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4화
제2장. 어디부터 하는 게 좋아?
김종수가 돌아가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응급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처음 한 시간을 차에서 기다렸던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병원 로비에 들어가 잔잔한 조명 아래 앉았다. 서 있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김진용부터 최치곤까지 잠시라도 편히 있으라는 배려였다.
로비의 의자에 앉은 강성태는 조태완과 문도진을 떠올렸다.
태완이파는 동남아시아 거부들에게서 투자받은 돈만 6백억에 매일 현금이 들어오는 클럽이 세 개였다.
시선을 내려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본 강성태는 입술만 움직여 웃었다.
조태완이 당했다는 사실을 문도진이 모를 수가 없었다.
김동팔과 손까지 잡았는데 태완이파를 강성태가 손에 쥐게 생겼으니 누구보다 배 아플 인간이 바로 문도진이었다. 그런데도 전화 한 통 없다는 건 뒤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린다는 의미였다.
새벽에 문도진이 오든, 송대길이 나타나든, 반드시 준비한 게 있다고 봐야 했다.
조태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정한다.
피비린내를 얼마나 진하게 풍길지 말이다.
강성태가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할 때였다.
차에 기대있던 김진용과 서달수가 몸을 세웠고, 최치곤이 로비를 향해 달려왔다.
“가보자.”
강성태와 이병렬은 달리듯 로비를 빠져나갔고, 달려오던 최치곤이 급히 방향을 틀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앞에 선 유헌우는 그 사이 몇 킬로그램은 살이 빠진 것처럼 퀭한 눈과 볼을 하고 강성태를 보았다. 수술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칼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봉합 수술은 끝났는데 쇼크가 두 번이나 있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해요. 사흘 정도가 고비일 겁니다. 그때까지 버티면 좋겠지만, 워낙 크게 다쳐서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부정적인 결과를 전한 유헌우가 주차장과 병원 앞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저렇게 계속 둘 겁니까?”
“병실로 옮기면 앞쪽만 지키겠습니다.”
“우리 병원은 인원이 많지 않아서 중환자실을 따로 운영할 수가 없어요. 사흘은 응급실에 있을 테니까 승용차 한 대에서 기다리면 모를까, 입구를 저렇게 막지는 맙시다.”
“알겠습니다.”
“이제 다른 분 치료합시다. 강성태 씨부터 들어오세요.”
지친 얼굴을 하고도 유헌우는 강성태와 김진용, 최치곤을 순서대로 돌아보았다.
“저희는 다른 곳에서 치료받으면 됩니다.”
힘들었을 유헌우를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말을 들은 유헌우는 세상 서운한 눈초리로 표정을 굳혔다.
“힘든 수술을 마치고 나왔더니 그나마 수월한 현찰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내겠다고요? 기껏 고생한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입니까?”
이병렬이 멍한 얼굴로 바라볼 만큼 유헌우는 강경했다.
“원장님을 위해 드린 말씀입니다. 바로 치료받을 테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렇죠. 그게 도리죠. 강성태 씨부터 들어오세요.”
다시 한 번 다짐한 유헌우가 응급실로 몸을 돌렸다.
‘저 사람 뭐야?’
멍한 얼굴을 한 이병렬이 몸을 돌린 유헌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한다고 해도 안다미의 일을 줄줄이 말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일단 치료받고 나올 테니까 그 뒤에 말하자.”
짧은 한마디를 건넨 강성태는 유헌우를 따라 응급실로 향했다.
**
김종수는 조태완 소유의 클럽, 트와일라잇의 옆 건물로 들어갔다. 클럽에도 물론 공간이 있지만, 소란스러운 소리 탓에 따로 만들어둔 사무실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정영권이 전에 없이 듬직하게 인사했고, 트와일라잇을 관리하는 변웅진이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는 어때?”
“저야 뭐 영권이 말대로 따르기로 했는데 와일드 문 은우랑 파이어 볼 정훈이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눈치입니다, 형님.”
김종수가 윗배였다. 그러나 생활을 접은 탓에 변웅진의 말투가 조금은 편했다.
“그 새끼들이 뭐라는데?”
“연락해봤는데 말입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의 경과를 보고 결정하잡니다.”
“태완이 형님이 계신 병원에 대가리도 안 내민 새끼들이 뭔 헛소리야?”
“저야 형님을 따르기로 했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강성태에게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있습니까, 형님?”
이럴 때는 김종수 대신 정영권이 강하게 치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정영권은 돌아가는 대로 따르겠다는 투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에이, 모자란 놈아.’
저런 놈을 조태완은 긴박한 순간에 왜 불렀을까?
하긴, 변웅진에게도 눌리는 놈이 감히 조태완에게 칼을 들이대지는 못했을 테니 최소한 뒤통수 맞을 일은 없겠다.
“형님. 그러지 마시고, 우리끼리 끌고 가시면 어떻습니까? 굳이 숙일 이유 없잖습니까? 태완이 형님이 클럽 지분을 넘긴 것도 아니고, 막말로 강성태가 뭔데 우리 태완이파를 삼킨답니까?”
“태완이 형님이 성태…를 부른 걸 보면 몰라?”
‘성태 형님’이라 부르려던 김종수는 멈칫한 뒤에 ‘형님’ 소리를 뺐다.
“만약 영권이가 먼저 밀고 올라갔으면 영권이가 보스 합니까? 그건 아니잖습니까?”
“야, 인마. 클럽이 그렇게 찢어지면 조율을 누가 해?”
“각자 맡아서 관리하고, 대신 일정 수입을 형님께 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분쟁이 일어나면 형님과 영권이가 중재해주고 말입니다.”
김종수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당장 듣기에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변웅진이 클럽 수입을 혼자 삼키면 김종수는 그걸 밀고 들어갈 능력이 없었다.
“막말로 호텔에서야 보는 눈이 있고, 태완이 형님이 인질로 잡히는 바람에 밀렸지, 제대로 붙었으면 강성태랑 이병렬은 무조건 죽었습니다. 그런데 뭐 아쉬워서 어린 애한테 고개를 숙인답니까?”
이건 또 듣고 보니 그렇다.
괜히 병원에 달려가서 기죽는 바람에 대뜸 형님이라고 고개 숙이기는 했는데 변웅진의 말을 들어보면 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쩐다?
혀로 볼 안쪽을 밀어가며 김종수가 고민할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전화 한 통 되는가?]
액정을 통해 진동만큼이나 짧은 문자를 확인한 김종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문도진이 김종수를 택했다.
이걸 변웅진에게 말해, 아니면 일단 통화를 해 봐?
문자를 내려다보던 김종수는 이를 지그시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오마.”
“예, 형님.”
엉거주춤 일어난 정영권과 변웅진을 두고 김종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창을 향해 서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김종수입니다, 형님.”
- 오랜만이네? 우리 작년 초엔가 보고 처음이지?
김동팔을 꼬드겨 조태완을 작업해 놓고도 문도진은 세상 태연한 음성이었다.
- 조 회장이 심하게 다쳤다더만?
“그렇지 않아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새벽에 모이기로 한 건 어떻게 할 셈이고?
어떤 새끼가 벌써 문도진과 연락하고 있었구나.
문도진의 질문을 들은 김종수는 창밖을 보며 숨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 동생도 그렇고, 다른 애들이 오해하는 모양인데 동팔이가 조언을 구해서 답을 줬다 뿐이지, 나는 암 것도 한 게 읎어.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듣소.
“예, 형님.”
- 막말로 조 회장이 저렇게 된 거, 알고 보믄 강성태란 놈이 설쳐서 그런 거 아니것어? 내가 오해도 풀고 조 회장 복수도 하고, 해서 도움을 쪼까 줄라고 하는디, 어뗘?
너무나 단박에 나온 제안이라 김종수는 답을 하지 못했다.
- 오해허지 말어. 인사는 물렸더라도 지금 조 회장 아래로 태완이파 식구 싹 털었을 때, 동생이 가장 주축이라 하는 말인 께. 그라고 말이지.
느물느물 말을 풀어놓던 문도진이 잠시 뜸을 들였다.
- 동생만 오케이 함사 클럽 애기들은 내가 알아서 다독일랑께 다른 염려는 허지 않아도 돼.
“흐음.”
클럽을 담당하는 숙소 세 곳이 이미 문도진과 손을 잡았다는 의미였다. 다르게는 혼자 버티다가 칼 맞을 수도 있다는 협박과도 같았고.
문도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둠에 잠겼던 강성태의 눈빛을 떠올라서 김종수는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형님.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알아서 해. 대신에 새벽 모임 전에 연락 주소.
말투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투리가 싹 빠진 요구를 끝으로 문도진은 통화를 끊었다.
**
응급실 안쪽에 있는 처치실이었다.
강성태의 상처를 살핀 유헌우는 능숙하게 두 곳을 꿰맸고, 붕대를 이용해 상처 부위를 감쌌다.
“성태 씨.”
라텍스 장갑을 벗어 이동용 선반에 올려놓은 유헌우가 강성태를 무거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런 치료와 사망 사고는 차원이 달라요. 자상이나 폭행 환자의 경우, 우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조태완 환자가 사망하면 당장 우리 병원과 내가 곤란해집니다.”
“죄송합니다.”
“병원을 찾아 떠돌다가 죽는 환자가 없었으면 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환자가 계속되면 나 역시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유헌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터라 강성태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짧게 숙였다.
그 직후였다.
“내가 강성태 씨를 바로 보고 있는 거 맞죠?”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 유헌우에게서 나왔다.
“이권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닌가 해서 묻는 겁니다. 그런 거라면…….”
“그런 건 아닙니다.”
불안한 표정의 유헌우에게 강성태는 확실하게 답을 건넸다.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마약을 막아보려다 일이 커졌습니다.”
혼자 힘으로 마약이 퍼지는 걸 완벽하게 막지는 못하더라도 번지는 속도만은 줄여보고 싶다. 그러는 동안, 좀 더 강력한 법과 처벌이 뒤따랐으면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조직 간의 전쟁에 뛰어든 마당에 영웅처럼 공치사를 떠는 꼴인 것 같아 강성태는 입을 다물었다.
강성태의 바라보던 유헌우가 이해한다는 투로 숨을 내쉬었다.
“오늘 바쁩니까?”
“새벽에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들으니까 또 다쳐서 오겠네요?”
강성태는 답을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까 싶어서 물은 겁니다. 그건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새벽에 다치면 꼭 나한테 옵시다.”
독특한 의사답게 엉뚱한 다짐을 끝으로 유헌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환자는 강성태 씨가 정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유헌우에게 인사한 강성태는 처치실을 나와 작은 응급실을 가로질렀다.
응급실 안쪽에 널따랗게 녹색 커튼이 쳐져 있어서 한눈에도 조태완이 그곳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살아나라, 조태완.
그래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린 유헌우 원장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가고, 앞으로 흐를 피가 줄어든다.
두텁게 펼쳐진 커튼을 돌아본 강성태가 응급실을 나서자 이병렬과 김진용, 서달수, 최치곤이 몸을 세우고 다가왔다.
김진용을 먼저 들어가라고 해봐야 서로 마음 불편할 일이어서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까 김종수 번호 있었지? 그거 좀 알려주고, 먼저 치료받고 나와. 의논은 그 뒤에 하자.”
강성태의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낸 이병렬이 번호를 알려준 뒤에 응급실을 향해 걸었다.
얼추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이병렬이 나오기 전에 밑밥을 깔아두는 게 좋으니까.
강성태는 문자를 펼쳐 글자들을 찍어 넣었다.
**
방에서 나온 김종수는 어색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공연히 눈을 부라렸다.
“무슨 전화길래 그러십니까, 형님?”
“그냥. 회사에 일이 있어서 그래.”
변웅진이 물어서 아무렇지 않게 답도 했다.
‘변웅진, 이 새끼.’
저렇게 모른 척 뻔뻔하게 굴다가 문도진이 오더 내리면 김종수의 등에 칼을 꽂는 건 아닐까?
클럽을 맡은 세 놈, 변웅진, 조은우, 김정훈이 문도진에게 기울었다면 괜히 강성태 편을 들던 김종수는 진짜 칼을 맞는 일이 생긴다.
쓴 입맛을 다신 김종수가 답답한 속을 한숨에 실어서 쏟아낼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이 시간에 무슨 문자가 들어와?
스마트폰을 펼쳐 액정을 들여다본 김종수는 눈가를 좁히며 글자에 집중했다.
[조태완 수술 끝났다. 사흘 정도 지켜봐야 한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새벽에 모이기로 한 거, 사흘 뒤로 미뤄. 조태완이 일어나면 그때 정리하자. 괜히 피 보는 것보다는 나도 조태완 끼고 들어가는 게 편하고. 대신 지금 반기를 드는 놈들만 조용하게 꼽아놔. 조태완이 일어나면 클럽 관리부터 모조리 새로 짤 테니까.]
김종수는 들어온 문자를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
변웅진과 정영권이 궁금한 얼굴로 김종수를 살피고 있었다.
“태완이 형님 수술 끝나셨는데 사흘이 고비라고 했단다.”
“아니? 그렇게 칼을 받으셨는데 살아나셨단 말입니까?”
놀라서 묻던 변웅진이 아차 한 뒤에 표정을 바꾸었다.
“워낙 반가운 소식이라 그렇습니다, 형님.”
“아무튼, 그래서 새벽에 모이기로 한 걸 사흘 뒤로 미루란다. 태완이 형님 일어나시면 함께 움직이는 게 편하다고.”
“태완이 형님이 일어나시면 조직이 강성태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겠지. 전에 이미 말이 있었던 데다 동팔이도 없지, 목숨 구해줬지, 지분이고 뭐고 태완이 형님이 강성태…를 밀어주지 않겠냐?”
김종수를 바라보는 변웅진의 눈이 묘하게 뒤틀렸다.
“씨발.”
“야, 인마!”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형님. 굴러온 돌이 박힐 돌을 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형님?”
불만을 털어놓은 변웅진이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클럽에 잠깐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조금 전 김종수가 나왔던 방을 향해 움직였다.
클럽에 전화하는데 자리를 피해?
저 새끼가 혹시?
김종수는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변웅진이 들어간 방을 노려보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