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 11화
내리막이 끝나 앞에 놓인 능선을 타고 가야 할 때, 키란은 붙들고 있던 안다미를 내려놓았다.
“형님을 믿어야 합니다.”
발길을 돌리려는 안다미의 팔을 붙든 키란은 강렬한 눈빛으로 뜻을 전했다.
타다다당! 타다당! 푸슝! 푸슈슝!
산맥을 타고 달려온 총소리가 골짜기를 맴돌며 긴 여운을 만들었다.
“형님은 구르카 용병과 영국 특수부대에서도 원탑으로 꼽혔던 대원입니다. 지금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분이 목적지에 도착해야 내가 형님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진심이 담긴 키란의 눈을 보며 안다미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타다다당! 푸슈슝! 푸슝!
“형님이 저렇게 적을 막고 있습니다. 돌아가면 모두 죽습니다. 그걸 원합니까?”
키란이 으르렁대는 음성으로 다그친 뒤였다.
타다다다다다당!
결정을 요구하는 것처럼 기다란 총소리가 울렸다.
저 소리를 울린 총구의 끝에 강성태가 있었다.
안다미와 동료 둘을 지키려고 말이다.
고통스러운 눈을 했으나 안다미는 강성태를 진정으로 위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가요! 최대한 서둘러요!”
“알겠습니다. 먼저 눈물 닦으세요. 헛디뎌서 발목이라도 다치면 그때는 정말 힘겨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냉정을 요구한 키란이 앞섰고, 안다미가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뭐 해요?”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 두 사람은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안다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타다다당! 타당! 퍼버버벅! 퍼벅!
총소리와 동시에 강성태가 의지한 나무가 터져나갔고, 앞쪽의 흙이 튀었다.
‘서둘러, 키란!’
강성태는 숨을 길게 내쉬며 소총을 옆으로 기울였다.
조금 전에 봐두었던 적이 목표였다.
‘하나, 둘!’
철컥.
홱 상체를 내민 강성태는 목표로 했던 적의 머리를 겨눴다.
푸슈슝!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이마에서 피를 뿜은 적이 뒤로 넘어갔고,
타다다당! 퍼버버벅!
강성태를 막아주던 나무가 또다시 터져나가며 구슬픈 비명을 질렀다.
나무 아래로 몸을 숨긴 강성태는 안다미가 빠져나간 방향을 보며 옅게 웃었다.
벌써 적 셋을 잡았다.
키란이라면 적의 예상과 다르게 방향을 잡았을 테고, 조금만 더 지나면 이 넓은 산맥을 전부 뒤지지 않는 한, 적들은 인질을 발견하기 어렵다.
부스슥.
내내 긴장한 상태에서 적의 움직임이 들렸다.
“후.” 하는 숨을 내쉰 강성태는 빠르게 나무 옆으로 총구를 돌렸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고 나무 뒤로 고개를 처박았다.
굉장한 새끼!
누군지는 몰라도 강성태의 반응을 알고 있었다.
타다당! 퍼버벅!
지금 날아온 총알도 그렇다.
어설프게 몸을 내밀었다면 이미 머리나 목을 뚫려 피를 뿜으며 쓰러졌을 게 분명할 정도로 강성태가 나설 방향을 짐작하고 타이밍에 맞춰 갈겼다.
강성태는 허리를 잔뜩 낮춘 상태로 다섯 걸음쯤 떨어진 나무를 향해 움직였다.
부스슥. 부스스슥.
그사이에도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적들의 움직임이 작은 소리로 모두 전달되고 있었다.
‘어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자.’
다섯 걸음을 움직인 강성태는 팔을 돌려 소총의 총구를 나무 옆으로 내밀었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개새끼!
역시 강성태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상하고 기다렸던 총질이었다.
부슥. 부스슥.
이어서 적이 올라오며 생기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왼쪽 끝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포위하겠다, 이거지?
아무렴 나무를 맞춘 총질 두 번에 모두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거 같냐?
“흥분하면 죽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숨소리가 들리도록 평정을 유지해. 너는 재능이 있어서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강성태는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숨소리에 집중했다.
“준비됐지?”
그럼요.
“누가 빠른지 보여줘.”
알겠습니다.
후욱. 후욱.
숨소리가 들린 순간 강성태는 소총을 겨눈 자세로 나무를 타고 돌 듯 아래를 겨눴다.
푸슈슝!
예상보다 넓게 벌린 왼쪽 끝에서 올라오던 적의 몸뚱이가 펄쩍 뛰었다가 떨어졌고,
푸슝!
정면에서 옆으로 달리던 적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둘을 해치운 강성태가 나무에 몸을 숨긴 직후였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조금 전까지 몸을 내밀었던 곳의 흙이 사정없이 튀었다.
적이지만 이렇게까지 정확한 사격을 하는 놈이라면 인정한다. 게다가 상황에 맞게 방향을 넓게 벌려 강성태를 포위할 줄 아는 놈이라면 머리도 비상하다는 뜻이었다.
저런 적을 상대로 시간을 더 끌면 총알이 떨어지는 순간 죽는다.
강성태는 쿠크리를 뽑아 소매의 깃을 길게 잘라냈다.
그런 뒤에 수류탄을 꺼내 나무뿌리의 틈에 끼웠다.
잘라낸 소매의 한쪽 끝을 안전핀에 묶었고, 반대편을 잡목의 아래에 감아서 돌린 뒤에 몸을 세웠다.
시날로 후아스라고 했었다.
멕시코 특수부대 가페 출신으로 포악한 성격 탓에 레드워터 선발에 탈락했다고도 했고.
‘하나, 둘!’
나무에 기대 서 있던 강성태는 빠르게 총구를 돌렸다.
철컥.
오른쪽 끝으로 올라온 적은 10미터 앞에 있었다.
푸슈슈슈슈-슝!
왼편으로 길게 긁은 강성태의 공격에 적 셋이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타다다다다다당! 퍼버버버버벅!
적의 반응이 반 박자 느리게 들렸다.
이전보다 방아쇠를 길게 당긴 걸 보면 약이 바싹 오른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머리끝이 뜨끈하게 만들어주마.’
타다당! 퍼버벅! 타다다당! 퍼버버벅!
분을 이기지 못해 마구 당긴 적의 소총이 나무와 주변 흙을 터트릴 때, 강성태는 키란과 안다미 일행이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서둘러, 키란.’
간절한 심정을 알아들었을까.
꾸르르륵. 꾸륵.
키란이 전하는 신호가 능선 아래에서 달려왔다.
기다리던 신호를 받은 강성태는 키란과 인질들이 내려간 방향으로 움직였다.
**
아무리 강단 있게 나섰다 해도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워서 키란을 따르던 안다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데도 안다미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가쁜 숨을 내쉬는 동료의 팔을 붙들었다.
“박 선생, 힘내. 할 수 있어. 가자.”
가쁜 숨, 한계에 부딪혀 붉어진 볼을 하고도 팔을 잡아주는 안다미를 보며 박재구는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왜 신호를 보냈는데 답이 없어요?”
박재구의 팔을 당기며 걷기 시작한 안다미가 질문을 던졌는데 당장 답은 없었다. 그러면서 안다미는 키란의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람은 소리로 주변을 살피는 건가?’
실제로 키란은 시선과 동시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키란의 집중을 방해할까 봐 안다미가 입을 꾹 다물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콰으응! 푸슈슝! 푸슝! 푸슝! 푸슝!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안다미가 밟고 있는 바닥이 흔들렸고, 곧바로 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놀란 안다미는 물론이고, 동료 두 명도 겁이 덜컥 난 얼굴로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연달아 산맥을 울리는 총소리가 터졌고, 빽빽한 나무 틈으로 보이는 저 너머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그 직후였다.
꾸르르륵. 꾸륵.
이제는 익숙한 새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강성태가 무사하다는 걸 짐작한 안다미가 마른 침을 삼킬 때 동료 의사 두 사람은 정말이지 궁금한 눈으로 키란을 돌아보았다.
“형님은 원탑입니다.”
뜻은 알겠는데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질문을 할 여유도 없었다.
키란이 빠르게 움직였고, 안다미가 박재구의 팔을 당겼기 때문이었다.
**
가장 앞에서 뛰어간 대원 둘은 수류탄에 처참하게 찢겼고, 이어서 뛰어든 대원 넷은 머리와 목을 뚫려 널브러졌다.
코흐 G3 소총의 총구를 든 채 주변을 돌아보던 시날로 후아스는 성난 맹수가 하악질을 하듯 입술을 험악하게 들어 올렸다.
“내가 이 새끼를 갈가리 찢어 죽일 거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거라고!”
신음 같은 고함을 질러댄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들었다.
치익.
“대기 병력 모두 출동한다. 1분대는 산맥의 입구로 가서 나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2분대와 3분대는 내가 있는 곳으로 합류한다.”
명령을 전한 그가 입에서 무전기를 뗀 다음이었다.
치익.
-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급하게 날아온 답이 있었다.
무전기를 허리에 건 시날로 후아스는 가장 바깥에 있는 대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걸 이리 가져와.”
빠르게 움직인 대원에게서 바렛을 받아든 시날로 후아스는 거친 능선의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바렛의 총구 아래로 늘어진 다리를 돌 틈에 걸치고 능선 아래를 노렸다.
터응! 터응! 터응!
한 뼘 길이의 대포알 수준의 탄알이 날아가며 독특한 폭발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터응! 터응!
다섯 발을 발사한 시날로 후아스가 그사이 분을 모두 풀었는지 냉정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수류탄이 터진 직후에 저놈이 총을 쏜 건 우리가 그쪽으로 추적하기를 바라서일 거다. 내가 지른 고함과 바렛의 총성을 들었을 테니까 인질 쪽은 안심할 거고.”
잔인한 눈으로 상황을 설명한 시날로 후아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카날로. 다섯을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 인질을 발견하면 모조리 죽여. 연락은 그 뒤에 해라.”
“얼마까지 추적합니까?”
“5킬로미터를 넘어가도 인질이 보이지 않으면 합류해.”
“알겠습니다.”
답을 한 카날로는 시선으로 대원 다섯을 가리켰다.
“가자.”
그가 다섯 명을 데리고 오른쪽으로 내려간 다음이었다.
소총의 총구를 왼손에 걸친 후아스가 바렛을 발사했던 방향으로 움직였다. 스물일곱이 달려왔는데 그와 함께 움직이는 대원은 일곱밖에 없었다.
**
강성태는 키란과 안다미 일행이 움직인 방향에서 소총을 쏘았다.
바라던 대로 여섯 명의 적이 인질을 찾겠다며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였고, 남은 여덟 명은 강성태를 상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능선을 내려서고 있었다.
‘저 인간이 시날로 후아스겠지?’
시날로 후아스를 노려보았던 강성태는 허리를 낮춘 상태에서 여섯 명이 달린 방향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머리를 잡목보다 낮게 유지한 채 움직이려면 허벅지 힘으로 달려야 한다.
체중을 허리에 실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증이 오고 이어서 갑자기 앞을 막는 잡목을 피할 탄력을 잃는다.
사슴을 쫓는 표범처럼 강성태는 잡목 사이를 달렸다.
여섯 명이 내려가는 방향에 맞춰 대각선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5분쯤 내려간 강성태는 걸음을 멈췄다.
인질을 추적한다고 방심한 모습이었다. 그래놓고 배운 건 남았는지 여섯 명은 길게 늘어선 채 이동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소총을 겨눈 강성태는 숨소리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는 사슴을 노리기 직전의 표범처럼 천천히 상체를 들었다.
“어디 가?”
홱 놀란 여섯 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네 명을 차례로 잡은 직후에,
푸슈슈슝!
남은 두 명을 연사로 갈겨 잡았고,
타다다다다다-앙!
마지막에 서 있던 놈이 쓰러지며 방아쇠를 당긴 바람에 소총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털썩.
소총을 쏘던 놈이 넘어진 직후에 강성태는 빠르게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놈의 머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푸슝! 퍼억!
주변을 확인한 강성태는 코흐 G3 소총 한 정을 들었고, 탄창 세 개를 거둬서 방탄조끼에 꽂아넣었다.
상처에서 새롭게 피가 배어 나오는 모양인지 검게 물들었던 허리 쪽이 축축했다.
철컥. 철커덕.
MP5 소총의 탄창을 교체한 강성태는 코흐 G3 소총을 등 뒤로 돌리고는 시날로 후아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
총소리는 시날로 후아스도 분명하게 들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누가 들어도 여섯이 단숨에 당했다는 의미였고, 마지막에 터졌던 G3 소총 소리는 죽어가는 대원이 발악하듯 당긴 방아쇠 탓에 나온 총성이었다.
“강성태?”
혼잣말처럼 시날로 후아스는 강성태의 이름을 불렀다.
두 명을 데리고 하부 조직을 궤멸시켰다는 말은 들었다.
그 정도는 시날로 후아스도 한다.
입술을 혀로 핥은 그는 총소리가 났던 방향과 쫓고 있던 방향을 번갈아 돌아본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달린다.”
독한 눈빛을 되찾은 그는 쫓고 있던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쩔걱. 쩔걱.
손에 든 소총과 몸에 건 무기들과 산길을 밟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는데 시날로 후아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달렸다.
**
시날로 후아스가 달리는 소리를 강성태도 들었다.
저렇게 달리면 위치가 모두 드러나 잡히면 죽는 데도 방향을 틀거나 지원 세력을 기다리지 않은 채 놈은 무모하고 무식한 방법을 선택했다.
‘젠장!’
이를 악문 강성태는 방향을 짐작하고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쩔걱. 쩔걱.
등에 멘 소총, 팔에 안은 MP5, 몸에 걸린 무기들이 요란하게 울었지만, 여기에서 걸음을 멈추면 인질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강성태는 성난 표범처럼 달려드는 나뭇가지를 닥치는 대로 헤치며 산맥의 능선을 거침없이 달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