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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 5화 (175/513)

9권 - 5화

아이돌 연습생인 맹인선이 보기에도 연예인이 아닌가 돌아볼 만큼 왼팔을 목에 건 강성태는 인물이 좋았다.

거기에 김민재까지 모두 정장을 입었는데 유일하게 점퍼와 면티, 청바지 차림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과 관련 있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형님. 용서해주십시오, 형님.”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사람 하나쯤 쉽게 죽일 것처럼 거칠던 최근식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강성태에게 용서를 빌었다.

혹시 꿈이 아닌가 싶은 맹가네 식구 앞에서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뱉어냈다.

언젠가 밀동에서 이병렬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먼저 떠올랐고, 이어 조금 전에 했던 통화 내용도 생각났다.

“전무인가 하는 인간하고, 또 욕하고 침 뱉은 놈은 어디 있어?”

“예? 형님?”

고개를 떨구고 있던 최근식이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보스가 이야기하는 중이라 끼어들지 못하는 이종환이 얼른 답을 내놓으라며 강성태의 뒤에서 눈알을 부라렸다.

일반인이 깡패를 만나면 얻어맞는 걸 겁내지만, 조직 생활을 하는 최근식은 죽어서 묻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전무라는 인간하고 욕하고 침 뱉은 놈 어디 있냐고?”

“그게 형님. 일단 인선이를 데리고 오라는 말씀만 들어서 연락 못 했습니다, 형님.”

픽 웃은 강성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종환.”

“예, 형님.”

“최근식이 데려가서 전무라는 놈하고, 행패 부린 놈 잡아와. 만약 연락 안 되거나 너무 늦을 거 같으면 굳이 이리 오지 말고 병렬이하고 의논해서 세 놈 처리해.”

“알겠습니다, 형님.”

상체를 깊게 숙여서 답한 이종환이 주변에 둘러선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이 새끼 트렁크에 실어! 그리고 신월동하고 대림동 숙소는 전부 논현동으로 출발해!”

“예, 형님!”

쇳소리 가득한 이종환의 지시도 살벌했지만, 물결을 이루는 것처럼 줄줄이 고개를 숙이는 덩치들의 인사도 공포를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형님! 형니-임!”

“시끄럽다! 주둥이 좀 막아라!”

“으읍! 읍! 으으-읍!”

연달아 떨어진 이종환의 고함이었다.

돼지가 끌려가듯 버둥대는 최근식이 다섯 명의 덩치들에게 붙들려 뒤편의 승용차로 끌려갔다.

“형님의 수발은 섭우에게 맡기고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이종환이 꾸벅 고개를 숙일 때였다.

고수부지로 검은색 승용차가 내려왔다.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 남자가 최근식 또래 둘을 이끌고 강성태를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맹인선이 부친 맹진섭의 뒤로 숨는 것을 보며 강성태는 다가오는 인간들의 정체를 짐작했다.

중년 남자는 끌려가는 최근식을 제대로 본 눈치였다.

“논현동 장평섭입니다, 형님.”

강성태의 앞으로 온 그가 상체를 정중하게 숙였다.

몸을 세운 장평섭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논현동에서 동생들 열 명하고 조직을 꾸리고 있습니다. 최근식이도 제가 관리하는 동생인데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형님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묵직하게 잘못을 인정한 그가 고개를 돌려 옆에 선 두 명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인사드려.”

“안녕하십니까, 형님? 연남구입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형님? 고척동입니다, 형님.”

두 놈이 차례로 인사할 때 맹인선이 부친의 등에 고개를 묻었고, 부인과 다른 두 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시선을 떨궜다.

“연남구가 전무고, 옆에 있는 고척동이 행동에 나섰던 동생입니다, 형님. 모두 제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형님.”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강성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최근식이 데려와.”

“예, 형님.”

이종환이 손을 높게 들어 이쪽을 향해 휘저었다.

뒤편 승용차의 트렁크를 연 덩치들이 최근식의 뒷덜미를 잡아서 빠르게 강성태 앞으로 데려왔다.

“살려주십시오, 형님.”

강성태의 앞으로 끌려온 최근식은 맹가네 식구들만큼이나 완벽하게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성태는 부친의 등 뒤에 숨은 맹인선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저요?’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를 돌아보았던 맹인선이 쭈뼛대며 다가왔다.

강성태는 맹인선을 앞에 세우고 오른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키가 강성태의 턱에 닿아서 앞에 선 장평섭과 세 놈을 바라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아빠가 고척동에게 당하신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에게 보복이 갈까 봐 참으셨던 거야. 지금 보면 대충 알겠지? 오늘 일로 절대 보복은 없어. 그러니까 결정해.”

‘뭐를요?’

맹인선이 놀라고 당황한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따귀를 때려줄까? 아니면 얼굴에 침을 뱉어줄까? 그것도 아니면 끌고 가서 손가락을 잘라버릴까?”

어린애한테 그렇게 심한 질문을?

맹가네 식구들과 김민재가 굳이 이럴 필요가 있냐는 투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인선이를 위해 참느라 당하셨던 거 가슴에 안고 있으면 평생 상처가 돼. 그러니까 억울하고 분한 거 있으면 지금, 여기에서 풀어.”

강성태가 손을 올려놓은 맹인선의 어깨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다.

밀동에서 보고 배웠다.

당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건 그만큼 가슴에 맺힌 상처가 크고 깊기 때문이지 용서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당에서 소위 일진 놈들이 죽일 정도로 맞는 걸 보고 나서야 밀동의 오주환도 겨우 마음을 열었었다.

“내가 대신해줄까?”

때려달라는 말도 없었지만, 그만두라거나 용서하라는 말도 없었다. 맹인선은 그저 강성태가 짚고 있는 손 아래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고척동 이리와.”

“예, 형님.”

고척동은 볼을 꽉 깨문 얼굴로 나섰다.

“여기 이 아이 잘 봐라. 인생에서 가장 예쁠 나이의 여자아이다. 몇 푼 되지 않는 돈 빼먹으려고 너는 이 아이가 지닌 세상의 가장 든든한 벽을 부순 거야. 너 결혼했어?”

“예, 형님.”

“애는?”

“다섯 살 딸이 있습니다, 형님.”

“그런데도 가족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아버지에게 그러고 싶든?”

“죄송합니다, 형님.”

강성태는 걸음을 움직여 앞에 있던 맹인선을 지나쳤다.

쫘아악! 쫘악! 쫘악! 쫘악!

따귀를 네 대 올려붙였을 때 옆으로 기울어졌던 고척동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쫘악! 쫘아악! 쫘악!

강성태가 다시 따귀를 세 대 더 갈기자 코와 입에서 피가 터진 고척동이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을 짚은 고척동이 피 흘린 얼굴로 몸을 세웠는데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쫘아아악!

강성태가 세차게 갈긴 따귀에 고척동이 또다시 옆으로 쓰러졌을 때였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용서하겠습니다.”

부인과 딸을 헤치고 나온 맹진섭이 강성태에게 매달렸다.

“인선아. 아빠는 용서했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하자.”

“아빠! 나 너무 분했어! 아빠가 맞는 거 보고 나서 얼마나 무섭고, 미안했는지 몰라! 미안해, 아빠!”

“괜찮아. 아빠는 괜찮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용서하자. 응?”

맹인선을 안은 맹진섭이 그녀의 뒤통수를 연신 쓸었다.

지켜보는 부인과 두 딸이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백여 명이 넘는 덩치들과 눈물을 닦는 맹가네 가족, 그리고 장평섭과 최근식, 고척동의 주변을 넘실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맹가네 가족에게 쏠린 뒤였다.

“아저씨. 저 이제 그만했으면 싶어요.”

고개를 돌린 맹인선이 강성태를 향해 눈물 가득한 얼굴로 매달렸다.

나쁜 자식, 아저씨라니.

불쑥 올라온 배신감을 누른 강성태는 장평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직끼리 칼을 들고 싸울 수는 있다. 우리끼리야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수는 있지. 하지만 일반인은 건드리지 마라. 그리고 사업을 하려면 정당하게 해. 양아치 짓거리하지 말고.”

강성태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투로 장평섭과 옆에 선 세 놈이 상체를 깊게 숙였다.

“최근식. 너는 내가 죽여서 묻어버리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장평섭을 봐서 한 번은 지켜본다.”

“감사합니다, 형님!”

사촌이라는 분이 이 정도로 무서운 깡패 두목이었어요?

맹요선이 놀라고 당황해서 돌아본 앞에서 김민재는 아예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 이후로 또 애들 피 빠는 짓 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얼굴 보는 일 없이 처리할 테니까 알아서 정리해.”

“감사합니다, 형님. 제가 책임지고 근식이가 데리고 있던 연습생들 모두 보상하고, 계약 해지하겠습니다, 형님.”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장평섭이 뭐 하냐는 투로 최근식을 향해 고개를 비틀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을 부라리는 게 틀림없는 행동이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거기 셋은 맹 사장님과 가족분들, 그리고 인선이한테 용서를 빌어.”

강성태의 말이 떨어지자 최근식과 연남구, 고척동이 얼른 맹진섭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용서하십시오.”

세 놈이 맹진섭의 가족을 향해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뒤였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는 맹진섭이 당황한 시선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이종환. 애들 돌려보내.”

“예, 형님. 그런데 형님. 동생들에게 한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형님?”

이놈이 또 이병렬에게 들은 말이 있나?

강성태는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봤겠지만, 우리 형님은 일반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절대 용서 못 하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일반인과 다투지 마라. 그런 놈이 나오면 형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목을 따 버릴 테니까 절대 잊지 마.”

살벌한 경고를 늘어놓은 이종환이 숙소별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줄줄이 인사한 덩치들이 차에 올라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강성태는 맹가네 식구들, 김민재와 함께 벤치로 움직였다.

이종환과 유섭우가 강성태의 뒤에 서 있었고, 승용차 다섯 대와 승합차 두 대가 주차장 한쪽으로 움직여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한 건 장평섭이었다.

돌아가면 되는데도 벤치 바깥에 서 있었다.

앙금이 남아서 일대일로 한번 붙어보자는 건가?

강성태가 바라보는 앞에서 장평섭은 자꾸만 눈짓을 건네고 있었다.

뭐가 있어?

강성태는 장평섭이 눈짓을 건네는 유섭우를 돌아보았다.

“광준이 형님께서 평섭이 형님 소속 출연자들의 출연을 전부 막아버리셨습니다, 형님.”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해결됐는데도 저러고 있더라니.

강성태가 피식 웃은 직후였다.

“형님! 차라리 팔을 하나 부러트리시고 출연자들은 먹고살게 도와주십시오, 형님.”

장평섭이 상체를 깊게 숙이며 매달렸다.

갑갑하네, 진짜.

강성태가 입맛을 다실 때였다.

“아저씨. 출연시켜 주세요.”

맹인선이 용기를 냈고,

“얘!”

맹진섭의 부인과 큰딸 맹요선이 급하게 맹인선을 나무랐다.

“진짜 그렇게 해?”

눈치를 살핀 맹인선이 고개를 반쯤 떨군 채 입을 열었다.

“지방에 가면요. 떡볶이랑 김밥 몰래 싸주시던 분들이에요. 그분들은 수입이 괜찮다고 했어요.”

강성태는 고개를 들어 장평섭을 보았다.

최근식과 고척동이 악독하게 굴어서 그렇지, 장평섭은 나름 지킬 걸 지킨 모양이었다.

“유섭우. 전화해서 장평섭 소속 출연자들은 그대로 출연시켜달라고 해봐.”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스마트폰을 꺼낸 유섭우가 몸을 돌려서 구석으로 움직였고, 듣고 있던 장평섭은 반쯤 죽었다가 살아난 얼굴을 하고는 답을 기다렸다.

짧은 통화를 마친 유섭우가 빠르게 다가와 상체를 기울였다.

“출연은 그대로 시키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형님.”

강성태에게 보고한 유섭우가 장평섭에게 상체를 세웠다.

“광준이 형님이 동생분들 데리고 지금 강서구 나이트로 오라십니다.”

“바로 갈게, 동생. 고맙습니다, 형님. 이 은혜 잊지 않고 반드시 일 바로잡겠습니다.”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장평섭이 이번에는 맹진섭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용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맹가네 식구들을 향해 올린 감사의 인사였다.

맹진섭부터 가족들이 앉은 상태에서 급하게 고개를 숙여 받았는데 인사를 마친 장평섭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덩치들과 장평섭까지 모두 빠져나가자 맹가네 가족들은 조금 진정된 느낌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때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나예요. 지금 어디예요?

뭔가 따지는 듯한 안다미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끝났어요?”

- 아뇨. 키란 씨 병실에 와 있는데요. 고수부지에 몰려있는 승용차들도 그렇고, 혹시 거기 있어요?

어쩐지 뒤통수가 찌릿한 느낌에 강성태는 병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얀 병원 건물보다 훨씬 더 큰 안다미의 얼굴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민재가 사귀는 분하고 와서 잠깐 함께 보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인사하고 민재는 키란하고 인사할 생각이었거든요.”

평화로운 분위기를 위해 강성태는 김민재와 맹요선을 핑계로 내세웠다.

- 다른 일 있는 건 아니죠?

“일이 있을 게 뭐 있어요.”

부드럽게 대화하는 강성태를 맹가네 가족과 김민재가 세상 신기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민재 씨랑 인사하고 싶었는데 끝나고 같이 야식 먹으면 어때요? 오늘은 9시 30분에 끝나요. 멕시코 파견 뒤라 시간을 주네요.

“물어보고 조금 뒤에 전화할게요.”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병원에 있다는 안다미 씨?”

“응. 오늘 야식 먹기로 했는데 9시 30분에 끝난다고 너랑 요선 씨 시간이 되는지 물어봐 달래. 괜찮으면 같이 얼굴 보자고.”

“나는 괜찮아.”

답을 한 김민재가 의견을 묻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부친 맹진섭부터 부인, 두 동생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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