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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 2화 (172/513)

9권 - 2화

서달수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방지병원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이병렬과 함께 뒤에 탄 강성태는 확인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달수랑만 다니는 거 위험하지 않냐?”

“나는 이제 속 편해. 우리 보스가 누군지 다들 알게 돼서 날 노릴 이유가 없거든.”

엉뚱한 대꾸였다.

와이드 비전을 펼쳐놓은 것처럼 앞쪽 유리와 대시보드가 넓은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서달수가 웃음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정치인하고 검사를 때려잡겠다는 건 무슨 소리야?”

“전부터 생각했었던 건데 지난번에 클럽에서 보니까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말하지만, 재벌하고 정치권, 법조계가 마약에 물들면 우리나라 한 방에 끝난다.”

의견을 내놓은 강성태를 이병렬이 심오하게 바라보았다.

“그냥 우리 바닥만 관리하면 안 되냐? 검찰이나 경찰도 못 막는 마약을 왜 혼자서 막겠다고 그래?”

“검찰이나 경찰이 정말 마약을 막는 거로 보이냐? 돈 많다고 빼주고, 아는 놈 자식이라고 풀어주는데?”

뭔가를 말하려던 이병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구나 돌아보면 그때 내가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던 때가 있잖아. 나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거든. 그런데 살아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얻었다.”

“능력? 싸움 실력을 말하는 거냐?”

강성태는 옅게 웃기만 했다.

“교통사고 때, 어머니가 나를 안아서 살아난 것 같은데 충돌 이후는 전혀 기억이 안 나. 이유는 모르겠다는데 그 뒤로 특별한 재능을 얻었다고 생각해.”

내용이 무거워진 만큼 이병렬이 묵직한 표정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능력을 얻었다고 해도 별거 있겠냐. 다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는 못 만들어도, 불행에 빠질 걸 구해낼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왜 하필 재벌, 정치인, 검사냐는 거지. 그 인간들은 마약 해도 어지간해서 불행해지지 않잖아. 아닌 말로 그 인간들이 불행해 지면 또 어떠냐? 제 인생 제가 꼰 건데?”

“마약을 하는 인간이 혼자 하냐?”

“뭐?”

“병렬이 너는 알 거 아냐? 마약 처음 하는 남자가 가장 먼저 약 타 먹이는 사람이 누군지?”

“그야 당연히 마누라…?”

답을 하던 이병렬이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재벌이나 정치인 새끼들이 아무렴 마누라한테 찌르겠냐? 다른 사람들…….”

자문자답하던 이병렬이 두 번째로 말끝을 삼켰다.

“그러네, 씨발. 그 새끼들은 마누라 말고 다른 여자애들을 노리겠네. 그렇게 하나둘 퍼져나갈 테고.”

“걸려도 적당히 빠져나오잖아.”

“씨발 새끼들.”

시원하게 욕을 뱉은 이병렬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여동생을 잃은 아픔이 갑자기 올라온 눈치였는데 강성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지병원이 눈앞에 보였다.

“멕시코에서 데려온 환자가 한 명 있거든. 그쪽에 가봐야 하니까 나는 여기에서 택시 타고 갈게.”

“그냥 이 차로 가. 달수가 운전하면 되지.”

“나중에. 너 혼자 있으면 가는 내내 내가 불안해. 여기서 세워줘!”

이병렬을 달랜 강성태는 병원 입구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몸 그러니까 내리지 마라. 간다.”

강성태는 두 번이나 이병렬을 만류한 뒤에야 차에서 내렸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서달수의 인사를 받은 강성태는 마침 다가오는 빈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

원자춘의 분노는 그가 지닌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한국을 개척하기 위해 광룡을 만들고, 돈과 인원을 퍼부은 게 무려 15년이다. 그렇게 겨우 자리 잡은 광룡의 책임자 둘이 한 놈에게 당했다.”

책상 앞에 선 수하는 어금니를 단단히 문 채로 고개를 숙였다.

식당이라면 술병으로 얻어맞고 끝날 텐데 오늘은 하필 원자춘의 북경 사무실이라 언제 책상에서 권총이 튀어나올지 모를 살벌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삼룡을 멕시코까지 보냈더니 오히려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것도 역시 강성태란 놈이 한 짓이지.”

발로 목을 꽉 짓밟은 것처럼 깔린 음성으로 말을 하던 원자춘이 입술을 뒤틀며 시선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의 다른 조직에게 10억 원씩을 제안했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큰형님.”

“그랬더니 기껏 병원에 찾아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화해까지 하고 나왔다는 보고를 지금 내가 듣고 있다.”

차마 답을 하지 못한 수하가 급히 고개를 숙인 뒤였다.

뻑뻑하고 음습한 적막 속에서 원자춘은 책상 오른쪽의 서랍을 열어서 45구경 권총을 조용하게 올려놓았다.

책상 앞은 온통 붉은 카펫이 깔렸는데 식탁보와 같이 원자춘이 좋아하는 복(福)이라는 금색 글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

“큰형님과 같은 영웅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수하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답했으나 원자춘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책상에 눕혀 놓은 권총에 손을 얹었다.

“우리 중국이 대국이라는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큰형님과 같은 영웅이 태어나 강하게 이끌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숨을 푹 내쉰 원자춘은 권총을 들었다.

“틀렸어.”

짧은 말 한마디를 끝으로 원자춘은 권총을 든 손을 쭉 내밀었다.

타아아앙!

좁지 않은 사무실에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며 책상 앞에 있던 수하의 뒤통수가 끔찍한 형태로 터졌다.

책상 맞은편 천장에 피가 튄 직후에 뒤통수에서 수돗물처럼 피를 뿜어낸 수하가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머릿수가 끝도 없이 많다는 점이다. 출생 신고조차 안 된 머릿수가 한국놈들보다 많아. 네놈이 아니어도 그 역할을 할 놈이 워낙 많아서 실수하는 놈을 일일이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우리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이다.”

죽은 놈이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양 자상하게 설명한 원자춘이 권총을 서랍에 넣었다.

고개를 든 그는 거짓말처럼 분이 풀린 얼굴이었다.

“자, 그럼 하나씩 다시 해볼까?”

팔을 길게 뻗은 그는 책상 끝에 둔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가득한 그의 방으로 수하들이 줄줄이 들어왔으나 쓰러진 놈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강성태에 관한 나머지 자료는?”

“오늘 밤 10시까지 준비됩니다.”

바닥에 죽어 자빠진 수하 탓인지 보고가 정말 빠르게 나왔다.

“왜 멕시코까지 갔는지, 어떻게 그렇게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전부 알 수 있겠지?”

“확실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저녁을 먹고 올 테니 방을 깨끗하게 치워놔.”

“예.”

책상을 짚으며 일어난 원자춘이 홀가분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

서라대학 병원에 도착한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갔다.

VIP룸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두안이 손쓰고 병원 측이 배려해 주어서 1인실이었다.

강성태가 들어서자 못 보던 아줌마가 침대 맞은편에서 일어섰다. 목에 걸친 황색 앞치마를 둘렀는데 가슴에 하얀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누구신가요?”

“오늘부터 환자를 맡은 간병인이에요. 환자와 아는 분이세요?”

“예.”

“아휴, 잘 오셨어요. 말이 통해야 뭘 도와드리지. 마침 치울 게 있어서 나갔다 올 테니까 앉아 계세요.”

세상 속이 후련한 얼굴로 간병인이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강성태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돌린 키란이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웃었다.

“좀 어때?”

“살았습니다.”

“통증은 어떠냐고?”

“살았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대답이 나쁘지 않아서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됩니까?”

“영양제를 잔뜩 맞았거든.”

대꾸를 이해하지 못한 키란이 눈가를 좁혔는데 더는 강성태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두안 회장과 내일 아침을 함께 먹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는데 만나보고 말해줄게. 당분간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 있어.”

키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에는 뭐라고 했냐? 너는 아직 의무복무가 안 끝났잖아.”

“바르지오 만시니가 연락했었습니다. 부대에서 나오는 거까지 모두 해결해줘서 나왔는데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화이트 테일이 그랬다는 거지?”

“예.”

“보상은?”

“그런 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형님이 위기에 빠졌는데 도울 수 있느냐는 말을 들어서 일단 가겠다고 했고, 바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짐작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돌아올 때까지 바르지오 만시니가 보이지 않았던 점도 찜찜하던 참이었다.

“내일 이두안 회장을 만나보면 알게 될 거다. 다른 생각하지 마.”

“내가 원해서 온 거니까 보상은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강성태가 키란의 요구를 적당하게 받아들이면서 급한 대화는 끝났다.

“형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쌀죽만 먹으려니까 죽겠습니다.”

키란이 진지하게 건네는 부탁이어서 잔뜩 집중했던 강성태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해한다. 저 심정을.

외국에서 심하게 부상당했을 때면 강성태도 늘 김치찌개나 얼큰한 라면이 그리웠었다.

“병원에서는 먹기 그렇고. 내가 한번 물어보고 방법을 찾아볼게.”

“멕시코에서 봤던 의사 세 명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릅니다.”

그렇게 키란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통화 괜찮아요?

“키란 병실에 와 있어요.”

- 뭐예요, 말도 안 해주고. 지금 올라가도 돼요?

“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안다미의 전화라고 알려주었다.

“아름다운 분입니다.”

“나는 하늘이 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기운이 좀 나는지 키란이 입을 삐죽였다.

“뭐냐, 그건?”

“부러워서 그렇습니다.”

둘이서 되지 않는 말을 건네며 웃을 때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안다미가 들어섰다.

녹색 수술복 위에 하얀 가운을 걸쳤고, 왼편 주머니에 청진기를 둥그렇게 말아서 넣은 모습이었다.

키란이 있는데도 병실에 들어선 안다미는 강성태에게 먼저 안겼다.

“몸은 어때요?”

“하루하루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멀쩡해집니다. 팔도 그래요.”

왼팔을 보이려던 강성태는 칼에 긁히고 팬 자리가 보일까 봐 적당하게 옆으로 돌렸다.

“키란은요?”

“워낙 건강한 몸이라 상처만 나으면 퇴원해도 될 거 같아요. 병원에서도 특별히 신경 쓰고, 이 선생하고 박 선생도 자주 들르니까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흰색 가운에 손을 넣은 안다미가 키란에게 불편한 점이 있는지를 물었고,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다미 씨. 키란이 죽 말고 다른 음식이 먹고 싶은 모양인데 방법이 없을까요?”

강성태의 질문에 안다미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또 샌드위치예요?”

“아뇨. 그보다는 고기라든가, 네팔 음식이라든가, 뭐 그런 겁니다.”

“이틀 안에 기름기나 간이 센 음식을 먹는 건 위험해요. 물론 이틀 뒤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내가 눈 감을게요.”

강성태는 안다미의 의견을 키란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런 뒤에 안다미가 모르게 오른쪽 눈을 찡긋했다.

“알겠습니다.”

키란의 답을 안다미도 들어서 음식에 관한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이제 응급실에 가봐야 해요.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네. 끝나면 함께 나가죠.”

“알았어요. 끝나는 대로 전화할게요. 또 봐요, 키란.”

안다미는 그렇게 아쉬운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

이후에 강성태는 잠시 간병인과 교대한 것을 제외하면 내내 키란의 병실에 있었다. 그리고 김민정의 일을 시작으로 하나, 둘 일이 시작돼 멕시코에 갔던 상황까지를 간략하게나마 들려주었다.

“라이는 짐을 지고, 구르카는 군대 가고, 셰르파는 산으로 갑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키란이 네팔 속담을 내놓았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길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게 된다는 의미의 네팔 속담이었다.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강성태가 옅게 웃었을 때였다.

우우웅.

바지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잠깐 통화할 수 있어?]

강성태가 꺼낸 스마트폰 액정에 김민재가 보낸 문자가 올라와 있었다.

필요하면 언제고 전화하던 인간이 뭐 이리 예절을 따지지?

“잠깐만.”

키란에게 양해를 구한 강성태는 김민재의 번호를 눌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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