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 7화
안다미의 승용차로 신월동까지 움직인 강성태 일행은 실내포장마차로 향했다.
안다미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김민재도 익숙한 장소여서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삼촌! 오랜만이야. 팔은 왜 그래?”
보는 사람마다 던지는 질문에 넘어졌다는 뻔한 답을 건넨 강성태는 안쪽 테이블에 자리했다.
족발부터 늘 먹던 안주를 주문한 뒤였다.
탄산음료를 앞에 둔 강성태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맥주와 소주를 각각 취향에 맞춰 따랐다.
“치곤 씨가 말하는 일대일이 뭐예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잔만요.”
맹요선이 있어서 그랬을까.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눈을 커다랗게 뜬 안다미가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심장이 철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거절할 방법이 없는 애교였다.
처음 보는 안다미의 애교에 강성태는 맥주잔에 일대일의 폭탄주를 만들어주었다.
김민재와 맹요선의 걱정스러운 표정 앞에서 안다미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폭탄주를 깔끔하게 비워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엄지로 잔에 찍힌 립스틱 자국을 닦아내는 여유마저 보였다.
“술을 잘 드시네요?”
맹요선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건넨 질문이었다.
“외과 특징 같아요. 가끔은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거든요. 아프게 보내는 환자들도 있고요. 코에 남은 약품과 피 냄새, 또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감촉을 지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야 다음 날 다른 환자를 냉정하게 보니까요.”
갑자기 숙연해진 김민재와 맹요선을 보며 안다미가 말을 이었다.
“그거 말고도 우리끼리 더럽게 태워요. 인턴 때는 온갖 잡일 해야 하고, 집합 걸려서 정강이 맞고. 늘 있는 일인데 때려치우고 말지 더는 못 해먹겠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도 이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안다미가 투덜대며 불평을 늘어놓았을 때였다.
“맞아요. 직장 생활하다 보면 치사해서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요선 씨도 그래요?”
“그럼요.”
맹요선이 맞장구를 치면서 느닷없이 대화가 달려나갔다.
“그럼 우리 꿋꿋한 직장생활을 위해 건배해요.”
안다미가 맥주를 권했고, 잔을 부딪친 맹요선이 유쾌하게 들이켰다.
여자 두 명이 유쾌하게 술자리를 이끌면서 어색함은 저 멀리 사라졌다.
맥주를 마시고 난 안다미가 고개를 돌렸다.
“성태 씨는 일대일, 몇 잔이나 마셔요?”
안다미가 질문을 건넬 때, 썰어놓은 오이와 당근을 들고 왔던 곰보 이모가 끼어들었다.
“여기 삼촌은 한 스무 잔 마시지? 그러고도 취한 걸 못 봤어.”
“예? 진짜요?”
“그럼. 맨날 시커먼 치곤이 삼촌하고만 왔지, 여자 손님과 온 것도 처음이고. 기분이다! 우리 성태 삼촌이 데이트하는 거 같으니까 계란찜 서비스한다!”
적당하게 분위기를 띄워준 이모가 아가씨들이 미인이라는 영업적인 멘트를 던지고는 좁은 주방으로 향했다.
김민재가 당부해서인지 맹요선은 여동생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처음 본 자리였다.
어색할 만도 한데 안다미와 맹요선이 오래 만난 사이처럼 허물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한 시간 반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시간이 훅 지나갔다.
밤 11시 반이었고, 내일 출근을 앞둬서 강성태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진짜 내가 낼 거야.”
강성태와 안다미의 앞을 막은 김민재의 눈에서 불길이 솟아 있었다.
“만나자고 한 사람이 계산해야죠.”
안다미가 미안한 얼굴로 나섰고,
“다미 씨. 오늘은 양보하세요.”
용이 되고 싶은 김민재를 위해 강성태가 안다미를 말렸다.
계산을 마치고 실내포장마차를 나섰다.
다음 날이 주말이었다면 아마 확실하게 2차를 갔을 정도로 김민재와 맹요선의 눈에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다음에 꼭 봬요. 오늘 도움 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으로 김민재와 맹요선이 먼저 움직였다.
술을 마신 안다미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야 할 때였다.
“우리 잠깐 더 있으면 안 돼요?”
안다미가 아쉬운 얼굴로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안 될 게 뭐 있어요? 저쪽 오거리에 늦게까지 하는 커피전문점 있어요. 거기까지 걸어갈래요?”
“좋죠.”
기분이 좋아진 안다미가 강성태의 오른팔을 안고 걸었다.
“진짜 좋네요. 성태 씨랑 이렇게 평화롭게 걷는 거요. 사람이 좋아지면 헤어지기 싫다는 말을 이해 못 했었거든요? 이래서 결혼하나 봐요.”
강성태 역시 헤어지는 순간이 이렇게나 싫은 사람이 생길 줄은 몰랐다. 또한 교통사고 직전에 강성태를 덮어주었던 어머니의 따스함과 포근함을 현실에서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왜요?”
강성태를 돌아보는 안다미의 눈빛이 사진처럼 또렷하게 심장에 찍히는 느낌이었다.
대답 대신 강성태는 안다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안다미가 강성태의 팔을 더 꼭 끌어안은 뒤에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아침 7시에 호텔의 특실로 들어선 강성태는 먼저 이두안의 경호원인 존 보스만과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강.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멕시코의 일이 있어서인지 이전보다 또렷한 존경심이 그의 눈에 담겨 있었다.
비서의 안내를 받은 강성태는 이두안이 사용하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책상과 입구 사이에 넓은 공간에 하얀 테이블보를 씌워놓은 사각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몸은 좀 어때?”
“팔만 나으면 나머지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이라면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진지하게 하는 말일세.”
실제로도 이두안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강성태의 몸을 살폈다.
강성태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회복이어서 이두안의 반응이 어쩌면 당연한 건지 몰랐다.
“앉게.”
이두안이 식탁으로 강성태를 안내했다.
포크와 냅킨, 물과 주스, 커피를 위한 잔들이 놓인 것을 보면 강성태와의 식사를 기다렸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와 식사 약속이 있을 때면, 함께 준비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이렇게 집무실을 이용할 때는 바퀴 달린 이동용 테이블을 가져오게 했을 만큼 식사 자리에서 기다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이두안이었다.
강성태에게 미안해서?
아니면 또 다른 요구가 있어서?
이두안이 입을 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환대였다.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이동용 테이블을 밀고 들어와 토스트와 프라이, 베이컨, 과일, 우유, 주스, 커피 등을 세팅해 주었다.
더 먹을 것에 대비해 이동용 테이블에 여분의 음식을 남겨둔 직원들이 비서와 함께 방을 나섰다.
“드세.”
강성태는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입에 넣었다.
“멕시코에서의 일을 먼저 말하는 게 도리겠지? 자네 덕분에 세타스 카르텔이 내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내밀었네.”
강성태와 같이 빵을 입에 넣은 이두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가페의 지휘관들이 돌아선 게 가장 컸지. 또 있네. 여차하면 자네가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세타스 산맥에 돌아올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고 있지.”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짐작하는 눈치인데?”
“화이트 테일이 그곳에 나타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가 저와 관련해 만들어낸 정보를 이곳저곳에 흘렸겠지요.”
강성태의 짐작을 들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란이 멕시코에 와 준 것도 도움이 컸지. 여차하면 자네가 구르카 용병을 이끌고 다시 방문할지 모른다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었으니까. 아무튼, 자네가 키란과 함께 보여준 활약 덕분일세.”
버터를 얇게 바른 이두안이 만족한 얼굴로 빵을 입에 넣었다.
이후에는 로라의 학교생활과 이두안 회장이 한국 식당에 들러 먹었던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대략 30분에 걸쳐 식사를 마쳤다.
직원을 불러 남은 음식과 접시들을 치운 이두안은 향이 진한 커피를 새롭게 주문했다.
“사과하고 싶네, 미스터 강. 아니, 지난번의 무리한 계획에 자네를 끼워 넣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네.”
커피잔을 든 강성태는 이두안이 보자고 한 이유가 이 순간을 위해서였음을 알았다.
잔을 내려놓은 강성태는 반응을 염려하는 이두안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더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사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관계에 문제는 없는 거지?”
“로라를 포함해서 전혀 문제없습니다.”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던 이두안이 안심하는 미소를 그려냈다.
“보상을 하고 싶은데?”
“키란의 병원비면 충분합니다.”
“키란에 대해서는 이미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1차로 지불했네.”
솔직히 강성태는 이두안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키란은 일주일 뒤에 명예 제대를 하게 되지. 만기 근무 시까지의 급여도 계속 지급될 테고, 정년이 지나면 연금도 규정에 따라 문제없이 받을 걸세.”
강성태의 반응을 본 이두안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키란의 보상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군? 하나 더 있지. 내일쯤 키란의 모친에게 새로운 주택과 미화 100만 불이 전달될 걸세. 미리 전화라도 해주라는 충고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미화 100만 불이면 키란의 모친이 사는 지역의 주택을 절반쯤 살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명예 제대와 관련한 비용이 적지 않았을 텐데 이 정도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강성태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두안이 입을 열었다.
“시에라 마드레 산맥을 개발하기 위해 내가 1년에 쏟아붓는 돈이 미화로 대략 1천만 달러 정도지.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정부와 군, 지역주민에게 비공식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그 정도일세.”
매년 우리 돈으로 1백억 원 이상이 소위 뒷돈으로 뿌려진다는 설명이었다.
“그걸 반으로 줄여준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하는 선물이라면 내겐 싸게 먹힌 게 아닌가.”
말을 마친 이두안이 재킷의 안쪽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테이블에 올리고는 강성태 앞으로 밀었다.
“뭡니까?”
“이건 내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일세.”
“저는 괜찮습니다.”
“서라대학병원에 연구비 지원을 계속할 거고, 세 명의 의사에게는 한국 돈으로 각각 10억씩을 지급했으니 자네만 남았어. 말했지만, 매년 들어가는 뒷돈을 반으로 줄여주었고, 또 이번에 수고한 대가를 계산한 거니까 이것만은 받아주게.”
미안하다는 솔직한 사과를 건네던 조금 전처럼 이두안이 진지한 얼굴로 건네는 보상이었다.
하얀 항공 봉투를 내려다보던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오른손을 뻗었다.
“감사합니다.”
“선물을 받으면 대개는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데 한국은 어떤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건넨 이두안의 농담에 강성태는 픽 웃었다. 그리고는 그의 바람대로 봉투를 열어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봉투 크기에 맞춘 듯한 크기의 증서와 카드가 들어 있었다.
“아메리칸 뱅크의 계좌와 익스프레스 카드일세.”
“금액이 안 적혀 있습니다.”
“내용을 알아볼 때의 설렘 정도는 준비하는 게 내 방식이지.”
이제야 만족했다는 듯 이두안이 상체를 세우며 기분 좋은 웃음을 쏟아냈다.
**
키란은 마른침을 먼저 삼켰다.
가족애가 대단한 네팔 사람들의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 키란은 무엇보다 모친이 부를 누린다는 사실이 기쁜 눈치였다.
모친은 또 저런 심정으로 일가친척을 죄 이끌 거라서 막말로 키란 덕분에 피붙이 가족이 모두 벌떡 일어난 꼴이었다.
어쩌면 바보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속 터지는 모습일 수 있는데 피와 땀을 흘리는 가장 큰 이유가 가족인 키란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맙습니다, 형님.”
“몸이 좋아지면 이두안 회장에게 직접 인사해.”
“예.”
감동을 삭일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서 강성태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일찍 일어날 테니까 어머니께 전화부터 드려. 내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씀 꼭 드리고.”
“예, 형님.”
키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모처럼 홀가분한 심정으로 병실을 나섰다.
**
일주일이 그야말로 훌쩍 지났다.
사흘 만에 깁스를 푼 강성태는 오전에는 방지병원을 들렀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보냈으며, 저녁에는 키란을 찾아가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근무를 마친 안다미와 하루도 빼지 않고 만났는데 일주일 째 되는 날은 안호상 원장까지 나와서 셋이서 야식을 먹었다.
“일대일이 맛있다며?”
“몸도 안 좋으시면서 그건 좀 곤란해요.”
“어차피 너는 운전할 거라 못 마시잖아. 내가 대표로 한 잔만 마시자.”
이번에는 딸에게 매달린 안호상이 일대일의 폭탄주를 손에 쥐었다.
“흐아. 이거 나쁘지 않다?”
“아빠, 그만요!”
안다미의 만류에도 안호상은 일대일이 나쁘지 않다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강성태와 안다미의 부축을 받았다.
실내포장마차를 나서 안다미가 차를 가지러 갔을 때였다.
“내가 정말 못할 짓을 했었네. 사과하고 싶었는데 워낙 염치없는 짓을 해서 용기를 내는 데 시간도 필요했었네.”
강성태를 안다시피 기댄 안호상이 술기운을 빌어 속마음을 열었다.
“아무리 내 자식이 중요하다고 해도 몸이 그렇게 안 좋은 자네에게 멕시코로 가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의사로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일세. 아니지. 몸이 괜찮다고 해도 자식 가진 부모가 그런 부탁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네.”
많이 마셔서 기억이 없지 않을까 싶은 순간에 상체를 세운 안호상이 또렷해진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정말 미안하네. 나를 용서해주겠나?”
그가 말을 건넬 때마다 숨결에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겼지만, 강성태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은 또렷했다.
미안한 감정을 품은 채 홀로 견뎠던 안호상의 힘겨움이 그의 눈빛과 표정에 고스란히 떠올라있었다.
“아버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어도 저는 분명 멕시코에 갔을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 그 짐에 눌려 단 한 순간도 편히 지내지 못했을 거고요.”
“미안하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미 씨를 위해 갔던 겁니다. 미안할 일도 없으시고, 용서를 구할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리고 교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술을 마셔서 감정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미안함, 시원하게 사과를 받아준 강성태에 대한 고마움이 왈칵 올라온 얼굴로 안호상이 입을 삐죽였다.
안호상이 숨을 크게 내쉬었을 때였다.
안다미의 하얀색 벤츠가 실내포장마차 앞에 멈췄다.
“이제 가야겠다. 오늘 잘 마셨다. 조심해서 들어가.”
강성태가 열어주는 뒷문에 안호상이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성태 씨, 전화할게요!”
뒤를 돌아본 안다미에게 눈인사를 건넨 강성태는 안호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리고 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하고 안호상이 고개를 돌렸고, 안다미는 후진을 위해 상체를 돌린 것처럼 강성태를 보았다.
“내일이나 모레 갈 테니까 병원 앞에 있다는 식당에서 불고기 한번 사주십시오. 다미 씨가 거기 굉장히 맛있다고 하던데요.”
짧은 틈이 흐른 뒤였다.
강성태를 향해 안호상은 바보처럼 웃었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상체를 좀 더 깊숙하게 집어넣은 강성태를 보듬었다.
“말씀도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 같이 밥 먹자. 꼭 와. 내가 불고기 살 테니까 우리 셋이 밥 먹자.”
술 냄새 풍기는 안다미의 아버지가 강성태를 안고 등을 다독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쁘지 않았다.
안다미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뒤에서 빵빵대는 택시만 아니었다면 좀 더 그렇게 있고 싶었다.
아쉬움을 품은 안다미의 승용차가 출발한 뒤에 강성태는 뭔가 홀가분한 감정을 품고 집으로 향했다.
신호에 서서 파란색 등을 기다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늦은 시간에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바지 주머니에서 울었다.
스마트폰을 꺼낸 강성태는 액정에 올라온 이름을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는 아예 잊었어?
심술이 잔뜩 묻은 조태완의 음성이 바로 건너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