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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 7화 (156/513)

8권 - 7화

이은주는 오늘도 강성태를 대신해 커피숍을 지켰다.

“매니저 아저씨 그만뒀어요?”

“아니야.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계셔.”

“어? 혹시 죽거나 그런 병이에요?”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이은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농담도 나누고 가끔은 서비스로 쿠키를 건네며 제법 친해졌다. 하지만, 강성태의 빈자리에 실망한 여학생들과 대학생, 직장인 여성들의 아쉬움을 이은주는 절대 채워주지 못했다.

저녁 근무를 위해 온 이성안과 교대로 김밥을 먹은 이은주는 양치를 마치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성태 형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전화 드려봤는데 친구분이 받아. 병원에 올 필요 없대.”

“치곤이 형이요?”

최치곤을 떠올렸는지 이성안은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게다가 마침 저녁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몰려들어서 더 대화를 나누기도 곤란했다.

커피를 손님에게 전해준 이은주는 잠시 생긴 틈을 이용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이라도 주차장 입구로 강성태가 들어설 것만 같은데 최치곤은 최소 몇 주는 걸릴 거라는 말만 할 뿐, 병원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믿는다. 진심으로 이은주는 누구보다 강성태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그러니까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밝은 얼굴로 돌아올 거다.

딸랑.

“어서 오세요. 커피알리고입니다.”

커피숍으로 들어서는 손님을 이은주는 밝은 표정으로 맞았다.

**

승합차는 예상보다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멕시코에서 이런 운전은 사망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어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도 강성태와 키란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허리에서 꺼낸 권총을 허벅지에 올렸고, 소총을 거꾸로 의자 곁에 꽂아두었다.

“지형을 외워.”

강성태는 구불구불한 길과 아래로 놓인 움막이 담긴 사진, 그리고 그 지역의 지도를 꺼내 키란에게 건넸다.

“지도 오른쪽 아래를 봐. 그곳 진입로 근처에서 내린다.”

강성태가 알려준 곳을 검지로 찍은 키란이 산의 능선을 따라 움막이 있는 곳까지 선을 그렸다.

“이대로 달리면 됩니다.”

간간이 조명을 켜놓은 상점이 있는 도로였다.

“저격수가 있을 거다.”

키란이 비장한 각오로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발견한 강성태는 라이트의 살짝 위쪽으로 시선을 들어서 승용차 안쪽 윤곽을 살폈다.

곁을 스치는 승용차에는 운전수 한 명이 전부였다.

“인질을 구출하면 탈출로는 어떻게 합니까?”

“들어간 길을 거슬러야지.”

지도를 들여다보던 키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인은 이 길을 달리지 못합니다.”

“시에라 카르텔도 그렇게 생각할 거니까 중간에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다.”

지도에서 시선을 든 키란이 뒤편에서 달려드는 불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트럭처럼 보인 차량이 골목으로 방향을 바꾸며 사라졌다.

“이 정도로 달리면 대략 네 시간쯤 걸린다. 잠깐이라도 자.”

“괜찮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났을 때였다.

부아아앙.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울린 승합차가 뒤뚱거리면서도 속도를 높였다.

강성태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에서 번쩍하는 빛이 보여서 였는데 키란은 소총을 꺼내 허벅지에 올리고 있었다.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총구, 길게 꽂힌 탄창, 방아쇠에 걸린 키란의 손가락이 지금 가고 있는 곳의 위험을 더할 수 없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고개를 앞으로 돌린 강성태의 눈에 싸구려 간판을 단 단층 건물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 다가가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

이병렬은 서달수, 최치곤과 함께 보기도 싫다던 육개장을 앞에 두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얼른 먹자.”

젓가락을 움직인 이병렬이 건더기를 건져 밥에 올렸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김정훈이 들어섰다.

서달수와 최치곤이 일어서서 인사할 때, 김정훈은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무슨 일이냐?”

“병원 주변에 동생들 50명을 깔았습니다, 형님.”

안쪽에 있는 영등포 덩치들은 스물이었다.

강성태가 없는 상태에서 50명이 밀고 들어오면 이병렬은 그냥 죽은 목숨과 같았다.

날카롭게 변한 이병렬의 눈을 보며 김정훈이 바로 입을 열었다.

“종수 형님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닌 바람에 지방 조직 몇 개가 움직이는 눈치입니다. 태완이 형님하고 형님이 병원에 계시는 틈을 노려보겠다는 수작 같아서 미리 동생들 깔았습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 쪽은?”

“그쪽 병원에도 마찬가지로 영권이 숙소 동생들 깔았습니다, 형님.”

그렇다면야.

이병렬은 식어가는 육개장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앉아. 밥이나 먹자.”

“저는 밖에 동생들하고 먹겠습니다. 저, 그런데 형님.”

식사를 사양한 김정훈이 이병렬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종수 형님 말입니다. 밤에 부르셔서 잡두리 한번 하시지 말입니다, 형님.”

조태완이 직접 와서 따끔한 교훈을 준 게 바로 어제 일이어서 이병렬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김정훈을 노려보았다.

“오늘 밤에 지방 형님들과 룸살롱을 예약했답니다. 아까 그쪽 동생이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는데 분위기가 뱉어놓은 말 주워 담지 못하는 눈치랍니다, 형님.”

이병렬은 숨을 뱉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야 그렇다고 치고. 영권이는?”

“영권이는 워낙 대가 없어서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락하시면 필요할 때마다 제가 알아서 달구겠습니다, 형님.”

조태완이 직접 병원까지 와서 분위기 잡아주었고, 김정훈이 이렇게까지 애쓰는 데 여전히 구경만 한다면 이병렬은 보스의 자격이 부족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빈 침대를 바라본 이병렬은 쿠크리를 들고 몸을 세우던 강성태를 떠올렸다.

“룸살롱 약속이 몇 시냐?”

“10시입니다, 형님.”

“어디 있는 건데?”

“역삼 사거리에서 선릉 가는 방향입니다, 형님.”

“그럼 10시에 차 가지고 와.”

이병렬이 직접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종수는 거기에서 끝낼 테니까 영권이는 네가 알아서 해. 그래도 태완이 형님이 예뻐라 하시는 놈이니까 칼은 주지 말고.”

“예, 형님.”

걱정스럽지만, 한편으로 반가운 얼굴을 한 김정훈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앉아. 얼른 먹자.”

서달수와 최치곤을 앉힌 이병렬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달수야. 잘 봐둬.”

밥에 올려놓았던 말라버린 건더기를 집어 국물에 적시며 이병렬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간에 바람이 들어가면 칼로 구멍을 내기 전에는 잘 안 빠진다. 자기 게 아닌데 욕심내는 놈도 비슷하고. 알았냐?”

“예, 형님.”

“뭘 알았는데?”

“예? 형님?”

엉뚱한 질문에 최치곤마저 긴장한 눈으로 이병렬을 바라보았다.

“조직 보스는 내가 아니라 강성태다. 너랑 나는 김정훈, 딱 저 모습이어야 한다고. 괜히 어쭙잖게 강남을 먹었네, 클럽이 있네, 김종수처럼 설치면 간에 구멍 난다. 명심해라.”

“예, 형님.”

“먹어. 먹고 몸뚱이 나으면 우리 프리 스테이션에서 문 닫아놓고 코가 삐뚤어지게 한번 마시자. 일대일 그거 맛있다더라.”

그 뒤로 이병렬이 젓가락을 움직여서 그제야 제대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

열이 오르기 시작한 이승수를 위해 안다미는 곰팡이를 뗀 부분의 빵을 양보했다. 의도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안다미는 물 몇 모금만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열이 오른 이승수, 얻어맞아서 퉁퉁 부은 볼과 턱을 만지는 박재구, 배가 고픈 안다미, 세 사람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배는 배대로 고팠고,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은 뒤부터는 라이터 불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온기를 느끼고 싶을 정도로 추위가 느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웅크렸다.

따끈한 수프, 진한 설렁탕,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 야식으로 간혹 먹던 족발을 떠올리며 안다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참 치사해서 심지어 안다미는 반도 먹지 못하고 새카맣게 타버린 불고기와 밑반찬, 공깃밥이 생각나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강성태는 어떻게 있을까?

전화 통화 중에 갑자기 끊겼으니 그 성격에 가만있지는 않을 테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부친 안호상 역시 한숨 못 자고 끙끙 앓거나 이런저런 인맥에 매달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살을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웅크리던 안다미는 강성태의 품을 생각했다.

남들처럼 잠자리라도 하고 이러면 억울하지나 않지.

2박 3일 여행을 갔어야 했다.

그런 뒤에 안다미는 하룻밤을 꼬박 지켜보았던 강성태의 눈과 코, 입술을 떠올렸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사람을 납치하는 조직이 있는 걸 알았다면 안다미 역시 마약에 치를 떨었을 거다.

**

아직 세상이 밝기도 전에 시날로 후아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늘한 날씨에도 군복 바지에 반 팔 티셔츠만 걸쳐서 강인함을 한껏 드러낸 그는 화를 이기지 못한 듯 눈을 부라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을 자를 때 쓸 칼과 카메라를 든 대원 셋이 책상 앞에 서서 통화 내용을 알아보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그래서 말인데 계집애는 그대로 둬.

“그럼 다른 놈의 목을 자르겠습니다. 강성태란 놈이 도착하면 볼 수 있게 머리를 걸어두려고 합니다.”

표정은 물론이고 통화하는 음성에도 시날로 후아스가 품은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이두안이 멕시코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이번이 놈의 마지막 발악이니까 일단 지켜봐.

“한 놈도 목을 자르지 말라는 겁니까?”

- 후아스가 왜 이렇게 날카롭지? 강성태가 두려워서 그래?

“네팔에서 돌이나 짊어졌던 놈 따위로 나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 그렇다면 기다렸다가 강성태의 목을 잘라. 그게 조직에 훨씬 이득이다. 놈을 해결한 뒤라면 인질들을 어떻게 하든 그건 자네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시날로 후아스가 씹듯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 중국에서 세 명을 보낸다니까 공연히 오인해서 엉뚱한 놈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아시아 놈들은 그놈이 그놈 같아서 구별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중국에서 도착하면 강성태의 시체를 보게 될 겁니다.”

- 그렇게 된다면 이두안의 마지막 희망이 부러지겠지. 아, 그리고! 한국의 특수부대를 조심하라는 정보가 있으니까 주변 경계를 철저하게 해.

“한국의 특수부대라면 내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 어련하겠나. 그래도 믿을 만한 정보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통화가 끊기자 시날로 후아스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볼을 씰룩였다.

“겁쟁이들.”

그는 분한 눈으로 칼을 들고 서 있는 대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소총을 돌려 등에 고정한 강성태는 키란과 함께 산맥을 타고 달렸다.

세상이 어슴푸레 밝아지는 시간이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나무 이파리와 줄기가 강성태의 어깨와 가슴 부위를 적시는 사이 배에서 배어 나온 피는 허리 부근을 붉게 물들였다.

상처는 거짓말처럼 아물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리 부근을 물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축축할 정도로 피가 쏟아졌을 거다.

30분쯤 달린 강성태는 완만하게 돌아가는 능선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키란!”

고개를 끄덕인 키란이 아래를 향해 뛰기 시작하는 순간에 강성태는 등 뒤로 돌려두었던 소총을 앞으로 돌렸다.

강성태에게 달려들었던 나뭇가지들이 얼굴과 어깨, 팔을 스치고는 뒤로 쉴 새 없이 밀려 나갔다.

키란도 소총을 앞으로 돌리고 뛰고 있을 거다.

앞쪽에 있는 바위를 피해 능선을 따라 내려가던 강성태는 다시 위를 향해 뛰었다.

아직 나무 이파리가 남아서 적의 눈에 드러날 위험이 적었고, 새벽의 이슬 덕분에 먼지가 피어나지 않는 이점도 있었다.

“허억. 헉. 허억.”

숨이 턱에 차올랐지만, 강성태는 멈추지 않았다.

이 걸음이 빠를수록 안다미를 구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이를 악물고 달리던 강성태는 곧게 뻗은 능선을 보고는 소총을 뒤로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지형이라면 소총을 뒤로하고 속도를 높이는 게 유리했다.

그 직후였다.

부슷! 부스슷!

아래에서 달리던 키란이 나뭇가지를 헤치며 위로 올라왔다.

“허억! 허억!”

얼굴에 땀이 가득한 키란 역시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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