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15화 (185/513)

9권 - 15화

제7장. 이놈들 봐라?

공장은 쇠를 깎는 선반 두 개만 구석에 있을 뿐,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필리핀 가디언스파가 네 놈씩 두 줄로 묶여 꿇어앉았고, 쇠파이프를 든 영등포 덩치들이 쭉 둘러서서 놈들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밀동의 관광호텔 지하와 같은 모습이었다.

발길질에 얻어맞았던 세 놈은 코와 입술에 페인트를 욱여놓은 것처럼 피가 엉겨 있었다.

강성태가 들어서자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줄줄이 상체를 숙였다.

도대체 의자는 어디에서 가져오는지 궁금하기는 했는데 강성태는 숙소 대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의자 왼편에 숙소 대가리, 오른편에 최치곤이 서자 강성태는 마지막까지 버텼던 놈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택시 기사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놈 있었지?”

“우리는 한국 조직과 충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끝내주십시오.”

저런 강단쯤 지녀야 조직원을 하겠다. 더구나 필리핀처럼 총기를 사용하는 동네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너는 이름이 뭐냐?”

“프란코입니다.”

놈을 지켜보던 영등포 덩치들이 뜨거운 숨을 뿜을 정도로 반항기가 전혀 죽지 않은 시선과 태도, 음성이었다.

밀동에서 이미 경험했던 장면이었다.

거기에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직후였고, 무엇보다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필리핀 놈들이 설치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조직에 속한 놈은 조직의 생리대로.

조직의 생리는 이병렬이 가르쳐준 대로.

다부지게 노려보는 프란코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숙소의 대가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잠깐 바람을 쐬고 올 텐데 내가 다시 들어왔을 때는 얌전히 답을 들을 수 있었으면 싶다.”

“맡겨주십시오, 형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최치곤에게 눈짓을 던진 뒤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성태에게 고개를 숙인 대가리가 바로 몸을 돌렸다.

“저 개새끼들 좀 얌전하게 만들어!”

“예!”

대답과 함께 “이런 개새끼들이!” 하는 욕설과 쇠파이프가 몸뚱이를 때리는 소리가 터졌다.

드르륵.

최치곤이 문을 닫자 공장에서 나오는 욕설과 비명이 마치 누군가 틀어놓은 TV 소리처럼 한 꺼풀 멀리서 들렸다.

강성태는 어둠에 잠긴 공장 골목에서 시커멓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등포였다.

밤을 이용해 시원하게 달리는 근처의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무슨 일이냐?”

하늘을 보는 강성태의 시선을 최치곤이 당겼다.

말을 걸어놓고도 조심스러운지 최치곤은 공장 좌우와 문 쪽을 돌아본 뒤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너는 이런 거 싫어하잖아?”

“필리핀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아서 협박에 성공하면, 다음은 베트남, 일본, 중국 놈들도 비슷한 짓을 할 테니까.”

볼을 한 번 씰룩인 최치곤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조용해진 공장 안을 돌아보았다.

“저놈들 말이다. 박용진 씨를 죽여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거다. 지문도 등록 안 되었을 테고, 또 여차하면 필리핀으로 날아가면 끝나니까.”

“우리 쪽에서도 베트남이나 연변, 저런 놈들 찾는 인간들이 간혹 있기는 해. 한칼 먹이고 날아가면 찾을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독하게 대하는 거다. 이놈들이 하나둘 성공하고 나면 다음은 주변의 힘없는 사람들을 협박하다가 죽일 거 같아서. 다음에는 박용진 씨를 내세우겠지. 말 안 들으면 너도 죽는다고 보여주기 좋잖아.”

상황을 익히 아는 최치곤이 무겁게 숨을 내쉴 때였다.

공장문이 열리며 숙소 대가리가 나왔다.

“준비됐습니다, 형님.”

몸을 돌린 강성태는 덤덤한 표정으로 들어가 의자로 향해 앉았다.

이병렬이 보여줬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렇게 두들기는 거 별거 아니란 그의 태도, 여차하면 교도소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묻어버리겠다는 독한 눈빛, 강성태는 이병렬의 모습을 떠올리며 시선을 내렸다.

이제는 여덟 놈 모두가 얼굴에서 뜨끈한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속이 썩은 듯한 입 냄새와 땀 냄새, 피 냄새,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지린내도 풍겼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과 볼, 턱을 적신 프란코를 바라보며 강성태는 픽 웃었다.

무릎을 좀 더 낮게 꿇었지만, 놈의 눈에 담긴 반항기는 아직 허리를 높게 세우고 있었다.

“신월동 숙소가 이 정도밖에 안 되냐?”

“예? 형님?”

“저 인간 눈에 아직 반항기가 남았는데? 이럴 거면 정훈이에게 전화해서 그쪽 숙소 애들 부를 테니까 너희는 이만 돌아가.”

강성태는 실망했다는 투로 몸을 세웠다.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는다고?’

프란코의 놀란 눈을 물끄러미 보던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형님!”

“너는 이름이 뭐지?”

“진용도입니다, 형님.”

“진용도. 강남에서는 신월동이 내 친위부대라고 알고 있다. 지난번 신사동 일에 너희만 불렀다고 서운해했고. 그걸 알면서도 또 너를 불렀다. 그런데 잡아다 놓은 놈의 눈빛도 못 꺾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너를 믿고 부르지?”

“죄송합니다, 형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형님.”

고개를 숙이며 매달리는 진용도의 눈에 독기가 가득 올라와 있었다.

강성태는 대답하지 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둘러선 영등포 덩치들 사이로 갓 피어난 독한 각오가 침묵과 함께 떠돌았다.

강성태는 덩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반인들 상대하지 말라고 했다. 내 말대로 잘해줘서 너희 중에 몇 놈은 술 먹고 시비 붙은 걸 스스로 반성해서 사과와 합의도 했고.”

지금 왜 저런 소리를 하지?

쇠파이프를 든 놈들이 고개를 들어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필리핀 조직 놈들이 우리 옆에 사는 사람을 죽이려고 여덟 명이나 몰려왔다. 나이 육십 먹은 택시 기사를 협박해서 돈을 뜯으려다 안 되니까 죽이려 했던 거고.”

꿇어앉은 필리핀 놈들을 내려다보았던 덩치들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우리 땅 아니냐? 깡패를 하더라도 자존심은 지키고 살자. 우리도 고개 숙이는 일반인이다. 그런 사람들을 저런 놈들이 협박하고 죽이겠다며 설치는 데도 기죽는다면 너희는 깡패가 아니라 양아치야!”

강성태의 마지막 말에 덩치들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대림동 종환이가 광룡을 어떻게 밀어냈는지 못 들었어? 동생들 챙기겠다고 내 앞에서 무릎 꿇었고, 적어도 중국 놈들에게 시달리는 대림동 사람 없게 하겠다고 싸우는데 너희는 뭐야?”

“죄송합니다, 형님.”

진용도가 90도에 가깝게 상체를 숙인 뒤에 몸을 세웠다.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신월동이 시작이다. 다음은 영등포고. 우리는 일반인에게 고개 숙이는 깡패다. 따귀를 맞더라도 양보한다. 대신 중국 놈, 일본 놈, 베트남, 필리핀 놈들이 설치지 못하게 우리 구역은 지킨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신강남파다.”

숨을 내쉬며 잠시 틈을 준 강성태는 진용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진용도. 너를 믿어도 돼?”

“생각이 짧았습니다, 형님. 앞으로 어떤 일이든 저와 제 동생들을 먼저 불러주십시오, 형님.”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가 문을 향해 움직이자 최치곤이 바로 뒤따랐다.

“거기, 쇠파이프 이리 가져와라.”

“예, 형님.”

진용도가 내린 지시와 다부진 대꾸가 들릴 때, 최치곤이 문을 닫았다.

“감동적인 연설 뭐냐? 눈물이 찔끔 났다.”

“저놈들 통해서 말 퍼지라고.”

감동에 놀라움을 덮은 얼굴로 최치곤이 설명을 기다렸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영등포와 대림동 주변은 외노자가 많잖냐. 저놈들이 이야기를 퍼트렸으면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 우리 주변에서라도 저런 일이 없었으면 해서.”

“아, 씨발.”

이병렬이 “보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거 아냐?”라고 길게 늘어놓았던 감정을 최치곤은 정말이지 간단명료한 욕 한마디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으면 싶은 밤이었다.

마약이 범람하더니 결국 대한민국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국의 폭력조직이 똬리를 튼 것은 물론이고, 평범한 우리나라 사람마저 협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매질이 멈췄는지 안쪽이 조용했다.

최치곤이 슬쩍 뒤를 돌아볼 때였다.

문이 열리며 진용도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모시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허억. 헉.”

고개를 떨군 프란코의 머리칼과 이마, 콧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꿇어앉은 다리와 바닥을 적셨다.

“박용진 씨 아들이라는 놈이 누구냐?”

“크륵. 큭.”

강성태가 픽 웃는 순간이었다.

“뒤에. 뒤에 있습니다. 안젤로라고 합니다.”

올라온 핏물을 삼킨 프란코가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강성태가 시선을 뒤로 들자 역시나 피범벅인 곱슬 머리칼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네가 박용진 씨 아들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걸 뭐로 증명해?”

“그가 가고 나서 1년 뒤에 내가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강성태가 빤히 바라보자 놈이 고개를 떨궜다.

안젤로가 거짓말을 한다는 데 커피알리고를 걸 수 있을 정도로 뻔한 반응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 네가 진짜 박용진 씨 아들이면 내가 3억 원을 주마. 그리고 박용진 씨와 만나게 해주겠다. 대신, 아들이 아닌 거로 나오면 너희 여덟 명은 모조리 묻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강성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프란코와 안젤로의 고개가 불쑥 위로 들렸다.

“저 인간 머리칼 몇 개만 뽑아.”

강성태가 고개를 돌리자 눈빛을 알아챈 최치곤이 필리핀 놈들 사이로 움직여 안젤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거칠게 잡아챈 최치곤의 손에 피와 머리칼 한 움큼이 달라붙었다.

“진용도. 내일 점심때면 결과 나올 테니까 그때까지 이놈들 데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형님.”

다가오는 최치곤에 맞춰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리기 직전이었다.

고개를 들고 있던 프란코와 강성태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필리핀 뒷골목에서 총질했던 거?

용병으로, 소말리아와 멕시코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 거짓말 절대 못 할 거다.

강성태가 픽 웃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을 직감한 놈의 눈빛이 흔들렸다.

“안젤로는 아들이 아닙니다.”

그 직후에 놈이 급한 음성으로 강성태를 붙들었다.

‘그래서 뭐?’

강성태는 덤덤하게 시선만 주었다.

“필리핀에서 명단이 넘어옵니다. 한국 남자들의 여권 번호와 이름, 체류 기간을 받는 대신 미국 달러로 50불을 줍니다. 택시 기사는 그렇게 알았습니다.”

강성태보다 최치곤과 진용도, 둘러싼 덩치들이 더 놀란 눈치였다.

강성태는 의자에 앉아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면 박용진 씨는 협박을 안 먹어서 죽이려고 했던 거냐? 다른 사람들 협박하는 데 보여주려고?”

놈은 대꾸하지 못했다.

“여권 번호만 있는데 어떻게 지금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았지?”

“여권에 적힌 정보를 보고 주소를 확인했고, 이사를 가지 않아서 찾았습니다.”

“주소는 그렇다 치고, 휴대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우편함에 있던 요금고지서를 뜯어서 확인했습니다.”

이놈들 봐라?

강성태도 놀랄 정도의 응용력이었다.

“프란코. 요금고지서에는 번호가 다 표시되지 않아. 앞뒤로 가려져서 그거로는 번호를 알지도 못하고.”

놈에게 말을 한 강성태는 몸을 세웠다.

“저놈들한테 전화번호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동안 돈을 뺏은 사람 명단하고 금액 알아놔. 할 수 있겠어?”

“맡겨주십시오, 형님.”

진용도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에서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뒤탈 없게 처리하겠습니다!”

문을 나서려는 강성태를 프란코가 소리쳐서 붙들었다.

걸음을 멈춘 강성태가 슬쩍 뒤를 돌아볼 때였다.

“이 씨발 새끼가!”

부으응! 퍼으윽!

뒤편에서 달려든 덩치가 쇠파이프로 놈의 목덜미를 세차게 갈겼다.

강성태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진용도의 고함과 “예!” 하는 덩치들의 답이 있었는데 강성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강성태가 차로 향하자 최치곤이 빠르게 운전석을 향해 움직였다.

“여기 바깥에 누구 하나 세워야 하지 않냐?”

“저기 골목 입구에 경비실 보이지?”

강성태는 공장 골목 입구에 서 있는 철제 틀을 보았다.

“경찰차가 오든 뭐든 저기에서 일단 붙들어. 그 전에 벨을 누르는데 그러면 공장 안에 빨간 불이 켜져서 바로 알게 되고.”

세상이 발전하더니 폭력 조직도 벨을 이용하는 시대가 왔다. 최치곤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그런가 하는 심정으로 조수석에 올랐다.

최치곤은 바로 차를 움직였다.

“빌라로 갈 거지?”

“그러자.”

승용차가 지나가자 때가 잔뜩 묻은 경비실 안에서 덩치 하나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치곤아. 우리 들어올 때 저기에 사람이 있었어?”

“그럼.”

최치곤의 답을 들으며 강성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통화하던 중이라고 해도 저런 곳에 사람이 있는데 못 알아차렸다는 건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골목을 나온 최치곤이 바로 큰 도로에 합류했다.

“남자는 하여간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하는 건데 필리핀 조직에서 저렇게 나오면 걸릴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추잡한 짓을 한 것에 대해 처벌받기는 해야지. 그건 그렇고 너도 조심해!”

“내가 뭘?”

“벽이 어쩌고 하는 생각 버려. 그런 짓 했다가 나한테 걸리면 친구고 뭐고 정말 가만 안 둔다.”

“여자들이 좋아한다던데? 드라마나 영화 보면 그렇잖아?”

룸미러로 강성태의 표정을 확인한 최치곤이 목을 움츠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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