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 21화
통화하는 조태완의 거만한 음성을 김동팔은 분명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이 평소보다 살짝 높다는 미세한 그 변화를 김동팔은 놓치지 않았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강성태가 빌라로 온단다.
김종수를 불렀고, 연장 채운 숙소 덩치들을 끌고 정영권이 달려오는 상황에 우연처럼 강성태마저 빌라로 오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완전히 잣 물렸네.’
뒤편에 늘어선 덩치들을 돌아본 김동팔이 목을 좌우로 꺾었다.
정영권은 외곽의 업소들을 관리하는 놈이었다. 그놈이 숙소의 덩치들을 데리고 들어오면 조태완을 주저앉힐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거기에 강성태까지 합류하면?
이상하게 강성태가 달려온다는 생각을 떠올리자 김동팔은 막바지에 몰린 느낌이었다.
김동팔은 이를 잘근 씹으며 조태완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작업한다.’
아무리 김동팔이 아끼는 새끼들이라고 해도 태완이파의 상징인 조태완을 작업하는 일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빛을 받은 덩치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동팔이?”
그때 조태완이 김동팔을 불렀다.
“예, 형님.”
“강성태가 온다니까 애들 둘 보내서 커피 좀 사 오라고 해. 아래에 있는 애들한테 말해서 도착하면 시비 걸지 말고 바로 올려보내라고 하고.”
“예, 형님.”
평소라면 한 명이라도 밖에 나가는 걸 질색했던 조태완이 둘을 내보라고 직접 말했다. 거실에 있는 덩치들을 숫자를 줄이려는 게 분명했다.
김동팔은 몸을 돌려 문 앞에 있는 가장 막내 둘에게 다가갔다.
“들었지? 형님 말씀대로 가서 전하고 커피 좀 사와.”
“예, 형님.”
두 놈이 짧게 고개를 숙여 답한 다음이었다.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해. 숙소에 연락해서 복도에도 애들 깔고.’
김동팔은 입만 움직여 뜻을 전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두 놈이 현관을 나서는 걸 보며 김동팔은 숨을 조용하게 내쉬었다.
김종수와 정영권을 쫓아내고 나면 이제 저 복도에 김동팔 숙소의 덩치들이 가득할 거다. 그때 문을 열어주면 오늘 태완이파는 보스가 바뀐다.
다른 숙소 애들에 비해 독기 있는 놈들로만 모은 데다, 김동팔의 이름값이 있어서 김종수나 정영권이 함부로 달려들기도 어려울 테고.
시간이 촉박했다.
조태완의 빌라에 들어온다는 건 제대로 신임을 얻었다는 증명 같아서 정영권이 발등에 불이 붙은 놈처럼 달려오고 있을 상황이었다.
심부름을 핑계로 숫자마저 줄이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을 향해 섰던 김동팔은 독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날카롭게 달려드는 조태완의 시선에 대고 김동팔은 고개를 똑바로 세웠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형님? 정말 강성태에게 고개 숙이실 생각입니까?”
“이 개호로 새끼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몸을 세운 조태완은 테이블을 빠르게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무기로 사용할 만한 집기는 없었다.
“나 원, 이 새끼가 오냐, 오냐 했더니 대가리 끝에 올라서려고 하네?”
조태완은 분을 못 이기겠다는 투로 바(Bar)를 향해 움직였다. 코냑 병이 제법 듬직한 무기가 되고, 중간 선반에는 회칼도 두었다.
“지금껏 개처럼 충성했는데 이제 와서 강성태같이 족보도 없는 새끼한테 고개 숙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개새끼가 어디에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조태완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김동팔이었다.
말을 뱉어낸 김동팔이 품에서 날이 뾰족하고 긴 회칼을 뽑았다. 그리고는 바(Bar)를 향해 움직이는 조태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바라보던 덩치 다섯이 두서없이 회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뛰었다.
“씨바-알!”
김동팔은 바(Bar)로 향한 조태완의 옆구리를 노리며 칼을 뻗었다.
휙!
바(Bar)에 기대 몸을 돌린 조태완이 서슬 퍼런 회칼의 날을 왼손으로 붙들었다.
서걱.
회칼의 날이 조태완의 손가락을 가르는 순간이었다.
김동팔이 조태완의 얼굴을 왼손으로 밀쳤고,
휘익! 퍼억!
바(Bar)에 놓인 코냑 병을 잡은 조태완이 김동팔의 머리를 세차게 갈겼다.
퍼억! 퍽!
머리통이 터진 김동팔이 뒤로 밀려난 직후였다.
달려들어 아예 김동팔을 죽여야 했다. 그게 좋았다. 그러나 조태완은 회칼을 든 다섯 놈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새끼들이 죽고 싶어 환장했어?”
연장을 앞으로 세운 채 주춤대는 다섯 놈을 향해 조태완은 고함을 버럭 질렀다.
다른 사람 아닌 조태완이었다.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조직의 보스였다.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조태완의 무서운 눈빛이 다섯 놈의 행동을 꽁꽁 묶었다.
이 상태에서 기를 꺾으면 저놈들은 다시 얌전하게 고개 숙인다.
조태완은 바닥에서 꿈틀대는 김동팔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머리통을 코냑 병으로 한 번 더 내리쳐서 죽여버리면 상황 끝이었다.
조태완이 독한 눈으로 김동팔에게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뭐야, 이 씨발놈아! 태완이 형님이 부르셨다니까!”
빌라 아래쪽에서 터진 고함이 아련하게 들리며 팽팽했던 긴장을 단숨에 박살냈다.
“이 병신 새끼들아! 내가 연장 들었기 때문에 종수 형님이나 영권이 숙소 애들이 들어오면 어차피 다 죽어! 그나마 태완이 형님한테 칼 먹여야 산다고!”
꿈틀대던 김동팔의 고함이 다섯 명의 덩치들을 재촉했다. 머리를 붙든 상태로 겨우 상체를 세우던 김동팔이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고 싶으면 얼른 끝내, 이 병신 새끼들아!”
“이런 씨발 새끼가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조태완이 물러나 앉은 김동팔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테이블에 올려놓은 조태완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정영권이 확인하기 위해 건넨 전화가 분명했다.
김동팔의 말대로 정영권이 밀고 올라오면 김동팔은 말할 것 없고 칼을 빼 든 다섯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만있어, 이 새끼들아!”
조태완은 움찔거리는 다섯 놈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김동팔을 향해 움직였다.
전화를 받으면 다섯 놈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얼른 김동팔의 대가리를 깨부수고 끝낸다.
이가 드러날 정도로 윗입술을 올린 조태완이 코냑 병을 옆으로 비트는 순간이었다.
“형님!”
김동팔이 죽는 꼴을 못 보겠는지 덩치 하나가 확 달려들었다가 조태완이 휘두른 코냑 병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이런 씨발 새끼가!”
병만 들고서는 다섯 놈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그렇다고 전화를 받을 수도 없다.
욕을 내질러 분위기를 누른 조태완은 다섯 놈을 노려본 채로 허리를 숙였다.
김동팔이 떨어트린 회칼을 잡은 조태완이 몸을 세우려 허리를 펼 때였다.
“씨발!”
옆에서 달려든 덩치가 회칼을 내질렀다.
푸욱!
회칼이 조태완의 옆구리를 파고들며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들었다.
“끄윽.”
옆구리에 회칼이 박힌 채 밀려나는 와중에도 조태완은 칼질한 놈의 목을 두 번이나 그었다.
서걱! 서걱!
목이 갈라져 피를 뿜어내는 동료를 보자 남은 넷도 눈이 뒤집힌 모양이었다.
네 놈이 동시에 조태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푸욱! 푹!
삽시간에 조태완의 몸에 세 번이나 칼을 꽂혔고,
푹! 푸욱!
조태완은 그중 한 놈의 목과 다른 놈의 옆구리에 연달아 칼을 꽂았다.
“크흑!”
콰당! 콰다다당!
뒤로 밀려난 조태완은 회칼을 잡은 오른손을 바(Bar)에 올린 채 앞을 노려보았다.
“들어와, 이 개새끼들아! 내가 모조리 목을 갈라줄 테니까 들어오라고!”
쓰러진 놈들에게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는 피, 본능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 수차례 찔리는 바람에 감각이 무뎌진 몸뚱이, 깡패로 살아남은 독기가 올라와 조태완도 눈이 뒤집혔다.
남은 놈들이 망설일 때였다.
“씨발! 가라고! 억울한 건 나중에 동팔이 형님한테 따지고!”
“너희 개새끼들 기다리고 있어! 다시 돌아오면 다 죽여버릴 텐까!”
빌라 아래에서 지르는 정영권의 고함이 또다시 두 놈을 자극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독하게 달려든 두 놈은 거침없이 회칼을 찔러넣었다.
푹! 푹! 서거억!
배를 두 번이나 더 찔린 조태완은 악착같이 한 놈의 목을 깊게 그었다.
푸욱!
남은 한 놈이 조태완의 배를 한 번 더 찌를 때,
푹!
조태완도 마지막 놈의 배에 회칼을 깊게 쑤셔 넣었다.
“끄응!”
이를 세차게 깨문 조태완은 회칼의 날이 위로 가게 돌린 뒤에 있는 힘껏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끄으윽! 끄아-악!”
악귀처럼 변한 인상으로 배를 가르던 조태완이 회칼을 뽑았다. 그 직후였다. 우는 표정으로 반걸음을 물러난 덩치가 스르륵 무너졌다.
“커흑! 컥!”
바에 기댄 조태완이 넘어오는 구역질을 기침으로 대신할 때였다.
“아흐. 씨바알”
머리통에서 흘러내린 피로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인 김동팔이 몸을 세우려 팔로 바닥을 짚었다.
김동팔이 일어서면 조태완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커흑.”
왼손으로 배를 움켜쥔 조태완은 비틀비틀 움직여 코냑 병을 집었다.
휘익! 퍽!
마지막 힘을 다해 휘두른 코냑 병이 팔과 다리를 뻗어 개처럼 일어서던 김동팔을 다시 바닥에 쓰러트렸고,
콰다당!
휘청이며 밀려나던 조태완은 바(Bar)에 부딪힌 뒤에 아래로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정영권이 돌아가고 나면 김동팔의 숙소 놈들이 올라온다. 그러면 조태완이 살길은 없었다.
“커흑!”
헛구역질을 토해낸 조태완은 바닥을 기어 문으로 움직였다.
그가 기어가는 아래로 구멍 뚫린 호스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악착같이 문으로 간 조태완은 피범벅인 손을 뻗어 안쪽 고리를 잠갔다.
“허억. 허억.”
안쪽 고리를 잠근 조태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현관에 기댔다.
그 직후였다.
찰칵. 찰칵.
“형님! 형니-임!”
밖에서 김동팔 숙소 덩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 사 왔습니다, 형님! 형님!”
쾅쾅쾅쾅!
‘강성태. 얼른 좀 와라.’
문에 기댄 조태완은 흐릿해지는 의식을 억지로 붙들며 간절하게 강성태를 떠올렸다.
**
30분을 예상했지만, 거의 20분 만에 도착한 참이었다.
빌라의 뒤편 주차장에 최치곤이 차를 세웠을 때, 이미 이면 도로에는 승합차와 승용차가 가득했다.
“뭐야, 이 새끼들아!”
앞쪽에 있던 정장 차림의 덩치들 일곱 명이 강성태와 이병렬이 탄 차를 쇠파이프로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말은 필요 없었다.
강성태와 이병렬, 최치곤이 차에서 내렸고, 뒤따라 도착한 승용차와 승합차에서 김진용과 서달수, 영등포의 덩치들이 줄줄이 내렸다.
“어? 네가 이 새끼야, 여기 왜 와?”
강성태와 이병렬을 알아본 눈치였다.
거친 질문이 날아들었는데 강성태는 대꾸조차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진용아! 여기 수습해!”
“예, 형님!”
김진용이 다부지게 대답한 직후였다.
“병렬아!”
“앞장서!”
강성태가 불렀고, 이병렬이 적절한 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태완이파를 정리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강성태는 빌라의 입구로 뛰었다.
“어딜 가! 이 새끼야!”
앞쪽 차에서 우르르 내린 태완이파 덩치들이 입구를 막는 것처럼 강성태의 앞으로 달려왔다.
쩌어억! 쩌억!
강성태가 바로 앞의 두 놈에게 주먹을 제대로 찍어 넣은 직후였다.
“형님들 가시게 길 열어!”
김진용의 고함이 터지며 최치곤과 서달수, 함께 온 영등포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쩌억! 쩌어억!
가장 앞에서 달리는 강성태가 연신 길을 열었고,
퍽! 퍼벅! 퍽!
뒤편에서 이병렬이 주먹을 날리며 입구를 통과했다.
“뭐야?”
쩌어억! 쩌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두 놈을 쓰러트린 강성태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병렬아!”
퍼벅! 벅! 퍼억!
연달아 주먹을 날린 이병렬이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들었고, 강성태가 뒤따라 달렸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계단이었다.
위로 달려가는 동안 중간중간 센서 등이 들어왔다가 나갔고, 아래에서는 고함과 쇠파이프가 철문을 때리는 소리, 유리창 부서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3층까지 단숨에 올라간 이병렬이 4층을 향해 계단을 밟는 순간이었다.
“저 새끼들 막아!”
위쪽에서 터진 고함이 좁은 계단에 와릉와릉 울렸다.
강성태는 이병렬을 지나쳐 앞으로 달렸다.
부으응! 퍽! 퍼벅!
쇠파이프를 날리는 놈의 허리와 옆구리를 엄지로 찍은 뒤에 그대로 위로 뛰었다.
퍼억! 퍽!
비틀대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은 이병렬이 뒤따랐다.
5층으로 향할 때였다.
휘익! 휙!
두 놈이 위협적으로 회칼을 휘두르며 앞을 막았다.
휘이익!
그중 한 놈이 회칼을 휘두르는 순간에 강성태는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몸의 옆으로 세차게 당겼다.
빨려드는 것처럼 쭉 당겨오는 몸을 뒤로 밀쳐낸 강성태는 반동을 이용하는 동작으로 튀어나갔다.
퍽! 퍼버벅!
이병렬의 주먹이 뒤로 밀려난 놈의 얼굴에 꽂힐 때 강성태 역시 주먹을 세차게 날렸다.
휘익! 휙!
상체를 숙인 놈이 휘두른 회칼을 피하느라 주먹이 빗나갔다. 강성태가 재차 주먹을 뒤로 젖히자, 덩치가 반사적으로 회칼을 위로 휘둘렀다.
그 직후였다.
퍼억!
강성태는 회칼을 위로 든 놈의 다리 사이를 세차게 걷어 올렸다.
쩌어억!
입술을 쭉 내밀며 울 것 같이 무너지던 놈이 강성태의 주먹을 얻어맞고는 뒤로 처박혔다.
계단을 올라간 강성태는 5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뭐야, 이 새끼야!”
정면으로 복도, 그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 칼과 쇠파이프를 든 덩치들이 가득했다.
“씨발!”
이병렬의 욕이 터진 직후였다.
강성태는 복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