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 13화 (142/513)

7권 - 13화

제6장. 내가 부장판사 출신이오.

김정훈이 악썼고, 뒤늦게 점수를 따고 싶은 김종수와 정영권이 설치면서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 최치곤을 차로 옮겼다.

태완이파 덩치들이 얼마나 에워쌌는지 승용차 바깥의 도로 풍경이 보이지도 않았다.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병렬이 형님! 제가 알아서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피범벅인 손으로 문을 잡은 김정훈이 물었고, 잠시 눈을 올려다보던 이병렬이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김정훈이 문을 닫았다.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새로운 날의 빛이 서서히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출발해!”

김종수의 재촉을 받은 승용차가 한적한 도로 위를 매섭게 달렸다. 가까운 거리였다. 거기에 워낙 무섭게 달리기도 했고.

끼이이익!

방지병원 주차장으로 뛰어든 승용차가 급하게 멈췄고,

끼이익! 콰작!

뒤따라 들어온 차는 공간이 없어서 강성태가 탄 승용차의 범퍼를 받으면서 멈췄다.

“뭐야!”

입구를 지키던 영등포 덩치들이 와르르 달려왔다가 문에서 내리는 이병렬을 보고 얼른 주변을 감쌌다.

“형님!”

“달수야! 안에서 가서 아무나 불러! 빨리!”

병원을 지키던 서달수가 화들짝 응급실로 달리는 동안, 이병렬은 덩치들과 함께 강성태를 안아서 당겼다.

“밖에서 못 보게 승용차 둘러싸!”

이병렬이 고함을 지를 때였다.

응급실에서 이동용 침대를 밀며 스태프들이 뛰어나왔다.

“원장님 있어?”

“잠깐 주무세요. 바로 나오실 거예요.”

“여기 환자부터 얼른 안으로 데려가!”

피투성이가 된 이병렬이 외치는 대로 강성태를 침대에 올린 스태프들이 응급실로 달렸다.

“응급실로 가십시오, 형님.”

이병렬에게 붙은 서달수가 덩치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강성태가 워낙 급해서 그렇지,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 역시 서 있기조차 힘겨운 상태였다.

“달수야. 누구도 태완이 형님이나 우리 보스 병실에 못 들어가게 하고, 종수 형님이나 정영권, 김정환, 이렇게만 상대해. 그걸 무시하고 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그냥 칼 줘.”

“예, 형님.”

서달수가 다부지게 답할 때, 이동 침대를 밀며 스태프들이 다시 나왔다.

**

지이잉. 지이잉.

휴게실의 간이침대였다.

모로 누워 자고 있던 안다미는 손에 쥔 스마트폰이 전하는 진동에 눈을 떴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발신인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안다미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어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 안 선생님?

익숙한 응급실의 호출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 안 선생님? 여기 방지병원인데요.

“예, 무슨 일이세요?”

머리를 쓸어내리며 일어난 안다미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상에 놓인 시계가 오전 5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원장님께서 꼭 좀 와달라고 하세요. 서둘러달라시고요. 급한 환자가 많아서 저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예요.

간호사의 말이 이상하게 심장을 얼리는 느낌이어서 안다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환자 중에 강성태 씨가 있어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인해야 할 사실이기도 했다.

- 그 환자는 CPR 중이에요.

캐비닛의 문을 열었던 안다미는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 안 선생님?

“지금 가요! 바로 출발할게요!”

- 감사합니다. 원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흰색 가운을 급히 벗어서 캐비닛 안에 던진 안다미는 재킷과 백을 들고 뛰었다.

복도를 달리는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콰작!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던 안다미는 걸어오던 동기와 부딪쳤다.

“야! 조심 좀 하지! 어? 어디가?”

“뒤 좀 맡아줘!”

“야, 안 선생! 지금 가면 어떻게 해!”

대꾸조차 없이 달려간 안다미는 방금 동기가 내렸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쉴 새 없이 눌렀다.

**

안호상은 침대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박사님. 유헌우입니다.

급하게 달려드는 음성이었다.

전화기를 들 여유조차 없어 병원 스태프가 들고 있는 상태에서 스피커폰 통화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급한 환자야?”

- 도와주십시오, 박사님. 안 선생에게도 연락했습니다. 긴 말씀 못 드립니다.

이미 이런 경험 여러 번 있었다. 안호상이 유헌우에게 급하게 전화한 적도 그 이상으로 많았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선생님! CPR이요!” 하는 다급한 음성과 인투베이션을 지시하는 유헌우의 음성이 들린 뒤에 전화가 끊겼다.

안다미와 함께 수술실에 있어야 하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지만, 유헌우가 이렇게 호출할 때는 머뭇거릴 여유 따위 없다는 의미였다.

침대에서 벗어난 안호상은 잠옷 상의의 단추를 풀면서 드레스룸으로 바삐 움직였다.

**

가장 빠르게 치료를 마친 사람은 이병렬이었다.

병실로 올라가라는 권유에도 서달수를 불러 휠체어에 앉은 이병렬은 응급실 앞 주차장에서 버텼다.

그때 시간이 오전 8시 10분이었다.

두툼한 점퍼로 다리를 덮은 이병렬은 주차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승용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구를 지키던 영등포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왔는데 차에서 내린 사람은 김종수였다.

이병렬이 손을 들자 위협적으로 승용차 앞을 막았던 영등포 덩치들이 고개를 숙인 뒤에 다시 병원 밖으로 나섰다.

김종수가 내린 뒤였다.

반대편 좌석에서 처음 보는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몸을 빼냈다.

“몸은 좀 어떠냐?”

상처는 없었지만, 김종수 역시 지난밤의 충격과 힘겨움이 고스란히 남은 얼굴이었다.

이병렬이 고개를 들자 김종수가 흠칫했다.

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 이마와 볼에 붙은 거즈, 자잘한 상처가 가득한 턱과 목, 깁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두툼하게 손목에 감은 붕대, 지쳐서 퍼질 만도 한데 김종수를 바라보는 이병렬의 눈은 매서웠다.

“이분은 태완이 형님 일을 관리하는 조철호 변호사님.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시고.”

이병렬은 시선만 돌렸다.

“잠깐 둘이서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소.”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조철호는 이병렬의 시선에도 사무적인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보시다시피 내가 이래서 뒤에 동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흐음.”

서달수를 바라보았던 조철호가 신음을 토해냈다.

불쾌한 기색도 있었다. 그러나 이병렬은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눈과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조철호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부장판사 출신이오.”

그래서?

이병렬은 여전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 회장이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런 경우에 대비해 두 가지를 당부했었소. 그중 하나가 조 회장이 지정하는 병원으로 옮겨줬으면 하는 거였소.”

“변호사님. 태완이 형님 일을 봐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대강 아실 거라 믿습니다. 제 꼴을 보셨으니 태완이 형님이 왜 저러고 있는지도 짐작하실 거고요.”

“그거야…….”

“이럴 때 헛소리하시면 서로 불편해집니다. 그러니까 거친 말 나가기 전에 이만 돌아가십시오.”

무시당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러는 데도 가만있어?

불끈 이마의 핏줄이 돋은 채로 조철호가 김종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병렬의 기에 눌린 김종수는 모른 척,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김종수의 반응을 확인한 조철호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조 회장이 당부했던 사람이 있는데 병실에 들어가게 해도 되겠소?”

휠체어에 앉은 이병렬이 핏물 가득한 눈을 치켜떴다.

김종수와는 차원이 다른 눈빛이었다.

자칫 이병렬이 이성의 끈을 놓고서 앞에서 경고했던 거친 말을 던질까 봐 조철호는 입술을 달싹였다.

“병렬아. 조 변호사님이 태완이 형님 지분도 관리하시는 분이니까 잠깐 이야기나 들어 봐.”

“지금 내가 기분이 안 좋다. 여기에서 한 번 더 긁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변호사님 모시고 돌아가.”

기회를 노리고 슬며시 끼어들었던 김종수가 자라처럼 목을 집어넣었다. 착 가라앉은 이병렬의 음성에 담긴 독기가 그 정도로 사나웠다.

“이렇게 합시다.”

지켜보던 조철호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조용한 곳에 갈 필요도 없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을 열 걸음 정도만 물러나게 해주시오.”

잠시 말이 없던 이병렬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달수야. 연장 하나 주라.”

“예, 형님.”

휠체어 뒤에 있던 서달수가 품에서 회칼을 꺼내 이병렬의 다리를 덮은 점퍼 안에 넣어주었다.

“잠시 떨어져 있어.”

“예, 형님.”

이병렬의 지시를 받은 서달수가 휠체어에서 고개를 끄덕여가며 정확히 열 걸음을 물러섰다. 그사이 조철호에게 눈짓을 건넨 김종수는 승용차 앞으로 움직였다.

“말씀하십시오.”

회칼을 잡은 오른손을 점퍼 안에 넣은 이병렬의 요구에 조철호가 얼른 입을 열었다.

“조 회장이 감춰둔 가족이 있소. 그 아내 분을 병실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말이었소.”

“태완이 형님에게 부인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춰둔 가족이라고 하지 않았소?”

조철호를 노려본 이병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태완이 형님이 의식이 없습니다.”

“그럴 때라도 병실에 보내달라고 당부했었소.”

“병실에 내가 정한 동생과 함께 있을 것, 몸수색 받을 것, 그리고 음식이나 물, 링거, 약을 포함에 태완이 형님 몸에 들어가는 건 손대지 못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자 한 명입니다.”

“알았소. 그렇게 전하겠소. 결정되면 누구한테 연락하면 되겠소?”

“여기 있을 테니 저를 찾아오십시오.”

자존심이 제대로 구겨진 표정으로 조철호가 몸을 돌렸다.

“몸조리해라! 있다가 올게!”

승용차에 있던 김종수는 손을 들어 인사말을 던지고 차에 올랐다.

다가온 서달수가 이병렬의 뒤에 섰을 때, 김종수와 조철호를 태운 승용차가 후진으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달수야.”

“예, 형님.”

“밖에 애들 밥 먹이고, 너도 먹어.”

“밖에 식구들만 챙기겠습니다, 형님.”

다른 때 같으면 한소리를 퍼부었을 이병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잠자코 서달수의 뜻을 받아주었다.

**

유헌우는 안다미에게 최치곤, 김진용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안호상과 함께 강성태에게 매달렸다.

이병렬의 수술을 마친 방지병원 의사들이 도우러 들어오면서 마침내 김진용의 응급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끝나기 무섭게 안다미는 간이 수술실을 나서며 모자와 수술복을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이병렬, 최치곤 환자는요?”

“이병렬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서 응급실 입구에 있고요.”

수술복의 뒤를 묶어주는 간호사를 안다미가 돌아보았다.

“병실에 올라가라고 했는데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티고 있어요. 최치곤 환자는 조금 전부터 계속 강성태 환자 상태를 물어보고요.”

수술복과 수술 모자를 쓴 안다미는 손을 씻기 위해 움직였다. 손가락 사이, 손톱까지 세심하게 닦은 그녀는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고서 곧장 강성태의 수술이 진행되는 수술실로 향했다.

이미 안다미를 여러 번 봤던 간호사가 눈치껏 다가와 그녀에게 라텍스 장갑을 끼워주었다.

유헌우는 시선만 잠시 들었고, 안호상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박사님. 안 선생과 교대하시고, 잠시 쉬십시오.”

“아직 그럴 정도 아니야. 석션.”

단호한 안호상의 답변이었다. 냉정하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으나 평소 수술에 집중할 때의 모습이라 다른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내내 속이 탔었다.

이병렬, 최치곤, 김진용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짐작하기는 했는데 수술실에서 확인한 강성태의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눈을 감은 강성태를 보며 안다미가 숨을 들이마실 때였다.

“여기를 맡아.”

안호상이 머리 부근으로 한 걸음 옮기면서 안다미를 불렀다.

안다미가 지시한 부분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상처를 봐서 알겠지만, 이 몸으로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다.”

안호상의 음성이 나직하게 안다미에게 건너왔다.

“적절한 유 원장의 응급시술에 더해 삶에 대한 환자의 의지가 만든 결과로 보인다. 혈압과 호흡으로 봐서 다행히 급한 위기는 넘겼다.”

사랑하는 남자의 위기를 지켜보는 딸이 안타까워서, 혹시 다급한 마음에 실수라도 할까를 염려한 안호상의 배려였다.

부친의 배려를 느끼는 순간, 안다미는 내내 눌러두었던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눈시울이 붉어진 안다미가 감정과 눈물을 추스르려 고개를 위로 든 직후였다.

“나가! 나가서 소독 다시 하고 들어와!”

쨍하는 안호상의 음성이 안다미에게 쏟아졌다.

손이 수술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감정이 흔들린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얌전히 안호상을 향해 고개를 숙인 안다미는 몸을 돌려 수술을 나섰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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