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17화 (187/513)

9권 - 17화

작정하고 들어선 모양이었다.

거칠게 말을 뱉은 놈이 테이블로 다가오는 동안 스무 명에 가까운 덩치들이 줄줄이 들어와 다방 안을 가득 메웠다.

강성태가 앉은 테이블을 둥글게 포위하듯 선 놈들이 손을 앞으로 잡고서 대가리의 지시를 기다렸다.

“후!”

입술을 위로 들어 머리칼을 불어낸 장오기가 옆 테이블의 의자를 당겨와서 강성태와 김정훈의 중간에 대뜸 앉았다.

장오기는 안산 식구파의 대가리였다.

진용도와 동갑으로 행사에서 얼굴을 익힌 사이였고,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일진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소년원, 교도소를 차례로 거쳤을 정도로 조폭이 되는 과정을 제대로 밟은 인간이었다.

“인사드려. 강성태 형님이시다.”

“씨발! 언제부터 우리 바닥이 족보 무시했다고 이래? 전국 건달이 인사 소개하기로 하면서부터 나이로 가는 거 몰라?”

진용도의 권유를 장오기가 대놓고 걷어찼다.

말투와 달리 놈은 길 가다 마주치면 절대 깡패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호리호리한 체격에 평범한 인상이었다.

“아, 씨발 진짜.”

놈이 오른쪽 허벅지에 팔을 걸치며 강성태를 삐딱하게 보았다.

“보쇼. 신강남파 소문은 나도 들었는데 형님, 동생 놀이는 강남에서만 하라고. 안산은 달라.”

“야, 장오기. 어느 쪽이든 형님으로 소개하면 인사하는 거 몰라?”

“몰라, 이 씨발!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가서 나이를 더 처먹고 오든가, 아니면 전국을 통일하고 마지막에 찾아오든가 해!”

“야, 장오기? 대전하고 아래쪽 형님들도 인정했어.”

“니미! 말싸움하러 왔어? 자신 있으면 밀어붙이든가.”

진용도를 씹어댄 장오기가 테이블에 등을 기대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면서 대놓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성질 같으면 벌써 주먹을 날렸을 진용도가 강성태의 눈치를 살피며 뜨거운 숨을 푹 내쉬었다.

“손 못 빼?”

“내가 손 빼면 후회하게 될 텐데?”

올라온 성질을 억지로 누른 진용도가 으르렁대자 장오기가 픽 웃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할 거냐는 투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하여간, 수준하고는.

내내 지켜보던 강성태는 장오기를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장오기. 그 손 얌전히 빼.”

강성태가 나직하게 경고를 던지기 무섭게 장오기는 아니꼬운 감정을 눈에 담았다.

“고춧가루라도 든 모양인데 주접떠는 순간 부러진다.”

강성태의 말을 들은 진용도와 김정훈이 대번에 시선을 떨궈서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장오기의 손을 보았다.

숫자를 믿고 해볼까, 아니면 일단 한풀 죽을까?

교활하게 번득이는 놈의 눈을 보며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이놈은 반드시 달려든다.

이미 손에 고춧가루가 묻어서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런 씨발!”

장오기가 상체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억!

강성태는 놈의 얼굴에 대뜸 주먹을 꽂아넣었다.

“야, 이 씨발놈아!”

안산 덩치들이 고함을 버럭 지르며 달려들 때, 강성태는 먼저 흐물 대는 장오기의 멱살을 잡아 진용도에게 던졌다.

휙! 까강!

진용도가 찻잔을 집어 던질 때였다.

커다랗게 휘두르는 주먹을 간단하게 피한 강성태는 달려드는 놈을 향해 팔을 뻗었다.

쩌어억! 쩌억! 쩌어억! 쩌어억!

네 번 주먹을 휘두르자 기절한 모습으로 네 놈이 줄줄이 바닥에 쓰러졌다.

콰드등!

한 놈은 테이블로 엎어져 요란한 소리마저 울렸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눈치였다.

주춤주춤, 회칼을 꺼낸 몇 놈이 자세를 낮추기는 했는데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했다.

다방 생활을 오래 해서 깡이 생긴 건지는 몰라도 주방 안쪽에 몸을 숨긴 아가씨가 눈만 테이블 위로 올리고는 ‘어머! 어쩜!’ 하는 감정으로 강성태를 보고 있었다.

침묵을 배경으로 강성태가 안산 덩치들을 돌아볼 때였다.

“이 씨발 놈들이!”

악착같이 참던 김정훈이 더는 못 보겠다는 듯 품에서 회칼을 꺼내 강성태의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이 가만있으라고 하셔서 여태 참았는데 이 새끼들이 어디에서 날을 들고 설쳐, 이 개새끼들아!”

김정훈은 절대 찔리지 않는 갑옷이라도 입은 사람인 양, 칼을 든 놈들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최근 이름을 떨치는 신강남파의 위세와 실세로 떠오른 김정훈의 독기와 근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김정훈은 회칼을 든 손으로 덩치들의 얼굴을 대놓고 갈겼다.

퍼억! 퍽!

김정훈의 주먹에 맞은 놈들의 얼굴에 회칼의 날이 그어놓은 선이 길게 생겼다.

“야, 이 씨발 놈들아! 신강남파 숙소 인원이 200명이 넘어. 그런데도 우리 형님께서 숙소 동원하지 않은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말을 하다가 분이 터졌는지 회칼을 앞으로 내민 김정훈이 칼끝으로 안산의 덩치들을 줄줄이 가리켰다.

“나나 저기 용도가 숙소 애들 데려왔으면 안산은 벌써 박살났어, 이 씨발 새끼들아! 그래도 안산 주인이 장오기인 걸 인정하셔서 점잖게 대한 건데 한다는 짓이 고춧가루 뿌리는 거냐? 에라, 이 개 양아치 새끼들아!”

말을 마친 김정훈이 다방 안을 쭉 돌아보았다.

“안 꿇어? 이 씨발 새끼들아? 숙소 동원해서 정말 발목이라도 끊어줘?”

김정훈이 이 정도였나?

독이 잔뜩 오른 눈으로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자 거짓말처럼 안산의 덩치들이 바닥에 꿇어앉았다.

저 새끼들은 왜 그러는 거야?

처음부터 안쪽에 있던 양아치 셋이 눈치를 살피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슬그머니 탁자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끄으.”

고개를 턴 장오기가 그제야 의자에서 상체를 세웠다.

의자를 받치는 놈의 왼손에 달라붙은 고춧가루가 놈의 수준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다방 안을 둘러본 놈이 볼을 씰룩일 때였다.

“꿇어, 이 씨발 놈아!”

김정훈이 강성태의 뒤에서 눈알을 부라렸다.

이전에 상대했던 대전과 아래쪽 대가리들은 나이가 있어서 차마 꿇리지 못했지만, 장오기는 또래여서 거칠게 없는 눈치였다.

신강남파의 위세가 이 정도로 커진 느낌도 있었다.

김정훈을 노려본 장오기의 볼이 또 씰룩였다.

지고 못 산다 이거지?

강성태는 대뜸 의자에 걸터앉은 장오기의 가슴을 세차게 걷어찼다.

콰드등!

뒤로 한 바퀴 구른 놈이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래 주면 더 좋고, 양아치 새끼야!

강성태가 다가가자 장오기의 상체가 빠르게 왼쪽으로 돌았다.

복싱을 배운 모양이었다.

휙! 휘익!

오른쪽 어깨를 빼냈던 장오기가 체중을 앞발에 실으며 짧게 끊어 쳤다.

왼손 팔뚝으로는 얼굴도 막았다.

턱! 터억!

놈의 주먹을 때려낸 강성태는 힘껏 주먹을 올려쳤다.

퍼으윽.

“쿠억!”

명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장오기가 등을 둥그렇게 말고는 거북한 비명을 토해냈다.

놈을 흉내 내듯 오른쪽 어깨를 뒤로 완전히 젖힌 강성태는 장오기의 턱을 향해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콰자작!

목이 부러졌나 싶을 정도로 고개가 젖혀졌던 장오기가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그쪽 의자에 앉아 있던 진용도가 다리를 움직여 몸을 빼내는 바람에 장오기는 탁자에 제대로 처박혔다.

콰드등! 땡강.

탁자와 함께 장오기가 무너졌고, 이어 찻잔이 널브러졌으며, 운세를 보는 기계가 데굴데굴 입구를 향해 굴렀다.

완전히 널브러진 장오기를 내려다본 강성태는 꿇어앉은 놈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산에 감정은 없다. 하지만 필리핀 가디언스, 베트남 하노이, 중국 광룡의 눈치를 살피는 놈들만 있다면 여기는 내가 관리하겠다.”

“어머머.”

강성태의 말끝에 감탄을 뱉었던 아가씨가 입을 손으로 막고는 테이블 아래로 내려갔다.

“깡패를 하더라도 자존심은 지켜. 필리핀 조직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협박해서 돈 뜯고 생명을 노리는데, 그걸 막아주지는 못할망정, 그놈들이 주는 돈에 고개 숙이고 정보를 팔아?”

강성태는 몸을 세운 진용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용도. 안산 정리할 수 있어?”

“숙소 동생들 부르겠습니다, 형님.”

“정리해. 그리고 정훈이 너는 나랑 정보업자들에게 가자.”

“예, 형님.”

다방 안을 둘러본 강성태는 구석에 찌그러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양아치 셋을 물끄러미 보았다.

조직에 들지 못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양아치들이 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인생을 낭비하는 한심한 꼴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또래들보다 멋지게 사는 거 같은데 다방에서 인생 허비하는 놈들에게 돌아갈 건 나이 든 주취폭력범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에라, 이 불쌍한 새끼들아.

문을 향해 움직이는 강성태를 따라 김정훈이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나다. 다방으로 전부 올라와.”

숙소 덩치들을 부르는 진용도의 통화를 들으며 강성태는 김정훈과 함께 다방을 나섰다.

5분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조만간 들이닥칠 거다.

계단을 내려와 2층짜리 건물의 입구에 강성태가 섰을 때였다.

“후우.”

누르고 있던 긴장을 풀어내는 것처럼 김정훈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강단 있게 해놓고?

돌아보는 강성태에게 김정훈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 형님. 정말 정보업자에게 저하고만 가십니까?”

“누가 더 있어? 왜?”

“아닙니다, 형님.”

질린다는 표정 반, 존경심 잔뜩 올라온 표정 반을 한 김정훈이 빠르게 답했다.

“정보업자는 따로 쓸 곳이 있어서 둘만 가는 게 좋아.”

“예, 형님.”

강성태와 김정훈이 걸음을 옮긴 뒤였다.

급하게 달려온 승용차와 승합차가 멈추고는 신월동의 덩치들이 우르르 2층 건물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

최치곤은 불쑥 튀어나오는 욕을 꿀꺽 삼켰다.

“내가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는데 왜 그래? 왜?”

최치곤의 인상을 대하는 데도 뽀글거리는 파마머리 아주머니는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하셨다니까요.”

“나는 이가 시려서 차가운 거 못 마셔. 그런데 내가 왜 아이스를 시키겠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아니, 그런데. 어디에서 종업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어?”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지, 네모나게 뜹니까?”

“하여간 이래서 공부들 해야 돼. 못 배우니까 커피나 팔지!”

내내 테이블을 짚고 있던 최치곤이 주먹을 쥐는 순간이었다.

다용도실에서 급히 나온 이은주가 최치곤을 어깨로 밀치며 계산대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손님. 주문대로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됐어! 안 마셔! 환불해 줘!”

“네, 손님. 카드 한번 다시 주시겠어요?”

툭 테이블에 던져준 카드를 받은 이은주가 결제를 취소하는 동안, 최치곤은 고개를 떨군 채 올라오는 뜨거운 숨을 억지로 눌렀다.

“여기 결제 취소 영수증 나왔습니다, 손님.”

“나 원 거지 같은 가게를 다 보겠네, 진짜.”

카드와 영수증을 받은 아주머니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거! 아이스 커피. 버리면 아까우니까 그냥 나 줘.”

“하.”

고개를 떨구고 있던 최치곤이 바람 빠지는 소리 비슷하게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얼음이 녹아서 맛이 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버릴 거 아냐? 아까우니까 내가 그냥 먹어준다고.”

“배탈이라도 나시면 곤란해서 그렇습니다. 이가 시려서 찬 음료를 못 드시기도 하고요.”

“아이, 진짜. 끝까지 치사하게 구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응대하는 이은주의 위아래를 노려본 아주머니가 뭔가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스윽, 고개를 든 최치곤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장사 똑바로 해!”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으나 그래도 아주머니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후우.”

“다용도실에 김밥 있어요. 얼른 들어가서 드세요.”

“지금 김밥이 넘어가냐?”

홱 날아든 최치곤의 눈알을 이은주는 피하지 않았다.

“매니저님은 이런 손님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대하세요. 반말, 카드 던지는 거, 주문 잘못하고 우기는 손님, 애들 마실 거니까 그냥 조금만 달라는 분들까지 끝도 없어요.”

이은주는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과 음성이었다.

“매니저님이 전화로 부탁하셨어요. 힘들어할 테니까 잘 감싸달라고요. 어떡해서든 적응했으면 싶다고요. 싫으세요? 그럼 앞치마하고 티 벗어주고 가세요.”

살기가 스르륵 사라진 눈을 껌벅이며 최치곤은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하루도 못 견뎌요? 주먹 아니면 해결 못 해요? 매니저님이나 내가 손님들보다 인간적으로 부족해서 고개 숙이는 거로 보이세요?”

“왜 그래?”

“아니에요.”

고개를 주문대로 돌린 이은주의 눈과 표정이 냉정했다.

최치곤의 모습에 실망한 기색도 분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이은주의 옆모습을 보며 최치곤은 한숨과 함께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해냈다.

“김밥 먹고 나올게.”

한마디를 남긴 최치곤이 다용도실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가슴에 손을 올린 이은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강성태와 김정훈은 원곡역 뒤편의 공장 골목으로 움직였다.

“여기입니다, 형님.”

공장 건물을 확인한 김정훈이 혹시나 숨은 놈들이 있나 하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힘들 수 있다.”

“예, 형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훈이 공장 문을 옆으로 밀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공장이었다.

드르륵.

안은 어두웠다.

창에서 들어온 빛줄기가 내부를 비추는 게 전부였는데 한쪽 볼과 어깨에 빛을 얹은 필리핀 덩치들이 강성태와 김정훈을 보며 비웃음을 가득 올리고 있었다.

들어오면 죽는다.

그냥 돌아가라.

40명이 넘게 서 있는 놈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정보업자 여기 있냐?”

강성태가 묻자 필리핀 덩치들을 헤치듯 서른 초반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씨발! 잘난 척은? 들어올 자신은 있고?”

“네가 필리핀 놈들한테 정보 팔아먹은 놈 맞아?”

“맞다고 이 씨발 놈아! 어떻게 할 건데?”

정보업자가 시선으로 필리핀 놈들을 가리켰다.

뾰족하게 못을 용접해 붙인 쇠파이프, 망치, 장도리, 톱날까지, 들고 있는 무기들은 한결같이 살벌했다.

픽 웃은 강성태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김정훈이 뒤따랐다.

“문 닫아.”

“예, 형님.”

강성태의 뒤편에서 김정훈이 문을 잡고 다시 옆으로 당겼다.

드르륵.

강성태와 김정훈을 삼키듯 공장 문이 닫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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