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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 14화 (163/513)

8권 - 14화

제6장. 멕시코니까.

세타스 카르텔의 모든 조직원이 교전 지점을 뒤덮어서 버트는 대원들을 일단 뒤로 물렸다.

“코드 레드워터! 응답 바란다, 코드 레드워터!”

무전기를 통해 계속 호출했으나 강성태의 답은 없었다.

밀고 들어가자니 교전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멕시코 정부에 대놓고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처음부터 구출을 목적으로 달려온 탓에 준비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젠장.”

버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한국 의사들의 이송 준비는?”

“닥터 안이 이곳에 남겠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만나볼 테니까 무전을 계속해 봐.”

임시로 만든 막사에서 나온 버트는 한국 의사들에게 제공한 캠핑카로 움직였다.

편한 복장에 방탄조끼와 소총, 권총 등의 무기를 든 대원 두 명이 고개로 안을 가리켰다.

세 사람 모두 캠핑카 안에 있다는 의미였다.

똑똑똑.

문은 바로 열렸다.

“잠시 들어가도 됩니까?”

“그러세요.”

혹시 강성태의 소식일까 기대하는 안다미와 링거를 연결한 이승수, 볼에 거즈를 붙인 박재구가 바라보는 앞에서 버트는 좁은 탁자에 앉았다.

“성태 씨와 키란 씨는요?”

“대원이 충원되는 대로 구조 작전을 펼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멕시코 시티 공항까지 대략 6시간 정도 걸립니다. 30분쯤 뒤에 버스를 이용해서 출발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구조될 때까지 나는 이곳에 있을게요.”

“의도는 알지만, 너무 위험한 결정입니다.”

안다미를 향해 버트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미스터 강과 키란을 구해내면 급하게 빠져나가야 합니다. 추적하는 카르텔 조직원을 막기도 버거운 순간에 닥터 안의 안전을 위해 별도로 대원을 배치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안다미를 향해 버트가 보다 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닥터 안이 남게 된다면 이번 구출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세타스 카르텔 조직원 전체가 이곳으로 달려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구조는커녕 닥터 안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내가 간다고 상대방이 달라지나요? 카르텔 조직이 그렇게 힘이 있다면 구조 역시 힘든 일이잖아요?”

안다미의 말을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 뒤에 버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닥터 안.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끼리 협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한, 협상하는 과정에서 미스터 강을 구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닥터 안이 이곳에 남으면 어느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멕시코 시티의 호텔에 있으면요?”

“호텔이 폭파되거나 룸, 로비, 주차장, 닥터 안이 움직이는 모든 장소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카르텔 조직원을 수시로 마주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멕시코니까요.”

안다미는 이제야 남아 있기 어렵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어깨를 늘어트린 안다미를 보던 버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30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공항까지 가는 건 괜찮을까요?”

“이번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박재구가 건넨 질문에 버트는 믿음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스마트폰을 귀에 댄 이두안은 답답한 심정을 대신해 입가와 턱을 매만졌다.

“공항까지는 문제없겠지?”

- 우리 쪽 가페 출신을 통해 비용을 지불해서 호송 중입니다. 정보가 넘어가기는 하겠지만, 출국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카르텔의 반응은?”

- 미스터 강과 키란을 붙잡는 것으로 체면을 세우겠다며 달려드는 분위기입니다.

“협상을 계속 시도해.”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두안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책상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찾으셨습니까?”

“멕시코에 선발진으로 갔던 의사 세 명이 돌아온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보상과 비밀유지에 대한 협상을 마치도록 해.”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현지 상황에 대해 한마디도 나오면 안 돼. 위약금 규정을 완벽하게 적용해서 절대 말이 새지 않도록 철저하게 처리해.”

지시를 마친 이두안은 손을 저어서 비서를 내보냈다.

**

점심시간에 이병렬은 휠체어와 승용차를 이용해 방지병원을 나섰다.

정장으로 갈아입었으나 단순한 외출이어서 유헌우와 다툴 일도 없었다.

목적지는 조태완이 입원한 병원이었다.

방지병원보다 훨씬 규모가 큰 병원이라 특실은 호텔을 연상시켰다.

줄줄이 인사하는 덩치들을 지나친 이병렬은 병실로 들어가서 억지로 몸을 세웠다.

“저 왔습니다, 형님.”

침대의 머리를 세워 상체를 높인 조태완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앉으라는 뜻을 전했다.

“종수를 자리에서 내렸습니다, 형님.”

“앉아.”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두 번이나 조태완이 권하고서야 이병렬은 휠체어에 앉았다.

강성태에게 보이지 말라던 젊은 부인은 급하게 대기실로 피한 눈치였다.

“그 새끼 복이 거기까지인 거지. 잘 처리했는데 대전 애들이 망신당한 꼴이니까 앙심 품지 않게 나중에라도 다독여.”

“예, 형님.”

“급해서 주변 사람을 데려다 쓰는 건 말 않겠다. 그렇더라도 광준이는 수준이 떨어져. 요즘은 깡패 중에도 배운 놈 많다. 대학물 먹은 놈도 있고.”

힘겹게 말을 하던 조태완이 병실을 둘러본 뒤에 의미 가득한 시선을 가져왔다.

“강성태는 어디를 간 거냐?”

“예? 형님?”

말문이 막힌 이병렬은 조성만이나 쓸 법한 대꾸를 내놓고 말았다.

“숨긴 건 잘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의 중심이 강성태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얼굴을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생각을 하는 놈들이 나와. 무슨 말인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앞으로 종수 일 같은 거로는 직접 오지 말고. 정훈이를 시켜도 되고, 전화도 있는데 그런 꼴로 올 일이 뭐가 있어?”

이제는 가보라는 듯 조태완이 고개를 돌려서 이병렬은 억지로 휠체어에서 몸을 세웠다.

“쉬십시오, 형님.”

이병렬이 인사를 한 직후였다.

생각난 게 있는 투로 조태완이 시선을 주었다.

“강성태 오면 한번 보자고 해라.”

“예, 형님.”

짧은 말을 던진 조태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더 할 말이 없으니 얼른 가라는 의미였다.

**

산을 타고 이동하던 강성태는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키란과 함께 몸을 숨겼다.

꺼낸 흙을 거꾸로 덮는 과정만 제대로 해낸다면 파낸 흔적은 숲에 깔리는 어둠과 이슬이 해결한다.

아무리 밟고 지나가도 흙이 떨어지는 것 말고는 무너지거나 발이 빠지는 일도 없어서 나무뿌리 아래는 가장 완벽한 은신처였다.

교전은 두렵지 않았다.

포위망을 뚫으면 총소리가 날 테고, 추적팀이 따라붙겠지만, 그 정도를 따돌리지 못할 강성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성태는 구덩이를 파고 키란과 몸을 숨겼다.

허벅지를 다친 키란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탓이었다.

그를 업고는 교전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할 테고, 추적팀을 따돌린다는 장담을 하기도 어려웠다.

“먼저 나가면 어떻습니까? 주변이 잠잠해지면 천천히 가겠습니다.”

뿌리 사이로 뚫어둔 숨구멍을 통해 고개를 들이밀던 옅은 빛이 구덩이 아래로 웅크린 어둠에 잡혀먹히고 있었다.

햇살이 중간에 끊겨 어둠만 남은 심해에 앉은 것처럼 눈빛을 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흙 속에 구덩이를 파고 있으면 평소에 상상하지 못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사각거리며 이동하는 벌레, 두더지, 쥐, 뱀, 하여간 소리를 내는 놈들은 많았다.

“먼저 가십시오.”

“구덩이에서는 침묵을 유지하라고 배웠다.”

강성태가 엉뚱한 대꾸를 하자 바람 빠지는 듯한 키란의 웃음이 있었다.

“물이나 시원하게 마셨으면 좋겠다.”

“침묵하라고 배웠습니다.”

“개새끼.”

욕을 뱉은 강성태와 들은 키란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는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라 둘이서 흐느끼는 것처럼 웃었다.

그 직후였다.

머리 쪽의 흙가루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에 강성태와 키란은 동시에 표정을 바꾸고 동정을 살폈다.

10분쯤 흘렀다.

다시 흙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강성태와 키란은 여유 있게 숨을 뱉었다.

일정 거리를 조심스럽게 이동한 후에 지루할 정도로 버티며 반응을 살피다가 다시 움직일 만큼 제대로 교육받은 놈들이었다.

“나를 미끼로 쓰려던 건 아니지?”

“무슨 소리입니까?”

“저런 놈들이 깔린 곳에 나더러 먼저 나가라고 했잖아.”

또다시 코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면 일주일 이상 수색할 겁니다. 먼저 나가서 방법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웃음 뒤에 이어진 키란의 속삭임에 강성태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밤에 움직이는 건 우리가 훨씬 유리하니까 우선 상황을 보자.”

말을 건넨 강성태는 흙벽에 기대 웅크린 자세로 안다미를 떠올렸다.

대화를 끊기 무섭게 허리의 통증이 강성태를 괴롭혔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시날로 후아스에게 얻어맞았던 자리도 욱신거렸다.

**

원자춘은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끔벅였다.

“다시 말해 봐.”

“삼룡이 모두 죽었답니다.”

보고한 수하는 두려운 눈빛으로 원자춘이 잡고 있는 물컵을 보았다.

“강성태는?”

“수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네가 확인한 게 아니고?”

“세타스 카르텔에서…….”

퍼석!

앉은 상태에서 팔을 휘두른 원자춘이 보고하던 수하의 귀 위쪽을 컵으로 찍었다.

머리를 붙들고 쓰러지는 수하를 덮치듯 원자춘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사기로 된 술병을 집어 들었다.

“내게는 확인한 일만 보고해!”

퍼서석!

수하의 머리를 찍은 술병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튀었고, 이어 독한 술 냄새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삼룡의 시체를 사진으로 봤거나!”

퍼억! 퍽!

“누구라도 보내서 직접 눈알로 보고 난 뒤에 보고하라고!”

퍽! 퍼억! 퍽!

널브러진 수하를 연달아 걷어차던 원자춘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의자의 등받이를 붙들고는 힘껏 내리쳤다.

콰자작!

수하의 몸뚱이를 때린 의자가 비참한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나갔다.

씩씩거리며 몸을 세운 그는 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삼룡이 정말 죽었어?”

“사진이 있습니다.”

“이런 개자식이! 사진이 있으면 그걸 먼저 보여줬어야지!”

퍼억! 퍽! 퍽!

답을 들은 원자춘은 축 늘어져 있는 수하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강성태의 남은 자료는?”

“일주일이면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답변을 직접 들었습니다.”

“사흘 안으로 못 꺼내면 양쪽 귀를 자르고, 나흘을 넘기면 발목, 닷새가 넘어가면 정보 필요 없으니까 그냥 목을 잘라!”

거칠게 지시를 내린 원자춘이 주변을 둘러보자 수하 한 명이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멕시코에 연락해서 강성태를 찾으면 무조건 넘겨달라고 해. 살아있으면 20억, 뒈진 몸뚱이는 5억, 머리만 주면 2억.”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강남을 처먹었다니까 한국에 강성태와 맞설 조직이 있나 찾아보고.”

“예!”

연달아 지시를 마치고서야 원자춘은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술 좀 다시 가져오고 뒤에 저거 치워라.”

그는 이전처럼 여유 있는 음성이었다.

**

밤이 깊었다.

누구도 가리기 어려운 벌레 소리, 이따금 들리는 짐승의 울음, 낮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냄새와 바람, 그리고 축축함이 그 증거였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아채는 키란의 의견이라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가자.”

“구조팀이 철수했을지 모릅니다.”

“이두안 회장은 버트를 철수시키지 못해. 그렇게 되면 앞으로 누구도 이 일에 뛰어들지 않게 되거든. 가페 출신들과 협상해서 입구를 지킬 거다.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정도로 합의할 거고.”

“그런 짓도 가능합니까?”

“멕시코니까.”

답을 한 강성태는 고개를 들어 숨구멍을 확인했다.

“가능한 한 조용히 빠져나갈 거다. 포위망을 벗어나면 무전할 거고. 교전이 생기면 우리 방식대로 한다.”

“알겠습니다.”

강성태가 결정했다고 판단한 키란이 더는 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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