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18화
제8장. 어떻게 할래?
강성태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던 중에 급히 달려온 게 분명한 얼굴로 유헌우가 들어섰다.
“뭐 해요, 지금? 강성태 씨를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태프가 애썼는지 알고 이래요?”
창에 기대서 서 있는 강성태를 보며 그는 단박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팔 잡아요.”
강성태의 왼팔을 받친 유헌우가 간호사에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끄응.”
“이럴 걸 왜 창에 매달려요?”
고작 침대에 다시 눕는 것만으로도 이마에 땀이 배어나올 만큼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대단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상처를 살핀 유헌우가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소식 들었나 보죠?”
“예.”
“숙소까지 15시간 정도 걸린다니까 저녁에 전화해보세요.”
“이두안 회장이 왔었습니까?”
최치곤을 돌아본 유헌우는 당시의 상황을 짧게 설명해주었다.
“원장님. 이번에도 상처가 빨리 낫습니까?”
“자고 일어난 상태를 보는 게 가장 확실한데 이번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네요. 지난번에 효과 본 거로 만족합시다.”
“그 주사를 한 번 더 주시면 안 됩니까?”
“안 선생도 같은 요청을 하던데 임상시험을 위한 약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침대에 누운 강성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 쪽을 좀 세워주세요.”
“강성태 씨?”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유헌우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치료도 그렇고,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몸에 있는 흉터들이 이렇게 병원에 얌전히 누워서 생긴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누워 있어야죠. 함께 수술에 참여해서 치료하고, 강성태 씨의 병실에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앉아 있었던 안 선생 생각은 안 합니까?”
“원장님. 다미 씨를 생각해서 이러는 겁니다. 의료 지원을 가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시면 아마 제 등을 붙잡아서라도 일으켜 주실 겁니다.”
강성태의 눈빛과 말을 믿는다.
그렇더라도 유헌우는 상식적인 선에서 강성태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눈치였다.
“멕시코 정부에서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이 지금 다미 씨가 간 지역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이두안 회장 같은 거부가 왜 저를 경호원으로 고용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 정도인가요?”
“그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침대 머리를 세워주세요. 원장님이 안 해 주셔도 나가시면 어차피 세울 겁니다.”
“후-.”
시선을 떨군 유헌우가 커다랗게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껏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안다미의 안전이 걱정돼서 그런 눈치였다.
유헌우가 일어나 침대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버튼을 조작해 상체를 위로 들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회복에 도움이 됩니까?”
“그건 모르겠고, 움직이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상처를 억지로 벌리는 모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최치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이 되면 나도 안 선생의 안전에 관해 알아볼 테니까 일단 너무 무리하지 맙시다.”
지친 얼굴로 유헌우가 병실을 나섰다.
양팔을 모은 강성태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치곤아.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더 있냐?”
“뭐, 민정이가 카페에 찾아와서 내가 이모랑 통화한 거 정도 말고는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휠체어를 밀고 온 최치곤은 스마트폰을 꺼내 장숙경과 통화하게 된 과정을 떠들었다.
**
거대한 공간에 원탁 테이블 하나 달랑 놓았다.
피처럼 붉은 천으로 테이블을 덮었는데 아래로 늘어진 부분에는 금박으로 ‘福(복)’이라는 글자를 돌아가며 새겨놓았다.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원자춘은 심각한 표정으로 조직원이 전하는 말에 집중했다.
말을 마친 조직원이 상체를 세운 뒤였다.
“흐하하하.”
그런 뒤에 그는 통쾌한 웃음을 쏟아냈다.
“지용호와 송원. 멍청한 두 놈이 이 원자춘의 얼굴에 진흙을 처발랐구만. 원자춘이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았어. 그것도 가오리빵즈(高麗棒子)에게! 흐하하하!”
웃음을 그친 원자춘은 입술을 뒤틀었다.
“벌레 새끼가 설치면 밟아줘야지. 강성태라고 그랬지?”
“예, 형님.”
“그놈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뽑아와. 자주 만나는 놈, 일가친척, 최근 통화한 목록까지 싹 뒤져.”
고개를 숙인 조직원이 빠르게 문을 향해 움직였다.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꺾은 원자춘은 곧바로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찰칵.
고개를 기울여 불을 붙인 그는 생각난 게 있는 듯 상체를 뒤로 돌렸다.
“삼룡은 지금 어디 있지?”
“연락해 보겠습니다.”
뒤편에 쭉 서 있던 조직원 중 중앙에 있는 덩치가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고개를 끄덕인 원자춘은 만족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조태완은 침대 앞에 선 김종수와 정영권을 짜증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강성태가 깨어났으니까 나더러 작업하라는 거냐?”
“그런 게 아니고, 형님. 지역 선배들이 업장 몇 개 넘겨받고 싶다고 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형님. 가격도 나쁘지 않고.”
조태완은 왼손 검지를 들어 김종수의 입을 막았다.
“지방에 있는 선배들이야 이런 기회에 업장 하나 먹었으면 싶겠지. 그러다가 돈 좀 만지게 되면 동생들 끌어올릴 텐데, 너 나중에 그 양반들 감당할 수 있겠어?”
“형님이 계신 데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형님?”
“후-. 내가 지금 들은 말을 병렬이한테 그대로 전하마. 그런 다음에 너희들끼리 해결하라고 할 테니까 어디 한 번 뜻대로 해 봐.”
숨을 길게 내쉰 조태완이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김종수를 보았다.
“당장 이병렬이도 무섭지? 그런데 강성태는 나도 어떻게 못 한 신호남파 문도진을 깼어. 거기에 광룡 애들과 송원이라는 새끼도 그 자리에서 모조리 깨졌고.”
힘이 부족한 조태완의 음성이었다. 대신 탕수육에 부은 소스처럼 짜증과 분노가 잔뜩 덮여 있었다.
말을 중단한 조태완이 고개를 돌렸다.
“야, 방지병원에 가게 준비 좀 해.”
“형님?”
김종수가 다급하게 부르는 데도 조태완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강성태를 일찍 만난 게 다행이었지. 만약 강성태와 문도진이 먼저 만났으면 너 같은 새끼 믿고 있다가 벌써 뒈졌을 거 아니냐. 뭐 해? 준비하라니까!”
칼을 맞았어도 조태완의 카리스마는 사라지지 않아서 병실을 지키던 덩치들이 바삐 움직였다.
**
오전 8시 전에 강성태는 이병렬, 서달수를 만났고, 한 시간 정도 의식을 잃고 있었던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잘해.”
“뭘?”
강성태의 뜬금없는 말을 이병렬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조직 잘 이끌라고.”
“왜 이래, 이거? 사람을 죽을 자리에 몰아넣고 발 빼려고?”
말끝에 이병렬은 강성태를 들여다보았다.
“진심이냐?”
“원래 그러기로 했던 거잖아.”
“씨발! 안 해! 못 해!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어? 모르나 본데 나는 영등포도 벅차. 당장 신사동 오광택이란 놈하고도 겨우 맞장 뜨는 정도라고!”
“철산동인가에서 얻어맞았다고 했었나?”
“맞기는 누가 맞아? 그 정도로 독종인 놈 처음 봤다고 했었지!”
연달아 오간 대화 끝에서 이병렬은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자에 없는 여권 만들게 생겼네.”
“여권은 왜?”
“씨발, 멕시코 갈 거 아냐? 따라가야지.”
강성태는 옅게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유헌우가 들어왔다.
“환자들이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안정 몰라요? 안정?”
일반인들이 깡패를 대할 때의 경계심 따위 유헌우에게서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들고 들어온 종이 상자를 강성태의 침대 옆에 놓았다.
“강성태 씨가 지니고 있던 소지품입니다. 전화가 꽤 많이 왔다던데 확인해 보세요.”
병실을 휘휘 둘러본 유헌우는 지쳤다는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달수야. 여기 상자에서 전화기 좀 꺼내줘.”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를 받은 서달수가 침대로 다가와 상자를 열었다.
“형님.”
그런 뒤에 상자를 들어서 강성태가 볼 수 있도록 기울였다.
쿠크리가 대각선으로 누워 있었고, 한쪽에는 스마트폰, 반대쪽 공간에는 지갑이 있었다.
“전화기 주고. 수건 있지? 큰 거로 하나만 가져다주라.”
“예, 형님.”
상자를 내려놓은 서달수가 먼저 스마트폰을 꺼내 강성태의 손에 쥐여주었다.
서달수가 수건을 가져오는 사이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장숙경, 김민정, 김민재, 이은주의 부재중 전화 기록과 문자가 가득했다.
그리고 가장 뒤편에 [안다미]라는 이름이 있었다.
[지금 출발한대요. 비행시간이 길어서 모처럼 푹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도착하면 다시 문자 할게요. 그때는 깨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강한 목소리 들려주면 힘이 날 거 같거든요.]
문자 뒤에 수줍게 웃는 이모티콘이 달려있었다.
대강 내용을 살핀 강성태가 고개를 들자 서달수가 수건을 내밀었다.
“이제 쿠크리를 꺼내줘.”
“예? 형님?”
“상자 안에 있는 칼.”
“예, 형님.”
서달수가 두 손으로 꺼낸 쿠크리를 강성태는 직접 수건으로 감았다. 팔을 움직이는 동안 통증이 대단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수건으로 쿠크리를 감은 강성태는 다리를 덮은 이불 안에 넣었다.
“충전을 해야겠는데?”
“충전기를 가져오겠습니다, 형님.”
서달수가 빠르게 복도를 나섰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누던 이야기의 중간에서 유헌우가 들어왔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느라 이병렬과 나누던 대화가 뚝 잘렸다.
“오늘 당장 퇴원할 거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그래.”
강성태를 무작정 말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이병렬도 더 막무가내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복도가 소란스럽더니 서달수가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태완이 형님 오셨습니다, 형님.”
“뭐?”
이병렬이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김종수와 정영권, 조철호 변호사가 뒤따랐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병렬, 최치곤의 순서로 인사했고, 그 뒤에 정영권이 강성태와 이병렬에게 고개 숙였다.
조태완은 먼저 휠체어에 앉은 이병렬과 최치곤을 돌아보며 쓰게 웃었다. 줄줄이 휠체어에 앉아 얼굴을 마주하는 현실이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몸은 좀 어때?”
조태완은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견딜 만합니다.”
“죽었다 살아날 만하네? 강성태가 존댓말을 다 써주고?”
농담이라고 던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강성태가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펭귄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병실 안이 썰렁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애들 좀 물리지?”
농담에 실패한 조태완이 이번에는 요구를 내놓았다.
서달수까지 나간 마당에 김정훈과 정영권이 달려들면 아무리 강성태라도 버티기 어려웠다.
믿을 건 이불 속에 든 쿠크리밖에 없었고.
결정을 바라며 돌아본 이병렬을 향해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병렬이 고갯짓을 하자 고개를 숙인 서달수가 최치곤의 휠체어를 밀고서 병실을 나섰다.
“다들 힘드니까 짧게 하자. 광룡에다가 신호남파까지 이번 일이 워낙 크잖아. 경찰이나 검찰은 어찌 해결했는데 지역 선배들이 협조해준다면서 업장을 욕심내거든.”
너는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는 얼굴로 조태완이 이병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중에 몇몇이 여기 종수와 영권이 뒤를 자꾸 긁어대는 모양이다. 병렬아? 어떻게 할래?”
조태완은 실제로 이병렬이 어떤 대꾸를 내놓을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사람 마음은 알 길이 없다.
평소 빌빌대던 정영권이라도 당장 제대로 힘을 쓰는 사람이 없는 자리라면 간이 부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당장 숙소 인원이 가장 멀쩡한 인간도 정영권이었고.
이철룡, 조성만을 경험한 강성태는 김종수와 정영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했으면 하십니까, 형님?”
이병렬의 질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뭔가 살벌한 느낌의 미소를 조태완이 눈으로 그려냈다.
“나라면 종수 주저앉혀서 은퇴시키고, 영권이 묻어버리지.”
조태완의 뒤에 있던 정영권이 움찔했다.
“신호남파 애들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팔랑팔랑 팔려 다니는 꼴을 보이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종수와 영권이에게 속닥댈 거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그중 한 놈이라도 얻은 게 있으면 나머지 놈들이 불만을 갖게 되고.”
“형님! 그런 게 아닙니다!”
김종수가 억울하다는 투로 항변한 직후였다.
강성태는 조태완의 바로 뒤에 서 있는 정영권을 빠르게 살폈다.
모두 환자만 있는 병실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고 해도 묻어버리라는 말이 나온 마당에서는 독한 생각을 떠올릴 가능성이 없잖아 있었다.
“정영권.”
강성태는 나직하게 정영권을 불렀다. 그런 뒤에 이불을 들쳤고, 수건에 감은 쿠크리를 붙잡았다.
수건에 감았더라도 정영권이 쿠크리를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문 쪽으로 물러나.”
바로 답을 하지 않는 정영권을 향해서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몸을 돌린 강성태가 발을 침대 아래로 내리는 순간이었다.
“끄응.”
휠체어의 팔걸이를 짚은 이병렬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들짝, 놀란 정영권이 그 직후에 상체를 깊게 숙이고는 문으로 움직였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보는 눈치였다.
“종수야. 네가 나라면 말이다. 저런 강성태와 이병렬한테 의지하겠냐, 아니면 너랑 영권이를 따라 움직이겠냐?”
“예? 형님?”
“저러니까 정훈이가 그렇게 고개를 숙인 거야, 이 새끼야.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너도 정훈이처럼 고개 깊게 숙이고 깍듯하게 모셔야 고문인 내가 더 대우받지. 이 개호로 새끼야.”
김종수를 몰아붙인 조태완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쳤다는 듯 개운한 얼굴이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