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8화 (178/513)

9권 - 8화

제4장. 보스의 권위를 살리는 일이 된다.

강성태가 채 답을 하기도 전이었다.

- 내일 시간 돼? 오후 1시쯤?

퉁명스럽게 들리는 질문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 조금 전에 삼합회에서 연락이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할 겸해서 보자는데 그쪽에서 강성태라는 이름을 콕 짚은 것도 그렇고, 내 촉으로는 아무래도 뒷조사를 끝낸 느낌이다.

파란불이 들어와서 좌우를 살핀 강성태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 듣고 있어?

“말씀하십시오.”

- 내게 투자했던 건하고 광룡의 일을 마무리 짓고 싶단다. 이런 경우는 대개 저쪽에서 조건을 달고 나오기 쉬워.

“병원으로 가면 됩니까? 뵙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 그럼 내일 오후 1시에 보자. 그리고 참. 애들 안 데리고 다닌다면서?

“번거로우니까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 에효. 말해 뭐하겠냐. 내 입만 아프지. 내일 봐.

어쩌지 못하는 답답한 탄식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

합정동 지구대에서 출발한 장 경장과 김민정이 신고한 호프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떤 새끼가 신고했어? 죽고 싶어?”

들어서는 장 경장과 김민정을 본 덩치가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더니 테이블을 거칠게 잡아챘다.

호프 잔과 안주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며 술이 사방으로 튀었고, 먹다 남은 닭과 샐러드, 서비스 과자 등이 볼썽사납게 널브러졌다.

“사장 진짜 안 나와? 어디 있어, 이 개 같은 놈아!”

덩치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한 놈은 구석에서 알바생으로 보이는 학생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고, 나머지 넷은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날뛰는 상황이었다.

체격 좋고, 인상 더럽고, 숫자도 있어서 안쪽에 있는 세 테이블의 손님들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합정지구대에서 나왔어요. 무슨 일인데 이래요?”

“경찰은 볼 일 없으니까 꺼지시고.”

“거기 알바생 놔줘요. 그리고 일단 지구대로 같이 가요.”

“안 가겠다면 어쩔 건데? 수갑이라도 채우게? 이런 씨발.”

덩치 네 명이 단박에 김민정을 둘러쌌다.

“왜들 이래?”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앞을 막아서는 장 경장을 덩치 하나가 가슴으로 밀었다.

“이거 공무집행 방해야!”

“잡아넣어! 씨발!”

그러는 사이에도 구석에서 알바생의 멱살을 잡은 덩치는 당장에라도 뺨을 때릴 것처럼 손을 치켜들며 위협했다.

“놓으라고 했죠!”

“놀고 있네! 와서 풀어봐.”

알바생의 멱살을 잡고 있던 덩치가 김민정을 향해 으르렁대는 순간이었다.

중간에 있던 덩치 하나가 술이 확 깬 얼굴로 김민정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합정지구대에서 나왔다고 했습니까?”

“그래요! 합정지구대 김민정 순경이에요.”

“혹시 오빠가 김민재고, 커피알리고에 계신 그분의 사촌여동생 되시는 그 김민정 순경님이십니까?”

뭔데 김민재의 이름까지 알아?

김민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넨 덩치를 바라보았다.

“야! 야! 일단 그 손 놔. 너도 뒤로 물러나고.”

“뭔데 그래, 이 병신아?”

“아, 이 개새끼가 진짜 귓구멍이 막혔나?”

질문을 던졌던 덩치가 설치던 놈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말을 듣고 있던 놈의 눈이 김민정을 향하더니 곧바로 커다랗게 변했다.

질문을 던졌던 덩치는 또 곧바로 구석으로 가서 알바생의 멱살을 잡고 있던 놈에게 똑같이 귓속말을 속닥였다.

반응은 비슷했다.

귓속말을 듣던 놈이 김민정을 보았고, 눈이 커졌으며 급하게 알바생의 손을 놓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김민정이 질문을 건넨 직후였다.

“저희 다섯 명이 술을 마시러 왔는데 이상하게 불친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 있던 참인데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을 주문했는데도 전부 파닭이 나와서 항의하던 중이었습니다.”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덩치가 손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알바생에게 1차로 항의했으나 저희가 주문을 파닭으로 했다고 우기…, 아니 주장하길래 욱하는 마음에 뺨을 세 차례 손바닥으로 가격한 사실이 있고, 사장을 불렀는데 자리에 없다는 소리만 계속 반복해서 격분한 나머지 고함을 지르고 영업을 방해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치 조서를 읽는 듯 스스로 죄를 설명한 덩치가 김민정의 앞으로 움직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장 경장이 앞을 막자 덩치는 옆으로 한 걸음을 빠져나와 양손을 내밀었다.

“공무집행을 방해할 의사는 없었으나 결론적으로 그런 행위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드린 말씀이 모두 사실이며, 거짓 없이 진술할 것이며, 또한 파손된 집기와 기물의 변제, 알바생과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쪽에 있던 손님들이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른 채 바라보고 있었는데 더 놀라운 일은 다음 순서였다.

알바생의 뺨을 때렸던 덩치가 정말이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해가 있다고는 하나 학생을 함부로 대했다. 처벌을 달게 받겠지만, 치료비와 오늘 일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할 테니까 혹시 용서할 마음이 있으면 합의해주었으면 싶다. 너그럽게 용서해주라.”

이것들이 집행유예 기간의 외상값이 있어서 쇼를 하는 거야, 아니면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착하게 살고 싶어진 거야?

김민정과 함께 출동한 장 경장마저 멍한 얼굴로 덩치들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에 김민정은 눈가를 좁히고 다섯을 노려보았다.

“커피알리고 이야기했었죠? 성태 오빠 때문에 이래요?”

김민정의 질문이 떨어지자 덩치 다섯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희는 원래 경찰청에 계보가 올라가 있는 조직폭력배인데 일반인을 상대로 손을 썼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자백한 겁니다.”

처음 질문을 던졌던 덩치가 급하게 답을 쏟아냈다.

“순찰차에 다섯 명이 다 타기는 어려우니까 여기 두 명이 일단 지구대에 함께 가기로 하고, 저희 셋은 택시로 뒤따르겠습니다.”

덩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놈이 재킷 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학생! 여기 계산부터 해줘. 테이블, 컵, 접시 부서진 거, 술 하고 닭값은 카드로 낼게. 그리고 이거.”

카드를 옆의 테이블에 올린 덩치가 이번에는 지갑 안쪽에 있던 지폐를 모조리 꺼내 알바생에게 건넸다.

“우선 치료비하고, 지구대에 가 있을 테니까 진단서랑 끊어서 보내주라. 물론 합의해준다면 고맙겠지만, 아니더라도 일단 치료는 받아. 아! 치과에 꼭 가. 그래야 진단이 많이 나와.”

미쳤나?

알바생이 손에 든 돈과 테이블에 올려진 카드를 보았다가 시선을 들었다.

“계산해 줘. 우리 지구대에 가서 조서 써야 해. 야! 뭐 해? 너희 둘은 먼저 순찰차로 가라니까!”

“알았다. 조금 뒤에 보자. 가시죠?”

덩치들이 재촉할 때였다.

김민정은 무언가 확신이 든 얼굴로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

오전 10시쯤에 강성태는 방지병원의 병실에 들어섰다.

이제는 제법 움직임이 좋아진 이병렬이 지루한 얼굴로 의자에 있다가 강성태를 보고는 픽 웃었다.

“어쩐 일이실까?”

“의논할 게 있어서.”

“그래? 달수야. 커피 좀 타와라.”

“예, 형님.”

커피를 타기 위해 서달수가 구석으로 향할 때 강성태는 이병렬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어젯밤 늦게 조태완 고문이 전화했었다.”

강성태는 짧은 통화 내용을 이병렬에게 전해주었다.

“애새끼들이 조건 걸겠네.”

“조건?”

“나눠 먹자는 거겠지. 광룡을 눈감아주면 당분간 벌어들이는 수익의 얼마를 넘겨주겠다, 뭐 그런 거. 물론 처음에 목돈을 계약금 조로 건넬 테고.”

서달수가 커피를 놓아주는 바람에 잠시 틈이 있었다.

“다른 조직이 깔고 앉은 지역에 업장을 차리게 되면 그런 식으로 해. 그쪽 조직의 애들 서넛을 상무 자리 줘서 먹고 살게 해주는 거지. 물론 개업할 때 두둑하게 건네주기도 하고.”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조 고문 만나고 보자. 삼합회가 직접 나섰다니까 잘하면 이번에 싹 정리할 수 있겠다.”

“보스.”

대꾸를 들은 이병렬이 진지한 음성으로 강성태를 불렀다.

“막말로 공부 안 하고 꼴통 짓 하던 놈들이 깡패 되는 건데 보스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면 불만이 생긴다. 그러니까 삼합회를 칠 때 치더라도 피 흘려야 하는 애들에게 내세울 명분을 만들어.”

진지한 눈빛과 표정으로 전하는 충고였다.

“태완이 형님 쪽과 신호남파 정리한 덕분에 숙소 애들이 당장은 배부르거든. 신월동, 대림동, 강서구도 먹을 게 많아져서 당장은 해피하고. 여기까지야. 지금이야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이게 당연한 게 돼.”

서달수를 돌아보았던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배부르고 등 따신 데 보스가 받을 수 있는 돈을 거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삼합회와 전쟁을 하겠다고 나서는 거거든. 불만이 쌓이면 등 뒤에서 칼이 날아와. 보스는 몰라도 나, 진용이, 달수, 치곤이는 칼 맞기 딱 좋아.”

강성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조언이었다.

“거기에 자꾸 바른 생활을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부담스러워. 깡패 별거 있어? 학교 때 일진 노릇하던 놈에 선생 두들겨 퇴학당한 놈, 그런 놈들인데 바른 생활이 되겠어? 지금이야 힘에 눌리니까 고개 숙이지만, 아래에서부터 불만이 차면 반드시 배신이 일어난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모습이었다.

“당장 삼합회와 부딪칠 건 아니니까 일단 조 고문을 만나고 나서 다시 의논하자.”

“그래야지. 점심은 함께해도 되지?”

“또 육개장이야?”

“그만한 게 어디 있어?”

이병렬의 끝없는 육개장이 어쩐지 최치곤의 샌드위치와 같다는 생각에 강성태는 픽 웃었다.

**

오후 1시에 병실에 들어선 강성태를 향해 김정훈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어서 와.”

조태완은 습관처럼 의자가 있는 침대 쪽을 왼손으로 두들겼다.

강성태가 자리에 앉자 김정훈이 냉장고에서 유리컵을 꺼내 가져왔다.

“오렌지를 직접 짜서 만든 거다. 내가 특별히 준비했다.”

“감사합니다.”

강성태는 보란 듯이 주스를 들이켜고는 빈 잔을 김정훈에게 건넸다.

“약을 탔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막 마셔?”

픽 웃은 강성태를 보며 조태완이 비슷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조태완의 눈이 지금은 강성태를 완벽하게 의지하는 느낌이었다.

“삼합회에서 그 뒤에 다시 연락이 있었다. 내게 조건을 걸었는데 강남과 영등포는 건들지 않을 테니까 나머지는 눈감아 달라는 거였다. 물론 나는 고문이라서 결정권이 없으니까 보스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

강성태를 만나자 막힌 숨이라도 뚫렸는지 조태완은 삼합회가 내걸었다는 조건들을 술술 풀어냈다.

“상납금도 내겠다는데 그에 앞서 마카오의 카지노 지분을 보스 앞으로 돌려준다고 했다. 솔직하게 옛날의 나였다면 숨도 안 쉬고 손을 내밀 조건이다.”

실제로도 조태완의 눈가에 숨기지 못하는 욕심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그릇의 차이인지도 모르지. 나는 클럽의 지분 넘겨주는 대가로 투자를 받았는데 보스는 가만있어도 삼합회가 카지노 지분에 상납금까지 내놓는다고 하니까.”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며 조태완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뭐라고 답하면 될까?”

“고민해 보겠습니다.”

“만나보고 싶다는 건?”

“고문님과 병렬이랑 함께하는 조건이라면 만나보겠습니다.”

“알았다.”

강성태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고개를 끄덕인 조태완은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이세종이라고 보도국 국장 놈이 있다. 얍삽한 놈이라서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하는데 대신 써먹기에는 그만한 놈도 없다. 온 김에 얼굴이나 보고 가.”

말을 마친 조태완이 고개를 들어 김정훈을 찾았다.

“모셔오겠습니다, 형님.”

짧게 고개를 숙인 김정훈이 병실을 나선 뒤였다.

“그런 거 싫어하는 건 아는데 정훈이 데리고 업장 한 바퀴 돌아.”

문을 살핀 조태완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어지간하면 병렬이를 시켰을 텐데 지금 병원에 있잖아. 그런 몸으로 가봐야 먹히지 않을 테고, 뭐라고 해도 당장 보스가 누군지 다 아니까 직접 가주는 게 좋아.”

“꼭 그래야 합니까?”

“정훈이한테 힘을 실어주는 게 곧 보스의 권위를 살리는 일이 된다. 그래야 병렬이 말이 먹히기도 하고. 앞으로 하려는 일을 생각하면 일단 조직의 보스로 남아 있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해.”

이병렬이 그러더니 조태완도 생각하지 못했던 조언을 내놓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옅게 웃은 조태완이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말린다고 들어먹을 보스가 아니라서 이 짓을 하는 거다. 막말로 보스가 검사나 국회의원 두들겼다가 잡혀가면 나부터 우리 조직에 속한 놈들은 전부 골인이야. 그 인간들이 얼마나 뒤끝이 지랄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강성태의 반응이 갑갑한 느낌으로 조태완이 말을 이었다.

“검사와 국회의원을 두들긴다며? 조금 뒤에 소개할 이세종하고 애들 이용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보도에 나갈 정도로 확실한 알리바이면 보스를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해.”

강성태가 계획하던 것과는 다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일단 손해 볼 게 없는 조언이어서 강성태는 잠자코 있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닌 거 알겠는데 이상하게 나는 보스에게 목줄을 잡힌 꼴이다. 지금 우리 둘이 갈라지면 당장 삼합회가 나를 조이고 들어올 테고, 그렇다고 붙어 있자니 검사나 국회의원 두들겨서 죽게 생겼지.”

조태완이 탄식처럼 말을 건넨 직후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김정훈과 이세종이 분명한 남자가 들어섰다.

조태완을 향해 깡패처럼 상체를 숙여 인사한 이세종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보스라고 하더니 젊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성태를 향해 다가온 이세종이 편안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이세종이다. 잘 지내자.”

강성태는 물끄러미 이세종을 바라보았다.

“뭐 해? 형으로 생각하면 되지?”

강성태가 시선을 돌렸을 때, 조태완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 직후였다.

“보자 보자 하니까 위아래가 없어, 이 개새끼는!”

김정훈이 이세종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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