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18화 (188/513)

9권 - 18화

제8장. 한 번은 살려주마.

창을 통해 들어온 빛줄기가 조명처럼 문을 닫은 공장 내부를 비췄다.

서 있는 필리핀 놈들 사이에서 옅게 올라온 먼지들이 허리 높이 위로 서서히 피어날 때, 강성태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바싹 붙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눈빛과 얼굴 반쪽이 어둠에 잠긴 강성태가 건넨 경고였다.

“예, 형님.”

실력, 강단, 충성심이 이병렬과 맞먹을 거라 평가받는 김정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답을 건넸다.

“왜? 이제 나가려고? 그럼 가! 씨발 새끼야!”

뒤를 돌아본 강성태의 안쪽에서 정보업자가 빽빽 고함을 질렀다.

서른두 살 이신조, 컴퓨터 전공, 도박 사이트 제작, 그리고 개인정보 불법 거래로 이 바닥에서 유명한 인간이었다.

강성태는 점퍼를 벗어서 왼팔에 둘둘 감았다.

진짜 덤빈다고?

앞에 서 있던 필리핀 놈들이 신기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간다.”

“예, 형님.”

상체를 비틀어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민 강성태는 필리핀 조폭들을 향해 움직였다.

“아이-야!”

확실히 우리나라 조폭들과는 다른 고함이 터졌다.

부응!

날아든 쇠파이프를 피해 상체를 기울였던 강성태는 몸을 세우며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억!

흔들리는 놈의 오른손을 잡아채 쇠파이프를 뺏어낸 강성태는 또다시 달려드는 놈의 장도리를 세차게 마주 때렸다.

카앙!

쇠파이프가 튕겨 나오는 순간이었다.

휘잉! 퍼억!

그 반동을 따라 몸을 한 바퀴 돌린 강성태는 쇠파이프 끝에 박힌 못을 놈의 허벅지에 꽂았다.

“끄아아!”

쩌어어억! 쩌어억! 쩌어어억!

어지간한 쇠파이프는 왼팔로 빗겨 막았다. 그런 뒤에 인정사정 두지 않고 주먹을 찔러넣었다.

부응! 부으응!

강성태의 뒤에 붙은 김정훈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옆과 뒤를 지켜주었다.

쩌어어억!

강성태가 주먹을 세차게 내지른 뒤였다.

쇠파이프를 휘두른 김정훈이 몸을 빼내며 강성태의 뒤가 비었다.

그 직후였다.

부응! 퍼억!

강성태의 오른쪽 날갯죽지에 쇠파이프의 못이 제대로 박혔다.

오른팔이 찌르르 울리면서 순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형니-임!”

이를 악문 강성태는 점퍼를 감은 왼팔로 쇠파이프를 휘두른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어어어억!

“이 씨발 새끼들이!”

부응! 부으응!

김정훈이 악에 받쳐 쇠파이프를 휘두를 때 강성태는 왼팔을 어깻죽지로 돌렸다.

경호원이란 거 있잖아.

지켜야 하는 공간에서는 내가 최고여야 하거든.

그게 조폭의 생리와 비슷해.

“개새끼야! 이제 어떻게 할래?”

정보업자 이신조의 고함이 공장을 떠들썩하게 울리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뽑아낸 쇠파이프를 앞으로 툭 던졌다.

딸깡. 부으응!

강성태의 당당함이 못마땅한 것처럼 쇠파이프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부으응! 쩌어어어억! 쩌억! 쩌어어억!

세 놈을 연달아 쓰러트린 강성태는 그대로 이신조를 향해 밀고 나갔다.

쩌억! 쩌어억!

숙소 덩치들을 안 부른 거?

쩌억!

이래야 당분간 필리핀 놈들의 씨를 말릴 수 있거든.

쩌어억! 퍼억!

주먹을 날린 강성태의 왼쪽 팔뚝을 못이 박힌 쇠파이프가 찍고 튀어나갔다.

휘익! 쩌어어어억!

왜 이 지랄을 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쩌억! 쩌어어억!

앞으로 상대할 삼합회와 일본놈들, 베트남 조폭에게 주는 경고라고 하자.

쩌억! 쩌어억! 쩌억!

강성태가 세 놈을 연달아 쓰러트리며 앞으로 밀고 나갈 때였다.

“끄으!”

뒤편에서 김정훈의 비명이 터졌다.

앞으로 달려들 것처럼 상체를 기울였던 강성태는 그대로 돌아서 김정훈의 어깨를 잡아챘다.

휙! 휘이익! 휙!

더는 못 견디겠다고 여겼는지 회칼과 사각형 판도, 무쇠 칼이 강성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왼팔로 칼자루를 잡아챈 강성태는 주먹의 중지를 뾰족하게 세웠다.

콰직! 콰지직! 콰직!

눈알이 터질 수 있는 주먹이었다.

두 번째 맞은 놈은 실제로 눈알을 움켜쥔 채 비명을 연달아 질러댔다.

휙! 콰직! 휘익! 콰지직! 콰직!

“아악! 아아-악!”

쇠파이프, 장도리, 톱날, 칼이 강성태를 향해 날아들었고, 이어 눈을 얻어맞은 놈들의 처절한 비명이 공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창으로 들어온 빛줄기가 강성태의 왼쪽 어깨와 등, 때로는 날아가는 주먹을 비췄고, 빛줄기를 벗어난 곳에서는 기절한 놈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빼곡할 정도로 먼지가 피어난 공장에서 강성태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이신조를 노려보았다.

“제발 좀 그만해, 이 미친 새끼야!”

놈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40명이 달려들어서 이제 서 있는 놈은 다섯밖에 없었다.

“끄으으-.”

바닥 여기저기서 비명이 흘러나왔는데 김정훈은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움직여 장도리를 세차게 휘둘렀다.

부으응! 퍼억!

“끄아아!”

숫자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식한 김정훈은 놈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발목이나 정강이뼈를 부수는 치밀함을 보였다.

“뭐 해! 죽여!”

이신조가 고함을 질렀는데 다섯 놈은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강성태는 어깨를 풀 듯 오른팔을 뒤로 돌렸다.

잠시 쉬었다고, 숨죽였던 통증이 짜르르하게 올라와 몸통 전체를 쥐어뜯었다.

거기에 왼쪽 팔뚝에서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와서 팔 전체가 축축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강성태가 앞으로 걷자 이를 악문 필리핀 놈이 톱날을 휘둘렀다.

몸을 빼서 피하면 못을 박은 쇠파이프와 장도리가 동시에 날아든다.

휙! 퍼억!

강성태가 든 왼팔에 톱이 걸리면서 날이 휘청거렸다.

쩌어어억!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은 강성태는 훅, 달려들어 흔들리는 놈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휘익! 퍼억!

왼편에 있던 놈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놈의 머리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머리에 못이 박힌 놈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퍼으윽!

놈의 목덜미에 장도리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강성태는 주먹을 번갈아 날렸다.

쩌어억! 쩌어억!

두 놈의 머리가 흔들릴 때였다.

퍼윽!

강성태의 정수리 뒤편을 쇠파이프가 세차게 때렸다.

‘이익!’

몸을 돌린 강성태가 주먹을 휘둘렀는데 처음으로 목표했던 놈의 얼굴을 때리지 못했다.

두세 개로 번져 보이는 놈을 향해 강성태는 연달아 주먹을 뻗었다.

콰직! 콰지직!

두 번의 주먹이 놈의 눈알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부응! 퍼어억!

놈의 머리를 김정훈이 장도리로 내리찍었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 놈이 기울어질 때,

“형님!”

김정훈이 강성태의 허리를 잡아챘다.

부응! 

마지막 남은 놈의 쇠파이프가 강성태를 막아선 김정훈의 등에 제대로 찍혔다.

김정훈을 당긴 강성태는 정말이지 독한 각오로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억!

뾰족하게 세운 중지가 놈의 왼편 눈알에 박히면서 불쾌한 감촉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끄악! 끄아아악!”

눈알을 잡고 상체를 숙인 놈의 얼굴을 강성태는 있는 힘껏 걷어찼다.

콰자-작! 털썩!

놈이 슬로우모션처럼 뒤로 넘어가 널브러진 뒤였다.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쇠파이프를 들던 이신조가 얼른 손을 놓고는 천천히 몸을 세웠다.

강성태는 먼저 김정훈의 등 왼편에 박힌 못을 뽑았다.

“형님….”

이를 악물며 고통을 이겨낸 김정훈이 악착같이 왼발로 몸을 세웠다.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이신조는 아예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정보 어디에서 얻었어?”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갸웃했던 놈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말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몸을 숙인 강성태는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집었다. 그리고는 뾰족하게 박힌 못을 확인한 뒤에 아래로 내렸다.

“마지막이다. 정보 어디에서 얻었어?”

이신조가 공장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바람에 창을 통해 들어온 빛줄기는 강성태의 뒤에 있었다.

“아니! 정보가 필요하면 그냥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왜 이러는 건데…요!”

어둠에 잠긴 강성태의 눈빛은 무섭다.

정수리 뒤편에서 흘러내린 피가 목덜미를 타고 흘렀고, 왼팔은 이미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강성태는 독한 눈빛으로 이신조를 향해 걸었다.

“외교부, 행안부, 경찰청에서 넘어오는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제공동의서에 표기한 내용을 모두 봅니다! 은행, 보험, 신용카드까지 정보이용동의를 한 정보를 모두 취급합니다!”

강성태는 놈의 앞에 도착해서 야구 배트 휘두르듯 쇠파이프를 들었다.

“보안 번호를 넘겨준 공무원이 있습니다! 한 사람당 50원씩 계산해서 넘겨받습니다!”

“이름하고 연락처?”

“예?”

부으으응!

“변기태! 010! 8835!”

까아앙!

쇠파이프가 얼굴 바로 옆의 벽을 찍은 직후에 이신조가 스르륵 아래로 주저앉았다.

강성태는 손가락을 들어서 이신조를 불렀다.

“예? 예.”

억지로 몸을 세운 이신조가 공장의 안쪽 벽에 등을 기댄 채 다가왔다.

“앞으로 내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욕하지 마. 알았어?”

이신조가 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쩌어억!

강성태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

기자는 스마트폰을 들어 [첫 배팅 시 5만 원 환급, 믿을 수 있는 사이트, 신뢰 있는 운영]이라는 문자를 화면에 보여주었다.

- 이런 문자 받아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어떻게 우리 정보를 알고 있을지 궁금하셨을 겁니다. 여기에는 타락한 공무원의 정보 유출이 있었습니다.

기자의 말이 끝난 뒤에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 번호, 기타 자료가 가득한 컴퓨터 화면이 흐릿하게 TV에 나왔다.

- 이 모 씨는 외교부, 행안부, 경찰청까지 연결된 커넥션을 통해 정보를 얻어냈습니다. 이 씨는 또한 얻어낸 정보를 필리핀 조직과 불법 도박 사이트, 기타 불법 업체에 제공하고 수억 원의 불법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화면에 등장한 기자가 A4 용지를 들었다.

- 필리핀에서 넘어온 폭력조직 가디언스파는 이렇게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필리핀을 방문했던 우리 국민을 협박해서 돈을 갈취했고,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기자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며 모자이크된 장면이 올라왔다.

“원하시던 정보가 여기 있습니다.”

“하하하. 늘 고맙습니다.”

숨어서 찍은 것처럼 화면이 흔들리고 있어서 현장감이 확 살았다.

- 우리 국민이 필리핀 조직원에게 돈을 뺏기거나 폭행당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이 모 씨는 취재 직후에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기자는 어쩐지 뉴스를 마치는 게 무척이나 다행이라는 얼굴이었다.

**

뉴스를 본 조태완이 손을 젓자 김정훈이 TV를 껐다.

다리와 등을 꿰맨 데다, 머리카락과 이마의 경계에 거즈를 붙였고, 볼과 목덜미에 상처가 있어서 리모컨을 내려놓는 김정훈은 독기가 잔뜩 올라온 사람처럼 보였다.

“40명을 보스랑 너, 둘이서만 상대했다?”

“저는 뒤만 지켰습니다, 형님.”

“그래놓고 이세종을 불러서 저걸 찍었고?”

“예, 형님.”

듣기만 해도 갑갑하다는 듯 처음부터 상황을 확인한 조태완이 볼을 씰룩였다.

“야, 이 돌대가리 새끼야! 보스야 원래 좀 이상하다고 치자! 너라도 말렸어야 할 거 아냐!”

“정말 저만 데리고 들어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형님.”

“안 뒈진 게 다행이다, 이 멍청한 새끼야!”

고개를 숙이는 김정훈을 향해 고함을 버럭 지른 조태완이 배에 손을 올리고는 인상을 버럭 찌푸렸다.

“이신조가 경찰이나 검찰에서 떠벌리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보스랑 너는 그냥 쇠고랑 차야 해! 이 돌대가리야!”

배가 울리는 데도 오랜만에 분통이 터졌는지 조태완의 고함이 병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후! 뒷수습을 어떻게 하지? 미치겠네, 진짜!”

짜증이 담뿍 올라온 얼굴로 혼잣말을 뱉어낸 조태완이 다시 김정훈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보스는 지금 어디 있냐? 방지병원? 커피숍? 어디야?”

“저기….”

“빨리 말해!”

“가디언스파 두목을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형님.”

“뭐? 어디에서? 누구랑?”

“병렬이 형님하고 함께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또 둘이서?”

“아닙니다, 형님. 신월동 숙소 동원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지금쯤 만났을 겁니다.”

“하오!”

그나마 다행이라는 투로 조태완이 침대에 머리를 기댔다.

“이신조를 어떻게 수습한다?”

“저, 형님.”

침대에 머리를 기댄 조태완이 눈만 돌렸다.

“이신조의 약점을 쥐고 계셔서 다른 말 못 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신조가 프로그램 짜준 도박 사이트하고, 직접 운영하던 도박 사이트, 조직이 운영하는 매춘 사이트까지 아홉 개를 확보했습니다.”

“설마? 아니지?”

“예? 형님?”

“그것도 깨부순다고 나선 거 아니겠지?”

얼이 빠진 조태완의 질문이었다.

“저는 모릅니다, 형님.”

김정훈은 제대로 된 답을 피하는 눈치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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