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8화
제4장. 칼 내려놔.
대기실에 묶어두었던 네 놈을 방으로 옮겼다. 그런 뒤에 엉망으로 망가진 변웅진과 함께 탁자가 있는 오른쪽에 몰아두었다.
강성태는 문을 바라보는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른쪽으로 이병렬, 왼쪽으로는 김종수와 정영권이 앉았다.
대기실에 있던 놈들을 들여놓고 믹스커피를 마시느라 10분쯤 흘렀는데 아직 찾아오는 놈은 없었다.
강성태와 이병렬 쪽이 여유로운 반면, 김종수와 정영권은 의자에 바늘을 꽂아놓은 모양으로 불편한 기색이었다.
철컥. 철컥.
마침내 잠가놓은 문고리를 누군가 뒤틀었다.
“뭐야? 야! 왜 문을 잠갔어?”
밖에서 고함이 들렸다.
“조은우입니다, 형님.”
목소리를 알아들은 김종수가 빠르게 이름을 알려줄 때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바깥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김종수가 정영권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김진용이 문을 거의 닫은 뒤에 살짝 걸쳐두어서 강성태와 이병렬의 모습을 가렸다.
“누구십니까?”
박장수가 밖에 대고 물었고,
“목소리 들으면 몰라? 얼른 문 열어!”
거친 쇳소리가 한 톤 걸러져서 강성태가 있는 곳으로 들렸다.
조은우는 성격이 급한 모양이었다.
철컥.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뭐야, 왜 이렇게 문을 늦게 열고…?”
“왔냐?”
“예, 형님. 그런데 영권이가 왜 여기 있습니까? 어? 형님 얼굴은 또 왜 그렇습니까? 웅진이 동생들은 어디 있고요?”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형님?”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눈치였다.
“웅진이 어디 있습니까, 형님?”
대드는 조은우의 음성이 들렸다.
정적이 흐를 때 방문이 슬쩍 열렸다.
안을 살피기 위해 조은우가 문을 민 모양이었다.
천천히 공간을 넓혀가는 틈으로 커다란 머리통이 드러났다.
뒤편에서 놈이 데려온 모양으로 처음 보는 덩치 둘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조은우?”
“이 새끼가 누굽니까? 형님?”
조은우가 고개를 돌려 김종수를 돌아보았다.
대가리부터 목, 몸통과 허리까지 일자로 빠져서 힘이 좋게 생긴 전형적인 조폭 체형이었다.
강성태는 곧바로 조은우를 향해 다가갔다.
“문 닫아.”
“예, 형님.”
김진용과 최치곤이 빠르게 움직여서 문을 닫은 뒤에 몸을 돌렸다.
“너 뭐야?”
“강성태.”
“뭐? 웅진이 어디 있어?”
“문도진하고 통화했지?”
“그걸 씨발 놈아, 네가 왜 따져?”
픽 웃은 강성태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러니까 이 씨발! 종수 형님하고 영권이가 배신 때린 거네?”
“배신은 문도진과 손잡은 네가 한 거지.”
“이 씨발놈이!”
욕을 뱉은 조은우가 대뜸 주먹을 날렸다.
덩치가 있는 조은우라면 체중을 실어야 했다. 그런데 놈은 대뜸 팔만 휘둘렀다.
강성태가 상체를 젖혀 피하자 민첩하게 몸을 돌린 조은우가 문으로 달렸다.
이 새끼가?
강성태는 앞으로 달리면서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쩌어억! 쩌억!
강성태가 새로 들어온 두 놈에게 주먹을 날린 직후였다.
조은우가 김진용을 향해 체중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콰아앙!
김진용이 상체를 비틀어 피하면서 놈의 주먹이 문을 거세게 때렸다.
퍽! 퍼억!
곁에 있던 최치곤이 조은우의 얼굴에 좌우 주먹을 연달아 꽂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얼굴을 얻어맞은 조은우가 곧바로 최치곤의 턱을 제대로 올려쳤다.
쩌걱. 콰당!
고개가 젖혀진 최치곤이 문에 부딪히며 휘청이는 순간에 강성태는 놈의 눈과 귀를 뒤에서 잡아챘다.
홱!
그리고는 뒤로 돌아온 조은우의 눈에 힘껏 주먹을 날렸다.
쩌어어억!
머리부터 목, 몸통까지 통으로 빠진 조은우는 확실히 맷집이 남달랐다.
흐물대기는 했는데 쓰러지지는 않았다.
퍽! 퍽! 퍼억! 퍽! 퍽!
강성태는 뾰족하게 세운 엄지로 조태완의 턱 아래의 움푹한 곳과 옆구리, 겨드랑이를 연달아 찍었다.
“끄윽!”
몸이 기우는 조은우의 머리칼을 붙든 강성태는 오른손의 손날로 놈의 턱을 연달아 갈겼다.
콰작! 콰작! 콰작! 콰작! 콰작!
어느 틈에 흘러나온 피가 김종수와 정영권 앞으로 튀었고, 그와 동시에 머리칼을 붙들린 조은우의 무릎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욕심을 채우자고 마약을 돌리는 놈이 누굴 때려!
콰작! 콰작! 콰작! 콰작!
수백 명, 수천 명이 좀비처럼 마약에 물들어도 너 하나 잘 처먹고 살면 된다는 놈이 최치곤을 때려?
콰작! 콰작! 콰작!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조은우의 커다란 몸뚱이가 강성태의 손에 붙들린 머리칼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콰작! 콰작!
너 같은 걸 죽일 줄 몰라서 이런 줄 알아?
광룡을 상대할 때 봐.
“형님!”
연달아 조은우를 두들기는 강성태를 누군가 뒤에서 안았다. 그리고는 익숙한 음성으로 불렀다.
“됐습니다,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조은우의 머리칼을 붙든 상태에서 강성태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최치곤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 옆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는 이병렬도 보였다.
“형님!”
최치곤이 강성태를 간절하게 불렀다.
최치곤의 눈을 향해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미안하다, 치곤아.’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지금은 참자. 응?’
최치곤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놔.”
“예, 형님.”
최치곤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런 상황이 징그럽도록 싫었다. 그렇더라도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병렬, 김진용, 서달수가 죽고, 최치곤도 무사하기 어렵다.
최치곤이 뒤로 물러난 뒤에 강성태는 고개를 돌렸다.
이미 축 늘어진 조은우의 머리가 강성태의 손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강성태는 붙들고 있던 왼손을 놓았다.
털썩.
강성태의 발 앞에 엎어진 조은우의 머리와 왼쪽이 피로 흥건했다.
“이것들 안으로 넣어. 김종수, 너는 이놈 전화기 찾아서 통화기록 확인하고.”
“예, 형님.”
김종수가 재킷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정영권과 박장수가 조은우의 팔을 하나씩 잡고는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사이 김진용과 최치곤은 함께 온 두 놈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손 좀 닦아.”
믹스커피가 있는 곳에서 물티슈를 뽑은 이병렬이 강성태에게 내밀었다.
강성태는 오른손에 흥건하게 묻은 피를 물수건에 닦았다.
“그런 모습이 치곤이를 더 위험하게 할 수 있어.”
피를 닦던 강성태는 시선만 들었다.
“우리 보스가 가장 아파 하는 부분이 최치곤이란 게 알려지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강성태는 픽 웃었다.
“병렬이 네가 당해도 마찬가지고, 진용이, 달수, 봉진이, 모두 같아. 그렇게 따지면 나는 약점이 진짜 많은 거지. 그러니까 당하지 마라. 부탁이다.”
내내 무거운 눈으로 듣고 있던 이병렬이 마지막에 건넨 ‘부탁이다.’란 말에 기가 막힌 얼굴로 웃었다.
“찾았습니다, 형님. 조은우도 20분쯤 전에 도진이 형님과 통화했었습니다, 형님.”
대화를 뚝 자르는 것처럼 김종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대기실로 나왔다.
“병원에 있는 태완이 형님이 졸라 불쌍하네, 진짜.”
이병렬이 혼잣말처럼 빈정댈 때였다.
철컥.
문이 열리고 이병렬과 체형이 비슷한 덩치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강성태는 아직 피 묻은 물티슈를 들고 있었고, 바닥 역시 피가 번져 있었다.
안을 빠르게 살핀 놈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악!
문 쪽에 있던 이병렬이 놈의 멱살을 잡아챘다.
안으로 딸려오던 놈이 문틀을 붙들고 버티는 사이 뒤에 있던 세 놈이 회칼을 꺼내 들었다.
이대로 두면 이병렬의 팔이 잘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대뜸 앞으로 움직인 강성태는 문틀을 잡고 버티는 놈의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뾰족하게 세운 엄지로 세차게 찍었다.
“크흑!”
팔의 힘이 빠진 놈이 쭉 딸려오자 밖에 있던 세 놈은 회칼만 위협적으로 휘두를 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퍽! 퍼억! 퍽!
안으로 끌고 들어온 놈을 이병렬이 두들겨 쓰러트리자,
“야, 이 씨발 새끼야!”
복도에 있던 세 놈이 회칼을 번득이며 움찔거렸다.
저 셋이 튀면 내내 고생한 일이 물거품이 된다.
강성태는 회칼을 든 셋을 향해 걸었다.
세 놈이 다시 회칼을 허공에 휘저을 때였다.
“뭐야, 이 새끼들아! 칼 안 내려놔?”
강성태의 뒤에서 터진 거친 욕이 세 놈을 향해 달려갔다.
“변웅진이랑 조은우가 문도진하고 통화한 게 들통 나서 정리하는 건데 회칼을 들어? 태완이 형님이 누구한테 당했는지 몰라서 이래?”
강성태는 의외라는 생각으로 정영권을 돌아보았다.
변웅진, 조은우에게는 눌리지만, 그 아래에 있는 덩치들을 상대하는 정영권은 제법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모습 때문에 조태완이 마지막에 불렀나 싶기도 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강성태에게 고개 숙인 정영권은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다. 올라와.”
회칼을 든 세 놈이 ‘어어?’ 하는 사이에 통화를 마친 정영권이 아예 강성태의 앞으로 움직였다.
“이 씨발놈들이? 칼 안 내려?”
“형님?”
“태완이 형님이 조직을 맡긴 강성태 형님이시다. 태완이 형님 구해서 병원까지 모셨고, 지금도 지켜주는 분인데 그래도 해보겠다는 거냐?”
정영권이 포스를 쫙쫙 뿜어낼 때였다.
거친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우르르 덩치들이 달려왔다.
“칼 내려놔.”
분위기를 탄 정영권이 나직하게 경고하자 세 놈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회칼을 앞으로 던졌다.
강성태의 앞에 선 정영권이 몰려온 놈들을 쭉 돌아보았다.
“변웅진, 조은우, 김정훈이 신호남파 도진이 형님과 연락해서 조직 삼키려 했었다.”
김정훈은 아직 확인 안 했는데?
차마 끼어들기 어려워서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우리가 조직을 바로 세우고 태완이 형님 나오실 때까지 클럽을 관리한다.”
이 도라이가?
하마터면 강성태는 정영권의 뒤통수를 갈길 뻔했다.
“인사드려라. 태완이 형님이 조직 맡기신 강성태 형님이시다.”
정적 속에서 덩치들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 숙였다.
“이 새끼들 데려가서 스마트폰 뺏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예, 형님.”
우르르 왔던 덩치들이 세 놈을 데리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영권은 아직 위엄이 그대로 남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놈은 아직 직전의 분위기를 떨치지 못한 모양으로 강성태를 향해서까지 무게를 잡았다.
“문 닫아.”
“예, 형님.”
그러나 강성태의 지시에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얌전히 문을 닫았다.
어쩐지 남자 김선영을 보는 듯한 갑갑함이 밀려왔으나 강성태는 내색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김정훈입니다, 형님.”
안에 있던 김종수가 바닥에 꿇어앉은 놈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팔을 뒤로 묶인 채 바닥에 꿇어앉은 김정훈은 흘러나온 코피로 입술과 입가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변웅진과 조은우를 보아서인지 놈은 대가 꺾인 눈치였다.
“전화기 확인해 봐.”
이병렬의 눈짓을 받은 김진용이 의자를 가져와 김정훈의 앞에 놓았다.
이래야 한다면 해준다.
강성태는 김정훈의 앞에 앉았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김정훈의 주머니에서 김종수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것도 지문 인식입니다, 형님.”
어쩌라고?
엄지라도 잘라줘?
말하기도 귀찮아 강성태가 돌아보자 김종수가 뒤로 돌아가 묶여 있는 김정훈의 엄지에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잠시 뒤였다.
“정훈이는 15분 전에 통화했었습니다, 형님.”
김종수의 말이 떨어지자 김정훈의 고개가 좀 더 떨어졌다.
어디나 이렇다.
관리를 맡은 놈들이 돈맛을 보면 어떡해서든 소유권을 쥐려 버둥댄다. 처음엔 정직했던 놈들도 돈의 유혹에 빠지면 한 뭉치, 두 뭉치 빼돌리고, 그게 문제가 돼서 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뺏긴다고 생각한다.
“클럽을 맡은 놈이 셋이나 있는데 한 놈도 안 불러서 이상하다 싶었다. 조태완도 변웅진, 조은우, 김정훈, 너희 세 놈이 등에 칼 꽂을지 모른다고 느껴서 그랬던 거겠지?”
김정훈은 답이 없었다.
조태완이 쓰러진 마당에 클럽을 통으로 먹을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길 놈이 깡패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정영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영권. 이런 놈들을 태완이파는 어떻게 처리했어?”
“동팔이가 공장이나 부두에 데려가서 작업했습니다, 형님.”
대강 짐작하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그랬던 모양인지 김정훈이 고개를 들어 김종수와 정영권을 애처롭게 보았다.
그 직후였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김종수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