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1화
제11장. 이게 전부입니다.
깡패들에게 효도란, 다른 사람의 피가 묻었든, 눈물이 발라졌든 상관없이 목돈 한 무더기 집어다가 주는 일이었다.
사고치는 바람에 변호사비, 교도소 수발에 들어간 가족들의 돈과 노고는 깡그리 잊고서 조직 동생들 거느리는 모습 보여주며 거만 떠는 건 그나마 성공한 깡패였다.
지질한 것들은 마지막까지 부모, 형제의 잔돈마저 피를 빨아내듯 긁어가는 인간쓰레기나 말종의 모습이었다.
꼴에 막노동은 죽어도 못 하고, 고개 숙이는 일도 안 되고, 어쩌다가 해도 과거의 반짝했던 순간을 잊지 못해서 손님들에게 눈알 부라리며 성격 부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달수야. 병원 주차장으로 가.”
“예, 형님.”
서달수가 차를 움직이자 강성태는 조수석에 앉은 아르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깡패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찾지 않는다.
찾는 일이 있다면 벌금, 변호사비, 그 외에 느닷없이 돈이 필요할 때였다.
멀리 갈 것 없이 최치곤이 그랬다.
몸뚱이 망가져서 응급실에 달려왔던 최재섭이 떠안고 내려가 인삼에 고기 먹여 살려놓으면, 그 뒤로 언제 그랬냐는 듯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아르윈은 달라 보였다.
버리고 달아났으니 죽은 사람 취급하면 편했을 텐데 그의 얼굴과 어깨에는 아직도 놓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매달려 있었다.
기가 막힌 모습이기도 했다.
사람 죽이는 일쯤 별거 아니라며 방아쇠를 당기고 살았을 아르윈이 아버지를 만난다는 사실에 마른침을 삼키는 꼴이 말이다.
어릴 적 아르윈을 안아주던 아버지는 필리핀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었는지 모른다.
지금 만나려는 이승현은 껍데기만 그때의 아버지일 뿐, 감정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테고.
주차장에 차가 서자 강성태와 이병렬이 내렸고, 눈치를 살핀 아르윈이 조수석을 빠져나왔다.
“따라와.”
아르윈에게 짧은 눈짓을 건넨 이병렬이 현관을 통해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직 병원 로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강성태와 이병렬, 아르윈의 조합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병원 스태프가 눈인사를 건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 마침 서달수가 로비로 들어왔다. 넷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덩치들의 인사를 받으며 병실에 들어갔다.
“저녁에 약속 있냐?”
“조직원들 살펴보러 가볼까 합니다.”
테이블에 앉은 이병렬이 질문했고, 아르윈이 빠르게 답했다.
“그냥 동생들이라고 하면 되지 조직원은 또 뭐냐? 시간 나면 언제 우리 쪽 식구들하고 인사해. 치고받은 게 있으니까 풀기도 해야지.”
“예, 형님.”
필리핀 색이 짙은 덩치가 공손한 태도로 우리말 대답을 내놓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는데 반대로 진지한 놈의 모습이 서럽게 보이기도 했다.
한국인이고 싶어서 저렇게 노력했는데 피부색과 생김새, 그리고 아버지가 거부해버린 현실 때문으로 보였다.
“뭐 하냐? 커피 하나 타주라.”
“제가 하겠습니다, 형님.”
아르윈이 움직일 때였다.
“제가 동생입니다, 형님.”
서달수가 아르윈에게 고개를 숙인 뒤에 커피 테이블로 움직였다.
“그래! 동생 있는데 형이 가는 것도 웃기지. 앉아.”
“감사합니다, 형님.”
“그나저나 너는 이모저모 써먹을 곳이 많겠다. 이제 보스가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네가 통역 좀 해주라. 아닌 게 아니라 무슨 말 하는 건지 눈치 보다가 가자미 되겠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이병렬이 농담을 던지며 어색한 웃음도 있었다.
“성태 형님은 군 생활을 하셨습니까?”
“우리 보스? 말하면 입 아프다. 팔이 부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는 운 터졌어.”
서달수가 커피를 가져다주어서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본성이 순박한 건지, 아니면 기가 꺾였을 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고개를 숙이자 이후로 아르윈은 공손했고, 강성태와 이병렬을 조직의 형님으로 깍듯하게 대했다.
“야. 11살에 헤어졌다며? 그런데 우리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찾아볼 생각으로 한국 방송을 열심히 봤습니다. 그리고, 저…….”
“뭔데 말을 못 해?”
“한국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뒤통수를 만지는 아르윈의 고백에 강성태와 이병렬, 서달수가 멍한 표정을 그렸다.
“예쁘냐?”
그나마 이병렬이 농담 묻은 질문을 던지며 분위기가 풀렸다.
다들 이어질 아르윈의 말을 기다릴 때였다.
“형님. 그런데 상처를 치료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가 던진 질문에 이병렬과 서달수가 놀란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생각해보니까 강성태 역시 아르윈에게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설프게 치료한 상처를 두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옷은 여기 몇 벌 있으니까 얼른 다녀와.”
“그래.”
이병렬의 권유를 받은 강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섰다.
복도에 있던 덩치들의 인사를 받으며 움직인 강성태는 병실 복도의 데스크로 움직였다.
“원장님 계세요? 치료를 받았으면 싶은데요.”
“잠시만요.”
강성태를 알아본 간호사가 구내전화를 들고서 유헌우를 찾았다.
“네. 강성태 환자분요. 네.”
통화는 바로 끝났다.
“원장실로 오시래요.”
“고맙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간호사에게서 몸을 돌린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바로 원장실로 향했다.
“언제 왔어요?”
유헌우는 특유의 넉살 좋은 표정과 음성으로 강성태를 맞았다.
“오늘은 어디가 문제일까? 머리에 피 묻었고, 왼팔 다친 거 같고. 그게 전부예요?”
이 양반하고 길게 이야기하면 이쪽만 이상해진다.
그나마 이병렬과 관계가 나아진 게 다행일 정도라서 강성태는 잠자코 점퍼를 벗어서 팔을 내놓았다.
“팔이야 그렇다고 쳐도 머리는 사진 찍어야겠는데?”
“손님이 오기로 해서 그런데 그 과정 넘어가면 안 됩니까?”
“이런 말 할 시간에 찍는 게 빨라요. 바로 볼 수 있으니까 찍읍시다.”
유헌우는 강성태를 재촉해 머리와 팔의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 뒤에 다시 원장실로 돌아왔다.
“머리부터 해결합시다.”
스프레이 형태의 거품을 강성태의 머리칼에 잔뜩 뿌린 유헌우가 수건을 건네주었다.
“닦으세요.”
거품을 닦아내며 머리칼에 붙은 피가 깨끗하게 정리됐다.
이어서 머리의 상처와 왼팔을 치료하는 데 얼추 한 시간쯤 걸렸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다 돈 받고 일인데요. 아시죠? 현찰?”
“그럼요.”
웃으며 답한 강성태가 몸을 일으킨 뒤였다.
“강성태 씨.”
함께 일어선 유헌우가 강성태를 나직하게 불렀다.
“답해 주지도 않겠지만, 무슨 일인지 묻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 건 있습니다. 몸에 생기는 상처는 몰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오지는 맙시다.”
안호상과 안다미를 염려한 당부였고, 치료해 준 의사로서의 양심에 관한 요구처럼 들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유헌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
오후 5시에 도착한 이성안이 저녁으로 김밥을 먹고 난 뒤였다.
교대로 김밥을 먹기 위해 다용도실에 들어갔던 최치곤은 바로 귀를 쫑긋 세웠다.
“죽고 싶어, 이 새끼야!”
바깥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듣자 막혔던 속이 반쯤 뻥 뚫린 듯한 통쾌함도 밀려왔다.
이거 참 야단났네.
커피알리고 주문대에서 아랫동네 불량배들에게 은주가 포위됐네.
옳다구나 이때다.
구 새마을, 현 신강남파 최치곤이 나가신다.
김밥을 내려놓은 최치곤이 문을 열고나서는 순간이었다.
와장창!
주방 안으로 날아든 머그잔이 박살나며 깨진 조각들과 뜨거운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겁에 질린 이성안과 힘겨운 표정의 이은주가 최치곤의 시선에 한꺼번에 담겼다. 거기에 홀에서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에 담긴 분노를 최치곤은 분명하게 읽었다.
불끈 독기가 오른 것과 별개로 최치곤은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들하고 다르게 행동했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지금 머그잔을 던진 저 양아치나 최치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끈하고 나왔던 최치곤은 이은주의 얼굴을 보며 끓어오르는 독기를 한풀 눌렀다.
“무슨 일입니까?”
“네가 사장이야?”
최치곤은 주문대로 다가가 이성안의 멱살을 움켜쥔 양아치의 손목을 붙들었다.
“직원은 놓으세요. 놓고 말씀합시다.”
“하, 씨발! 주인이 이러니까 종업원들이 이 지랄이지! 그래, 놨다! 봐하니 어디서 좀 놀았나 본데 어떻게 밖으로 나갈래?”
최치곤은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행사에서 본 적도 없는 데다 신월동에서 최치곤에게 이럴 정도면 이놈들은 족보도 없이 그냥 주접떠는 양아치가 분명했다.
뒤에 있는 두 놈의 어깨가 벌어진 거로 봐서 운동을 전공했던 놈들이거나.
“나오라고, 이 새끼야!”
“무슨 일로 이러는지 말부터 해보세요.”
“어후, 눈 좀 봐, 씨발. 눈빛으로는 사람 잡고 남겠는데? 그러니까 나오라고!”
“말씀을 하시라니까요.”
“이보세요, 사장님? 개새끼세요? 왜 갑자기 꼬리를 마세요?”
살면서 소위 후진을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마음 같으면 나가서 한판 붙고 싶은데 이런 손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최치곤은 정말 몰랐다.
최치곤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깨진 잔을 치운 이은주가 계산대로 나섰다.
“카드 주시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너한테 주는 팁! 별풍선이라고 쳐.”
모욕적인 말을 뱉어낸 양아치가 손을 들어서 이은주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시늉을 보였다.
뚝.
최치곤은 그때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갑자기 실성했어? 왜 웃어?”
“나가자.”
“뭐?”
“나가자고. 나가서 이야기하자.”
최치곤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본 양아치가 ‘뭐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느 틈에 왔는지 경찰관 두 명이 커피알리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고하셨어요?”
“예. 여기 두 분이 잔을 던져서 깼고, 직원 멱살 잡아서 위협했고, 제게 성희롱하셨어요. CCTV에 녹화됐으니까 확인하고 처리 부탁드려요.”
경찰은 먼저 최치곤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의미 있는 눈빛을 건넸다.
아! 지난밤에 박용진 기사 일로 봤던 그 경찰분!
“지금 여기 직원이 한 말 전부 사실입니까?”
“위협은 누가 위협을 해요? 주문을 엉뚱한 걸 받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봐요. 저기 있는 여자한테 여기에서 어떻게 성희롱을 해요?”
“일단 CCTV 확인할 테니까 신분증부터 주세요.”
경찰이 들어온 뒤로 최치곤은 주문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커피전문점 운영하는 거 정말 쉽지 않구나.
강성태는 어떻게 이런 꼴을 참고 지냈을까?
지친 심정으로 최치곤은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상 밖이었다.
이은주가 잘 참았다는 투로 짧게 웃어주었다.
웃음은 고마운데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거든.
최치곤은 경찰들이 확인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빠르게 머리에 담았다.
**
병실로 돌아온 강성태가 옷을 갈아입은 다음이었다.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이승현이라고 합니다. 이세종 보도국장님 소개로 전화했습니다.
굵지는 않지만, 무게를 담은 음성이었다.
“올라오세요.”
강성태는 병실을 알려주고 나서 통화를 마쳤다.
“지금 올라오신단다.”
“그래?”
이병렬이 비릿한 미소를 그렸는데 병실에 있는 동안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아르윈은 예상 밖으로 침착한 태도였다.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제발 한 번쯤은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싶었다.
“아르윈. 바라는 게 있어?”
“말씀드렸듯이 어머니에 대한 사과만 들으면 더 바라는 거 없습니다.”
“너도 뭔가 있을 거 아냐? 이제 와서 뭐 가릴 게 있어? 솔직하게 말해 봐.”
이병렬이 연달아 던진 질문에 아르윈이 강성태의 눈치를 살폈다.
“뭔데 그래?”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식사나 한번 했으면 싶습니다. 잘 지냈냐, 미안하다, 그거면 더 바라는 거 없습니다.”
아르윈의 답이 나온 직후였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이승현은 눈과 코, 입술 끝이 완전히 아르윈과 찍어놓은 것처럼 같았다.
안을 살핀 그는 잠깐 아르윈을 보았을 뿐, 바로 이병렬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가왔다.
“이승현 씨?”
“그렇습니다.”
이병렬의 질문에 굳게 답한 이승현이 품에 손을 넣었다.
깡패가 아니니까 칼이나 권총을 꺼내지는 않을 테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앞에서 이승현은 하얀 봉투를 꺼냈다.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슬쩍 시선을 돌린 곳에서 아르윈이 또다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승용차에서는 긴장해서 그랬다면, 지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느라 애쓰는 눈빛이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