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 9화
제4장. 왔어? 진짜 온 거야?
계획은 단순한데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움막이 놓인 능선에 들어선 강성태는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주변을 빠르게 훑었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움직였다.
저격수를 찾는다.
없다면 헛짓이겠으나 시날로 후아스가 가페 출신이라면 인질을 둔 주변에 저격수를 배치했을 게 분명했다.
주변 색으로 위장한 저격수를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서 찾는 건 해변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풀줄기와 같이 늘어진 길리슈트, 얼굴과 총기까지 완벽하게 덮어쓴 위장, 벌레가 깨물어도 숨소리조차 변하지 않는 인내, 강성태와 키란이 이곳까지 달려올 강단이 있다면 저격수는 그만큼의 근성을 지녔다.
나뭇가지를 스치면 소리가 울린다.
그래서 강성태는 사소한 소리 하나에도 조심하며 앞으로 움직였다.
구르카 용병이 왜 그토록 용맹한지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악을 뛰어다니니까 강하고, 용병 아니면 할 게 없으니까 악착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발걸음을 앞으로 디딘 강성태는 소름이 오싹 올라오는 순간, 동상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 있다.
소총을 겨눈 자세에서 강성태는 상체만 천천히 돌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주변을 훑던 강성태의 눈에 건너편 풀숲에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사슴이 들어왔다.
커다랗고 검은 눈망울을 깜박인 사슴이 반대편을 돌아본 뒤에 가느다란 발을 움직여 그쪽으로 사라졌다.
땀 냄새를 맡은 모양인데 노새 사슴이나 알아차리지 사람은 저 정도로 날카로운 후각을 지니지 못했다.
천천히, 강성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래를 맡은 키란에게서도 아직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
총소리나 비명이 울리지 않은 걸 보면 그 역시 강성태와 마찬가지로 움막을 향해 수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구르카 용병은 척박한 산을 오르내리며 쌓인 체력과 인내심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특유의 근성 때문에 강해진다.
가족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희생정신을 영국군은 이해하지 못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 또한 서양인들과 달랐다.
구르카 용병이 되기 전에 네팔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단 한 가지, 물이었다.
수영을 즐기는 강성태를 얼마나 존경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지 처음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강성태는 지겹도록 천천히 나갔다.
한 놈만 잡는다. 한 놈만.
그러면 아래쪽을 뚫을 수 있고, 그때부터 속도를 높인다.
30분쯤 나무 사이를 뚫고 나간 다음이었다.
능선 아래로 놓인 움막을 보며 강성태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지금까지 없었던 대신, 여기에서 저 움막 사이에 반드시 저격수가 있다.
자세를 낮춘 강성태는 움막과 능선의 위로 구불구불 놓인 길 사이를 몇 차례에 걸쳐 세심하게 살폈다.
최소한 움막이 보여야 하고, 주변에 수풀이 많아야 한다.
바위가 불쑥 나와 몸을 숨길 수 없는 장소와 경사가 심해서 총구가 드러나는 지형을 제외하고, 저격수가 가장 선호할 만한 위치를 찾았다.
어디냐?
강성태는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능선을 따라 위쪽에서 움직이면 답이 있겠지만, 너무 올라가면 강성태가 먼저 드러난다.
의심스러운 세 곳을 확인한 강성태가 걸음을 옮길 때였다.
멀리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강성태는 시선만 들었다.
멀리서 피어난 흙먼지가 산맥 위로 떠오른 햇살과 섞여 길게 몸을 세우고 있었다.
엔진 소리가 들리니까.
강성태는 노려본 방향을 향해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
이병렬의 전화를 받은 이광준은 30분 만에 병실에 들어섰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이병렬은 낯빛이 유난히 창백했고, 올라오는 고통을 이기느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몸은 좀 어때? 보스는?”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습니다.”
“벌써 그 정도야?”
멕시코로 출국한 사실을 듣지 못한 이광준이 놀란 눈으로 서달수를 돌아보았다.
“그보다는 종수를 끌어내렸는데 다른 건 빼고 업소 나가는 애들 관리를 형님이 좀 맡아주십시오.”
“내가?”
“예.”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던 이광준의 눈에 욕심이 불쑥 올라왔다.
“당분간 현상 유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방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더라도 깔끔하게 잘라내시고요.”
“그거야 내 전문이지.”
“형님.”
들뜬 표정의 이광준을 이병렬이 나직하게 불렀다.
“당분간은 돌아가던 대로 끌고 가십시오. 강서구나 우리 나이트에 무리하게 애들 꽂아넣지 마시고, 출연하는 애들 손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그보다는 지방에서 견제가 심하게 들어올 텐데 그건 어떻게 하지?”
“필요하면 정훈이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여기 식구들 바로 보내겠습니다.”
“오케이-.”
만족한 모양으로 이광준의 말끝이 길게 늘어졌다.
“그나저나 종수는 어쩌다가 밀려났어?”
“보스가 경고했는데도 대전 덕진이 형님 만나서 그렇게 됐습니다.”
눈을 뒤틀어 서달수를 돌아본 이광준은 충분히 알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강성태를 떠올리며 정신이 번쩍 든 눈치였다.
“이제 누구 찾으면 돼?”
“정훈이가 내일 연락드릴 겁니다.”
욕심을 누른 이광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직후였다.
“잘 부탁합니다, 형님.”
“이 나이에 종수 꼴 나면 서러울 테니까 알아서 조심할게.”
이병렬이 의미심장하게 당부를 전했고, 이광준이 찰떡처럼 알아들은 대꾸를 내놓았다.
**
평소와 달리 거친 엔진 소리가 다가오더니 움막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뭐지?
안다미와 동료 둘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강렬한 빛이 창고 안으로 달려들었다.
고개를 비튼 안다마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는 들어선 사람들을 보았다.
소총을 든 멕시코 남자들 틈에 캐주얼 정장 차림의 동양인 남자 세 명이 있었다.
혹시 구하러 왔나?
기대는 잠시였다.
세 명의 표정과 시선을 본 안다미는 처음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눈에 담긴 건 욕망이었다.
처참하게 망가트린 뒤에 잔인하게 죽이고 싶은 욕망이 축축하게 젖은 표정과 눈빛에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강성태가 언제쯤 온다고 봅니까?”
안다미에게서 시선을 돌린 동양인 남자가 멕시코 대원에게 영어로 건넨 질문이었다.
중국인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었다.
발음에 상관없이 강성태란 이름을 들은 안다미는 귀가 번쩍 띄었다. 그리고 곧장 심장에서 일어난 전율이 머리카락 끝까지 뻗치는 느낌이었다.
강성태가 온다고 했었다.
누구보다 강성태의 상태를 잘 아는 안다미는 순간 ‘바보’라는 생각을 떠올렸고, 이어 잘못 들었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질문을 받은 멕시코 남자가 안다미를 돌아보고는 히죽 웃었다.
“멕시코 시티 공항에서 사라졌습니다.”
왔어? 진짜 온 거야?
“지금쯤 이 근처에 있을지 모릅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안다미의 반응을 즐기는 투로 말을 잇던 멕시코 대원이 동양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온다고 해도 혼자서 뭘 하겠습니까? 주변에 우리 대원들이 있으니까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립시다.”
“죽이는 건 우리가 해야 합니다.”
“총에 맞아 죽는 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시체는 드릴 겁니다.”
안다미는 얼이 쭉 빠졌다.
혼자 왔다고?
그 몸으로?
넋이 나간 얼굴로 안다미가 문을 바라볼 때였다.
꾸르르륵.
독특한 새소리가 들렸다.
**
아래에서 새소리가 들릴 때 강성태는 소총을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마른침이 입에 고였으나 삼키지 못했다.
녹색 길리슈트를 뒤집어쓴 저격수가 총구를 길게 내민 자세로 열 걸음 앞에 엎드려 있었다.
왼손을 돌려 허리에 건 쿠크리의 날을 잡은 강성태는 그와 동시에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표범처럼 앞으로 달렸다.
발걸음 소리에 홱 고개를 돌린 저격수와 눈이 마주쳤고, 그 직후에 강성태가 훌쩍 몸을 날렸다.
스응.
허공에서 쿠크리를 뽑아 든 강성태는 저격수의 턱을 향해 오른쪽 팔꿈치를 세차게 휘둘렀다.
콰작!
총구를 급하게 돌리던 저격수가 강성태의 아래에 깔렸다.
쿠크리의 날을 저격수의 목에 붙인 강성태는 단숨에 깊고 길게 당겼다.
“끄륵.”
죽음을 맞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강성태였다.
쿠크리를 든 손으로 저격수의 입을 틀어막은 강성태는 오른 팔뚝으로 머리를 힘껏 눌렀다.
녹색 풀이 깔린 바닥에 붉고 뜨거운 피가 튀며 특유의 비린내를 풍겼다. 숨을 두 번 쉬고 났을 때였다. 악착같이 누르는 강성태의 아래에서 저격수의 몸이 축 늘어졌다.
쿠크리를 집어넣은 강성태는 저격수의 몸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아직 피가 범벅인 바닥에 엎드려 저격용 총을 어깨에 걸쳤다.
움막 앞에 두 대의 지프가 서 있었고, 조금 전 들어갔던 남자들이 줄줄이 나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성태는 먼저 왼손을 들어 입 앞에 둥그렇게 말았다.
꾸르르륵.
소리를 만들어낸 강성태가 저격용 스코프를 들여다본 직후였다.
꾸르르륵.
같은 새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강성태는 저격용 총의 스코프를 통해 지프 주변에 모인 인물들을 살폈다.
혹시 한국에서 구하러 왔을까?
잠시 살피는 사이 멕시코 대원이 건넨 캔커피를 받아든 동양인 남자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캐주얼 재킷 위쪽으로 드러난 그의 목덜미에 용 머리 문신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응을 보면 분명하게 알게 될 거다.
강성태는 스코프의 열십자 중앙에 멕시코 남자의 머리를 담았다.
그리고는 방아쇠에 건 검지를 천천히 당겼다.
**
멕시코 대원은 유쾌했다.
캔커피를 건네고는 지프의 뒤에서 갈색 종이봉투를 꺼냈다.
“이곳까지 온 기념으로 선물입니다.”
“이게 혹시?”
“농가에서 직접 만든 제품이라 최상품이지.”
중국 남자가 뭘 원하냐는 투로 멕시코 대원을 바라볼 때였다.
부슈-웅! 퍼으윽!
섬뜩한 소리와 함께 멕시코 대원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화들짝 놀란 멕시코 대원들과 피를 뒤집어쓴 삼룡이 지프로 몸을 숨길 때였다.
부슈-웅! 퍼으윽!
또 다른 멕시코 대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철컥. 철컥. 철컥.
멕시코 대원들이 소총을 앞으로 들었을 때였다.
부슈-웅!
섬뜩한 총소리가 아래에서 울렸는데 산의 위쪽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건 뭐야?
권총을 꺼내 든 삼룡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직후였다.
부슈-웅. 퍼으윽!
그의 이마 위쪽이 처참하게 터지며 뒤로 넘어갔다.
“인질들을 잡아!”
삼룡 중 하나가 고함을 버럭 질렀고, 지시를 받은 다른 한 명이 움막으로 뛰었다.
부슈-웅! 퍼으윽! 부슈-웅!
움막으로 달리던 삼룡 중 하나의 목이 터지며 반쯤 살점이 날아간 그의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혔다.
분명 총소리가 두 번 울렸는데 상황이 급해서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박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멕시코 대원 한 명이 무전으로 급하게 고함을 지를 때였다.
부슈-웅! 카아앙!
무전기가 실린 지프에서 불똥이 튀었다.
어쩌지?
어디에서 쏘는 거지?
지금껏 총을 맞은 자리를 돌아보면 위쪽에 쏜 총알이었다.
마지막 남은 삼룡이 이를 드러낼 정도로 독을 뿜으며 움막을 돌아보았다.
위쪽에서 날아오는 총알이니까.
두 번째 지프를 향해 그는 상체가 바닥에 닿다시피 몸을 숙여서 움직였다.
방향으로 봐서 몸을 숨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에 올라가 후진으로 움막까지 밀고 들어가면 승산 있어!
마지막 남은 삼룡은 팔만 위로 들어 지프의 문을 열었다.
“오케이!”
문을 연 그가 운전석을 향해 훌쩍 뛰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부슈-웅! 퍼으으윽!
머리가 터지면서 지프의 유리와 조수석에 요란스럽게 피가 튀었다.
부슈-웅! 퍼으으윽!
이번에는 아래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더는 어쩌지 못한 멕시코 대원들이 지프의 아래로 기어들어간 직후였다.
꾸르르륵.
아침부터 들리던 새의 울음이 또다시 울렸다.
**
강성태가 움막 앞의 멕시코 대원들과 동양인을 해결하는 사이, 키란은 능선 위쪽에 있는 저격수 둘을 제거했다.
키란이 지프에 있는 적을 상대한다는 건 위쪽에 더 이상 저격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꾸르르륵.
키란의 신호를 받은 강성태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철커덕.
그리고는 소총을 앞으로 돌리며 움막을 향해 달렸다.
총소리를 들었으니 시날로 후아스가 가페 출신 대원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가페 대원들을 우습게 보면 정말 죽는 일밖에 안 남는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서둘러야 할 때였다.
부슈-웅! 부슈-웅!
키란이 쏘는 총소리가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 요란하게 울렸고,
투두두둑. 투두두둑.
처음으로 멕시코 대원들이 들고 있는 소총 소리가 움막 주변에서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