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3화 (173/513)

9권 - 3화

제2장. 쉣킷. 쉣킷. 투나잇 쉣킷.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김민재의 음성이 들렸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점잖아? 돈 필요해?”

- 너무하다. 어디야? 통화 괜찮아?

“여기 서라대학병원. 무슨 일인데 그래?”

평소와 다른 김민재의 음성에 강성태는 장난기를 지우고 질문을 건넸다.

- 병원 의사 선생님이랑 만난다며? 방해하기 싫으니까 나중에 여유 될 때 전화 좀 주라. 데이트 끝나고 만나줄 수 있으면 더 좋고.

아쉬운 게 분명하지만, 전화로는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란 의미였다.

“다미 씨는 자정 다 돼야 끝나. 그러지 말고 시간 되면 이리 와. 소개해 줄 사람도 있고, 여기에서 편하게 이야기하자. 아직 저녁 못 먹었으니까 괜찮으면 밥 같이 먹자”

- 그래? 그럼 지금 간다.

“얼마나 걸려?”

- 음. 30분?

“알았어. 기다릴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키란을 향해 김민재에 관한 설명과 직전에 있었던 통화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만나면 뭘 먹습니까?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보니까 고기 굽던데 그런 거 먹습니까?”

죽이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었다.

눈빛마저 반짝여 가며 키란이 저녁 메뉴에 관심을 가졌다.

이놈은 어쩐지 최치곤과 붙여 놓으면 죽이 잘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강성태는 가볍게 웃었다.

“간단하게 먹는 것도 많아. 실컷 먹게 해줄 테니까 얼른 털고 일어나.”

키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간병인이 죽을 들고 들어왔다.

“싫더라도 다 먹어. 그래야 빨리 낫는다.”

간병인과 함께 키란의 죽을 챙겨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여보세요? 응. 알았어, 거기에서 잠깐만 기다려.”

김민재와의 통화는 짧게 끝났다.

“민재가 도착했다니까 만나고 들어올게. 이따 봐서 인사하자.”

간병인에게 키란을 당부한 강성태는 병실을 나서 곧장 건물의 입구로 향했다.

“여기!”

김민재는 누가 봐도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정도로 정장에 서류 가방을 멘 모습이었다.

“팔 다쳤어?”

“넘어졌는데 팔꿈치가 부러졌대.”

그걸 믿으라고?

김민재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강한 의지를 담은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밥 먹자. 순두부 괜찮지?”

“그래.”

강성태의 제안을 김민재가 받아들였다.

퇴근 시간이었다.

언젠가 김민정과 갔던 순두부집을 향해 둘이서 복잡한 도로 옆을 함께 걸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사고 쳤어? 왜 이렇게 말을 못 해?”

“내가 너냐?”

강성태가 웃는 것을 보고서야 김민재는 마음이 좀 풀린 눈치였다.

“전에 내가 만난다는 사람 있다고 했었잖아? 영화까지는 보는데 밥 먹자고 하면 일찍 간다는…….”

강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집이 딸만 셋이야. 맹요선, 맹진선, 맹인선.”

하마터면 터질 뻔한 웃음을 강성태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차라리 웃어.”

그러나 김민재의 예상하지 못했던 한마디에 결국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래서 네가 만나는 분은 몇 번째냐?”

“첫째. 맹요선.”

“그냥 시원하게 말해. 문제가 뭐야? 왜? 칠복이가 나타나서 셋째딸을 안 주면 죽기라도 하겠대?”

“막내가 아이돌이 되겠다며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는데 된통 당했나 봐.”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강성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볼 때 순두부집에 도착했다.

밥을 주문하고 이야기해도 되겠다 싶어 강성태는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머니!”

“어서 와. 팔은 또 왜 그랬어?”

“넘어졌어요.”

좁은 가게가 북적이는 저녁 시간이라 주인 할머니와 긴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들의 시선이 몰려들어서 강성태는 순두부찌개 2인분을 주문하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 봐. 된통 당했다는 게 뭐야?”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맹인선, 그러니까 막내를 노래방에 자주 데리고 간대. 술 따르라고 시키고. 그래서 아버지가 찾아갔는데…, 얼굴에 침을 뱉고 따귀도 때렸대.”

물컵과 반찬이 나오며 잠시 말이 끊겼다.

“바쁠 때 와서 챙겨주지를 못하겠네. 달걀이라도 부쳐줄까?”

“괜찮아요. 다음에요.”

주인 할머니를 다독인 강성태는 시선을 들어서 김민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경찰에 고소도 생각해 봤는데 그 정도 폭행은 벌금이나 나온다며? 괜히 막내가 보복을 당할까 봐 끙끙 앓기만 했다더라고. 그래서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위약금을 물어주겠다고 했더니 사장이 깡패를 데리고 와서 협박했나 봐.”

“녹취는 했을 거 아냐?”

“사장은 말 한마디 안 했고, 전무라고 데려온 깡패가 무섭게 했다더라고. 당장 숙소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어도 깡패들이 지키고 있어서 못하고 있나 봐.”

“그런 게 어디 있어? 경찰하고 같이 가면 되잖아?”

“그게… 막내가 겁에 질려서 자기가 있겠다고 버틴다네. 아버지가 따귀랑 침 맞는 거 보고나니까 질려서 그런 거 같다고. 이쪽에서 생각하기에는 집에 가면 아버지나 식구들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거 같은데 당장 방법이 없는 거 같아.”

김민재가 말끝을 흐릴 때였다.

“여기, 순두부찌개.”

주인 할머니가 쟁반에 순두부찌개 두 개와 공깃밥을 가져다주었다.

“먹자.”

강성태가 숟가락을 들자 따라서 김민재가 공깃밥을 젓가락으로 떴다.

“미안하다.”

“뭐가?”

“병원 선생님 만나서 모처럼 잘돼가는 너한테 괜히 싸움할 일을 부탁하는 거 같아서.”

“얼른 먹어.”

강성태의 권유에 김민재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렸다.

입맛이 없어 보였는데 강성태를 배려한 모양으로 김민재는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회사 이름하고 대표라는 사람, 협박했다는 전무 이름 알아?”

“명함 찍은 거 받아뒀어.”

김민재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단 나가자.”

“내가 살게.”

계산을 마친 김민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명함 좀 나한테 보내줘.”

“응.”

강성태의 요구에 김민재가 바쁘게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우우웅.

짧은 진동과 함께 날아온 문자에 명함 두 장이 담겨 있었다.

‘아이커’라는 회사명, 강남구 논현동이라는 주소, 그리고 최근식이라는 대표 이름을 확인한 강성태는 명함을 곧장 이병렬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이어 이병렬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지금 명함 하나 보냈거든. 이거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 문자가 그거야? 지금 보려던 참이니까 잠깐 기다려. 뭐야, 이거? 기획사 아냐?

“사연이 복잡한데 일단 다 자르고, 거기에 계약한 맹….”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김민재가 입 모양으로 ‘맹인선’이라고 알려주었다.

“맹인선이라는 애를 자꾸 노래방 데리고 다니면서 술 따르게 시키나 봐. 아버지가 해약하자고 찾아갔더니 따귀 때리고 침도 뱉었다고 하더라.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 논현동에 엔터테인먼트면 전부 태완이 형님 아래잖아. 이런 걸 뭘 어렵게 말해? 알아보는 대로 바로 연락할게. 저녁은?

“이 일 청탁받으면서 순두부 얻어먹었다.”

- 누가 부탁한 건데?

“이모 아들.”

- 씨발, 신강남파 비상 걸린 거네. 바로 알아서 답해줄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병원을 향해 걸었다.

오른쪽 도로 건너편으로 고수부지, 왼편은 목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뿐이어서 적당한 커피숍은 없었다.

병원을 향해 걷는 김민재는 고개를 떨구고 침울한 반응이었다.

“뭐야, 또 일이 있어?”

“그게 아니라, 치곤이가 생각나서 찾아오기는 했는데 막상 부탁하고 나니까 괜히 병원 선생님하고 잘돼가는 널 수렁에 빠트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래.”

“커피도 사는 거지?”

고개를 들었던 김민재가 미안하고 고마운 얼굴로 웃었다.

둘이서 병원 앞의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치곤이는 요즘 뭐 해?”

“바쁜가 보더라. 내가 가야 얼굴 한 번씩 봐.”

병원에 있다는 말을 돌린 강성태는 궁금한 눈으로 김민재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네가 사귄다는 첫 번째, 그러니까.”

“맹요선.”

“그래. 그분하고는 잘돼?”

“가까워졌으니까 이런 사연을 듣지. 사연을 듣다 보니까 치곤이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일이 커진 거지.”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뭘 그래?”

“요선 씨는 가족에게 벌써 말했다면서 잔뜩 기대하고, 너한테는 이렇게 부담 준 거잖아. 그런데 아까 전화한 사람은 누구야? 치곤이는 아닌 거 같은데?”

걱정 가득한 김민재를 향해 강성태는 가벼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이병렬은 액정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커 엔터테인먼트 최근식?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서달수에게 고개를 돌린 이병렬이 시선을 물었다.

“진용이 형님이 가게에 데려왔던 논현동 쪽 식구 아닙니까, 형님? 광준이 형님 업소에 트로트 가수 출연시키는 김에 와서 인사한다던 그 형님 같습니다.”

“그래? 야, 이거 좀 밀어봐.”

서달수가 빠르게 움직여서 이병렬의 휠체어를 밀었다.

병실을 건너가자 모로 누워있던 최치곤이 뻑뻑한 모습으로 상체를 세웠다.

“진용아. 너 아이커 엔터라는 곳 대표 최근식이 알아?”

“예, 형님. 6개월쯤 제가 프리 스테이션에 데려가서 형님께 인사시켰던 또래입니다, 형님.”

“하, 이 개새끼.”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이제는 침대의 머리를 약간 높인 채 누워있던 김진용이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우리 보스가 아는 애를 이 새끼가 데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한테 침 뱉고 따귀를 때렸다는 거 아니냐? 애가 보는 앞에서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이 개 양아치 새끼!”

“형님. 제가 전화 한 통만 해보겠습니다.”

침대에서 이제야 상체를 조금 세운 김진용의 청이었다.

어지간하면 모른 척할 텐데 김진용이 매달리자 이병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득하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보스가 기다리니까 여유 주지 말고.”

“예, 형님.”

“달수야. 스피커 통화 눌러서 진용이 앞에 놔줘.”

이병렬은 스마트폰을 서달수에게 건넸다.

**

최근식은 빵빵하게 부른 배를 내민 채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또래 만나서 대전과 아래쪽 선배들이 강성태에게 졸라리 깨졌다는 말을 듣고 들어온 참이었다.

이렇게 눈치 살피다가 김진용을 찾아가서 비벼볼 생각에 최근식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조태완 쪽에서 힘만 써주면 키우는 애들 방송 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오십니까, 형님?”

“대표라고 부르라고, 이 새끼야!”

“예, 형님.”

밤무대를 출연하는 트로트 가수와 차력사를 데리고 일을 시작한 최근식은 우연히 나이트에서 만난 종편 피디와 친해지면서 아이돌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게 또 지방의 각종 축제에 올리면 돈 몇 백이라도 건지는 데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 말고는 딱히 돈 들어갈 게 없어서 짭짤한 맛이 있었다.

콘셉트라는 명분을 내세워 운동복을 색깔별로 돌려 입히면 의상비 끝, 다이어트를 핑계로 배추, 무, 고구마 먹이는 거로 식대 끝, 댄스 연습은 아는 동생이 하는 연습장 이용하는 거라서 나름 꿀은 아니어도 설탕물 쪽쪽 빠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종편 연출자나 제작사 임원이 오면 노래방에 애들 쭉 데리고 가서 술 따르게 하고 노래시키면 다들 만족해하고는 했다.

물론 2차를 생각하며 입맛 다시는 인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능력껏 알아서 하란 투로 고개를 모로 틀었다.

어떤 놈이든 알아서 자빠트리면 그거 핑계로 애들 종편에 올리려는 계획이었다.

책상에 앉은 최근식은 새로 구성할 아이돌 후보 명단을 천천히 살폈다.

동생들이 길거리에서 명함을 뿌리면서 주워 온 아이들이었다.

그가 심오한 표정으로 사진을 들여다볼 때였다.

쉣킷. 쉣킷. 투나잇 쉣킷.

뜻을 알아먹기 어려운 가사가 그의 스마트폰에서 울려 나왔다.

액정을 살핀 최근식은 고개를 갸웃한 뒤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최근식? 나 김진용이다.

고개를 갸웃했던 최근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태완이파와 신호남파를 통합한 신강남파 보스가 강성태, 이병렬이고, 김진용은 두 사람이 모두 신뢰한다는 심복이었다.

“여보세요? 진용이 자네가 어떻게 전화를 했어? 많이 다쳤다드만. 그러잖아도 병원에 한번 갈까 했는데 지금 어딘가?”

- 다른 소리는 나중에 하고. 너 혹시 맹인선이라는 아이 데리고 있어?

“맹인선? 인선이를 자네가 어떻게 알아?”

맹인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최근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아버지의 일이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너, 그 아이 아버지를 때리고 침 뱉었어? 성태 형님이 너 찾으시는데 내가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어떻게 할래? 얌전히 데려가서 죄송하다고 매달릴래, 아니면 버틸래?

이게 무슨 소리야?

여기에서 강성태가 왜 나와?

최근식은 고개를 들고 눈만 끔뻑였다.

최근 조폭들 사이에 농담처럼 번지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강성태에게는 죽어도 찍히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 성태 형님이 찾으시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김진용의 질문이 다시 건너온 직후였다.

- 최근식? 나 이병렬이다.

이병렬의 음성이 스마트폰에서 바로 울렸다.

놀란 최근식은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잡고 실제로 상체를 깊게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최근식입니다.”

- 야, 인마! 우리 보스가 맹인선이란 아이를 찾는다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너 어디야?

목에서 올라온 소름이 턱을 타고 머리칼로 치솟으면서 최근식은 지금 통화하는 상대가 이병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지금 인선이 데리고 가겠습니다, 형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형님?”

- 너 그 아이 아버지 따귀 때리고 침 뱉었어?

“형님,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형님.”

- 어쩌려고 그랬어, 이 멍청한 새끼야? 우리 보스가 관심 두고 지켜보는 아이인 거 알고도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있습니까, 형님? 제가 바로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형님. 성태 형님께 우선 말씀 좀 잘 드려주십시오, 형님.”

최근식은 고개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애달프게 매달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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