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7화
이렇게 쉽게 책상에 올라설 거라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변웅진이 왼손에 붙든 상패를 급하게 던졌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던진 상패였다.
더구나 워낙 가까운 거리였다.
책상 앞으로 내달린 강성태는 왼발을 움찔했다.
휘익!
놀란 변웅진이 반사적으로 회칼을 휘두르는 순간, 강성태는 몸을 비트는 동작과 함께 오른발을 거세게 뻗었다.
콰작!
변웅진의 왼쪽 볼을 발등으로 다부지게 걷어찬 강성태는 그대로 책상 너머로 뛰어내렸다.
콰등! 콰드등!
책상 뒤편 유리에 부딪힌 변웅진이 창가에 세워둔 작은 화분들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강성태는 몸을 세우려는 변웅진의 턱을 다시 발등으로 걷어찼다.
콰작!
목이 부러질 것처럼 젖혀졌던 변웅진이 털썩 쓰러졌고, 이어 기절한 모양으로 고개가 툭 떨어졌다.
의자에 얻어맞았던 오른쪽 눈을 감싼 김종수와 밖에 있던 놈들을 해결한 이병렬이 정영권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강성태는 고개를 모로 틀고 엎어져 있는 변웅진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하나만 알아둬라. 너는 반드시 뒈진다.”
트와일라잇의 입구에서 이 인간이 던졌던 경고를 분명하게 기억한다.
“너 이 새끼, 세상이 만만한가 본데…….”
그 뒤에 했던 말도 잊지 않았고.
강성태는 상체를 세워 발 앞에 둔 변웅진의 머리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놈의 왼팔을 반대편 옆구리에 끼우듯 휘감았다.
김종수와 정영권이 놀란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깡패들끼리 싸울 수는 있다. 칼질할 수도 있고. 그런데 말이지.”
독한 눈을 한 강성태는 기절한 변웅진을 대신하는 듯 김종수와 정영권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정도라는 게 있거든. 클럽에 놀러 온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죄가 없어.”
이게 무슨 소리야?
김종수와 정영권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이건 마약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을 죽인 데 대한 최소한의 벌이다.”
강성태는 변웅진의 머리를 아래로 누른 상태에서 휘감고 있던 그의 왼팔을 위로 힘껏 들었다.
뚜둑.
어깨뼈가 빠질 때, 고통이 컸는지 변웅진의 몸이 꿈틀했다.
번거롭지만 사람은 팔이 두 개였고, 강성태도 이 정도로 끝낼 마음이 없었다.
강성태는 변웅진의 머리를 왼쪽 옆구리에 끼우고 오른팔을 다시 휘감았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휘감은 오른쪽 팔을 위로 세차게 들었다.
뚜두둑.
어깨뼈 두 개를 모두 뺀 강성태는 변웅진의 오른손을 뒤틀어 손목과 손가락 네 개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설마?
김종수와 정영권의 눈이 둥그렇게 변할 때였다.
짜가락.
강성태는 엄지를 제외한 변웅진의 손가락 네 개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끄으-.”
기절에서 깨어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깨어나기 무섭게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을 비트는 변웅진을 밀쳐낸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세웠다.
“밖은?”
“진용이가 올라와서 묶고 있다.”
이병렬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다 묶었습니다, 형님.”
뒤늦게 올라온 김진용이 박장수와 함께 방으로 들어와 결과를 알려주었다.
“끄으으.”
강성태의 옆에 있던 변웅진이 발로 바닥을 밀치며 엉덩이 걸음으로 유리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김종수. 거기 떨어진 스마트폰 주워서 번호 확인해 봐.”
“예? 형님?”
“변웅진이 문도진과 통화한 기록 있는지 보라고.”
“예, 형님.”
어쩐지 조금은 멍청해진 얼굴로 김종수가 테이블 아래로 밀려난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지문 인식입니다, 형님.”
“내 지문을 달라는 건 아닐 거 아냐?”
“예? 형님?”
이런 인간이 이름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라니.
강성태가 고갯짓으로 변웅진을 가리키자 아차 하는 얼굴로 김종수가 몸을 돌렸다.
“씨발! 이러고 무사할 줄 알아!”
그러나 변웅진의 욕이 터져 나오면서 움찔한 그는 스마트폰을 내밀지 못했다.
“아직도 독기가 남았다면 인정해 줘야지.”
이건 또 뭐라는 거야?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시선들 앞에서 움직인 강성태는 몸을 숙여 변웅진의 오른팔을 붙들었다.
“이 씨발새끼야!”
“다음에는 내 앞에서 욕 안 하는 게 좋아.”
팔을 쭉 당긴 강성태는 팔꿈치가 위로 오게 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오른발을 높게 들었다.
“뭐야, 이 새끼…….”
콰자자작!
“끄아아! 끄악! 끄아아-!”
“전화기 가져와.”
넋이 나간 얼굴로 김종수가 다가와 강성태가 내민 엄지를 스마트폰에 붙였다.
이건 이제 필요 없으니까.
강성태는 툭 변웅진의 오른팔을 놓았다.
“끄으. 끄으으.”
비명과 울음이 뒤섞이며 나왔고, 실제로 변웅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있습니다. 형님. 도진이 형님 전화번호입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10분 전입니다, 형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김종수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투로 분개한 음성이었다.
강성태는 창 아래 벽에 기댄 변웅진의 앞으로 자세를 낮췄다.
“조태완이 저 모양이 됐는데도 문도진하고 통화할 마음이 생겼냐?”
강성태의 질문이 건너간 직후였다.
“퉤!”
붉게 물든 눈을 일그러트린 변웅진이 침을 뱉었다.
뭐, 깡패니까 이런 강단쯤 이해한다.
분을 참지 못하는 독기도 인정하고.
강성태는 볼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천천히 닦았다. 그런 뒤에 픽 웃었다.
강성태가 변웅진의 왼팔로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하지 마! 안 돼! 하지 말라고!”
애원에 가까운 변웅진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매달릴 거면 침을 뱉지 말든가. 조금 전에 대차게 나와놓고 뭐 이리 비굴해?”
강성태가 팔을 뻗어 왼팔을 붙들자 변웅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으으. 흐으.”
조금 전에 침을 뱉던 깡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놈은 구슬픈 울음마저 쏟아냈다.
“네가 약을 먹여서 방에 밀어 넣은 여자들이 그렇게 매달렸을 거거든. 그러지 말라고. 그날 내가 구해낸 여자아이도 비슷했을 거고. 그렇지?”
변웅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태를 거스르지 않으려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으로 보였다.
“너도 봐준 적 없잖아?”
“흐으. 흐으으.”
몸을 세운 강성태는 변웅진의 왼팔을 잡아서 쭉 당겼다.
“하지 마! 씨발! 하지 말라고!”
팔을 비틀자 고함이 터졌는데 강성태가 오른발을 위로 들 때는 변웅진과 김종수 모두 고개를 모로 돌렸다.
콰자작!
팔이 기괴하게 꺾이는 것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던 변웅진의 고개가 툭 떨어지며 옆으로 스스륵 무너져 내렸다.
몸을 일으킨 강성태는 창과 변웅진을 등지는 자세로 돌아섰다.
‘다음 클럽으로 이동할 거라면서? 여기를 어떻게 수습하고 떠나지?’
이병렬의 눈이 강성태에게 답을 구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돌아다닐 생각 없었다.
말이 새나가지 않게 하려고 돌린 거지.
“정영권. 숙소에 있다는 인원 불러서 이 앞에 대기시켜. 근처로 신호남파 놈들이 올지 모르니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고.”
“예, 형님.”
정영권은 순순히 강성태의 뜻을 따랐다.
스마트폰을 꺼낸 놈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다. 트와일라잇 사무실 뒤편 골목 알지? 그래. 거기에 대기해. 전화하면 바로 올라오게. 내 전화 아니면 받지 말고, 조용하게 움직여.”
통화를 마친 정영권이 고개를 짧게 숙였다.
“김종수. 남은 두 놈에게 차례로 전화해. 당분간 클럽을 각자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의논하자면 둘 다 올 거다.”
“그렇지 않아도 변웅진이 그런 의견을 냈었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종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뒤졌다.
일단 정리됐다.
이병렬이 눈짓을 전했고, 의미를 알아차린 모양으로 김진용이 오른쪽 탁자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놓아주었다.
눈치가 있는 박장수가 이병렬과 김종수, 정영권에게 의자를 가져다줄 때였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형님?”
“그런 게 있어?”
“밖에 믹스 커피가 있습니다, 형님.”
강성태에게 질문을 던졌던 김진용이 대기실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최치곤이 혼자 밖에 있던 네 명을 지키고 있었다.
저거 빌라에 가면 엄청 투덜댈 텐데…….
강성태가 대기실을 보며 입맛을 다실 때였다.
“여보세요? 나다.”
김종수가 통화를 시작했다.
**
문도진은 날 때부터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하는 동전 노름판에서도 돈을 잃을라치면 주먹을 휘둘렀고, 이후에는 소위 ‘삥’을 뜯는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술도, 여자도 그다지 관심 없었다.
그를 흥분시키는 건 오로지 돈, 돈밖에 없었다.
조태완이 조폭 선배들 챙기고, 돈 뿌리며 동생들에게 인심 얻는 걸 누구보다 증오했던 인간이 바로 문도진이었다.
조태완의 아래로 동생들이 관리하는 숙소에 소갈비가 썩어나간다는 말은 들었다.
그게 뭐?
문도진은 동생들 숙소에 돼지 다리 살을 가득 넣어주는 거로 때웠고, 명절에 집에 갈 적이면 고개를 모로 틀며 버텼다.
클럽에서 나오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조태완만큼 잘 아는 사람이 문도진이라면 말 다했다.
동남아 갑부들에게서 들어오는 돈을 발판으로 문도진은 해외로 진출할 야욕을 품고 있었다.
중국의 거부들이 몰려들 카지노 하나 제대로 차린다.
자꾸만 피어나는 욕심을 누르기 위해 문도진은 볼을 쓸어내리며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돈 말고 문도진을 흥분시키는 두 번째는 도박이었다.
경마와 포커는 그에게 있어 삶에 집중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꿈이 현실로 코앞에 닿듯 어떻게 죽이나 고민했던 조태완이 생사를 헤맨다.
한 몫 떼어줄 것을 염려했던 김동팔은 알아서 뒈졌고.
얍삽한 김종수, 대가 없는 정영권, 욕심만 남은 변웅진, 조은우, 김정훈, 모두 문도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강성태만 해결하고 나면 남은 놈들은 하나씩, 순서대로 두들겨 손에 넣으면 끝난다.
그런데 말이지.
강성태란 놈이 정말 새벽에 나타날까?
강성태의 눈빛을 떠올린 문도진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조은우입니다, 형님. 지금 막 김종수 형님이 전화하셔서 웅진이 사무실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형님.
“뭐라 그러는데?”
- 그게 말입니다, 형님. 우선 클럽을 각자 맡아서 운영하잡니다. 대신 이익금 중 일정액을 종수 형님과 영권이가 받고, 분쟁이 일어나면 조율하겠답니다, 형님.
문도진은 소리 내지 않은 채 웃었다.
이 양아치 새끼가 누구 돈에 손을 대?
- 조금 전에 정훈이랑 통화했는데 형님, 일단 모여서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형님.
“가 봐. 그리고 강성태란 놈이 오기로 한 시간 정해지면 조용하게 따로 알려.”
- 예, 형님. 그런데…, 형님.
“뭐?”
어딘가 뒤가 매달린 말투에 문도진은 귀를 쫑긋했다.
- 강성태가 온다고 해도 형님이 들어오시기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형님?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 트와일라잇에서 만나기로 해도 되겠습니까, 형님?
이 새끼 봐라?
빙빙 돌리는 질문의 끝에서 조은우는 문도진과 변웅진이 연락하는지를 더듬고 있었다.
“나는 믿고 따르는 동생들만 챙긴다. 의심스러우면 알아서 움직여.”
- 그게 아니고, 형님. 동생들 아예 불러놓으려고 여쭤본 겁니다, 형님. 언짢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형님.
“새벽에 보자.”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문도진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그런 뒤에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다. 병원에서 나온 놈 없냐?”
- 아까 종수 형님과 영권이 형님 차 말고는 아무도 나간 적 없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 여기에서는 확인 안 되는데 말입니다, 형님. 강성태가 타고 들어간 차가 아직 주차장에 있고, 대기실에 네 명 정도 있는 건 앞을 지나가면서 확인했습니다, 형님. 그리고 서달수가 왔다 갔다 합니다, 형님.
“알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알려.”
- 예, 형님.
병원을 확인한 문도진은 창밖을 보며 히죽 웃었다.
당분간 변웅진과 조은우, 김정훈이 클럽을 운영하게 하면서 수익금을 확인하고, 동남아 거부들과 안면을 튼다. 그렇게 조태완이 투자받은 돈과 숨겨둔 돈들을 찾아내면 세 놈을 차례대로 정리할 생각이었다.
“강성태…….”
그러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강성태를 죽여야 했다.
강성태를 떠올린 것치고는 처음으로 문도진은 히죽 웃었다.
듣고 보니 그렇다.
변웅진과 조은우, 김정훈의 숙소 놈들만 해도 대략 백 명에 가깝다. 반대로 영등포 조직 대가리 하는 것 말고 강성태가 지닌 게 없었다.
아우라 호텔이나 트와일라잇, 세븐 우드 호텔처럼 지켜보는 손님들도 없을 테고.
오기만 한다면 걱정할 게 없는데?
“흐흐흐…하하하-!”
문도진은 지난 삼 개월 만에 처음으로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