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1화
제1장.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복도를 향해 뛰어든 강성태는 공간을 가득 메운 덩치들을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
쩌어억!
주먹을 얻어맞은 덩치가 휘청일 때, 옆구리로 회칼이 번득이며 날아들었다.
휙!
강성태는 회칼이 들린 손목을 잡아챘다.
휘익! 콰자작!
그런 뒤에 당긴 놈의 얼굴에 왼손 팔꿈치를 세차게 찍어 넣었다.
“뭐 해, 이 새끼들아! 죽여!”
복도를 가득 울린 고함이었다.
휘익! 휙!
그 직후에 회칼이 연달아 달려들었다.
“이, 씨발!”
강성태가 몸을 비틀며 손목을 낚아챌 때 뒤편에서 이병렬의 욕이 터졌다.
뒤를 맡는다고 해도 겨우 반걸음 처진 위치였다.
강성태를 노리던 회칼이 바로 이병렬에게 꽂힐 수 있었다.
독하게 눈을 만든 강성태는 바로 앞에 있던 놈의 머리를 세차게 잡아챘다.
드드득!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간 덩치가 전원을 끈 인형처럼 아래로 무너졌다.
세 명이 서면 어깨가 꽉 끼일 정도의 복도였다.
주먹을 날리거나 회칼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은 달려들기 어려웠다.
쩌억! 쩌어억!
두 번 주먹을 날린 강성태는 흐물대며 넘어지려는 덩치의 멱살을 부여잡고 안으로 밀었다.
휙! 휘익!
방패처럼 앞에 세운 덩치 옆으로 회칼이 날아들었다.
이 거리라면 이병렬이 위험했다.
와락!
밀고 들어간 덩치를 세차게 밀친 강성태는 이를 악물 정도로 힘껏 주먹을 뻗었다.
쩌어어억!
주먹을 맞은 놈이 흐물거리며 복도 한쪽을 막는 그 짧은 사이에 강성태는 앞으로 뛰어들었다.
휘익! 드드득! 휙! 드득!
귀나 볼, 턱을 잡아서 세차게 돌리면 목이 뒤틀려 힘을 쓰지 못한다.
이것만은 쓰고 싶지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몇 개월 목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더 심하면 반신마비가 올 수도 있었다.
휘익! 드드득!
이를 악문 강성태는 독한 눈빛으로 복도를 채운 덩치의 머리를 잡아챘다.
연속해서 목을 잡아채자 옆에 있던 놈은 아예 회칼을 위로 휘둘렀다.
이런 거 훈련받는다.
근접격투술에서는 특히 그렇다.
휙! 콰작!
발을 든 강성태는 얼굴 높이로 칼을 휘두르는 놈의 무릎을 발바닥으로 세차게 찍었다.
콰작.
“끄으-.”
쩌어어억!
비명을 질렀던 놈이 흐물대는 순간이었다.
휘익! 피잇.
강성태의 왼쪽 팔뚝을 회칼이 베고 지나갔다.
휙! 드드득! 쩌어어억!
회칼로 팔뚝을 가른 놈의 머리를 잡아챈 강성태는 오른쪽에 있는 덩치의 눈을 찍었다.
퍽! 퍼억! 퍽!
틈새로 뛰어나와 칼을 휘두르던 놈들이 이병렬의 주먹을 얻어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로비처럼 뻥 뚫린 공간에서 이런 놈들과 붙었다면 강성태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을 테고, 이병렬은 위험했을지 모른다.
이병렬은 타고난 싸움꾼답게 복도라는 장소가 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쩌어어억!
강성태가 주먹을 날려 덩치 하나를 쓰러트리고 나자 문 앞을 막아선 놈은 넷밖에 되지 않았다.
세 놈은 회칼을 들었는데 엉뚱하게 가장 안쪽에 있는 놈은 일회용 컵이 네 개 담긴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목을 돌려댄 덕분에 덩치들을 해치우는 속도가 말도 못하게 빨랐다.
강성태가 회칼을 앞으로 내밀고 휘두르는 놈들을 노려볼 때였다.
“허억. 허억.”
뒤쪽에서 이병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5층까지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온 데다, 열댓 명을 상대하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아무리 복도라고 해도 뒤와 옆을 이병렬이 지켜주어서 팔뚝을 한 번 베이는 것으로 끝났다.
휙! 휘익! 휙!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로 세 놈이 딱 붙어서서 회칼을 자꾸만 좌우로 휘저었다.
조태완이 급하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김동팔이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병렬아.”
강성태가 왼손을 내밀자 이병렬이 피 묻은 회칼을 넘겨주었다.
이병렬의 손에도 피가 묻은 거로 봐서 강성태의 뒤를 지키느라 나름으로 악전고투했던 모양이었다.
칼을 받은 강성태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려 거꾸로 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앞으로 던졌다.
휘익! 퍽!
불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는 회칼이 날아가 중앙에 있던 덩치의 정강이에 꽂혔다.
눈을 동그랗게 뜬 놈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입을 쩍 벌리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억!
달려든 강성태는 칼을 맞은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휙! 드드득!
오른쪽에 있는 놈의 고개를 잡아챘다.
휙! 피잇!
몸을 피한다고 비틀었지만, 왼편에 있던 놈의 칼을 완전히 비켜나지는 못했다.
왼쪽 옆구리가 뜨끔한 순간이었다.
퍼억! 퍽! 퍼어억!
이병렬이 연달아 날린 주먹이 칼을 휘둘렀던 덩치의 얼굴에 꽂혔다.
강성태와는 달리 고개가 뒤로 젖혀지기는 했지만, 덩치는 아직 버티고 서 있었다.
퍼어어어억!
체중을 완벽하게 실은 이병렬의 주먹이 덩치의 얼굴에 꽂히며 둔탁한 소리가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콰드등!
뒤로 밀린 덩치가 문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축 처졌다.
캐리어를 든 덩치는 이미 기가 꺾인 상태였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세워두었다가는 강성태나 이병렬, 둘 중 하나가 등에 칼을 맞을 수도 있었다.
휘익! 쩌어어억!
강성태의 주먹에 얻어맞은 놈이 고개를 흔들다가 벽에 등을 기댔고, 주르륵 아래로 내려앉았다. 놈이 떨어트린 캐리어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잔인한 복도에 어울리지 않는 진한 커피 향을 풍겼다.
마음이 급했다.
강성태는 문자에서 보았던 대로 디지털 도어록을 눌렀다.
띠루룩. 찰칵. 찰칵.
도어록은 분명 풀린 것 같은데 안쪽의 잠금장치 탓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조태완! 강성태다! 조태완!”
강성태가 조태완을 부를 때였다.
퍼억! 퍽!
뒤쪽으로 움직인 이병렬이 일어서려는 놈들의 얼굴을 발로 세차게 걷어찼다.
쾅쾅쾅!
“조태완! 강성태다! 안에 있으면 문 열어!”
강성태가 다시 소리친 뒤였다.
찰칵. 띠루룩.
안에서 잠금 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조태완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김동팔이나 다른 덩치들이 칼을 들고 있을지 모른다.
상체를 옆으로 비튼 강성태는 문고리를 돌린 뒤에 홱 잡아챘다.
문을 연 직후였다.
털썩.
강성태의 발 앞에 눕는 것처럼 조태완의 상체가 밀려 나왔다.
넓고 화려한 거실 안쪽이 온통 피바다였다.
이리저리 덩치들이 쓰러져 있었고, 왼편으로 보이는 바(Bar) 역시 아래로 피를 발라놓은 것처럼 길게 핏자국이 있었다.
“조태완!”
안쪽을 살핀 강성태는 상체를 숙여 조태완의 머리를 들었다.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옷을 온통 적실 정도여서 조태완은 얼굴을 제외하고 온통 피범벅이었다.
“커흑. 컥.”
배 부근이 너덜거리는 조태완이 강성태를 보며 가쁜 숨을 들이마셨다.
“종수……. 종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조태완의 목덜미와 다리 아래로 팔을 넣은 강성태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병렬아! 엘리베이터!”
눈치 빠른 이병렬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덩치들이 타고 올라온 뒤에 그대로 두었는지 문은 바로 열렸다.
조태완을 안은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서 축 늘어진 그의 몸을 안쪽 벽에 붙이며 버텼다.
이병렬이 1층 버튼을 누르자 무지하게 여유롭고 고급스럽게 문이 닫혔다.
“김종수……. 종수…에게 연락…….”
“말하지 마.”
“끅. 끄윽.”
“조태완! 말하지 말고 숨을 삼켜! 쉬는 게 아니라 삼키라고!”
때앵!
문이 열렸다.
“나와!”
밖을 살핀 이병렬이 소리쳤다.
강성태는 엘리베이터 벽에 의지해 버티던 조태완을 팔에 깊게 넣고 로비로 나갔다.
1층 로비도 아수라장이었다.
깨진 유리, 부서진 장신구, 여기저기 쓰러진 덩치들, 쇠파이프, 회칼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형님!”
머리가 깨졌는지 얼굴 왼쪽에 피가 흥건한 김진용이 다가왔다.
“진용아! 차가 필요해!”
조태완을 안고 있는 강성태를 본 김진용은 단박에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치곤아! 최치곤!”
밖으로 달려나간 김진용이 고함을 지르자 쇠파이프를 든 최치곤이 달려왔다.
소매가 뜯겼고, 눈이 부었는데 다행히 피가 나오는 곳은 없었다.
“치곤아! 운전해!”
김진용이 열어준 뒷문에 조태완의 다리를 올리자 반대편으로 달려간 이병렬이 안쪽에서 당겼다.
강성태는 조태완의 머리를 다리 위에 올려둔 자세로 앉았다.
차 문을 닫자 조태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비릿한 냄새가 진하게 변했다.
“방지병원으로 가! 여기에서 가까워!”
차를 움직인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꺼내 네비를 켰다.
“논현동 쪽으로 일단 가! 병렬아! 치곤이 스마트폰에서 방지병원 좀 찍어 줘.”
방향을 안 최치곤이 속도를 있는 대로 높였고,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가져온 이병렬이 네비에 방지병원을 찍어 건네주었다.
조태완의 빌라와 10분 거리였다.
최치곤은 막무가내로 달렸다.
“병렬아. 김종수라는 인간 이름을 자꾸 말하던데 누군지 알아?”
“조태완이 데리고 있던 동생 중에 프로덕션 쪽으로 빠진 놈이 있는데 그놈이 김종수다.”
“김종수에게 연락하라는데 방법 있어?”
창으로 잠깐 시선을 돌렸던 이병렬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형님. 병렬입니다. 혹시 김종수 번호 아십니까? 급합니다.”
잠시 기다리던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조태완 형님이 찾는다고 전하시고, 제게 전화하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예. 정말 급합니다.”
통화를 마친 이병렬과 지켜보던 강성태의 몸이 왼쪽으로 밀렸다. 최치곤이 거칠게 끼어들었는지 뒤쪽에서 클랙슨 소리와 번쩍이는 상향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광준이 형님이 아신단다. 들은 대로 부탁했으니까 바로 연락 올 거다.”
이병렬이 내용을 전해준 다음이었다.
엔진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최치곤이 속도를 올렸다.
강성태는 시선을 내려 축 늘어진 조태완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피와 눈물을 먹고 살았으니 당연하게 받아야 할 벌인지 모른다. 호기심에 들른 클럽에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한이 쌓여서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자칫해서 돈과 더러운 권력에 맛들이면 강성태와 이병렬, 최치곤의 미래가 이럴 거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성태가 무거운 심정으로 조태완을 내려다볼 때였다.
“다 왔습니다!”
최치곤이 핸들을 급하게 틀면서 또다시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응급실로 가서 사람들 좀 불러.”
방지병원 주차장에 들어선 최치곤은 응급실이라는 불이 들어온 간판 앞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서 뛰쳐나간 최치곤이 응급실로 달릴 때, 다리 쪽에 앉았던 이병렬이 차에서 내렸다.
강성태가 팔을 뻗어 뒷문을 연 직후였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최치곤과 병원의 스태프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열린 뒷문을 통해 상체를 들이민 사람은 유헌우였다.
강성태를 보고 멈칫했던 그는 빠르게 조태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앉아 계세요.”
그는 조태완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상체를 단단하게 잡았다. 반대편으로 뛰어든 스태프가 다리를 붙든 다음이었다.
“내가 셋을 세면 허리만 들어줍시다!”
강성태는 유헌우의 지시대로 조태완의 등과 허리에 팔을 넣었다.
“하나, 둘, 세엣!”
강성태가 등과 허리를 들자 유헌우가 조태완의 상체를 당겨서 밖으로 빼냈다.
전문가들은 달랐다.
유헌우의 옆에서 기다리던 스태프 둘이 반쯤 빠져나간 조태완의 아래를 받쳐서 이동용 침대에 올리고는 응급실을 향해 달렸다.
강성태는 그 뒤에 차에서 내렸다.
조태완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다리가 흥건했고, 배와 팔도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
“후우.”
한숨을 길게 내쉰 이병렬이 트렁크에 기대고는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일이 너무 커진 거 같다.”
강성태는 대꾸하지 않았다.
“문 열었을 때 자빠져 있던 놈들 전부 뒈진 거 같지?”
이번에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씨발.”
이병렬이 뱉은 욕의 의미는 충분히 알았다.
뒤처리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강성태도 했으니까.
“다친 데는 없냐?”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이병렬이 픽 웃었다. 별것 아니라는 뜻처럼 보였다.
“이러지 말고 안에 가서 손이라도 씻자. 다른 사람 볼까 무섭다.”
이병렬이 트렁크에서 몸을 떼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스마트폰의 진동 소리가 울렸다.
이병렬이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다. 김종수 같은데?”
“받아봐.”
고개를 끄덕인 이병렬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성태를 힐끔 본 이병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병렬이오. 나 알지? 태완이 형님 내가 모시고 있는데 상태가 안 좋으시거든. 의식이 있을 때 김 사장을 찾으셨는데…….”
말을 하던 이병렬이 입을 다물고는 잠시 상대방의 말에 집중했다.
“빌라에 있는 우리 애들한테 전화해 놓을 테니까 그쪽으로 보내고, 김 사장은 병원으로 오쇼. 방지병원이라고 네비 치면 됩니다.”
말을 마친 이병렬이 곧바로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잠시만.’
눈짓을 보낸 이병렬은 바로 받지 않는 것이 짜증난다는 투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직후였다.
“그래, 나다. 정영권이가 근처에 있나 보다. 숙소 애들 데리고 갈 거다. 그놈 도착하면 전부 넘겨주고 빠져. 너는 애들하고 방지병원으로 와, 광준이 형님과 종환이에게 전화해서 애들 좀 지원하라고 하고.”
통화를 마친 이병렬은 커다란 걱정 하나를 던 얼굴이었다.
독촉할 필요 없었다.
어차피 말해줄 테니까.
강성태는 팔뚝과 옆구리의 상처를 돌아보며 이병렬이 호흡을 고르기를 기다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