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 13화
제6장. 거기서 뭐 해?
거친 성격을 지녔다는 건 알지만, 뭐라 해도 강성태는 최치곤을 믿었다.
기본은 지킬 인간이었다.
“여보세요?”
강성태는 마지막 믿음을 쥐고 전화를 받았다.
- 편하게 통화 되냐? 옆에 형님들 없었으면 싶어서.
“빌라 앞이니까 말해. 무슨 일이야?”
- 내가 여기 은주 집 앞이거든. 둘이서 차에 있는데.
먼저 강성태를 긴장시킨 최치곤의 답이 있었다.
- 오후에 부동산 사장이 부탁한 게 있었거든.
이어서 최치곤은 택시 기사 박용진을 만나 지금까지의 진행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런데 왜 은주 씨랑 함께 있어?”
- 내가 걱정돼서 같이 있어 준 거라는데 이거 이상하다.
“뭐가?”
- 조금 전에 승용차 두 대가 들어왔는데 이 새끼들 아무래도 작업조 같아. 이런 일로 숙소에 연락하는 건 내가 하기 어렵잖아. 그냥 아는 사람 요청으로 온 거라서.
강성태는 이은주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얻어맞았으면 맞았지, 최치곤은 이런 식의 약한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독종이었다.
“치곤아.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은주 씨 집 앞으로 가면 돼?”
- 빌라에서 옛날 복개천 쪽으로 30미터쯤 더 오면 주택가 있거든. 거기 도로변. 저 새끼들 동남아시아 놈들 같아.
“일 터질 거 같으면 라이트 켜고 소란 떨어.”
- 은주만 아니면 벌써 엎었을 텐데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거 같아.
“바로 갈 테니까 끊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빌라 골목을 달리다시피 나서 카페 쪽을 향해 뛰었다.
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려면 아무래도 끼어들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달린 강성태는 빈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좌회전해서 지하차도 들어가지 말고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가 주세요.”
강성태의 요구에 택시 기사가 차를 움직였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어서 신월동 오거리는 번잡함을 어느 정도 벗은 모습이었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신호를 제대로 받아서 강성태는 10분 만에 이은주의 집 앞에 도착했다.
30미터쯤 더 가야 한다고 들었다.
택시로 가면 쉽고 빨랐겠지만, 차에 있다는 수상한 놈들에게 걸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움직이는 게 좋았다.
한적한 도로를 걸으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왔어?
“길 따라서 걷고 있거든. 뒤돌아봐. 내가 보여?”
- 잠깐만? 어! 보인다. 비상등 켜기 어려우니까 천천히 와. 확실히 승용차 두 대에 8명이다. 이 새끼들, 오늘 아예 날 잡은 모양인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귀에 대며 걸었다.
20미터쯤 걷고 난 뒤였다.
- 도로 바로 앞에 승합차 보이지? 회색. 거기에서 세 번째 앞에 있는 흰색 승용차.
“봤어.”
- 뒤로 조용하게 타.
스마트폰을 내린 강성태는 덤덤하게 걸어 승합차를 지났고, 최치곤이 말한 흰색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긴장한 얼굴로 있던 이은주가 조수석에서 상체를 돌려 강성태에게 인사했다.
“은주 씨는 뭐하러 여기 있어요?”
“죄송합니다.”
“혼자 있겠다니까 혹시 일 당하면 신고라도 해주겠다고 있어 준 거야. 집에 안 보낸 내가 잘못한 거니까 은주에게는 뭐라고 하지 마라.”
위험한 상황이 염려돼서 던진 말에 이은주와 최치곤이 차례로 사과와 설명을 늘어놓았다.
“고맙긴 한데 걱정도 되고 해서 그런 거지.”
적당하게 넘긴 강성태는 상체를 기울여 앞을 살폈다.
“도로 끝에 서 있는 승용차 보여? 오른쪽으로 도는 자리라 비어 있었는데 그리 들어오더라. 처음에는 몰랐는데 동남아시아 애들 여덟 명이 내려서 담배를 피우더라고.”
도로를 향해 시선을 돌린 최치곤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일 끝나고 빌라나 주택에 자러 온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 새끼들이 트렁크에서 연장을 꺼내는 거 있지. 크기나 형태도 기사 양반이 말해준 거랑 같은 건데 오늘은 망치랑 등산용 칼도 가지고 있더라.”
최치곤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은주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 신고해도 딱히 뭘 어떻게 하기 어려워요. 괜히 경찰이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가면 다음번에 더 치밀하게 노릴 가능성도 높고요.”
“저 새끼들 정체가 뭘까?”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최치곤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택시 기사가 외노자 월급을 떼먹었을 리도 없고, 혹시 손님으로 탔는데 바가지를 씌웠나?”
“집 한 채 값을 택시비로 받지 않고서야 저렇게 여덟 명씩 오겠냐?”
“혹시 알아? 필리핀이나 베트남 조직의 두목이 탄 건데 그걸 택시 기사가 뺑뺑이 있는 대로 돌렸을지?”
말도 안 되는 추측이었다. 그런데 최치곤의 의견 중 하나쯤은 그럴듯했다.
“저것들 혹시 동남아시아 어디 조직원들 아닐까?”
“동남아시아 조직원이 왜 개인택시 기사를 노리냐?”
강성태의 추측을 최치곤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풀기 어려운 질문으로 되받았다.
“그건 또 그러네. 일단 지켜보자.”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최치곤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예. 지금이요? 얼마나 걸려요?”
전화를 받은 최치곤이 고개를 돌려 눈을 끔벅였다.
박용진이 온다는 신호였다.
“집 앞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복개천 도로에 차를 세워요. 그렇죠. 그리고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전화를 먼저 하셔.”
장소를 설명한 최치곤이 종료버튼을 눌렀다.
“10분이면 들어온단다.”
좁은 도로의 왼편과 오른쪽으로 오래된 주택들이 담을 함께 사용하듯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오거리에서 근처에는 전부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이쪽은 빌라와 오래된 주택들을 해결하지 못해서 개발한다는 소리만 몇 번 있었지 아직 30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도로를 비추고 있는데도 워낙 한적해서 혼자 걷기에는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진짜 두 분만 가세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은주는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저런 것들은 일도 아냐.”
최치곤이 큰소리를 치고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놈의 목에서 으드득,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난 뒤였다.
도로의 뒤편에서 자동차의 라이트가 들어왔다.
“택시다.”
사이드미러로 뒤를 확인한 최치곤이 갈라진 음성으로 알려주었다.
강성태는 오른쪽 커브에 서 있는 승용차로 시선을 주었다가 얼른 몸을 낮췄다.
놈들이 고개를 쭉 빼고 뒤를 살피고 있었다.
“저놈들도 뒤를 확인하는데?”
“그렇지? 이 새끼들 진짜 이상하네?”
그사이 택시가 바로 옆을 스쳐 오른쪽으로 돌았다.
강성태는 다시 조심스럽게 상체를 세웠다.
앞의 승용차에서 두 놈이 내려서 차 사이에 몸을 감추는 게 보였다.
한 놈은 길이가 짧은 쇠파이프, 다른 놈은 망치를 손에 든 거로 봐서 작업을 위해 내린 게 분명했다.
여덟 명이었다.
오늘은 어지간한 소란이 있어도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동이었다.
택시 기사를 기다렸다가 반응을 보면 가장 확실하겠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려야겠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강성태가 마음을 굳혔을 때, 최치곤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예.”
“내리지 말고 그냥 차에 있으라고 해.”
“차에 계셔. 내가 갈 테니까.”
최치곤이 답을 하는 사이 강성태는 뒷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조심하세요.”
이은주가 급하게 건넨 당부에 대한 답으로 강성태는 조수석의 문을 툭툭 건드려주었다.
고작 차 세 대 앞이었다.
강성태는 앞으로 걸으면서 먼저 커브 길에 서 있는 차 번호를 눈에 담았다. 그런 뒤에 차 틈에 서 있는 두 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거기서 뭐 해?”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두 놈이 시선을 돌렸고, 이어 최치곤이 급하게 여는 운전석 문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가.”
곱슬머리, 그을린 듯 검은 피부, 어색한 억양, 얽은 볼을 봐서 확실히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강성태는 차 틈에 있는 두 놈의 목덜미에서 볼을 타고 올라온 문신을 눈에 담았다.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해적 형상이었다.
“이리 나와.”
강성태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차 틈에 있던 놈이 몸을 세웠고, 커브에 서 있던 차의 문이 열리며 여섯 놈이 동시에 내렸다.
“이 새끼들 진짜 이상하네?”
도로를 따라 걸어온 최치곤까지 가세하자 차 안에 있던 놈들이 단숨에 다가왔다.
‘이놈들 조직이구나.’
차에서 내린 놈들의 손등과 목덜미에도 해적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박용진 씨 찾아왔어?”
강성태가 던진 말에 차에서 내린 놈 중 하나가 표독스럽게 눈알을 돌렸다.
“우리 일하는 사람. 아저씨, 경찰이야?”
“우리 경찰 아냐.”
질문을 던졌던 놈이 어떻게 하지, 하는 표정으로 동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박용진 씨는 왜 노리는 거냐?”
“우리 한국말 몰라.”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영어로 질문을 다시 던졌다.
“박용진 씨는 왜 노리는 건데?”
능숙한 영어가 건너가자 여덟 놈이 고개를 돌리며 눈짓을 교환했다.
“우리 간다.”
“이리 오라고 했지?”
다시 이어진 우리말 대화였다.
인도에 서 있는 강성태와 차도에 있는 최치곤을 돌아본 놈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해적 문신까지 한 놈들이 뭐가 그렇게 무서워? 숫자도 많잖아?”
“죽고 싶어?”
억양은 어색했지만, 눈빛이나 표정은 진짜였다.
“일단 이리 오라고.”
강성태가 물러서지 않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였다.
몰려있던 여섯 놈이 대번에 허리 뒤로 손을 넣었다.
무기를 꺼낼 시간을 주는 건 바보짓이었다.
훅, 달려든 강성태는 가장 앞에 있는 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쩌어억! 쩌억! 쩌어어억!
세 놈의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부으응!
망치가 강성태의 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상체를 뒤로 뺀 강성태는 조금 더 독하게 주먹을 날렸다.
쩌어어어억! 쩌억!
두 놈이 세워둔 차를 향해 기울어질 때였다.
“이 씨발 새끼들아!”
고함을 지른 최치곤이 차 틈에 있던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퍼억! 퍽! 퍽!
차와 차 사이가 좁아서 겨우 몸을 돌리던 놈이 최치곤의 주먹에 얼굴을 연달아 얻어맞았다.
쩌어어억!
강성태는 차에서 내린 여섯 놈을 해결한 뒤에 차 틈에 있던 남은 한 놈을 향해 움직였다.
“너 누구야?”
퍼억! 퍽! 퍼억!
강성태가 질문을 던지는 사이, 얼굴을 얻어맞아 몸을 구부린 놈의 턱과 가슴을 최치곤이 연달아 걷어찼다.
“이 씨발 새끼! 어디에서 연장을 휘둘러? 너 이 개새끼! 저분이 누군지나 알고 이래? 이 개새끼들아! 너희는 씨발! 내일 다 파묻어 버릴 거야!”
강성태가 말릴 틈도 없이 최치곤이 쓰러진 놈과 유일하게 서 있는 놈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치곤아. 그만해. 신고 들어가겠다.”
강성태는 최치곤을 말린 뒤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너희 뭐야? 왜 택시기사를 노리는 거야?”
질문이 건너간 뒤였다.
가장 먼저 맞았던 놈이 “끄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강성태는 몸을 돌려 일어서려는 놈의 얼굴을 세차게 걷어찼다.
콰작!
겨우 일어서려던 놈이 바닥에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바닥에 떨어졌다.
숨을 뱉어낸 강성태는 다시 유일하게 서 있는 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면 내가 누군지 짐작하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번에도 대답 안 하면 전부 묻어줄 테니까 생각 잘해. 박용진 씨를 왜 노리는 거냐?”
강성태의 눈을 본 놈이 처음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빨리 대답 안 해, 이 씨발 새끼야?”
최치곤이 뒤에서 으르렁거렸고,
“누구십니까?”
우리말을 제법 하는 모양으로 서 있던 놈의 존댓말을 꺼내놓았다. 그러나 말투만 그렇지, 놈의 눈에는 두고 보자는 의미의 적대감이 가득했다.
“치곤아. 달수한테 전화해서 숙소 애들 불러. 이 새끼들 끌고 가야 하니까 승합차 하나 가져오라고 하고.”
“예, 형님.”
분위기를 탄 최치곤이 쇳소리 가득한 조폭 특유의 음성으로 공손하게 답했다.
최치곤은 진심으로 숙소에 연락하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반가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낸 놈이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박용진이 사기 쳐서 저기 동료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 놈에게서 나왔다.
“어디에서 왔어?”
“필리핀에서 온 가디언스 조직입니다.”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놈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답을 내놓았다.
“필리핀 조폭이라는 거냐?”
“우리는 한국에서 활동합니다.”
필리핀 출신을 확인하겠다는 질문의 의도를 잘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러나 잘못 알아들은 것보다 내용이 더 황당해서 강성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필리핀 조폭인데 우리나라에서 활동한다?”
“그렇습니다. 이제 가도 됩니까?”
‘가디언스파’라는 이름을 팔면 강성태가 한풀 죽어줄 거라 확신했는지 답을 한 놈이 입가에 미소마저 달았다.
확실히 잔인한 느낌이었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죽을 수 있다는 의미도 제대로 담았다.
그러나 픽 웃는 건 강성태가 한 수 위였다.
거기에 강성태는 그런 미소 따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는 게 놈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치곤아. 숙소에 전화해.”
“예, 형님.”
강성태가 지시하자 최치곤이 스마트폰의 통화버튼을 눌렀고, 유일하게 서 있던 놈이 눈에 독기를 가득 올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