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6화
제3장. 너도 봐준 적 없잖아. 그렇지?
주차장으로 나온 강성태는 정영권이 데리고 온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승용차 두 대 앞에 서 있는 인원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이리 와서 인사드려.”
정영권은 제법 위엄 담은 눈으로 덩치들을 불렀다.
강성태에게 인사하는 게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관리하는 숙소의 덩치들이랍시고 반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어서 이병렬, 김진용의 순서대로 소개했고, 서달수와 최치곤을 김진용이 인사시켰다.
하여간 마주했다 하면 나누는 지루하고 복잡한 인사로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중에서 제일 위가 누구야?”
강성태가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정영권이 시선을 던진 곳에서 노타이 재킷 차림의 덩치가 고개를 숙이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박장수입니다, 형님.”
“네가 데려온 애들 전화기 모두 걷어와.”
“예? 형님?”
“함께 온 애들 전화기 모두 걷어오라고.”
“예, 형님.”
정영권을 살폈던 박장수가 일단 따른다는 얼굴로 스마트폰 네 개를 걷었고, 거기에 본인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를 얹었다.
“조태완이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사람이 여기 정영권과 너희들이었다. 너희가 동팔이한테 밀려서 돌아가는 바람에 조태완이 저렇게 있는 거고.”
밀려났던 상황이 떠올랐는지 스마트폰을 든 박장수의 볼이 씰룩했다.
“이제부터 조직을 바로잡으려는데 말이 새나갈까 봐 스마트폰을 걷었다. 어떻게 할래? 함께할래, 아니면 그냥 여기 있을래?”
확인처럼 정영권을 보았던 박장수가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가져왔다. 눈빛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상 강성태와 함께 나서는 건 막막한 눈치였다.
이런 망설임 때문에 김동팔의 숙소 덩치들에게 밀려났을 거다.
강성태와 최치곤을 따르던 조성만이, 이동재에게 머리를 굽혔던 이철룡이 그랬던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박장수의 눈을 들여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달수에게 전화기 맡기고 여기 있어.”
“가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내린 결정의 끝을 박장수가 붙들었다.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나섰다면 차라리 얌전히 빠져.”
“데려가 주십시오, 형님. 영권이 형님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던진 시선을 박장수는 피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던 눈빛에 독기가 서리는 걸 본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강단이면 데려갈 만하겠다.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정영권 숙소의 덩치를 한 명쯤 데려가는 게 좋을 테고.
“네 거만 빼고 나머지 스마트폰 맡겨.”
“예, 형님.”
고개를 숙인 박장수가 서달수에게 스마트폰 네 개를 건네주었다.
“나랑 종수, 병렬이, 영권이가 한 차, 너하고 진용이, 치곤이가 한 차, 그렇게 움직인다. 누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왔던 그대로 병원을 나선 거다. 알았어?”
“예? 형님?”
“혹시 태완이파 다른 놈이 전화하면 병원에 도착해서 20분쯤 있다가 왔던 인원 그대로 병원을 나섰다고 답하라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듣지 못했다. 여기 남는 네 명도 똑같이 답하면 된다.”
“예, 형님.”
답을 하기는 했으나 박장수는 아직 강성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출발하기 전에 강성태는 주변의 건물을 돌아보았다.
병원 바로 옆 건물은 벽이 붙어 있어서 마당을 내려다볼 수 없었다. 건너편의 건물은 오피스 빌딩이어서 입주사가 문을 열어줄 리도 없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가자.”
강성태가 지시하자 박장수가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달수야, 알지?”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형님.”
차에 타기 전에 이병렬이 부르자 서달수가 고개를 숙이며 다부지게 답했다.
최치곤이 운전석에 앉고, 김진용과 박장수가 뒤에 타면서 한 대, 다음으로 정영권이 운전석, 조수석에 이병렬, 뒤에 강성태와 김종수가 앉았다.
최치곤이 운전하는 차가 앞서 나가자 그 뒤를 정영권이 뒤따랐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다.
병원의 입구를 영등포 덩치들이 모조리 막아서 안을 볼 수는 없겠지만, 어딘가에 차를 세운 놈들이 나가는 차를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영권. 변웅진 두들기고 나서 부를 만한 인원 있어?”
“숙소 동생들 부르겠습니다, 형님.”
“몇 명이나 돼?”
“스물하고 병원에 넷 남았으니까…….”
“대충 말해.”
“스물여섯 명쯤 됩니다, 형님.”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답을 들은 강성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종수. 트와일라잇 관리하는 놈 말야.”
“변웅진입니다, 형님.”
“나하고 새벽에 만나기로 한 것 때문에 의논할 게 있어서 간다고 말한 뒤에 끊어.”
“예, 형님.”
까불지 마라.
경고처럼 조수석에서 이병렬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시선을 피하는 듯 고개를 돌린 김종수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반항은 포기한 눈치였다.
이렇게 된 거, 강성태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김종수의 눈가에 묻어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른 김종수는 신호음을 듣는 양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숨을 골랐다.
“나다. 지금 막 병원에서 나왔는데 새벽에 만나기로 했다.”
- 강성태가 말입니까, 형님?
반가움이 가득한 변웅진의 음성이 거칠게 터져 나와서 강성태와 이병렬이 충분히 들을 정도였다.
“남은 일 의논하러 갈 건데 지금 어디야?”
김종수가 스마트폰의 볼륨을 줄인 모양으로 변웅진의 답은 들리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15분이면 될 거다. 그래.”
말을 건넨 김종수가 종료버튼을 눌렀다.
“사무실에서 기다리겠답니다, 형님.”
“이제 문도진에게도 전화해. 그래야 그 인간이 의심하지 않지.”
“예? 형님?”
“네가 변웅진한테 전화한 거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그건 직접 차를 운전한 정영권도 마찬가지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조직 깔끔하게 정리하고 문도진을 잡지.”
“예, 형님.”
비장한 눈매로 입술을 굳게 다문 김종수가 통화목록을 뒤졌다.
강성태와 이병렬, 정영권이 듣는 앞에서 통화하는 것이 켕기는 눈치였다.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킨 김종수가 마침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통화로 바꿔.”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강성태가 매서운 눈으로 내놓은 요구였다. 처참하게 표정을 구긴 김종수가 순순히 스피커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걸걸한 문도진의 대꾸가 조용한 차 안에 울리기 무섭게 강성태는 얼른 대꾸하라는 의미로 눈짓을 던졌다.
“김종수입니다, 형님. 지금 막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 어떻게 됐어?
“내일 새벽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형님.”
- 양아치 새끼가 욕심은 났나 보네. 잘했다. 이병렬이 그 새끼도 오기로 했냐?
강성태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
- 다른 놈들은?
“둘만 오기로 했습니다, 형님.”
- 둘만 온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강성태를 본 김종수가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예, 형님.”
- 이런 개새끼가!
욕을 뱉은 문도진이 기가 막힌다는 느낌의 웃음을 흘려냈다.
- 간이 아예 배 밖으로 나왔네. 배때기가 갈라지면 그때는 후회하겠지. 안 그래?
“예, 형님.”
강성태의 눈치를 살핀 김종수가 어렵게 답을 내놓았다.
- 그래서? 어디에서 모일 건지는 정했냐?
“지금 웅진이한테 가서 정하려고 합니다, 형님.”
- 이렇게 돼서 말한다만 웅진이도 내가 이미 통화했다. 그러니까 마음 굳게 먹어. 알았어?
“예, 형님.”
김종수가 답을 건넨 직후에 전화가 끊기며 액정에 올라온 번호가 깜박였다.
“태완이 형님이 저렇게 당했는데……. 이 씨발 새끼들.”
통화가 끝난 직후에 이병렬이 거친 음성으로 욕을 뱉었다.
김종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고, 정영권은 변웅진까지 문도진과 통화했던 거야, 하는 눈으로 룸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스마트폰 바지 주머니에 넣어.”
“예, 형님.”
김종수를 지켜보던 강성태는 스마트폰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보았다.
광룡을 바로 부술 생각으로 지용호를 미끼로 던졌었다.
바라기는 지용호가 설치면서 광룡이 나서는 거였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이더니 다시 트와일라잇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김동팔이 죽었다. 조태완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고.
예상했던 일 중 가장 나쁜 결과였는데 상관없었다.
전면전이 아니어서 수월한 면도 있었다.
강성태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화려한 강남을 바라보며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마약이 깊게 파고들면 저 빌딩 구석에서 약을 파는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의 거래상을 쉽게 보게 된다. 그놈들을 아무리 잡아도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위는 건드리지 못한다.
검사, 경찰, 재벌, 국회의원, 언론인까지 연결돼 약과 돈을 먹기 시작하면 근절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 했다.
정말 무서운 건 군대가 마약에 물들기 시작하는 때였다.
강성태는 시선을 들어 빌딩 위로 펼쳐진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조명에 밀려난 별들을 대신해 손톱만큼 남은 달이 외롭게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강성태는 외로운 달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
변웅진은 스마트폰에서 건너오는 말에 집중했다.
- 강성태랑 이병렬이 들어가면 입구에 있던 애들을 치워. 그리고 우리 애들이 덮칠 때 봐서 적당히 빠져나가.
“은우랑 정훈이는 어떻게 합니까, 형님?”
- 아무렴 너 하나 믿고 일 벌였겠냐.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라니까 염려하지 마라.
“예, 형님.”
- 종수랑 영권이 오면 내가 말한 대로 전하고 이야기 끝나는 대로 바로 전화해.
“알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를 정리할 때까지는 문도진의 지시를 받는다.
그 뒤에는…….
변웅진은 번득이는 눈으로 이를 씹었다.
- 종수가 도착할 때 됐다.
“예, 형님.”
변웅진이 답을 하기 무섭게 전화가 끊겼다.
“씨발 새끼가 아예 조직 형님 행세를 하네!”
분통을 터트린 변웅진은 김종수를 떠올리며 문으로 움직였다.
걸어놓았던 문을 연 그는 대기실로 고개를 내밀었다.
밖을 지키던 네 놈이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숙였다.
“종수 형님 오신다니까 그렇게 알아.”
“예, 형님.”
문을 닫은 변웅진은 소파로 향했다.
“징그러운 새끼.”
트와일라잇의 입구에서 홀로 서 있던 강성태를 떠올린 그는 혼잣말로 욕을 뱉었다.
클럽 2층에서 고영주란 계집애를 빼낸 것으로도 모자라 아래층에 있던 여자아이까지 챙겼다. 가드들과 숙소 덩치들을 모두 상대하면서 말이다.
경찰도 있었는데 말이다.
변웅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실력도 그렇지만, 그런 깡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그나저나 문도진이 정말 강성태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변웅진은 클럽 앞에서 피투성이로 서 있던 강성태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긴, 클럽에서 그렇게 깨지고 며칠 되지 않은 데다, 조태완을 구하면서 칼까지 맞았다니까 설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정상은 아닌 게 분명했다.
거기에 강성태는 그동안 사람들 눈이 많은 곳에서만 날뛰었다. 아우라 호텔도 그렇지만, 클럽에서도 손님들의 눈을 염려해 연장을 쓰지 못한 게 강성태에게 졸라 유리한 점이었다.
맥주병으로 머리를 얻어맞았을 때 말이다.
손님들을 의식하지 않고 회칼로 목덜미를 찍었다면 강성태는 이미 화장터에서 한 줌 재로 변해 흔적도 남지 않았을 거다.
“개새끼. 손님도 없는 시간에 달랑 둘이 온다는 거지?”
변웅진이 야비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뭐야?”
밖을 지키는 덩치의 놀란 소리가 사무실로 불쑥 달려들었다.
놀란 변웅진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어딜 들어가!”
콰당! 콰다당! 퍼억! 퍽! 퍼억!
고함과 함께 덩치들이 문에 처박히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
몸을 세운 덩치 넷이 김종수에게 인사하는 순간이었다.
뒤따라 들어간 강성태를 본 덩치들이 움찔했다.
“뭐야?”
강성태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정영권과 이병렬이 들어서며 덩치들의 시선이 돌아갈 때 강성태는 안쪽에 있는 문으로 움직였다.
“어딜 들어가!”
쩌어억! 쩌어어억!
강성태는 달려드는 두 놈의 눈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당! 콰다당!
두 놈이 문에 부딪히며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퍼억! 퍽! 퍼억!
이병렬이 남은 두 놈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망설일 이유 따위 없었다.
강성태는 몸을 옆으로 비킨 상태에서 손을 뻗어 문을 홱 열어젖혔다.
휘익! 콰자작!
이럴 거 같았다.
탁자용 의자가 날아와 문의 정면에 서 있던 김종수의 얼굴을 덮쳤다.
주저앉는 김종수의 앞에서 강성태는 곧장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섰다.
왼편으로 작은 회의실, 정면에 유리, 그 앞에 책상, 소파, 오른쪽에 회의용 둥근 탁자가 있는 구조였다.
책상으로 달려갔던 변웅진이 숙였던 몸을 세웠다.
트와일라잇에서 마지막에 나타났던 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깔끔하게 차려입은 복장은 비슷했는데 차이라면 책상에서 몸을 일으키는 변웅진의 손에 회칼이 들려있었다.
강성태는 거침없이 변웅진에게 걸었다.
“이 씨바알!”
휙휙!
독기 가득한 눈빛을 한 변웅진이 회칼을 위협적으로 휘두르고는 왼손을 뻗어 책상에 있던 상패를 집어 들었다.
그 직후였다.
와락!
강성태는 대뜸 책상 위로 튀어 올랐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