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 1화
제1장. 지금은 참아주라.
조태완의 언질까지 있는 마당에 꿀릴 건 없었다.
강성태는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휙!
뱁새가 찔러넣은 회칼을 왼손에 감아둔 플라스틱 깁스로 막은 강성태는 작정하고 오른손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억!
뒤로 머리가 젖혀진 뱁새가 넋이 나간 듯 흔들릴 때였다.
뱁새를 방패삼아 밀치며 들어간 강성태는 그 옆에서 달려드는 두 놈의 얼굴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넣었다.
쩌어억! 쩌억!
세 놈이 뻣뻣하게 바닥으로 쓰러지는 찰나,
콰자자작!
뒤편에 있던 서달수가 의자를 들어 한 놈의 머리통을 세차게 내리찍었다.
덩치가 거대한 놈답게 뱁새는 흐물거리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대번에 강성태가 셋, 서달수가 하나를 해결해서 남은 놈은 조덕진과 이병렬의 앞에 선 놈밖에 없었다.
이병렬은 확실히 판단이 빨랐다.
성격대로라면 백 번이라도 싸움에 뛰어들었을 텐데 혹시 튀어나간 사이 조태완이 당할까를 염려해 침대 옆을 지키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이병렬의 앞쪽에 있던 놈이 휙휙, 위협적으로 회칼을 휘두르는 데도 강성태는 조덕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었지?”
오전에 이병렬의 병실에서 서성기가 당한 모습을 봤고, 눈 깜짝할 사이에 넷이 쓰러지는 꼴을 봐서인지 조덕진은 또다시 비겁한 얼굴로 물러났다.
강성태가 조덕진에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강성태!”
이병렬의 고함과 함께 그 앞에 있던 놈이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휙! 콰각!
놈이 찌른 칼이 강성태가 돌린 플라스틱 깁스에 걸려 밀려났다.
쩌억! 쩌억! 쩌어어어억!
강성태는 세 번이나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털썩!
침대에 앉은 조태완이 ‘이 정도였어?’ 하는 얼굴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가페를 상대하고 와서인지 몸이 전보다 빠르고 강해진 건 강성태도 느꼈다.
쓰러진 놈을 내려다본 강성태는 다시 조덕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딸강.
기가 막히게도 조덕진은 칼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는 강성태의 주먹을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급히 내렸다.
에라, 이 불쌍한 새끼야.
쫘아아악!
강성태는 조덕진의 따귀를 힘껏 갈겼다.
쫘악! 쫘아악! 쫘악! 쫘아악! 쫘악!
여섯 대를 연달아 갈기자 코와 입술이 터진 조덕진이 오른쪽으로 풀썩 넘어졌다.
강성태는 자세를 낮춰 조덕진의 머리칼을 붙들었다.
“아무리 깡패짓을 하더라도 기본은 지키자. 중국 놈이 준다는 돈 처먹겠다고 설치는 건 너무 쓰레기 짓 아니냐?”
고개를 끄덕이는 조덕진의 머리칼을 놓은 강성태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강하게 날렸다.
쩌어어억! 털썩.
깔끔하게 여섯 놈이 끝났다.
서달수가 쓰러진 놈들을 넘어다니면서 회칼을 줍고 있었다.
“애쓰셨습니다, 형님.”
침대 곁을 지키고 있던 김정훈이 깍듯하게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칼 든 놈은 모두 해결했다. 그러나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강성태는 알지 못했다.
“피곤하게 됐네.”
조태완이 쓰러진 놈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달수야. 보스랑 내가 앉을 의자 두 개 더 가져오고, 커피 좀 타라.”
“예, 형님.”
이병렬이 건넨 지시였다.
강성태와 이병렬 앞에 의자를 놓아준 서달수가 구석의 정수기로 움직였다.
자리에 앉은 강성태에게 김정훈이 물티슈를 가져다주어서 손을 닦을 때였다.
의자에 찍혀 쓰러졌던 놈을 시작으로 한 놈, 두 놈 두서없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김정훈이 조용하게 움직여 문 앞에 선 다음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네 놈이 질린 표정이거나 분한 얼굴로 바닥에 아직 널브러져 있는 뱁새와 조덕진을 돌아보았다.
“앉아.”
조태완이 쇠판을 긁는 음성으로 말하자 입을 벌려 턱을 좌우로 움직이던 네 놈이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커피 안 됐냐?”
“준비했습니다, 형님.”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의자에 앉은 네 놈은 서달수가 전해주는 종이컵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서달수가 정수기 앞으로 움직일 때, 뱁새가 “끄응.”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여기 보스가 광룡 밀어내려고 하던 참이었다. 안중 쪽을 우리가 접수하려니까 삼합회가 돈을 주네, 마네, 하면서 모사친 거고.”
조태완은 마치 심판자가 된 듯 자리에 앉은 네 명과 몸을 일으키는 뱁새를 향해 무겁게 말을 던졌다.
커피를 탄 서달수가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커피 가져다 드려.”
“예, 형님.”
조태완이 지시하자 서달수가 잔을 가져다주었는데 뱁새는 눈알만 부라리고 받지 않았다.
커피를 거절하는 뱁새를 조태완이 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이번에 나랑 문도진의 일을 냄새 맡은 검찰청에서 대대적으로 전국 조직폭력배 소탕에 들어갈 모양이던데 앞으로 두고 봐. 조태완이 아직 안 죽었다는 거 제대로 보여드릴게.”
마지막 말투가 바뀐 거로 봐서 확실히 뱁새를 향해 던진 경고였다.
코와 찢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바닥으로 문지른 뱁새가 불편한 시선으로 조태완을 노려보았다.
침대에 있는 조태완 역시 뱁새의 눈을 피하지 않아서 병실에 뻑뻑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쩌자고? 동생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어?”
“그건 형님 꼴리는 대로 하시고, 불편하면 끝까지 한번 해보십시다.”
“이봐, 동생. 이 바닥 족보 깬 건 동생이 먼저야.”
“중국놈 돈 처먹겠다고 나한테 칼 들이댄 건 쏙 빼고 이제 와서 또 족보 따지자고?”
조태완의 대꾸에 뱁새는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과거에 칠삼이 형님 밀어낸 게 누구였는데 그런 소리를 해? 그러니까 형님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니까. 붙읍시다. 누가 이기는지.”
“어쩌자고?”
“어쩌긴 뭘 어째? 우리 바닥이 서로 칼 마주 들었으면 끝장 보는 거 말고 더 있어?”
다시 말문이 막힌 뱁새가 뜨거운 숨을 뿜어냈다.
“커피 받은 네 명은 나하고 다른 감정 없지? 이 자리 뒤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다시 올라오면 그때는 진짜 끝을 볼 테니까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대답은 없었지만, 반항하는 놈도 없었다.
“검찰청 일은 봐주십니까?”
“커피 받은 거 아냐?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
조태완이 거칠게 답을 건네자 네 명이 쭈뼛대며 뱁새를 돌아보았다.
강남에서 조태완이 먹어주는 것처럼 지방 쪽에서는 뱁새가 힘을 쓰는 모양이었다.
“후. 동생. 내가 생각이 짧았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에 뱁새가 조태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광룡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고, 삼합회가 돈을 준다고는 했는데 그런 말이 돈다는 걸 알려줄 겸해서 왔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 여기에서 풀자.”
“허, 씨발.”
좋게 나오는 뱁새의 말을 조태완이 보란 듯이 짓밟았다.
“누굴 홍어 잣으로 보나? 회칼을 들고 와서 그런 헛소리를 하면 곤란하지. 안 그렇습니까, 형님?”
이를 씹는지 뱁새의 볼이 씰룩였다.
“후우.”
빤한 대화를 계속 나누는 꼴이 갑갑해서 강성태는 숨을 푹 내쉬었다.
마약 카르텔, 납치 조직, 그 아래에 기생하는 하부 조직까지 멕시코에서 지겹게 봤었다.
저렇게 버티는 인간은 반드시 회칼을 다시 품고 기회를 노리지 절대 좋은 관계가 되기 어렵다.
멕시코에 가기 전이라면 참았을지 모른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돌아와서 그런지 어차피 칼 들이댈 인간하고 말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몸이 반응했다.
병실의 시선이 훅 달려드는 순간에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보스. 한 번만 참아.”
그런 강성태를 말린 건 뜻밖에도 조태완이었다.
“칼 마주하기는 했어도 저 형님하고 인연이 있어서 그래.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내 얼굴 봐서 보스가 한 번만 참아줘.”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조태완은 완벽하게 한 겹 낮춘 표정이었다.
‘지금은 참아주라.’
침대 건너편에 있는 이병렬의 시선을 본 강성태는 숨을 한번 내쉰 뒤에 자리에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강성태가 뱁새를 돌아볼 때였다.
“커흑.”
왼편 얼굴이 퉁퉁 부은 조덕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앞으로 우리가 광룡을 밀어낼 건데 삼합회하고 손잡은 조직 나오면 내가 음으로 양으로 박살 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 문도진이 왜 연락 안 되는지 잘 생각해.”
저런 소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태완은 거침이 없었다.
“보스한테 인사하고 그만들 돌아가.”
조태완의 말이 떨어지면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
‘나?’
‘그래, 일어서.’
이병렬의 눈짓을 받은 강성태가 몸을 일으키자 뱁새가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일은 서로 잊자. 다음에 한번 내려와. 술이나 한잔해.”
뱁새를 시작으로 줄줄이 지나가며 강성태와 악수를 나눈 뒤에 병실을 나섰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조태완과 이병렬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는 심정이어서 강성태는 순순히 손을 잡았고, 얼굴을 기억했다.
마지막은 조덕진이었다.
서로 나눈 말은 없었는데 강성태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손을 잡았던 조덕진이 고개를 떨군 모습으로 돌아섰다.
조덕진의 뒤를 따라 김정훈이 병실을 나섰다.
“너는 깡패를 하기 위해 태어난 거 아니냐?”
넷만 남은 병실에서 조태완이 지친 음성으로 강성태에게 말을 건넸다.
목소리만 그런 게 아니라 진이 빠진 것처럼 조태완은 얼굴마저 힘들어 보였다.
“광룡하고 전쟁하겠다고 전국에 대고 떠든 꼴이니까 우리 노리는 놈들이 도대체 몇이나 되는지 세지도 못하겠다. 아무튼, 이상하게 일이 커지는데 이게 걷잡지를 못하겠으니 원.”
고개를 흔들던 조태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는 잠깐 나가 있어. 정훈이 오면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예, 형님.”
서달수를 내보낸 조태완이 침대에서 고개를 돌렸다.
“앉아. 너도 앉고.”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조태완의 권유에 강성태가 앉기를 기다린 이병렬이 인사를 건넨 뒤에 자리에 앉았다.
“나한테 했던 말 진짜 할 거야?”
“그렇습니다.”
“그거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공손한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왜 갑자기 이러는데?”
“물러난 뒤에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종수와 영권이 데리고 병원에 찾아와서 준 조언 이후로 마음이 바뀌었다고 보면 됩니다.”
입맛을 다신 조태완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병렬이한테는 그 이야기 했어?”
“안 했습니다.”
궁금할 텐데도 이병렬은 묵묵하게 조태완과 강성태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병렬아. 여기 보스가 마약하고도 법망을 피해 빠져나가는 정치인, 검사, 연예인, 하여간 걸리는 족족 사정없이 찾아가서 두들기겠단다. 너는 어떠냐?”
“예? 형님?”
“그래! 내가 그랬다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생각이라도 해보지. 이건 아예 다 죽자는 거랑 다를 게 뭐 있냐?”
이병렬이 멍한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그래놓고 픽 웃었다.
“웃음이 나와, 너는?”
“보스다운 생각이다 싶어서 웃었습니다, 형님.”
“미치겠네.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하자고?”
“형님도 어느 정도 생각하셨으니까 말씀하신 거 아니십니까?”
이병렬의 반문에 이번엔 조태완이 맥없는 웃음을 늘어놓았다.
“그게 오늘 이런 모습을 보니까 또 어쩔 수 없겠구나 싶다. 거기다 안식구가 보스를 보고는 홀딱 넘어가서 울고불고하니까 말릴 방법이 없고. 그러게 내가 집사람이 보스를 못 보게 하라고 했었지!”
“죄송합니다, 형님.”
착잡하게 입맛을 다신 조태완이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우선 하나씩 하자. 병렬이 네가 지방 좀 다독여. 무슨 말인지 알지?”
“아까 나간 형님들 차례로 클럽에 모시면 되겠습니까?”
“그래. 불러서 술 먹이고 풀어. 몸 성치 않은 거 아니까 네가 술 마실 거 없이 자리만 만들어줘. 갈 때 뭐라도 하나씩 들려서 보내고. 나머지는 정훈이 시켜.”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며칠 내로 내가 보도국장 놈 하나 부를 테니까 그때 보스랑 함께 와. 국장 놈을 위로 끌어올려서 써먹으려고 하는데 알아두면 이모저모 아쉬울 때 좋아.”
이병렬에게 몇 가지를 당부한 조태완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유로 마약에 관해 그렇게 독하게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급하게 가지 말자. 광룡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골머리 터진다. 대신 그 건을 이용해서 내가 작업을 좀 해보려고 하니까 그 정도 여유는 둬.”
“알겠습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힘없는 얼굴로 웃었다.
“오늘 고맙다. 둘이서 병실 들어오는데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더라. 남들은 장난처럼 주고받는 말인데 우리는 달라. 그러니까 당분간 밤길 조심해. 혼자 다니지 말고.”
굳이 나가라는 말이 없어도 이미 할 말은 다 오갔다.
강성태가 일어서자 이병렬이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갑니다.”
“쉬십시오, 형님.”
조태완에게 인사를 건넨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김정훈이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왔는지 정영권이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서달수까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우리 할 이야기 없어?”
이병렬이 짓궂은 얼굴로 질문을 건네는 바람에 강성태는 실없이 웃고 말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