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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 10화 (139/513)

7권 - 10화

제5장. 이거 말이 다른데?

김정훈은 처참하게 망가진 변웅진과 조은우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강성태의 능력을 좀 더 인정하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 김종수와 정영권이 강성태를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자 경쟁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말하는데 토를 달아? 야, 이 새끼야! 웅진이 대신 전화하는 것도 뚜껑이 열리는데 이 개새끼가 진짜!”

변웅진의 숙소에 전화한 김정훈은 전화 받는 상대를 거친 말로 죽여대고 있었다.

“4시 전에 들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리고 입구에 가드랑 애들 다 치워. 그 말은 들었지? 그래. 중요한 날이니까 정신들 바짝 차려.”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시원하게 통화를 마친 김정훈은 다시 조은우의 숙소에 전화해서 더할 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만족한 느낌으로 이병렬이 고개를 돌렸다.

“정영권이? 네가 관리하는 숙소는?”

“아까 20명은 보셨고, 전화만 하면 나머지 20명이 다 모입니다, 형님.”

이병렬의 질문에 정영권이 씩씩하게 답을 내놓았다.

3시가 조금 시간이었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김진용과 박장수가 급하게 나갔다가 잠시 뒤에 최치곤과 함께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고생했다.”

최치곤은 비닐로 된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쇼핑백을 통해 드러난 윤곽을 보며 강성태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저걸 꺼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상자에서 꺼내며 쿠크리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무게감과 특이한 형태에 짓눌린 표정으로 최치곤이 갈색 천에 감아놓은 쿠크리를 내밀었다.

쿠크리를 받아 든 강성태는 갈색 천을 펼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잠시 내려다보았다.

잔인한 모습이 많을 거다.

날이 휘어진 형태가 낯설어서 어색하게 보이겠고.

이렇게 휜 날에 몸뚱이를 걸어서 당기면 뼈가 잘린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단숨에 제압하기는 더할 수 없이 유용한 반면에 아픈 모습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각오하고 와라, 광룡.

그러게 왜 남의 땅에 들어와 마약을 뿌려?

조직원들에게도 삶과 가족이 있겠지만, 오늘은 끝을 볼 생각이었다.

무거운 적막이 침묵의 등을 타고 강성태 주변을 넘실거렸다.

“문도진이 광룡의 송원과 함께 올 거 같다.”

강성태가 시선을 들지 않은 채 말하는 바람에 천에 쌓인 쿠크리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숫자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이병렬은 반드시 죽이려고 들 거다. 그러니 독한 놈들로 모아오겠지.”

이병렬이 강성태와 쿠크리를 번갈아 본 직후였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병렬아. 태완이파까지 싸움에 나서면 누가 누군지 몰라. 그중에 너랑 진용이, 치곤이를 노릴 놈이 있을지도 모르고.”

“형님?”

억울하다는 듯 나섰던 김종수가 강성태의 시선을 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김종수를 향해 있던 강성태의 시선을 이병렬이 당겼다.

“이건 우리 싸움이다. 내가 광룡을 맡을 테니까 병렬이 네가 진용이, 치곤이와 문도진을 맡아.”

“알겠습니다.”

이병렬이 이를 깨문 듯이 묵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형님.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강성태는 김정훈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태완이 형님 때부터 전쟁 나면 클럽을 맡았던 저, 웅진이, 은우가 항상 앞에 섰습니다. 제가 뒤에 밀려 있으면 조직 정비돼도 애들한테 큰소리 못 칩니다. 기회를 주셨으니까 저도 나서게 해주십시오.”

“정훈이 말이 맞습니다, 형님. 동팔이가 태완이 형님 곁을 지켰기 때문에 일이 생기면 늘 정훈이랑 저기 두 놈이 앞에 섰습니다, 형님.”

듣고 있던 김종수가 김종훈의 말을 뒷받침하며 나섰다.

“도진이 형님은 병렬이 형님이 맡으시고, 밑에 대길이를 맡겨주십시오. 제가 우리 숙소 애들과 대길이 잡겠습니다, 형님. 또 그래야 애들이 인정하고, 내부 정리도 깔끔하게 끝납니다, 형님.”

시선을 주자 강성태만 알아볼 정도로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훈. 송대길을 맡아.”

“감사합니다, 형님.”

김종수가 ‘너도 이럴 때 좀 나서.’ 하는 감정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정영권은 묵묵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몇 시에 나가?”

“숙소 애들이 3시 40분까지 모이니까…, 20분 뒤에 나가시면 됩니다, 형님.”

강성태가 물었고, 김종수가 답했다.

“달수한테 전화해서 움직이라고 하지?”

“예.”

이병렬이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찾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다. 내가 보스 모시고 트와일라잇으로 출발하는 것처럼 해서 차 한 대 보내. 그래.”

통화를 마친 이병렬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몸을 숨겼던 긴장이 팽팽하게 사무실 안을 당겼다.

“영권아. 아까 불렀던 동생들 올라오라고 해. 우리 애들 셋도 데리고 오라고 하고.”

김정훈이 지시하자 정영권이 순순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갑갑한 김종수의 시선 앞에서도 정영권은 꿋꿋한 태도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저 모습이 태완이파 안에서 정영권이 사는 방법인 모양이었다.

**

숨을 길게 내쉰 문도진이 시선을 들었다.

“준비는?”

“50명 모두 차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신호남파 독종 50명에 입국 기록도 없는 광룡의 칼잡이 50명이면 강성태는 말할 것 없고, 태완이파까지 정리할 수 있겠다.

송대길의 답을 들은 문도진은 욕심이 잔뜩 올라온 표정으로 입을 뒤틀었다.

“깡패라는 게 그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클럽 지분이 몇백 억이니 룸살롱이 몇 개니 떠드는 거지, 연장 맞고 주저앉으면 그거 다 종이 쪼가리하고 다를 거 없다.”

“예, 형님.”

의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송대길이 고개를 숙였다.

“조태완이 먼저 내 등에 칼 꽂아서 내가 오늘내일했다면 카지노 지분을 가진 인간들이 달려가서 태완이파에 경영 넘기는 거고.”

“그런 일 없습니다, 형님.”

다부진 송대길의 눈을 보며 문도진은 비릿하게 웃었다.

“조태완이 가졌다는 룸살롱 그거? 다 바지사장 세우지 않았냐? 몇십 억 되는 세금 전부 바지사장이 안고 자빠지는 거로 먹고사는 거. 그게 조태완이다. 양아치 물장사 조태완.”

말끝에 눈빛을 바꾼 문도진이 강렬하게 빛나는 눈으로 송대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무시한다고 졸라리 벼르던 호남 선배들을 봐. 이렇게 틀 잡으니까 지금은 전부 눈치 본다. 이번에 태완이파 손에 넣으면 지분 쪼갤 필요 없는 카지노 하나 마카오에 세울 생각이다. 내가 거기 매달리는 동안, 너는 조태완이 쥐고 있던 클럽 전부 관리해.”

“감사합니다, 형님.”

“결론은 났고, 그렇게 하려면 이제 뭘 해야겠냐?”

“반드시 아침에 태완이파를 형님 앞에 올려놓겠습니다, 형님.”

볼을 씰룩인 문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였다.

지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문도진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어디십니까? 형님?

“지금 출발한다. 너는?”

- 15분이면 도착합니다, 형님.

“알았다.”

송원의 답을 듣지도 않은 채 종료버튼을 누른 문도진이 몸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게 숨을 내쉰 송대길이 독한 눈으로 문도진의 뒤를 따랐다.

**

강성태와 김정훈은 멀리서 지켜볼지 모르는 문도진의 눈을 의식해 변웅진의 차에 올랐다.

이병렬과 김종수가 조은우의 차에 탔으며, 김진용과 최치곤은 정영권과 함께 움직였다.

고작 2분 거리였다.

차라리 걸어서 가고 싶었는데 지켜보는 눈을 생각했고, 평소에도 차를 타고 움직였다는 말에 다른 말 없이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형님.”

승용차의 뒷좌석에 김정훈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다. 안 온 숙소 있냐? 그래. 그럼 그건 됐고. 입구에 애들 치웠어?”

트와일라잇의 상황을 체크하는 김정훈 옆에서 강성태는 시선을 창밖으로 두었다.

오늘 밤 끝낸다.

이병렬에게 조직 넘기고, 평범한 카페 주인으로 돌아가자.

최치곤과 일대일로 만든 폭탄주 마시면서 킬킬거릴 거고, 이모와 이모네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 먹을 거다.

멕시코로 가지 않은 안다미를 가끔은 병원 앞에서 기다릴 수도 있겠다.

작은 소망들을 떠올리며 강성태는 엄지로 천에 담긴 쿠크리를 매만졌다.

“형제의 명예를 담아서 선물합니다.”

검게 탄 얼굴에 순박한 표정으로 쿠크리를 건네던 눈빛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막 네팔을 떠올리던 강성태의 시선을 불 꺼진 트와일라잇 간판이 깨웠다. 트와일라잇은 영업을 하지 않는 탓에 번쩍이던 네온사인을 꺼둔 상태였다. 젊은 손님들로 넘치던 주변 도로는 한가했고, 호루라기와 유도등이 번쩍이던 도로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했다.

같은 유흥업소라도 불 꺼진 신월동의 나이트가 시골의 다방처럼 촌스러운 느낌이라면, 조명을 내린 트와일라잇은 어쩐지 거대한 무덤 같은 모습이었다.

승용차가 멈추기 무섭게 정영권과 함께 따라온 덩치들이 우르르 달려와 주변을 감쌌다.

안내하듯 김정훈이 가장 앞에서 움직였고, 갈색 천에 감은 쿠크리를 왼손에 든 강성태, 이병렬과 김종수, 김정훈, 김진용, 최치곤, 정영권의 순서로 트와일라잇의 입구로 들어갔다.

불과 얼마 전 처참하게 싸웠던 장소, 트와일라잇이었다.

무대부터 내부의 전등을 모두 밝혔는데도 내부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무대 앞의 홀에 덩치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좌우 벽을 타고도 두 줄로 서 있었고, 2층 난간에 또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성태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을 돌아본 시선들이 다시 적대감과 당황스러운 감정을 가득 담아 강성태에게 돌아왔다.

“의자 좀 가져와.”

“예, 형님.”

김정훈이 지시하자 함께 온 덩치들이 룸에서 의자를 들고 와 입구에 놓았다.

강성태는 일행들과 함께 입구에서 홀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았다. 왼편에 부스, 정면에 홀과 무대, 오른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룸들이 늘어선 구조였다.

“야! 마이크 좀 가져와!”

확실히 김정훈이 김종수보다 덩치들에게 먹히는 눈치였다.

놈이 날카롭게 지시하자 정장 차림의 덩치가 무선 마이크를 거꾸로 들고 빠르게 다가왔다.

“후! 후!”

바람을 불어 소리를 확인한 김정훈은 무대 앞과 벽, 2층을 먼저 돌아보았다.

“태완이 형님이 동팔이한테 당하셔서 병원에 계시는 건 너희도 잘 알 테고.”

삐이이-.

하울링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자 마이크를 입에서 뗀 김정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태완이 형님을 구해주신 분이 여기 강성태 형님이시다. 야, 이 새끼들아? 얘기하고 있는데 어딜 돌아봐? 이 개새끼들이 진짜!”

술렁임을 단박에 잠재운 김정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동팔이를 꼬드겨 모사친 장본인이 신호남파 도진이 형님인 것도 너희들 모두 알 거라 믿는다. 솔직히 태완이 형님을 봐서라도 복수를 다짐해야 하는 마당 아니냐? 그런데 웅진이와 은우가 그 도진이 형님과 내통했다가 걸렸다.”

마치 본인이 그걸 잡아냈다는 투로 김정훈은 당당했다.

“증거는 여기 종수 형님이 웅진이와 은우 전화기 가지고 있으니까 나중에 확인하고. 오늘 이 자리를 웅진이와 은우가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도진이 형님이 식구들 데려와서 우리 접수하려는 거란다.”

덩치들은 확실히 놀란 기색이었다.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듣고 있던 놈들이 시선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신호남파랑 짱개 새끼들이 우리를 우습게 본 모양인데 태완이 형님이 여기 성태 형님께 조직을 맡기셔서 오늘 모시고 왔다. 인사드려라. 강성태 형님이시다.”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눈치를 살피던 덩치들이 형식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마이크 여기 있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김정훈이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강성태다.”

기계적인 쇳소리 가득한 음성이 트와일라잇 내부에 무겁게 깔렸다.

“고민할 거 없다. 조금 뒤에 이곳으로 문도진과 신호남파가 올 거고, 어쩌면 거기에 동조한 광룡의 송원이 또 제법 많은 숫자를 데리고 함께 올지 모른다.”

강성태는 앞에 선 덩치들을 시작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2층 난간에 있는 놈들까지 차례로 돌아보았다.

“문도진은 여기 이병렬이, 송대길은 김정훈이, 그리고 광룡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너희는 지켜보기만 해.”

말을 마친 강성태는 마이크를 건네주고 홀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줄을 맞춰 서 있는 태완이파 덩치들 앞에서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이 오른쪽에 섰고, 김정훈이 기다리고 있던 숙소 덩치들과 왼편에 섰다.

뻑뻑하고 어색한 분위기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바라보던 덩치들이 ‘이게 진짜인가? 정말 문도진과 광룡이 오나?’ 하는 눈빛으로 바뀐 게 유일한 변화였다.

“바깥은?”

“도진이 형님과 그쪽 애들이 들어오면 막을 겁니다.”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입구를 통해 한 무리의 덩치들이 우르르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거칠게 뛰어든 놈들은 점퍼 차림이 많았고, 머리 스타일도 지켜보는 태완이파의 덩치들과 확연하게 차이 났다.

그 직후였다.

다시 재킷과 점퍼 차림의 덩치들이 또 들어왔고, 이어 송대길과 문도진, 그리고 영상에서 보았던 송원이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놀랐을 거다.

“이거 말이 다른데?”

그런데도 문도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안을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우선 숫자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광룡의 덩치들이 뭔가 해줄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안을 돌아보던 문도진의 시선이 강성태를 향해 꽂힐 때였다.

쿠응. 쿵.

트와일라잇의 문이 닫혔고,

철컥.

바깥에서 고리를 채우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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