주스를 냉장고에서 꺼내 가져왔다.
“다음 주에 보는 건 얼굴이나 익히자는 의미로 보면 적당해. 저쪽 인원수에 맞춰 나가고, 장소는 호텔 연회장 하나 빌리면 되지. 밤에 우리 업장에 초대해서 술 한 잔 나누면 더 좋고.”
조태완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둔 눈치였다.
“보스 표정이 왜 그래?”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냐는 투로 바라보는 조태완에게 강성태는 검사와 조주방의 해결사, 광룡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순서대로 들려주었다.
조태완은 확실히 달랐다.
강성태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그럼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듣기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는 건데?”
“다른 조건이 있었습니까?”
“지난번에 말한 거. 상납금에 마카오 카지노 지분, 그런 게 상납금이자 조건이지. 보스 말대로라면 고개 숙이고 들어오겠다는 의미의 조건을 내걸어놓고 뒤통수 때릴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는 뜻이 되는데?”
못마땅하게 입술을 뒤튼 조태완은 잠시 더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을 끌었다.
“인사나 하려고 오는 건 아니란 거네. 병렬아. 종환이에게 연락해서 조주방과 광룡 움직임 좀 더 알아봐.”
“예, 형님.”
이병렬에게 지시를 건넨 조태완이 다시 강성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까 형사부라고 했지? 강선영?”
“그렇습니다.”
“그러게 살살 좀 하라니까.”
탓하는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윽박지르는 건 아니었다.
“검찰 쪽은 내가 알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주방하고 광룡 움직임에 집중해. 그렇더라도 약속한 거니까 장소는 내가 정해도 될까?”
“정해지면 약속 전에 먼저 들러보고 싶은데요.”
“그야 어려울 것도 없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의논이 끝났다.
방심하던 조태완이 정신을 번쩍 차린 느낌이었고, 이래저래 걱정을 안고 있던 강성태는 짐을 반쯤 던 심정이었다.
일어설까 할 때였다.
“보스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잠깐들 나가 있어.”
조태완이 예상하지 못했던 요구를 내놓았다.
강성태를 돌아본 이병렬이 몸을 일으켜 김정훈, 서달수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이지.”
말을 꺼내기 곤란해하는 조태완은 처음 보았다.
“하아. 이게…, 쯧.”
억지로 입을 열었던 조태완이 또다시 망설였다.
“곤란하시면 다음에 하십시오.”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을 거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고문님이나 가족이 누군가에게 협박당하는 거라면 병렬이와 의논할 수 있습니다.”
“협박은? 어떤 새끼가 날 협박해?”
불끈했던 조태완이 픽 웃었다.
강성태의 대꾸가 꽤 듬직하고 고마운 눈치였다.
“그래. 이런 보스를 안 믿고 누굴 믿어? 내가 애를 하나 가질까 해.”
조태완이 애를 가지는 데 강성태가 도울 일이 있을까?
강성태는 눈가를 좁히는 것으로 모자라 고개를 갸웃했다.
강성태의 반응이 웃긴 모양이었다.
“내게 아이는 짐이고 피하지 못하는 약점이었지. 지금껏 누구도 믿지 못해서 생각도 못 했던 일인데 보스를 믿고 가져볼 참이고.”
“뭔가 했습니다.”
“그래도 되겠나?”
폭력조직에 몸담은 인간들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조태완이 실제로는 아이 갖는 것까지 외면하며 살아왔던 모양이었다.
하긴, 이 정도는 돼야 몸뚱이 하나로 태완이파를 이끌었을 거다.
조태완이 어색한 표정으로 강성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켜야 할 대상이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어떤 경우에도 지켜주겠다는 답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말을 꺼낸 걸 테고.
“아이, 사모님, 고문님.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지켜야 할 순서로 알고 있겠습니다.”
강성태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독하기 그지없는 조태완의 눈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약속할 수 있어?”
“약속합니다. 대신 나도 한 가지 약속을 들어야 합니다.”
붉어졌던 눈에 맺혔던 눈물이 삽시간에 쏙 들어간 조태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위험하다고 여겨서 지시하는 일에는 무조건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걸 뭘 조건이라고 그래?”
볼멘소리로 대꾸를 내놓았던 조태완이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살다가 사람을 믿을 때가 다 있구만.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보스가 대단한 건지.”
강성태가 픽 웃자 조태완이 비슷한 느낌의 웃음을 그려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